Shin Yun-bok's Modern Art Studies in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82
182화 유명세 같은 건 다 집어치우고
단순히 그림을 보여 주는 것에 그쳤던 조선과 현재는 달랐다. 이 시대는 다른 사람들에게 작품을 보여 주는 것조차 전략적으로 하는 시기였으니까.
그렇기에 난 이 자리에 나왔다. 그 전략이란 걸 한번 제대로 짜 보기 위해서였으니.
‘올해의 작가상’이라고 불리는 행사. 이걸 좀 바꿔야 될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는 중이었기에.
“헙. 안녕하세요. 작가님.”
“와…… 작가님 실물이시군요! 진짜 팬입니다!”
처음 시작은 화기애애했다. 나를 만나기 위해 나온 국립 현대 미술관 직원들. 그들의 대부분이 날 보고 지극히 반가워했기에.
“제가 작가님 작품 보려고 진짜 비행기표를 끊을까 말까 엄청 고민했다니까요?”
“그렇게 해서 얘 실제로 홍콩 다녀왔어요.”
“그러는 팀장님은 미국까지 가셨으면서!”
티격태격하는 분위기가 상당히 좋아 보였다. 팀장이라고 본인을 소개한 그녀도, 일반 사원이라고 소개한 쪽도 모두 다 말이다. 공공 기관이라 걱정했건만 내 생각보다 이들의 관계는 수평적으로 보였다.
연신 내 팬이라고 말하는 그들. 국립 현대 미술관에서 날 맞이한 두 사람의 직원들이었다. 그들과 한참을 인사하고 나서야 우리는 비로소 본론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먼저…… 대략적인 뜻은 잘 전달받았습니다. 신 작가님.”
그 말이 시작이었다. 이후 연달아서 내게 구체적인 의견을 물어보는 그들이었다. 덕분에 난 자연스럽게 준비해 온 말들을 꺼낼 수 있었다.
“이건 제 생각인데요. 원래 개인전은 개인전만의 매력이 있고, 단체전은 단체전만의 매력이 있는 법이죠.”
조선에서와 달리 지금 시대는 작품도 그냥 보여 주지 않았다. 보는 이에게 효과적으로 감정을 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시대였으니까.
단순히 그림을 선보이는 전시조차도 단체전, 개인전, 초대전, 특별전 등등 각양각색의 이름을 붙여서 선보이곤 했다.
“제가 어릴 때 베니스 비엔날레라는 곳에 참가했었는데요.”
“알고 있습니다. 작가님.”
“거기서 무려 황금 사자상을 수상하셨죠.”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고개를 끄덕이는 두 직원분들이었다. 국립 현대 미술관에서 온 이들은 호응도가 참으로 좋았다.
“예. 근데 거기서 보니까, 국가관들끼리의 경쟁과 화합을 통해 좀 더 재미있는 전시를 만들어 가더라고요.”
베니스 비엔날레는 좋은 경험이었다. 거기에 참가한 경험은 내게 많은 걸 알려 주었으니까.
“음…… 작가님 아시겠지만, 우리나라에는 이미 비엔날레가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애매한 얼굴이 되었다. 베니스 비엔날레와 같은 형식으로 하자는 뜻으로 받아들인 모양이었으니.
알만했다. 사실 국립 현대 미술관 직원인 그들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기에. 저런 반응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솔직히 우리나라에 지금 비엔날레는 많은 정도가 아니었다.
대표적으로 광주 비엔날레부터 시작해 각종 지자체 지원을 받는 행사들. 미술 쪽 비엔날레가 너무도 많아 이 분야에 몸담고 있는 나조차 다 알지 못했다.
내가 이제 이 시대에서 산 기간이 몇 년인가. 무려 강산이 두 번 바뀌는 20년의 세월이었다.
그런 내가 모르는 비엔날레가 많다니. 이것만 봐도 이런 식의 행사들이 얼마나 무분별하게 만들어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당연히 이런 사실을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베니스 비엔날레와 같은 그런 행사를 개최하자는 것이 아니었다.
“이건 그런 비엔날레들과는 좀 달라질 겁니다. 아니, 많이 달라야죠.”
“그게 무슨…….”
“이 ‘올해의 작가상’이요. 터너상에서 영감을 가져온 것이라면서요? 그 영국 것이요.”
추천 작가 네 명을 먼저 선발하고, 그들을 경쟁시키는 방식. 4명 혹은 4팀 등 각 예술 분야에서 후보 넷을 선정해 1등을 정하는 터너상의 형태와 꼭 닮아 있었다.
문제는 영감만 받았을 뿐, 세부적인 면은 똑같지 않다는 것이었으니.
“그 터너상에 영감을 받았어도 그 방식이 완전히 같지 않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
“그건…….”
“심지어 완전히 같게 한다고 해도 통하지 않을걸요?”
각 나라별로 문화와 환경이 달랐다. 세상은 드넓었으니까. 그런 와중에 어떤 나라에서 하는 걸, 똑같이 따라 한다고 해서 같은 효과를 기대할 수는 없었다.
“그럼 당연히 변화를 줘야 하는 거 아니겠어요? 제대로 통하는 방법을 찾아 써먹어야죠.”
조선에서의 난 풍속화를 그리는 화가였다. 내가 주로 선택한 건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여인들이었다.
왜 그걸 선택했냐고? 그 시대의 다른 화가들은 나와 달리 여인을 그리지 않았으니까.
남들이 쓰지 않는 색을 사용해 남들은 그리지 않는 것들을 그리는 것. 그것만으로도 난 특별해질 수 있었다.
특이한 소재에 특수한 재료가 더해졌으니. 당연히 당시의 내 그림은 특별할 수밖에. 그 때문에 지금까지도 내 그림이 남아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이미 많은 작가들이 그렸고, 그릴 수 있는 것이 여인들이었다.
내가 조선에서와 같이 여인들만을 주로 그렸다면, 어땠을까.
답은 간단했다. 더 이상 내 작품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 수도, 마음에 욕망을 불러일으킬 수도 없었으리라.
즉, 이 시대에 태어난 난 조선에서와 달리 변화해야 했다. 가만히 있었다간 도태되기 딱 좋았으니.
지금의 국립 현대 미술관. 혹은 ‘올해의 작가상’을 뽑는 방식도, 내가 태어났을 때 한 바로 그 ‘변화’가 필요했다.
“터너상은 테이튼 브리튼을 유명하게 만들었다죠?”
영국의 테이튼 브리튼은 터너상을 격년으로 수상하는 장소였다. 여기는 터너상이 유명해진 덕분에 덩달아 다른 이들이 많이 찾는 전시관이 된 상태였다.
“그럼 우리는 그 반대를 한 번 노려 보는 게 어때요?”
“반대요?”
“네에. 터너상이 유명해 그 미술관을 찾는 것처럼 휘트니 비엔날레가 유명해졌기에, 사람들은 휘트니 미술관을 찾죠.”
이게 지금 대부분의 현대 미술관들이 해 온 방식이었다. 괜찮은 행사를 만들어 그 행사 주최자의 격을 올리는 것. 이게 쉬운 길이었을 테니까.
하지만 그걸 할 수 없다면, 어려운 길인 반대 방향이라도 가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이 반대 방향의 길은 생각보다 명확하게 눈앞에 있었다.
“우린 국립 현대 미술관을 유명하게 하면 됩니다. 이번 행사로요.”
“미술관 자체를 유명하게 만든다라…….”
“아무리 좋은 작품을 만들고 그려도, 그걸 사람들이 봐주지 않으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죠?”
이건 내 오랜 생각이었다. 과거 조선의 수많은 청렴한 작가들이 이 말을 들으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지도 몰랐다.
그들은 남들의 시선이나 욕망보단 본인들의 수행을 더 중요시 여기곤 했으니까.
그러나 난 아니었다. 자극적이라고 해도 좋았다. 덕분에 도화서에서 쫒겨도 났으며, 온갖 비난도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전생에 그 누구보다 솔직한 풍속화를 그렸던 이유.
난 내 작품이 사람들의 머리에, 마음에, 가장 강렬하게 다가갈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 덕분일까. 도화서에서 나와서도, 지금의 일본이라고 불리는 왜에 넘어가서도 늘 사람들의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 내 작품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 시대는 차원이 달랐다.
자극이 많다 못해 흘러넘치는 시대. 온갖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작품들이 홍수처럼 범람하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어지간한 정도로는 전생의 조선에서만큼 다른 이들의 감각을 사로잡는 작품을 그리기 어려웠다.
좀 더 다른 힘을 품은 작품. 그게 필요한 시기였다.
그렇기에 난 두 직원을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말인데요. 저는 방법을 좀 재미있게 바꾸는 걸 제안하고 싶습니다.”
“설마…… 작가님의 작품을 내고 싶으시다는 것도 그 방법 중의 하나십니까?”
“맞아요! 전 일단 제 작품으로 1차 유혹을 좀 해 볼 생각이었거든요.”
신윤성이라는 화가가 무슨 작품을 그렸는지. 그게 궁금해서라도 다른 이들이 이번 행사에 관심을 가지게 만들고 싶었다.
일단 오기만 한다면 그건 절반 이상의 성공이었다.
“1차 유혹이요?”
“예. 2차는 제가 그림 작품이요. 그걸 행사의 당첨 상품으로 걸어 볼까 하거든요.”
“그게 무슨!”
“작가님! 상품이라니요!”
“그게 얼마짜리인데…….”
작품을 팔겠다는 것도 아니고 당첨을 통해 주겠다니.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경악하는 게 피부로 느껴졌다.
“그…… 작가님. 아직 어리셔서 아무래도…….”
“작가님! 아니…… 저기요! 라고시안 측에서도 이거 이야기가 된 겁니까?”
한참이나 할 말을 찾지 못하는 듯 보이던 두 직원분들. 그들은 급기야 내 옆에 조용히 앉아 있는 필립에게까지 말을 걸기 시작했다. 이거 진짜 라고시안 측에서도 수긍한 거냐는 어투로 말이다.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을 죽인 채 내 옆자리에 앉아 있던 필립. 그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대답만 해 줄 뿐이었다.
“저희 라고시안은 작가님의 의견을 전적으로 존중해 드리는 곳입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잠시만요! 작가님이 아직 어리셔서 그러신 듯한데요. 작가님의 작품은 지금 한국에서 없어서 난리일 정도입니다.”
상당히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는 직원분. 난 그 말을 들으며 오히려 어이가 없어졌다.
설마하니 내가 그걸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싶었기에.
‘후, 아무래도 설명이 좀 길어지겠는데.’
놀랄 것이라 여기긴 했지만, 내 예상보다도 상대의 반응이 강렬했다.
하기야 나도 누가 몇억 단위의 그림을 상품으로 건다고 하면 이런 반응일 것이리라. 대충 납득한 난 좀 더 구체적으로 의견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제가 이전에 어떤 기록을 봤는데요. 거기 보니 한 화가가 이름을 숨기고 자기 작품을 공원에서 6만 원 정도에 팔았다고 하더군요.”
이미 미술계에서는 유명한 일화였다. 그 덕분일까. 내 말을 들은 직원들은 거의 동시에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차린 듯 보였다.
“방크시를 말씀하시는 거군요.”
지금 현대 미술계에서 살아 있는 화가 중 가장 유명하다고 불리는 이. 그러나 그 정체는 베일에 싸여 있는 사람이었다.
늘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본인의 작품을 대중에게 공개하는 화가. 하지만 그는 절대 공식적으로 누군지 스스로를 밝히지 않았다.
현대 미술계에서 살아 있는 화가 중 가장 유명한 그는 과거에 개인적인 실험을 했다.
본인의 작품이란 걸 밝히지 않은 채 뉴욕의 센트럴 파크에 자기 작품을 찬 것이었으니. 수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공원. 누구 하나 정도는 그의 작품을 알아볼 법했다.
하나, 결과는 놀라웠다. 아무도 그의 작품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으니까.
당시에 단 두 사람만이 그의 작품을 고작 6만 원 정도에 사 갔을 뿐이었다. 그것도 본인이 가지려는 게 아니라 집에 대충 걸어 두거나 선물할 용도로 말이다.
문제는 그가 SNS에 본인의 작품을 공원에 팔았다는 사실을 밝힌 후에 벌어졌다.
고작 6만 원에 불과했던 그의 작품은 수십 배 이상 폭등했으며, 사람들은 순식간에 그 공원으로 몰려갔다.
그 당시 그런 사람들의 어리석은 행태를 본 방크시는 SNS에 이런 이들의 행태를 비웃는 의견을 남겼다. 얼마나 현대 미술의 허황성이 심한지 조롱하면서.
“네에. 물론 그 작가는 무료로 공원에 작품을 풀진 않았죠. 그냥 적은 가격에 팔았을 뿐.”
그 방크시가 이름 없이 공원에 나온 본인의 작품을 사람들이 얼마에 사는지 몰랐을까. 나보다 더 잘 알았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렇기에 그런 재미있는 일도 벌인 것 아니겠는가. 그럼 나라고 이런 재미있는 거 못해 볼 게 뭔가.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으니. 이참에 다른 방식으로 재미를 추구해도 좋으리라.
“제 그림을 알아보는 사람이자, ‘올해의 작가상’이 누가 될지 맞추는 이. 이 조건을 모두 충족한 이들 중에 추첨을 해서 제 작품을 드리는 게 어떨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