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Yun-bok's Modern Art Studies in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84
184화 솔직히 그게 뭔 밸런스 붕괴야
신윤성은 객관적으로 본인의 능력을 평가하는 데 능했다. 하지만 그런 그조차도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것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그의 행보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었다.
윤성의 예측과 달리 많은 이들이 그의 행보를 주목하고 있었다. 실제로 이 좁디좁은 업계에선 벌써부터 소문이 돌고 있었으니까.
“누가, 어디서, 뭘 한다고?”
한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 사자상을 받으며 승승장구했던 화가. 박현민은 오랜만에 찾아온 동료의 이야기에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왜? 아예 육하원칙에 맞게 말하라고 하지? 누가,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이게 육하원칙이잖아.”
“……농담하지 말고. 방금 그 소리 진짜야?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같은 업계의 동료이자, 한국의 가다안 아트 갤러리에 소속된 화가. 이유안의 말에 그는 귀를 기울이는 중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 아예 말까지 놓은 사이였다. 나이가 비슷한 동시에 경력도 유사한 이들.
오늘 이들이 만남을 가진 이유가 있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이들에게 또 하나의 공통점이 생겼기 때문이었으니.
이번 ‘올해의 작가상’ 후보자들 중 두 명. 그들이 바로 여기에 모인 두 사람이었다.
그로 인해 모인 만큼 이들은 서로서로 아는 정보를 나름대로 공유하고 있었다.
“누가 어디서 뭘 한다고?”
그렇기에 박현민은 이유안에게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을 수 있었다. 그가 아는 사실과 너무나도 다른 말을 유안이 하고 있었으니까.
“나도 들은 썰이야. 글쎄, 신윤성 작가가 이번 ‘올해의 작가상’에 관련이 있다네?”
유안은 괜스레 주변을 한 번 살핀 뒤 입을 열었다. 분명 이 작업실에는 아무도 없음을 알고 있음에도 저절로 주변 눈치를 보게 되었다.
“설마…… 작가님께서 이번 올해의 작가상에 나온다는 말이야?”
현민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신윤성을 알았기에 그에 대해 다른 작가들보다 아는 게 많았다.
그렇기에 더 믿기 어려웠다. 신윤성 작가님이라면 이런 행사 재미없다고 안 나오실 것 같았기에.
“그건 아닐걸. 솔직히 그게 뭔 밸런스 붕괴야. 그쪽에서도 흥미 없을 거고.”
“그럼?”
“내가 들은 쪽은 심사 위원으로 나온다는 이야기였어.”
“그건 더 말도 안 되는데. 작가님은 큐레이터도 아닌 화가신데? 심지어 아직 나이도 어리시고.”
신윤성 작가가 대단한 것과 이건 별개의 문제였다.
나이가 어릴뿐더러 경력도 그리 길지 않은 화가. 그런 화가에게 심사 위원을 맡길 만큼 이 바닥은 개방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현민의 생각은 반만 맞은 모양이었다.
“처음에는 참가 화가로 이야기가 나온 듯한데…… 결론적으로는 심사 위원 쪽으로 가닥이 잡혔나 봐.”
“와…… 세상 진짜 빨리 변하네. 정말로 신 작가님을 심사 위원으로 부르다니.”
나름 발이 넓은 유안이 이렇게 말할 정도면, 거의 이 정보는 거의 확정이나 다름없다는 의미였다.
“근데 그거보다 더 놀라운 소식이 있다는 거 아니냐.”
“……이보다 더한 게 있다고?”
이미 현민은 충분히 놀라는 중이었다. 그가 아는 업계와 상당히 달라진 기분이 들었으니까. 그런데 이보다 한술 더 뜨는 게 있단다.
“심사 위원이 되면서 이번에 올해의 작가상 하는 방식에 개입을 엄청 많이 하셨대.”
“개입?”
“응. 거의 뭐…… 아예 행사를 새로 만든 수준이라고 하니까.”
그러면서 그는 현민에게 어떤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인지 전달해 주었다. 방식 자체는 간단했다.
너무도 노골적이고 간단했기에 어이가 없었을 뿐. 이런 현민의 생각을 읽은 모양인지, 유안은 말을 하면서도 혀를 내둘렀다.
“네가 안다는 그 신 작가님 말이야. 다른 의미로 진짜 보통 놈은 아니다.”
“야야. 놈이라니…….”
“뭐. 어때? 여긴 우리끼리만 있는데.”
원래도 할 말 못 할 말을 그다지 가리지 않는 그였다. 그렇기에 현민 앞에서도 유안은 거침없이 입을 여는 중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실패를 두려워하잖아? 근데 이 미친놈은 그게 무섭지도 않은가?”
미친놈. 유안의 입에서 험한 단어가 나왔다. 그러나 그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 중이었다.
지금 신윤성이 하는 행동이 미친 게 아니면 대체 뭐가 미쳤다는 말인가.
“심지어 작가명도 아니고 본명으로 대놓고 활동 중이잖아. 뭐 이런 또라이가 다 있지?”
“워낙 어린 시절부터 하셨으니…… 작가명이라고 할 게 없었으니까.”
그의 말에 현민은 불편한 얼굴이 되었다. 아는 지인을 미쳤다고 표현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또라이라고 하는 중이었기에.
“탁 까놓고 물어보자. 네가 신윤성이라면 이걸 할 것 같아?”
“…….”
그 말을 듣는 순간, 현민은 말문이 막히고야 말았다. 속에서 무언가가 턱 하고, 그의 입을 막았으니까.
“이건 잘해 봐야 본전이고, 잘못하면 지금까지 쌓은 이름값이 그냥 날아가는 일인데도?”
“……나라면 안 하겠지.”
현민뿐만이 아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당연히 안 할 일이었다. 해서 잃을 게 너무나도 많았으니까.
“그러니까! 근데 한다네? 내가 미쳤다고 안 하고 배겨?”
“…….”
“아직 어려서 뭘 모르는 건지. 나 참.”
그의 말대로 신윤성 화가는 어린 나이의 작가였다. 그래서 본인의 이름값이 지금 어느 정도인지 감이 안 온 것일 수 있었다.
하지만 현민은 탄식하는 동료를 보며 다른 생각을 하는 중이었으니.
‘어쩌면 그게 우리와 신 작가님의 다른 점인지도 모르지.’
다들 모험을 두려워하는 이 시대. 안전한 길만 고집하는 사람들 속에서 신윤성 작가는 특이했다.
그러고 이런 특이하다 못해 특별한 점은 어린 시절에서도 이미 드러나 있었다. 그 어린 나이에 해외에 가서도 본인이 마음대로 작품을 뽑아냈으니까.
현민이 스승의 의견에 한창 신경 쓰던 그 시절. 그는 할아버지가 이민철임에도 별다른 내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 이민철이란 배경에도 신윤성은 정말로 아무렇지 않은 듯 보였으니까.
사실 그도 한 때 지금 유안처럼 생각했다.
아직 뭘 몰라서 그럴 거라고. 이민철이란 이름이 이 업계에서 어떤지 제대로 알게 되면 반응이 달라질 거라고.
하지만 지금 보니 이건 작가님의 천성이 모양이었다.
그 때문일까. 그는 혀를 차는 상대를 보며 말을 돌려야 될 필요성을 느꼈다. 이대로 두었다간 신윤성 작가님께서 뭔 소리까지 들을지 알 수 없었으니까.
“신 작가님에 대한 이야기는 거기까지 하고…… 우리 말고 나머지 참가자들 둘은 누구야?”
“당장 내일이면 기사 날 거야. 그래서 말인데, 그 짜증 나는 자식이 우리랑 같이할 것 같아.”
“짜증 나는 자식?”
“왜 있잖아! 너한테 맨날 뭐라고 하는 걔!”
“아…….”
현민은 그렇게 말하니 곧바로 누군가를 떠올릴 수 있었다.
한때 베니스 비엔날레에 나갔지만, 지금은 거의 국내에서만 전시회를 하는 박현민. 그런 그에게 ‘퇴물’이라며 대놓고 조롱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이었으니까.
“……걔가 이번 추천 작가 중 하나야?”
“우리 빼고 이번 년도에 해외에서 한 번이라도 전시회 한 작가 자체가 많지 않잖아.”
경제가 어렵기 때문일까. 미술계가 상대적으로 위축된 한 해였다.
저 상위권에 있는 작가들이야 늘 관람객을 구름처럼 몰고 다닌다지만, 그건 현민 같은 작가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었으니.
“그야 그렇지.”
“그래서 걔도 이번 추천 작가 명단에 들었다나? 그래도 영국에서 최근 전시회 한 작가 중에…… 올해의 작가상에 안 불린 건 걔밖에 없으니까.”
애초에 한국인만 주로 뽑는 올해의 작가상이다 보니, 작가 전체의 풀 자체가 적었다. 그 때문에 약간만 조건을 충족해도 충분히 추천을 받을 수 있었다.
덕분에 현민은 그가 같은 추천 작가로 이번 행사에 참가하는 걸 이상하게 여기진 않았다.
정작 그가 걱정하는 건 다른 측면이었으니.
“어…… 설마 신 작가님이 심사 위원이신데, 그 앞에서 깽판 치는 건 아니겠지?”
박현민에게는 퇴물이라고 말하는 그 막말을 거리낌 없이 하는 남자.
문제는 그가 신윤성 작가는 엄청나게 싫어한다는 것에 있었다.
대놓고 ‘할아버지 빽으로 거기 올라간 작가’라고 말하고 다녔을 정도였기에.
현민은 두 사람의 만남이 은근히 걱정되었다.
그래도 사람 앞에서 말을 가리는 눈앞의 유안과 그쪽은 차원이 달랐다.
그는 본인이 하는 막말을 예술인 특유의 감수성으로 포장하곤 했으니까.
“설마. 걔도 이번 상이 꽤나 고플 텐데. 그렇게까지 하겠어?”
“그렇겠지?”
아무리 말을 막 하는 그라고 해도 설마하니 본인 앞에서 그 이야기를 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렇기에 현민은 유안의 말에 적당히 웃어넘길 수 있었다.
* * *
‘날 제일 잘 드러낼 수 있는 작품. 역시 그게 제일이겠지.’
올해의 작가상. 그걸 하기로 한 이상 제대로 해야 하는 게 내 성미에 맞았다.
‘도록이고 뭐고 다 가려질 테니, 작가 본인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드러내는 게 가장 좋을 것이야.’
그림을 보기 전에 먼저 자연스럽게 그림 옆 제목과 해설부터 살피는 사람들이 많은 요즘.
작품 설명은커녕 작가명도 없는 그림으로 시선을 잡기 위해선, 그 어떤 것보다 해당 화가의 색이 뚜렷해야 했다.
특히나 찾아오는 사람들은 내 작품. 신윤성 화가의 작품을 알아보기 위해 오는 사람들이 많을 테니까.
‘가장 내가 그린 것 같은 내 작품이라…….’
휘트니 비엔날레 이후 난 이 시대에 나만이 가질 수 있는 강점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조선과 대한민국. 양쪽을 모두 살아 본 인간은 나 외에는 없을 것이기에.
이런 나만이 그릴 수 있고, 나만이 표현할 수 있는 작품. 그 특별함을 지극히 원하는 중이었다.
그 덕분에 이번 ‘올해의 작가상’이 더 반가웠다. 이건 내게도 귀중한 기회가 되었으니까.
내가 잘하는 것. 혹은 내가 그리고 싶어 하는 걸 주로 그린 나였다. 전생도 그랬고 현생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나였기에 오히려 나란 존재의 본질에 대해선 그다지 고민하지 않았다.
왜냐고? 남들이 날 그렇게 궁금해할 것 같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이번만은 달랐다. 행사가 성공적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면,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질 건 나란 존재였다.
정확하게는 ‘작가 신윤성이 그렸을 만한 작품’. 그에 대해 가장 궁금해하고, 가장 알고 싶어 하리라.
‘후, 조건은 좋은데. 막상 생각해 보려고 하니 어렵네.’
4천만 원을 주며 그 작가가 원하는 거라면 뭐든 전시하게 만들어 주는 게 이 올해의 작가상이었다.
나야 그 상을 받기 위해 참가하는 화가가 아니었기에, 4천만 원을 받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내게 4천만 원이 없는 건 아니었다. 이왕 하는 일, 난 다른 작가들과 동일한 조건에서 활동을 하길 원했다.
이 정도 돈을 그림에 투자한다면 할 수 있는 건 꽤 무궁무진했다.
그렇기에 오히려 더 고민 중이었다. 이왕 하는 것, 지금의 내 정체성을 최대한 온전하게 표현하고 싶었기에.
쪼옥―
“그래서 계속 머리로 이런저런 생각만 굴리고 있어요.”
달달한 바닐라 쉐이크. 요즘 내가 한창 꽂힌 음료였다. 난 그걸 마시며 할아버지 댁에 놀러 와 있는 중이었다.
미국에서 학교 다니는 만큼 방학 때만 한국에 들어올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여기 있는 동안은 최대한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겸사겸사 할아버지나 할머니께 효도도 하고 말이다.
“화가에게 가장 어려운 고민을 하는 중이구나. 정체성 고민이라니.”
“어렵긴 한데…… 절 어떻게 하면 잘 표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거니까, 나름 생각할 거리가 많은 것 같아요.”
“으흠.”
“혹시 해 주실 조언 같은 건 없어요?”
“흘흘. 이 할애비에게 조언이라도 맡겨 놓은 게야?”
“……그보단 어른의 말씀도 잘 들어 보고 싶어서 그런 거예요. 쳇.”
솔직히 할아버지의 조언이 있다면 더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 이민철 할아버지께서는 이제 전생의 나와 현생의 나보다도 오래 사신 분이셨으니.
긴 세월을 살아 본 사람에게는 그만한 힘이 담기는 법. 이걸 알고 있는 난 할아버지를 보며 눈을 빛냈다.
저렇게 말씀하셔도 내게 도움이 될 이야기를 해 주실 거라고 믿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할아버지께서는 싱긋 미소를 지으셨다.
“윤성이 네가 평소에 잘하는 걸 하면 되지 않니.”
“제가 평소에 잘하는 거요?”
“그래.”
“물론 그림을 그릴 거긴 한데요…….”
할아버지의 말을 들은 난 애매한 기분이 되었다. 당연히 내가 제일 잘하는 것. 즉 그림 그리는 일을 할 생각이었다.
그 너무도 당연한 소리에 난 나도 모르게 약간 실망하고야 말았다. 할아버지라면 좀 특이한 의견을 주실 것 같았기에.
‘하긴. 본인의 정체성은 본인이 제일 잘 알 테니…….’
그 반응을 내가 납득하는 사이. 할아버지께서는 내 앞으로 다과를 밀어 주시며 의미심장하게 미소를 지으셨다.
“윤성이 네가 그림만 잘 그리는 게 아닐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