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Yun-bok's Modern Art Studies in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86
186화 신윤성이 미친 짓을 해서 그런 것 맞지?
한국에 돌아와서 천천히 작업을 하고 있는 내게 필립이 찾아왔다.
미국에 있어야 할 사람이지만, 내가 한국에 올 때만큼은 그도 이 한국 땅을 자주 밟는 중이었다.
마침 난 이번 국립 현대 미술관에서 뿌린 기사들을 보고 있었다. 그렇기에 필립에게 슬쩍 의견을 물어볼 수 있었다.
“홍보를 좀 빨리한 거 아니에요?”
행사의 시작은 9월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7월. 사람들의 기억이 빨리 휘발되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 홍보 기사들은 좀 빠르게 나온 느낌이었다.
‘이러다가 사람들이 까먹으면 어쩌려고 이렇게나 빨리한 거지?’
이래 보여도 나 또한 이 계통에서 일한 지 한참이었다.
전생부터 시작해 현생까지. 벌써 오랜 기간 그림을 그려왔다.
동시에 전시회도 많이 치렀다. 그렇기에 이제는 어떤 식으로 홍보를 해야 사람들이 더 관심을 가지는지도 대충 알았다.
그 때문에 이번 ‘올해의 작가상’도 내 의견대로 이렇게 진행하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필립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었으니.
“아뇨. 작가님 지금이 오히려 딱 좋습니다.”
필립은 절대 그렇지 않다며 펄쩍 뛰었다. 고개까지 절레절레 젓는 것이 확고한 의지가 엿보였다.
“지금 이렇게 뛰어난 홍보 효과로 입소문까지 퍼지고 있지 않습니까.”
사이트에 검색만 좀 해 봐도 입소문이 심상치 않다는 것 정도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이제 막 홍보를 시작했기에,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정작 내가 걱정하는 건 다른 쪽이었으니.
“……제 작품이 아직 뭔지 전달도 안 했는데요.”
정확하게는 대충 구상만 해 둔 상황이었다. 이런 상태에서 미리부터 이렇게나 사람들에게 알려 버리다니.
아무리 봐도 내 생각에는 좀 이르게 알려진 기분이었다.
“그렇기 때문입니다. 작가님의 작품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이기에 다들 오히려 공정하죠.”
그래서 공정하다니. 이건 또 무슨 해괴한 소리란 말인가. 답은 금방 알 수 있었다.
“내부에서 유출될 일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언젠가는 알려질 텐데요. 제가 작품을 국립 현대 미술관 측에 드릴 거니까요.”
9월 전시 예정이니 정말로 늦어도 8월에는 작품을 드려야 했다.
어지간한 화가라면 기겁을 할 빠듯한 일정이긴 했다. 하지만 난 달랐다.
스스로가 손이 빠르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이 빠듯한 일정에 맞출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그때부터는 철통 보안을 지킬 예정입니다.”
“철통 보안이요?”
“예. 서약서에 작성한 몇몇만 알고 있을 작정이니까요.”
필립의 말에 따르면 철저하게 비밀을 보장할 작정인 듯 보였다. 각종 비밀 유지 서약서부터 시작해 온갖 서명부들을 이야기 하는 것을 보니.
‘과연 미국. 이런건 그쪽이 이미 더 잘 알고 있다더니만.’
예전에 스마트폰을 통해 자료를 검색하다가 본 기억이 있었다. 미국의 영화 산업 쪽에서는 세상 그 어느 곳보다 확실하게 비밀 유지 서약서를 작성한다고.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내가 짐작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필립의 말은 계속되었다.
“물론 작가님에게 부탁드리고 싶은 것도 하나 있습니다. 이건 저희 측과 국립 현대 미술관이 이미 조율한 내용입니다.”
“부탁이요?”
“예. 작가님의 작품 말입니다. 그걸 최대한 늦게 국립 현대 미술관 측에 전달 부탁드립니다.”
“……일찍이 아니라 늦게요?”
지금껏 수많은 전시회를 한 나였다. 그럴 때마다 일찍 작품을 달라고 한 적은 많았다. 하지만 늦게 작품을 전달해 달라고 하다니. 이런 적은 난생 처음이었다.
어리둥절한 내 표정이 웃기다는 듯. 가볍게 미소를 띤 필립은 왜 이런 요청을 하는지 이야길 했다.
“작가님께서 홀로 가지고 계신 것이 가장 확실하게 보안이 유지되지 않을까요?”
“그거야, 아무래도 그렇겠죠.”
“예. 그래서 그렇게 말하는 걸 겁니다.”
“하지만 그건 오히려 보안 문제가 생길 것 같은데요.”
지금 이 대한민국에서 미술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고 하는 사람들은 내 다음 작품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그냥 내 작업실에 최대한 그림을 둔다는 것. 그게 정말로 괜찮을지 의문이 들었다.
“물론 작업실에 대한 보안과 경호는 철통같이 이루어져야 하겠죠. 그림의 가치가 가치인 만큼이요.”
이런 내 걱정을 익히 잘 안다는 듯. 필립은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러면서 가방에서 태블릿까지 꺼내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저희 라고시안 측에서 작가님의 작업실에 좀 더 보안을 강화할 작정입니다.”
가방에서 나오는 그 물건을 보자 난 눈치챌 수 있었다. 익히 익숙한 장면이었기에.
“설마 오늘 오신 이유가…….”
“예. 작가님. 전자 서명도 괜찮지만, 이런 건 역시 직접 이야길 드리고 서명을 받아 가는 게 좋으니까요.”
그러면서 필립은 자연스럽게 내게 태블릿을 내밀었다.
깔끔한 하얀색 배경에 적혀진 까만 글씨들. 그건 간단하게 적혀진 동의서였다.
“…….”
말없이 서류를 읽은 난 능숙하게 서명을 했다. 조선에서는 낙관이 익숙했던 나였다.
그러나 이제는 낙관보다도 이런 펜을 사용하는 서명 쪽이 편했으니. 역시나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님.”
“……왜요? 서명은 방금 했잖아요.”
서명까지 했음에도 필립의 눈은 여전히 반짝거렸다. 뭔가를 내게 바라고 있다는 그 눈빛.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다른 건 아닙니다. 단지…… 이쯤되면 가닥이 잡히셨을 것 같아서요. 혹시 생각해 두신 게 있으십니까?”
“……유출은 안 된다면서요.”
어이가 없었다. 방금 비밀 유지를 위한 보안 어쩌고 동의서에 서명한 지 1분도 안 지난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대놓고 알려 달라고 하다니. 내 두 눈이 절로 가늘어졌다. 의심 어린 내 표정 때문일까. 필립은 억울하다는 기색으로 펄쩍 뛰었다.
“당연히 유출할 생각은 없습니다! 제 직업 윤리를 뭘로 보시고!”
그는 모욕당했다며 어이없어했다. 그러면서 왜 내게 그런 질문을 던졌는지 재빨리 입을 여는 게 아닌가.
“그냥 좀 궁금해서요. 작가님의 신작은 원래 제가 제일 궁금해하는 거 아시지 않습니까.”
그건 그랬다. 필립은 애초부터 내 작품에 대해서 가장 관심이 많은 편이었으니.
대충 납득한 난 가볍게 현 상황에 대해 귀띔했다.
“음…… 일단 가볍게 생각해 둔 게 있긴 한데요.”
“오. 네네, 어서 말씀해 보시죠.”
“……비밀입니다.”
손가락을 입가에 가져가며 난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작가님. 요즘 뭐 이상한 거 보시는 건 아니시죠?”
“진짜 비밀이에요. 아직 딱 나온 게 아니기도 하고요.”
대략적인 구상이 끝났을 뿐. 완전하게 나온 건 아니었다. 내가 보는 나와 남이 보는 나. 그걸 모두 표현해 볼 생각이었으니까.
“다만 재미있게 할 겁니다.”
“재미요?”
“네에. 이건 신윤성하면 떠오르는 작품이잖아요. 지금까지처럼 제가 그리고 싶은 걸 그리는 것보단…… 제가 바로 생각나는 걸 그릴 거에요.”
이제껏 내 작품은 간단했다. 남들이 가장 보고 싶어하는 것. 그리고 가지고 싶어 하는 작품. 그걸 주로 그리려고 도전했으니까.
그 때문에 이 시대를 더 공부했고, 나만의 특성을 잘 보 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이번은 좀 달랐다. 온전한 나, 동시에 남들이 보는 나. 이걸 표현하는 것이었으니.
‘화가들이란 늘 자기를 잘 드러내고 싶어하는 법. 후후후.’
속으로 난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개인적으로는 아주 기대하고 있었다. 이번 ‘올해의 작가상’을 말이다.
* * *
신윤성이 두근거리는 심정을 가지고 작업을 하고 있는 그 시간.
다른 한 곳에서는 괴로워하는 작가의 신음 소리가 터져 나오는 중이었다.
“아니야!”
우당탕―
작업실에서 한창 무언가에 몰두하던 그. 그는 짜증 섞인 큰 소리를 내며 머리를 감쌌다.
끼익―
한참을 자기 작품을 노려보고 있는 그때. 작업실의 녹슨 철문이 열렸다.
“형!”
“아…… 왔네.”
그는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물론 흘끔 뒤를 돌아 누가 왔는지 확인하는 건 덤이었다.
그의 작업실에 찾아온 이는 친한 동생이었다. 정확하게는 친한 동생 겸, 그의 작품을 관리해 주는 소속 화랑의 직원인 김철수였다.
“아니. 이게 다 무슨 일이야. 형.”
어질러지다 못해 난장판이 된 작업실. 그 몰골을 본 그는 이 작업실의 주인이자 화가인 정석비에게 질문부터 던졌다.
그러나 석비는 제대로 된 대답 대신 다른 말부터 했다.
“나중에 사람이나 좀 불러. 이거 다 치우는 것도 일일 테니.”
“그거야 금방 업체 알아보면 되는데…….”
거기까지 말한 철수는 살살 눈치를 봤다. 짜증과 화가 잔뜩 서린 얼굴. 그걸 본 그는 결국 입을 열고야 말았다.
“그, 형.”
“지금 동생으로서 온 거야?”
“아니. 그럼 작가님.”
역시나 민감한 상태였다. 바로 호칭부터 뭐라고 하는 것을 보니. 이런 그를 진작부터 알아 왔기에 철수는 얼른 호칭부터 바꿨다.
“작가님. 너무 부담을 가지실 필요는 없으십니다.”
철수는 눈앞에 있는 상대가 왜 이런 반응인지 짐작했다. 예상과 달리 이번 ‘올해의 작가상’은 예년 같지 않았으니까.
“물론 지금 이목이 좀 집중된 것이 사실입니다.”
철수는 분명 작가인 석비의 심신을 위로하려고 했다. 적당한 칭찬과 더불어 사기를 북돋는 그런 말들 말이다.
하지만 그런 그보다 화가의 반응이 빨랐다.
“……그 신윤성이 미친 짓을 해서 그런 것 맞지?”
“그, 그게…….”
갑자기 튀어나온 다른 화가에 대한 욕설. 그에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어버린 철수였다.
그가 할 말이 없어지거나 말거나 이미 짜증이 날 대로 난 상대방은 말을 전혀 가리지 않았다.
“하! 그 애송이만 가만히 있었어도 진짜! 이게 어떻게 잡은 기회인데!”
이대로 가만히 두었다간 뭔 짓을 하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그 때문에 그는 살살 눈치를 보며 말문을 붙이기 시작했다.
“기회요?”
“…….”
잠시 침묵을 지키던 석비. 그는 이 동생이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한 지인이라는 걸 상기했다.
친동생은 아니지만, 그보다 더 친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존재였다.
원래 사람이란 게 친한 존재 앞에선 약한 모습도 좀 드러내고 싶은 법. 이건 석비 또한 마찬가지였다.
“후, 솔직히 말해서 신윤성 작품이랑 내 거 비교했을 때 큰 차이가 느껴지냐?”
“그, 그건…….”
“솔직히 나 정도면 경력으로 보나 실력으로 보나 신윤성보다 낫지 않나?”
철수 또한 이 순수 미술계에서 밥을 벌어 먹고사는 존재였다.
당연히 차이를 느끼긴 했다. 신윤성의 그림은 직접 보면 그 뚜렷한 색채감에 다들 할 말을 잃어버릴 정도였으니까.
‘무슨 마법을 부리는 게 틀림없다고 할 정도였지.’
하지만 이 분위기에서 그런 느낌을 솔직하게 말해 봤자 좋을 게 없었다. 오히려 잘못하면 맞기만 하지 않겠는가.
“아하하하. 작가님 정도시면 신윤성 작가도 한 수 접어줘야 하죠.”
“그렇지? 신윤성 걔. 할아버지가 이민철인거 빼면 나보다 나을 게 뭐가 있어? 나도 할아버지가 이민철이었으면 그 정도 했을 텐데.”
“그, 그건…… 아하하하하.”
아무리 생각해도 이쪽은 할아버지가 이민철이라고 해도 신윤성이 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철수는 어색한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이번이 진짜 기회인데 말이지.”
“아까부터 말씀하시는데, 무슨 기회요?”
“뭐긴 뭐겠어. 신윤성이가 거품 낀 화가고 진정한 한국의 차세대 화가는 나라는 걸 만천하에 알릴 기회지.”
“…….”
이 비대하기 짝이 없는 자신감. 아무리 화가에게 자신감이 중요하다곤 하지만, 이쯤 되자 듣는 이가 할 말을 잃어버리게 만들 정도였다.
“그런 의미에서 말인데. 좀 알아봐 봐.”
“……알아보다니요?”
그는 무척이나 불안했다. 이 또라이 같은 화가가 또 뭔 미친 짓을 하자고 할지 몰랐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바로 다음에 나오는 말이 보통이 아니었으니.
“뭐긴 뭐겠어. 신윤성이의 다음 작품. 뭔지 알면 내가 대응하기 좀 더 쉬울 거 아니야. 그거 좀 알아봐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