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Yun-bok's Modern Art Studies in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92
192화 과시하기에 이만한 게 없다
“대체 그런 건 어찌 알아내시는 거예요?”
국립 현대 미술관에서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친절하게 알려 줄 리도 만무한데, 그걸 알아 오다니. 라고시안의 정보력은 날로 발전 중이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다른 곳에서 정보가 들어왔거든요.]“다른 곳이요?”
[예. 최근 스미소니언 측에서 저희에게 한 가지 문의가 왔습니다.]스미소니언. 익히 알고 있는 이름이었다. 이전에 언뜻 필립을 통해 들은 이야기도 있었고 말이다.
“미국 최대의 박물관이잖아요. 거기가 라고시안에게 물어볼 일이 있었나 보네요?”
라고시안이 세계적으로 거대한 갤러리라곤 하지만, 감히 스미소니언과 비교할 수는 없었다.
스미소니언 박물관은 미국의 국가적인 지원을 받는 곳이었기에. 오죽하면 미국 연방 정부 예산의 일부가 스미소니언에게 들어갈 정도겠는가.
신기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대체 뭐길래 라고시안에게 스미소니언이 먼저 연락을 준다는 걸까.
[저희 같은 갤러리에게 연락을 준 이유가 뭐겠습니까. 다 전시회 때문이죠.]“전시회요? 설마…….”
다른 사람과 관련된 일이라면, 필립이 이렇게 내게 말을 시작할 리가 없었다.
[예. 한국과 미국. 양 나라와 관계가 있는 작가들을 모아 특별전을 열려고 하더군요.]특별전. 말 그대로 특별히 여는 전시회였다. 저런 말이 붙은 전시회라면 정기적으로 하는 행사는 아니란 소리였으니
[스미소니언에서요. 당연히 그 첫 대상자는 작가님이시고요.]“……제가요?”
솔직히 믿기 어려운 말이었다. 한국에 화가들이 얼마나 많은데 내가 첫 대상자라는 말인가.
“말도 안 되는데요. 한국 화가들 중에는 할아버지도 계시는걸요.”
이민철 화백. 우리나라 미술계에서 추상화의 거장 하면 반드시 들어가는 분이셨다.
내가 아무리 최근에 이름을 좀 날렸다고는 하지만, 감히 할아버지의 아성을 아직 위협할 수 없다고 여겼다.
그림을 그리신 세월이 얼마이시며, 할아버지께서 그 긴 세월 동안 증명하신 부분이 얼마인가.
더군다나 할아버지께서는 나와 달리 현대 미술의 주류라고 할 수 있는 추상화의 선구자셨다. 그런 할아버지를 두고 내가 첫 손에 꼽힌다니.
그런데 스미소니언에서 처음 선정한 화가가 나라고? 당연히 내가 쉽게 믿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필립은 오히려 스미소니언 측을 이해한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이민철 화백과도 같은 분들은…… 아무래도 미국보다는 유럽 쪽에 가까우시니까요.]“할아버지께서 주로 유럽에서 많이 활동하시긴 했는데…….”
[게다가 최근에는 전시회나 행사도 좀 뜸하시기도 했고요.]“전시회나 행사는 제가 많이 하긴 했죠.”
다른 건 몰라도 그거 하나는 자부심이 있었다. 어지간한 화가들보다 난 최근 들어 전시회와 행사는 열심히 했으니까.
‘할아버지께서도 그 부분은 칭찬 많이 하셨지.’
손자인 내가 하는 모든 걸 좋아해 주시는 할아버지셨지만, 그중에서도 유난히 대견스러워하는 부분은 있었다.
그건 바로 내가 최선을 다해, 죽을 만큼 열심히 그림을 그린다는 점이었다.
오죽하면 ‘넌 나이도 어린 게 뭘 벌써부터 그렇게 한 맺힌 듯이 그림을 그리냐’고 했을 정도였으니.
남들은 알 수 없었겠지만, 사실 나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전생의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내가 그림을 쉽게 볼 리가 없잖아.’
이전 생인 조선. 그곳에서 난 원대로 그리지 못하고 죽은 것이 제일 한스러웠다. 어찌나 억울했던지 하늘이 날 다시 태어나게 했을 정도 아니겠는가.
인생은 긴 듯하지만 굉장히 짧았다.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었음에도 하지 못하고 죽는다면, 그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렇기에 난 최근 들어 그 누구보다 바쁘게 살았다. 그러니 어지간한 한국 화가들보다 내가 행사나 전시회를 많이 했을 수밖에.
[흐흐흐. 미국과 관련된 한국 화가 중 지금 작가님만큼 유명한 화가는 없죠! 최근에는 휘트니 비엔날레도 참가하셨으니까요.]그러고 보니 휘트니 비엔날레가 조만간 끝날 시기가 다가왔다. 가을에 끝나는 만큼 가을 학기가 시작하고 얼마 안 있어 비엔날레가 종료되리라.
‘하나가 끝나니 다른 하나가 온 건가?’
휘트니 비엔날레가 끝나고 이번 학기가 마무리되면 난 교환 학생을 갈 작정이었다. 그런데 스미소니언에서 전시회 제안이 왔다니.
특별전이라는 걸 보니, 그쪽에서 많은 지원을 해 주는 초대전의 형식인 게 분명했다. 만약 그렇다면, 놓치는 게 좀 아까울 게 뻔했다.
속으로 남몰래 그런 계산을 하는 사이에도 필립의 말은 전화상에서 계속 들려왔다.
[이제 와서 보니, 휘트니 비엔날레에 참가하신 작가님의 선택이 정말 탁월했습니다!]“……갑자기요?”
[아니. 솔직히 스위스에서 열리는 아트 바젤도 거부하시면서까지 하는 게…… 좀 그러기도 했었는데요.]필립은 이제야 비로소 솔직해지겠다며 속내를 드러냈다.
이해가 갔다. 보통 사람이라면 세계 최대의 아트 페어 대신 휘트니 비엔날레를 선택하진 않을 테니까.
[그때는 작가님이시니 믿는다는 느낌이었는데…… 지금 보니, 오히려 엄청 잘하신 겁니다! 그 때문에 스미소니언에서도 작가님을 더 주목하신 모양이거든요.]“아하.”
[가장 미국적인 비엔날라레고 하는 휘트니에서 이 정도로 이름을 알리셨으니까요.]“아직 휘트니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이름을 날렸다고 하는 건 좀…….”
그렇게 말하는 건 아직 이르지 않냐고 말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지금의 필립은 내 말을 듣는 기색이 아니었다.
[한미 양쪽에 영향력이 있는 화가 중 작가님만 한 사람이 없죠. 역시 작가님이십니다!]전화기 상으로도 느껴졌다. 필립이 현재 기분이 좋다 못해 날아가는 중이란 것을.
그는 약간 높은 목소리로 빠르게 줄줄이 정보를 내뱉는 중이었다.
[흐흐흐. 국립 현대 미술관이 괜히 작가님의 말에 껌뻑 죽은 게 아니더라고요.]“……그러고 보니, 그 이야기 중이었죠. 근데 그게 국립 현대 미술관이랑 무슨 상관이에요?”
그제야 난 우리가 원래 하던 말들이 어느 쪽이었는지 깨달았다. 심지어 나만 잊어버린 것도 아닌 듯 보였다.
[아, 그러고 보니, 그 이야기 중이었군요.]다행스럽게도 필립은 이전에 하던 대화를 기억해 냈다. 그렇기에 그는 어찌 된 영문인지 내게 상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한국 문체부의 윗선이 한미 교류 문제로 스미소니언과 협력할 일이 있는 모양입니다.]“오. 그런 일이 있었어요?”
[네. 물론 여기에는 저희의 추측도 좀 들어가 있습니다만…….]“추측이요?”
[사실 한국과 미국의 좋은 관계를 과시하기에 이만한 게 없지 않습니까. 마침 좋은 핑계도 있고요.]좋은 핑계. 이 단어를 입에 담으며, 필립의 목소리가 한층 나직해졌다. 그러더니 그는 비밀 이야기를 하듯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아시지 않습니까. 한국의 모 재벌 회장님의 수집품 이야기요.]“아. 그거요.”
당연히 알고 있었다. 한동안 그로 인해 온 한국이 떠들썩했을 정도였으니까. 각종 세계적인 미술가들의 작품부터 시작해 의외의 물건들까지. 다들 그걸 한 번쯤 보고 싶어했다.
[그 수집품 특별전을 스미소니언 아시아관에서 한다고 하더군요. 그 국립 아시아 예술 박물관 말입니다.]일명 NMAA라고 불리는 그곳. 미국 내에서 가장 큰 아시아 전문 미술 기관인 그곳에는 한국실도 있다고 알고 있었다. 필립이 말하는 데는 거기이리라.
[뭐. 한국 전문 큐레이터도 채용하고 이것저것 많이 하는 모양인데요. 저희에게 중요한 건 이거죠.]“이거요?”
[그 특별전과 동시에 한미 양측 문화 교류를 위해 작가전들도 한다는 겁니다. 초대전 형식으로요.]“그게 제가 거론된 이유였군요.”
그제야 난 온전하게 알 수 있었다. 스미소니언 측에서 왜 라고시안에 연락을 했는지, 그리고 국립 현대 미술관 측에서 내 이야기를 유난히 잘 들어준 그 이유를 말이다.
[정확한 건 저희도 스미소니언과 더 이야기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만…… 국립 현대 미술관 측에선 작가님의 심기를 건들고 싶지 않았을 겁니다.]“……제가 괜히 깽판을 치면 그쪽도 곤란하니까, 그런 건가요.”
[아하하. 국립 현대 미술관은 잠자는 호랑이의 코털을 건드리고 싶진 않았을 거니까요.]한순간 ‘날 뭐로 보고!’란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었다. 내가 공사 구분도 못 할 인간으로 보인 건가 싶었으니까.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일리가 있었다. 그들 입장에선 돌다리도 두들기고 나가고 싶었을 테니.
“그러고 보니, 다른 이야기 하다가 까먹을 뻔했네요.”
[예? 뭘요?]뭐긴 뭐겠는가. 원래 우리의 대화의 시작 말이다.
“그래서 그 국립 현대 미술관의 전시회요. 그게 어찌 되는지…… 언제쯤 제가 알 수 있을까요?”
[다시 온라인 예약을 시작하거나 다른 공지가 나오면, 제가 바로 연락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작가님.]“그럼 부탁드립니다.”
하지만 난 의외로 필립의 연락을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그보다 더 빨리 내게 소식을 전해 온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 * *
늘 하던 것처럼 부모님께 안부 인사를 하는 와중이었다. 갑자기 할아버지께서 시간 날 때 통화를 달라고 하신 것은.
할아버지와 잠깐 이야기하는 게 뭐가 어렵겠는가. 그렇기에 난 그 자리에서 바로 영상 통화를 걸었다.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할아버지께서는 내게 자랑부터 하셨다.
본인이 직접 ‘올해의 작가상’ 전시회 입장권 구매를 인터넷으로 시도해 보셨다고 말이다.
“직접 하신 거예요?”
[그럼! 당연하지. 원래 이런 건 다 해 봐야 아는 거야.]“근데 어려우셨을 텐데요. 성공하셨어요?”
[크흠. 커험, 험.]내 질문에 대한 대답 없이 연신 헛기침만 하시는 할아버지. 그걸 보고도 모를 만큼 난 바보가 아니었다.
“안 되셨군요.”
[도전했다는 데 의의를 두는 것도 있는 법이지. 암. 그렇고 말고.]“……필립에게 표 구해 달라고 말해 볼까요?”
[아니다. 다음 예약 오픈 때 다시 도전해 볼 생각이다.]“…….”
[크흠. 사실 내가 전화 달라고 한 이유는…… 만약 한두 번 더 했는데, 그래도 안 되면 그때는 내 부탁하마.]“한두 번…… 그러니까 최소 몇 번은 더 시도해 보신다는 거네요?”
[흘흘. 그래야지. 이 할애비, 이래 보여도 이제 키오스크도 잘 써요.]아무리 생각해도 최대한 많이 쓰려고 만들어 둔 키오스크랑 이게 같은 선상에 놓을 수는 없어 보였다.
하지만 난 그걸 지적하는 대신 그냥 입을 다물었다.
직접 손자가 하는 전시회를 위해 이렇게 발을 벗고 나서는 할아버지시라니. 그거만으로도 충분히 좋았으니까.
[그래도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더구나.]“다행이요?”
[비록 할애비는 예약에 실패했지만 말이다. 내가 실패했다는 소리는 그만큼 윤성이 네 전시회가 인기가 많다는 것 아니냐.]“……감사한 일이죠.”
필립의 말에 따르면 확실했다. 사이트가 터질 정도면 확실히 인기가 있다는 소리였으니.
초반부 인기가 이 정도라면, 이번 전시회의 성공 가능성이 그만큼 올라간 것이었다.
[흘흘. 그러니 좋다는 게지. 이 할애비도 우리 손자 그림이 뭔지랑 그 ‘올해의 작가상’을 맞춰 볼 거다.]“……이미 할아버지께서는 제 건 뭔지 아시잖아요.”
[아니? 모르는데? 본 적도 없는 걸 내가 어찌 아누.]물론 그림을 보지는 않으셨다. 그러나 종종 내가 하는 질문을 통해 할아버지께서는 충분히 내 그림이 뭔지 알아차릴 수 있을 만한 실마리가 많으셨다.
“…….”
[뭘 걱정하는지는 알겠는데, 할아버지는 거기 투표를 하진 않을 거다. 그냥 알게 된 친구들이랑 같이 내기하려고 그러는 것뿐이야.]“전시회를 알게 된 친구들과 오시는 거예요? 누구랑 오시는데요?”
할아버지의 친구들이라니. 누군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어쩌면 같은 업계의 화가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윤성이 넌 모르는 친구들이지. 외국 애들인데.]“외국인이요?”
저렇게 말씀하시는 걸 보니, 예전 유럽에서 공부하실 때 알던 친우분들이라도 한국에 놀러 오시는 모양이셨다.
[흘흘. 이왕 먼 길 오는 거 내 손주의 전시회를 보여 줘야 하지 않겠어? 걔네들은 본인이 그림 보는 눈이 기가 막히다고 매번 주장하는데, 이참에 진짜인지 아닌지 알 수 있겠지.]“……그러니까, 제 작품이 나오는 전시회를 시험 삼아 써먹으시겠다는 거네요.”
[크흠. 그러니 우리 같이 갈 거다. 너! 난 몰라도 그 친구들 투표하는 것까지는 말리지 말어.]“당연히 말릴 생각 없어요…….”
어이가 없어졌다. 할아버지도 아니고 친구분들이 투표하는 것까지 내가 왜 말린다는 말인가. 한 분이라도 더 많이 해 주면 감사한 일이거늘.
[흐흐흐. 그럼 되었다. 같이 전시회 볼 생각하니, 엄청 기대가 되는구나. 다음번에는 꼭 3명분 예약에 성공해 보마.]기분 좋게 웃으시는 할아버지. 그런 그분을 보며 나 또한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통화를 마칠 수 있었다.
* * *
역사상 가장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올해의 작가상’을 뽑는 이번 전시.
그 전시회가 드디어 국립 현대 미술관에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