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Yun-bok's Modern Art Studies in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93
193화 혹시 신윤성 작가 거 알아볼 자신 있어?
가다안 아트 소속의 화가이자 이번 ‘올해의 작가상’을 뽑기 위한 전시회에 참가한 화가. 이유안. 그는 오늘 완전 중무장을 했다.
‘이 정도면 아무도 모르겠지.’
선글라스부터 시작해 모자까지. 거기다 평소와 다른 스타일인 옷을 입었다. 이 정도의 변장이라면, 원래 알던 사람도 잘 알아보지 못 하리라.
‘공정성을 위한다고 화가들도 전시회를 미리 못 보게 하다니…… 이건 주최 측의 횡포야!’
물론 이 말을 대놓고 할 수는 없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한국에서 현대 미술 화가로 활동하는 유안이었다. 그런 그가 국립 현대 미술관 측에게 이런 말을 직설적으로 할 수 있을 리가. 그랬다간 그의 밥줄이 위험할 수도 있었다.
기업들이 만든 화랑이 좋다곤 하나 이 나라에서 공공 쪽의 힘을 무시할 수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속으론 뭔 말인들 못 하겠는가. 그렇기에 그는 투덜거리면서 서울에 위치한 국립 현대 미술관으로 가는 중이었다.
곧바로 그 장소에 도착한 이유안. 그는 자기도 모르게 입을 떡 벌리고야 말았다.
‘이, 이게 뭐야?’
그는 일부러 아침 일찍 왔다. 원래 이런 건 아침에 와야 사람이 적고 오후에 가면, 사람이 많은 게 당연했기에. 인간은 생각보다 부지런하지 않았으니. 하지만 그런 그의 예상은 완벽하게 빗나갔다.
“저기요. 지금 여기 줄 선 거 안 보여요?”
“……이거 줄이에요?”
“그럼 줄이죠. 저희가 할 일 없이 여기 있겠어요?”
그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상대방의 까칠한 대답이 들려왔다. 그가 조금 앞으로 움직이긴 했다. 그렇다고 이렇게까지나 적대적인 반응이 돌아오다니.
째려보는 눈초리에 놀란 그는 자기도 모르게 뒤로 뒷걸음질을 쳤다.
퉁―
“아. 죄송합니다.”
뒤로 물러나다가 그는 누군가와 부딪쳤다. 아직 얼굴을 보지 못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사과부터 했다. 그가 물러나다 부딪쳤으니, 그가 잘못한 것이었기에.
그러나 사과를 위해 고개를 숙인 그의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익숙한 것이었다.
“뭐야. 이유안. 너도 온 거야?”
“어?”
“치사하다며 안 올 것처럼 이야기하더니…… 첫날 바로 여기 왔네?”
“박현민 너…….”
그 심히 익숙한 목소리의 주인은 박현민이었다. 그는 이번에 유안과 같이 ‘올해의 작가’를 선발하기 위한 전시회를 참가한 동지였다.
“네가 왜 여기 있는 거야?”
“나야, 올 거라고 미리부터 했잖아.”
“……그러면서 그 선글라스는 뭔데? 여기가 전시장이지 해변가는 아닌데?”
남자가 평소 돌아다닐 때 선글라스를 낄 일이 뭐가 있겠는가. 심지어 그들의 눈앞에 있는 곳은 실내인 전시장이었다. 선글라스 따위, 아무리 봐도 필요한 곳은 아니었다.
“그러는 너야말로 선글라스에 그 어이없는 모자는 뭐냐? 어디 야구장이라도 가는 거야?”
“……나야 좀 정체를 감추고 싶어서 그랬지.”
“…….”
그 말을 들은 현민은 잠시 침묵했다. 두 사람이 함께한 세월이 얼마인가. 자연스럽게 유안은 현민의 속내를 읽을 수 있었으니.
“설마…… 너도?”
“그럼…… 너도?”
“…….”
그 문장을 끝으로 두 사람 사이에는 다시 고요가 찾아왔다. 시끄러운 주변과 달리 조용해진 둘 사이의 공기.
그러나 역시나 이럴 때 먼저 입을 여는 쪽은 조금이라도 얼굴 가죽이 두꺼운 쪽이었으니.
그게 바로 여기선 이유안이었다.
“크흠. 그나저나 너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나 보지?”
“원래 4명이 할 때는, 이 정도가 아니었으니까.”
“하긴…… 화가들 숫자가 늘어난 영향이 없지는 않겠지.”
원래대로면 딱 4명의 추천인만 선발해서 하는 올해의 작가상. 하지만 이번에는 국립 현대 미술관이 미쳤는지 갑자기 후보를 늘려 버렸다.
그 결과 무려 9명이나 되는 작가들이 이번에 참여했다.
“그나마 더 늘리겠다는 것도 단번에 그렇게 할 수는 없다면서 막은 게 주최 측이라고 듣긴 했지.”
유안은 머리를 끄덕끄덕 움직였다. 가만히 바라보던 현민은 그를 툭툭 치며 입을 열었다.
“솔직히 전시회를 오픈 런까지 하다니, 최근에 이런 전시회가 있었나?”
“외국에서 온 유명 작가의 기획전 같은 것들 중 아주 아주 가아끔 있기는 하지.”
“그건 뭐…… 다시 한국에 오기 힘들다고 해야 오는 수준 아니야.”
“그러니까 있기는 하다는 게 내 이야기인데?”
서로 안부를 물으며 잠시 의견을 교환하던 두 사람. 그들은 거의 동시에 속내를 드러냈다.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 같이 볼래?”
“어차피 볼 거 같이 보는 것도 좋지 않나?”
원래라면 남자끼리 이런 전시회를 잘 가진 않았다. 그러나 이건 그들이 주인공인 전시회였다. 그렇다면 같이 볼 수도 있는 일 아니겠는가.
“음음. 같이 보는 것도 괜찮지.”
“그럼…… 그렇게 멍하니 고개만 끄덕이지 말고, 빨리 앞으로나 가.”
“엉?”
“줄을 제대로 서야 표를 살 거 아니야. 너도 입장권 사려고 여기 있는 거잖아?”
그건 사실이었다. 일단 전시회에 들어가기 위해선 입장권이 필요했으니까.
“…….”
그렇게 두 사람은 스마트폰을 바라보며 줄을 섰다. 잘 서기만 하면 될 것이라고 여겼던 이번 전시. 그러나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으니.
“표가 없어요?”
“네.”
“아니, 그게 말이 돼요? 전시회 표가 없다니?”
단호박을 먹은 듯 확실하게 말하는 매표소의 직원. 그녀를 바라본 유안은 자기도 모르게 되물어보고야 말았다.
세상천지에 미술관에 표가 없어서 못 들어간다니. 이런 희귀한 일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저기요.”
그러나 유안의 반응에 접수원의 표정이 미미하게 찌푸려졌다. 그러더니 그녀는 고개를 모로 기울이며 곳곳에 흩어져 있는 사람들을 턱으로 가리켰다.
“저기 있으신 분들이 왜 저렇게 서 있겠어요?”
그녀의 고갯짓에 유안의 시야도 돌아갔다. 그의 눈에 스마트폰을 든 채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사람들이 몇 명 보였다.
“설마…… 저 사람들이 다?”
“예. 그러니까 오후에 오세요. 오후 2시부터 다시 한번 현장 예매 시작하니까요.”
그러면서 그녀는 옆의 한 곳을 손으로 가리켰다. 거기엔 간단한 안내 문구가 붙어 있었다. 입장권 판매를 오전과 오후에 한 번씩 한다는 그 말 말이다.
“……우리 전시회가 이 정도였다는 말이야?”
“나도 온라인 예매가 인기 있다는 소리를 듣기는 했는데…….”
“했는데?”
“솔직히 과장한 건 줄 알았지.”
현민의 말에 유안은 동의했다. 그들은 이 업계에서 가장 최전선에 있는 화가들이었다.
그렇기에 오히려 잘 알고 있었다.
순수 미술이 얼마나 대중에게 먼 존재인지, 혹은 전시회가 콘서트나 뮤지컬 같은 것들보다 얼마나 비인기인 존재인지 말이다. 당연히 인기가 있다는 기사를 봐도 믿을 수가 없었다.
“나도 그랬거든. 언론에서 신윤성 작가가 나온다고 하니, 괜히 호들갑 떠는 거라고 여겼으니까. ”
신윤성 작가. 한국인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를 두루 갖춘 화가였다.
세계적인 각종 미술제에서 성적을 내고 있는 화가. 그와 동시에 오대 전자의 스마트폰 등 아트 콜라보에도 이름을 올리며 대중에게 친화적인 존재였다.
그림 가격은 날로 천정부지로 솟구치고 있는 작가. 심지어 그 화가가 어리고 젊기까지 하니, 인기가 없으려야 없을 수가 없었다.
그런 익숙한 화가가 어떤 이벤트를 한다는데,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 아니겠는가.
“진짜로 우리가 하는 올해의 작가상이 이 정도의 인기가 있었다니.”
그들도 화가였다. 그렇기에 올해의 작가상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알고 있었다.
심지어 이번에는 원래대로 4명이 참가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 정도의 인기라고 하니, 괜스레 가슴이 두근거리는 기분이었다.
“……어쩌지?”
“어쩌긴 뭘 어째. 점심 대충 먹고 이따 와서 사야지.”
현민의 말을 들은 유안은 조심스럽게 한 가지 가능성을 제기했다.
“……직원 혜택. 이런 거 없겠지?”
“뭐?”
“아니면 관계자 특혜라던가…….”
“당연히 있을 거는 같은데? 그런데 난 있어도 그거 굳이 밝히고 들어가고 싶지 않아.”
그는 유안의 말에 꽤 단호하게 의견을 말했다. 딱히 멋을 부리는 성향이 아닌 현민이 이렇게 선글라스까지 낀 채로 아침에 여기 온 이유가 뭐겠는가.
“만약에라도 누군가 안에서 마주쳐 봐. 그게 무슨 느낌이겠어?”
“……오후에 오자.”
“그래. 잘 생각했어.”
대충 의견을 교환한 그들은 스마트폰을 들어 맛집이나 검색하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점심을 먹고도 사람이 많을 듯하니, 몸보신이라도 잘해 둬야 하지 않겠는가.
* * *
‘여기 오기가 이렇게 힘들 줄이야.’
아침 식사에 가까운 이른 점심을 먹고 일찌감치 줄을 선 그들이었다. 그 덕분일까. 다행스럽게도 두 사람은 무사히 입장할 수 있었다.
“이거…… 우리가 좀 늦게 줄 섰으면, 이번에도 못 들어왔겠는데?”
“내가 미술 전시회를 가지고도 오픈빨 무시 못 한다는 소리를 하게 될 줄이야.”
한탄하는 두 사람이었지만, 얼굴은 밝았다. 일단 들어왔으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입구에서 철저하게 입장 인원을 제한하기 때문일까. 막상 들어온 전시장 안쪽은 그리 인파가 많지 않았다. 사람들이 있었으나, 전시회 관람하는 데 무리가 없는 수준이었으니.
“좋아 그럼 우리도 한번 본격적으로 보자.”
“그러니까. 공정성을 위한다며, 우리끼리도 못 보게 했으니…… 이제야말로 봐줘야지.”
이미 두 사람의 손에는 한 장씩 종이가 들려 있었다. 당연히 작품 정보가 구체적으로 나와 있는 도록은 아니었다.
그들이 들고 있는 건 여기 참가한 화가의 정보. 그게 나와 있는 일종의 작은 책자였다.
참가하는 화가 9명이 누구인지 알아야 이 행사의 정답을 맞출 수 있을 테니. 이렇게 기본적인 정보를 관람객들에게 주는 것이리라.
“오. 이게 그 투표권인가 보다.”
“전시회 티켓의 일부였구나. 아이디어 좋네.”
전시회 입장권의 일부를 잘라 투표를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거기엔 두 가지 정보를 적을 수 있도록 빈칸이 놓여 있었으니.
“하나는 신윤성 작가 거를 찾으면 되는 거고…… 나머지 하나는 미래에 결정될 우승작을 적으면 되는 거지?”
“아직 우승작이 누구인지 하나도 정해진 것이 없으니까. 뭐. 누구보다 공평한 추첨권이긴 하네.”
몇몇 관계자들은 알 수도 있었다. 신윤성 작가의 이번 신작이 무엇인지.
그러나 그런 그들조차도 이번 ‘올해의 작가상’이 누구의 손에 들어갈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투표와 더불어 심사 위원들의 평가까지 같이 들어가기에. 그로 인해 이 시점의 누구도 미래를 보지 못하는 인간인 이상 그걸 알 수는 없었다.
전시장에 들어간 유안은 작품과 그 주변을 본 순간 기가 막힌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허…… 이거 진짜 제목도 진짜 안 붙여 놓았잖아.’
이럴 거면 그들에게 제목은 왜 지어 오라고 했는지 모를 정도였다. 그림 대신 그 옆에 붙어 있는 건 숫자였다. 바로 투표를 하기 용이하게 만든 그 숫자 말이다.
“원래 제목은 붙이기로 한 것 아니었어?”
“그랬는데 국립 현대 미술관이 작품들 보고 바꿨다고 듣긴 했어.”
“……왜 난 못 들었지?”
“막판에야 공지된 사항이었으니, 네가 메일 잘 확인하지 않으면 몰랐을 거야.”
“쩝.”
혀를 찬 그는 첫 번째 작품을 들여다보았다. 기괴한 모형으로 보이는 작품이었다. 그 이상한 작품을 보고 있으면, 이게 누가 만들었는지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현민 너 말이야…… 혹시 신윤성 작가 거 맞출 자신 있어?”
이유안은 솔직히 반신반의했다. 그도 그럴 게 이제 보니 정말로 그림밖에 볼 수 있는 게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제아무리 보는 눈이 좋다고 해도 단번에 해당 작가의 작품을 알아볼 수 있을 리가. 그게 가능할 정도면 감각이 미친 듯이 좋은 것이리라.
‘이 정도면 우리 부모님도 내 것 못 알아보실 것 같은데.’
유안이 속으로 은근한 걱정을 하는 사이. 현민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작품들을 봐야 알 것 같은데…… 난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아.”
“뭐? 알아볼 수 있다고? 저기 숫자 1번 따위가 붙은 이 전시회에서?”
“응. 벌써 찾은 것 같거든.”
그런 현민의 시선은 어딘가에 고정되어 있었다. 친구의 집중하는 모습에 유안 또한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그리고 거기엔 한 작품이 존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