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Yun-bok's Modern Art Studies in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97
197화 너무 잘나서 그런가 눈이 높거든
원래 저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시선이 쏠리는 법. 민철의 의미심장한 말에 알렉스와 제임스도 그를 향해 주목했다.
그런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민철은 씩 미소를 지었다.
“이왕 가는 김에 내기를 해 보는 것도 좋지 않겠나?”
“내기?”
무슨 소리냐는 그 얼굴들을 바라보며 민철은 퍽 거만한 눈빛이 되었다. 정확하게는 자랑스러워 견딜 수 없다는 표정이었으니.
“우리 손자가 이번 전시회에 꽤나 재미있는 행사를 열었거든.”
“아, 난 또 뭐라고.”
이런 상황에서도 손주 자랑은 빠지지 않는 이민철이었다. 본인은 그다지 잘난 척하지 않으면서 손자인 신윤성에 대해선 좋게 말하는 걸 넘어 과하게 자랑스러워하는 중이었다.
이미 그걸 잘 아는 알렉스와 제임스였다. 자연스럽게 그런 민철의 팔불출스러운 말을 적당히 걸러 들은 두 사람. 그들은 고개를 갸웃하며 궁금한 점만 물어볼 뿐이었다.
“화가가 전시회 하는 게 뭐 큰일이라고. 재미까지 있나?”
역시나 민철의 예상이 정확했다. 업계가 행사로 바쁜 이때. 진짜 미술의 중심부인 이들은 오히려 고요했다.
다들 자기 작품 활동을 하느라 이런 소식에 늦기 때문이었다. 그걸 아는 민철은 손자의 자랑스러움을 모르는 안타까운 이들을 위해 친절하게 설명을 이었다.
이런 걸 할아버지인 그가 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는가.
“이번 건 진짜 흥미진진하다네. 글쎄 말이야. 내 손주 녀석이 자기 그림을 떡하니 걸어 버렸거든. 흘흘.”
“그러니까. 원래 전시회는 그림을 거는 거 아닌가.”
“단순히 전시회에 거는 게 아니라, 그 그림을 상품으로 걸었다는 게 포인트지! 당첨되는 사람에게 무상으로 주겠다는 뜻인데!”
“뭐?”
“아니…… 그런 위험한 일을 했다는 말입니까?”
그제야 이들은 민철이 한 말을 온전하게 이해했다. 뜨뜻미지근했던 반응은 문장을 이해한 순간 놀라움으로 변했다.
두 사람이 놀란 이유. 그건 이들이 본인들 작품이 가진 값어치를 알기 때문이었으니.
그림의 객관적인 가치라고 할 수 있는 가격은 오르는 것도 순식간이지만, 떨어지는 것도 찰나였다.
무상으로 이렇게 그림을 준다고 해 봐라. 그럼 비싼 돈을 주고 산 사람이 뭐가 되겠는가.
수집가들의 빈정이 상해 확 그림 가격을 낮출 수 있는 위험 부담. 그게 차고 넘쳤다.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이들은 놀란 것이었으니.
“그걸 안 말리신 겁니까?”
“신 작가가 아직 나이가 어려 뭘 모르면 자네라도 말렸어야지!”
두 사람의 뜨거운 반응을 느끼면서도 민철은 태연했다. 익숙하게 샤브샤브 국물에 자작하게 죽을 만들면서 그는 느긋하게 말문을 열었다.
“이미 난 경고했네. 근데 윤성이가 자신감이 넘치더군.”
“자신감이라니?”
“자기가 그런 일을 해도 함부로 자기 그림을 팔아 버릴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는 거야.”
“그게 무슨…….”
“그리고 만약 그런 이유 때문에 기분이 나빠서 팔 정도면, 그 그림의 가치는 딱 그 정도라고 잘라 말하더라고.”
“…….”
“허. 참.”
자신만만한 그 의견을 들은 알렉스와 제임스. 한쪽은 침묵이요 다른 한쪽은 감탄을 표했다. 각기 다른 반응이었지만, 이들의 속내는 비슷했다.
그 확고부동한 자신감에 놀라는 중이었으니까.
“여러 의미로 대단하긴 하네요. 괜히 천재라고 불리는 게 아니군요.”
“우리도 다 한때 천재라고 불렸지. 저건 뭐…… 아직 어려서 세상 물정을 모른다고 해야 하는 건지, 원.”
기가 막혀 하는 이들을 보며 민철은 아예 한술 더 떴다. 원래 이런 대단함은 할 때 확실하게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
“그거뿐만이 아니지. 이번 전시회도 우리 손자의 의견이 적극 반영되었거든.”
“……이미 안 들어도 얼마나 특이한 전시회인지 알 것 같은데.”
“……저희가 마음이 통했네요. 저도 어쩐지 짐작이 가거든요.”
두 사람의 반응이 어떻든 민철은 슬슬 신이 난 상태였다. 원래 이 나이쯤 되면 할 수 있는 자랑 중 하나는 바로 핏줄에 대한 것 아니겠는가.
“아예 다른 화가들에게 계급장을 떼고 붙어 보자고 했지 뭔가.”
“…….”
“어때? 대단하지?”
답은 정해져 있고 넌 대답만 잘하라는 말투. 좋은 말만을 바라는 그 어조에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
“몇 년에 걸쳐 쌓은 이름을 본인이 가린 채 하겠다니…….”
“화가로서는 최고의 모험인 셈이군.”
“그러게요. 어지간해서는 절대 안 할 일이네요.”
“그렇지. 보통은 해 봤자 손해가 더 많으니까. 잘못하면 본전도 찾지 못할 테고.”
번갈아서 공통된 의견을 내던 알렉스와 제임스. 그런 그들의 두 눈이 마주쳤다. 아직 뜨거운 샤브샤브 냄비만큼이나 열기가 오른 눈빛이었다.
“그 정도라고 하니…… 오히려 호기심이 생기는데?”
“저도 그렇습니다. 대체 어떤 작품을 냈길래 그 정도의 자신감인 건지…… 개인적으로 궁금해지는군요.”
“내 손자의 작품이니 충분히 만족할 걸세.”
“근데 내기라니?”
“흘흘. 맞춰야 하는 건 내 손주의 작품과 이번 전시회의 1등이야.”
“그야 방금 자네가 할 말을 잊을 정도로 난 아직 치매가 오진 않았네만.”
“자네들 둘 다 그림 보는 눈들 있다고 자부하는 편이니, 어지간해서는 맞출 것 같기는 하지만…….”
“어째 서론이 긴데. 얼른 본론이나 들어가지?”
“흘흘. 다른 건 아니고…… 만약 맞추지 못한다면 내 손주 좀 도와줬으면 해서.”
손자를 도와 달라는 할아버지의 부탁.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 할아버지가 이민철이 아니고, 그 손자가 신윤성이 아니라면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 말을 들은 제임스는 몰랐다는 눈빛으로 질문을 던졌다.
“신 작가 말고 다른 손주도 있었어요?”
그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말이었다. 손자 하나가 저 정도로 잘나가고 있다면, 다른 손자는 더 걱정이 될 테니까.
그러나 제임스의 질문을 들은 민철은 어깨를 으쓱하며, 뭔 헛소리를 하냐는 말투로 답했다.
“없는데. 내게 손주는 오직 윤성이 하나뿐이지.”
그 말을 들은 두 사람은 어이가 없었다. 지금 본인들의 제자 혹은 자식보다도 잘 나가고 있는 어린 손자를 뭘 도와 달라는 말인가.
“아니…… 혼자서 이런 일까지 벌이는 잘난 손주를 우리가 도울 게 뭐가 있는데?”
“너무 잘나서 그런가 눈이 높거든.”
“그게 무슨…….”
“어지간한 사람은 이번 행사의 심사 위원으로 차지도 않는 모양일세.”
실제로 아직 ‘올해의 작가상’은 신윤성을 제외하곤 명확히 확정된 심사 위원이 없었다.
예년과 비교하면 심사 위원의 위촉이 확실하게 늦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쯧쯧. 알 만하구만. 자네 힘으로도 어려운 모양이지?”
“하려면 할 수야 있는데…… 알다시피 윤성이는 내 손주라서.”
자칫 민철의 힘으로 도와줬다간 좋지 않은 꼴을 볼 수도 있었다. 민철은 이미 그걸 한 번 겪었다.
딸인 가영을 돕기 위해 어설프게 나선 게 결국 그 애가 붓을 꺾게 만들었으니까.
물론 윤성은 가영과 다른 존재였다. 훨씬 더 재능도 있고 마음가짐도 단단한 아이였으니.
그러나 민철은 괜한 위험 부담을 짊어지고 싶진 않았다. 그렇기에 이런 꾀를 낸 것. 그게 바로 이 방법이었다.
“내기에서 지면 우리보고 괜찮은 심사 위원들 찾아봐 달라는 소리구만?”
“정확하네. 역시 척하면 착하고 알아듣는다니까. 흘흘.”
“근데 그 정도는 내기가 아니어도…….”
내기 아니어도 도움을 주겠다고 이야기하려는 제임스. 그런 그를 막은 건 갑작스럽게 끼어든 알렉스의 말이었다.
“좋아. 내기라면 우리가 이겼을 때 얻는 것도 있겠지?”
“……뭘 원하나?”
“흐흐. 그건 내가 이기고 말하도록 하지. 그때까지 내가 지길 바라며 잔뜩 쫄아 있도록!”
알렉스 유니언이라는 거장의 이름을 가진 사람답지 않게 그는 입꼬리를 올려 미소를 지었다.
“그러는 자네야 말로 이기고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어딘가 꿍꿍이가 가득한 두 사람의 얼굴. 지긋한 나이임에도 악동같이 구는 둘을 보며 제임스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나도 그 내기의 대상이니…… 이동할 때 차 안에서 그 전시회 정보나 찾아봐야겠군.’
아무리 생각해도 제일 좋은 건 그가 이기는 거였다. 그래야 떳떳하게 저 둘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겠는가.
속으로 결심한 그는 서로 누가 누가 더 비열하게 웃는지 대결하는 듯한 두 사람을 내버려 둔 채, 마지막 남은 샤브샤브 국물을 후루룩 마셔 버렸다.
* * *
‘할아버지는 전시회 잘 보고 계시려나?’
끝까지 누구랑 가는지는 말씀하지 않으시던 할아버지. 그 정체 모를 지인분들과 잘 관람을 하고 계신지 모르겠다.
“작가님. 저쪽이 도착한 모양입니다.”
할아버지를 생각하던 내 머릿속은 순식간에 현실로 돌아왔다. 필립이 날 보며 중요한 말을 속삭였기 때문이었으니.
“그래요?”
“예. 곧 여기로 올라오겠군요.”
나와 필립이 있는 장소는 에일대 근방에 위치한 한 식당이었다. 적당한 규모에 맛이 좋아 내가 가끔 차를 타고 와 먹곤 하는 곳이었다.
익숙한 장소였다. 하지만 아예 통째로 빌린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근데…… 이렇게 전체 다 빌릴 필요가 있어요?”
지금 이 식당 안에는 딱 우리뿐이었다. 나와 필립이 기다리는 상대방이 온다고 해도 고작 한 테이블만 찬다는 소리였으니.
“이게 좋습니다. 스미소니언과 협상하는 건데…… 괜히 다른 이들이 근처에서 들었다간 소식만 먼저 새어 나가기 좋죠.”
그게 필립이 이 식당을 전체 대여 하자고 한 이유였다. 납득하기에는 좀 빈약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우리는 진즉 이 식당을 오늘 하루 통째로 대여한 상황이었기에.
쿵―쿵―
미국식으로 지어진 식당답게 나무로 된 계단. 그곳을 올라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여길 모두 빌린 이상, 저 발소리의 주인은 뻔했다. 아니나 다를까. 양복을 잘 차려입은 두 사람이 나타났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스미소니언이 워싱턴에 있으니, 저희가 가는 것도 괜찮았는데요.”
“아닙니다. 작가님께서 여기 계신데, 저희가 와야죠. 학생이신 작가님을 오라 가라 할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아하하하하.”
“그럼 라고시안도 있고 스미소니언 뉴욕 박물관도 있는 뉴욕도 괜찮았을 텐데…… 아쉽네요.”
“저희가 빨리 만나 뵙고 싶었던 것이라 생각해 주십시오. 그리고 워싱턴서 여기는 그리 멀지도 않고요.”
이 정도 거리는 멀리 다니는 것도 아니라는 상대방. 그들은 오늘 나와 필립이 만나야 하는 스미소니언 재단의 담당자였다.
한동안 사교를 위한 인사를 진행했다. 그 직후 역시나 미국 사람들답게 이들은 빠르게 본론으로 들어갔다.
“작가님께서 현재 참여 중이신 휘트니 비엔날레가 거의 끝나간다고 들었습니다.”
“네. 그건 그렇죠.”
지난 학기부터 진행되었던 휘트니 비엔날레. 그건 어느덧 막바지에 이르러 있었다.
“거기 재미있는 작품이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그 작품. 저희에게 맡겨 주시는 건 어떠시겠습니까.”
“그 작품이라면 설마…….”
“예. 작품명 , 그 연작이 저희는 무척이나 탐이 납니다.”
작품 여러 개를 붙여서 하나의 작품이 될 수도 있는 동시에, 각각 떨어뜨려 놓아도 되는 것. 그렇기에 그건 모네의 처럼 연작이라고 불렸다.
물론 이번 국립 현대 미술관에 내보낸 처럼 하나로 모여야 더 빛을 발한다고 개인적으론 생각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걸 걸겠다고요?”
상대의 당당한 반응에 난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 입으로 이런 말 하기 뭐하지만 그건 논란이 현재 진행 중인 작품이었으니까.
원인은 간단했다. 대한민국의 이웃 국가 중 한 곳이 내 작품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에.
‘나야 뭐. 상관없는 편이기도 하지만…….’
무섭도록 논란이 되기 때문일까. 오히려 저 작품은 지금껏 세상에 내온 내 작품들 중 가장 아시아 지역에서 화제가 되고 있었다.
잘못하면 국가 간에 사이가 어색해질 수도 있는 그 화제성. 나야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지만, 스미소니언은 다르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들은 내 질문에도 꿋꿋하게 본인들의 의견만 전달할 뿐이었다.
“예. 저희는 그 작품을 아시아관에 걸 생각입니다.”
‘대체 왜…… 굳이 그걸?’
의문에 휩싸인 내 머릿속을 짐작한 듯. 그들은 입가에 미소를 띤 채 말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