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Yun-bok's Modern Art Studies in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98
198화 미술계에서 아시아는 블루오션
조선에서나 이 시대에서나 외교 문제는 민감한 일이었다. 자연히 어지간한 사람들은 굳이 분쟁거리를 만들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에 따라 난 당연히 미국의 스미소니언도 비슷할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이런 내 생각은 반만 맞은 모양이었으니.
“작가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이번 전시회의 목적은 미국과 한국의 교류를 기념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고 들었죠.”
한미교류 몇 년이라나 뭐라나. 한국에서도 이에 대해 꽤 많이 신경 쓰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게 아니라면 국립 현대 미술관인 내게 그 정도로 저자세일 리가 없었으니까.
“그런 만큼 양국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죠. 작가님께서는 현재 한국과 미국 양국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 중 한 분이시고요.”
“그건…….”
내가 최근 약간의 명성을 얻었다고는 하나 그뿐. 솔직히 난 그 정도는 아니라고 여겼다.
그러나 내가 먼저 이에 대해 반박하기도 전. 상대의 말이 조금 더 빨랐다.
“아니, 정확하게는 거의 유일무이한 분이시죠. 작가님과 같은 분은 단 하나뿐이시니까요.”
내 얼굴에 잔뜩 금칠을 해 주는 말이었다. 나의 대단한 부분만 잔뜩 이야기하는 상대방. 그런 그들을 보며 내가 뭐라고 하겠는가.
여기서 ‘난 그 정도의 인물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게 더 웃기는 일이었다.
‘표면적인 이유는 납득이 가능한데…….’
좋게 포장하는 사유야 알았다. 하지만 내가 진짜 궁금한 건 단 하나도 해소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런 내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들의 칭찬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중이었다.
“단 하나뿐인 존재에게 최고의 대접을 해 드리고 싶은 것뿐입니다.”
“…….”
내 떨떠름한 기색이 표정에 드러났기 때문일까. 그들은 웃으면서 핵심을 입에 담았다.
“저희를 안 믿으시는 얼굴이시군요.”
“……죄송합니다. 제가 좀 얼굴에 드러나 보이는 편이라.”
너무도 쉽게 내 속뜻을 읽어 버리는 그들. 그런 상대를 보며 난 머쓱한 기분이 들었다.
전생에서부터 고생은 했지만 거리낄 일은 없었기 때문일까. 난 기분을 감추는 데 능숙한 인간은 아니었다. 내가 남들에게 표정을 잘 감추는 사람이었다면, 도화서에서 나오지도 않았으리라.
도무지 납득하지 못하는 내 표정 덕분인지. 그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으흠. 어쩌면 이게 작가님에게는 더 진실되게 들릴 수도 있겠군요.”
턱을 쓰다듬으려 입꼬리를 올리는 스미소니언 측. 그런 상대를 보며 난 침을 꿀꺽 삼켰다.
‘오 드디어 본론인가?’
핵심이 나온다는 생각에 난 정신을 바짝 차렸다. 기브 앤 테이크.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본인들의 정신이었으니까.
“저희 스미소니언은 아무래도 자연사 박물관이 메인입니다.”
잘 알고 있었다. 스미소니언 박물관. 이들 재단에서 가장 많은 관람객들이 찾는 곳이었으니까.
“하지만 미술관도 소홀히 할 수는 없죠. 자연사뿐만 아니라, 요즘 세상은 점점 미술도 중요해지고 있으니까요.”
원래 하나의 사업에만 모든 걸 거는 건 좋은 게 아니었다. 왜 예로부터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한 바구니에 계란을 모두 담지 말라고. 그게 깨져 버리면 너무도 타격이 크기 때문이었으니.
그렇기에 이해할 수 있었다. 스미소니언이 자연사 박물관이 아닌 미술관에도 투자하려는 그 이유를 말이다.
내가 속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에도 그들의 말은 계속되었다.
“더군다나 미술계에서 아시아는 블루오션이죠.”
“……아시아가요? 블루오션이요?”
“예. 수요는 어마어마하게 많지만…… 공급은 잘 따라가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그건 사실이었다. 아시아 미술 시장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었다. 미술 자체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는 추세였고.
하지만 확실히 공급은 부족했다. 순수 미술 쪽으로 나가는 한국 화가들은 날이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였기에. 그만큼 살아남기 쉽지 않은 분야기도 했고.
“거기다 아시아계는 미국에서 인구가 히스패닉 다음으로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건 몰랐던 사실이었다. 에일대에서도 아시아계 유학생을 종종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정도로 인구가 빠르게 늘고 있을 줄이야.
“그래서 저희는 아시아 전시관을 키울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하.”
“그러는 와중에 마침 한미교류로 인해 이와 관련된 전시회를 기획하게 되었으니, 딱 알맞은 기회죠.”
거기까지만 말하며 빙그레 미소를 짓는 상대방. 그런 그들을 보며 난 잠시 침묵했다.
‘……아무리 봐도 이건 나한테만 너무 좋은데.’
스미소니언이 말한 부분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이건 나만 좋은 쪽에 가까웠다. 이걸 해서 스미소니언이 이득인 부분이 뭔지 도무지 모르겠으니 말이다.
지금까지 내가 한 모든 전시회나 행사들. 물론 그건 나 좋으라고 한 것이었다.
그러나 결단코 나만 좋으라고 한 것은 아니었다.
베니스 비엔날레나 휘트니 비엔날레는 나뿐만 아니라 그 해당 비엔날레에도 좋았다. 그렇다면 아트 콜라보는 어떤가. 영화를 위한 그림도, 스마트 폰도. 모두 나만 좋은 건 아니었다. 나와 함께 일한 모두에게 좋은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이건 아니었다. 내가 얻는 이득에 비해 스미소니언은 크게 가져가는 것이 없었다. 즉이 정도로 불균형한 상태임에도 스미소니언이 하겠다고 여기 에일대 근처까지 오다니.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었다.
‘음. 어디 한번 던져 볼까?’
원래 이상한 생각이 들면 파헤쳐 보는 게 인지상정인 법. 마침 내겐 좋은 기책도 가지고 있는 상태였다. 이거라면 저 여유 넘치는 표정이 바뀌는 걸 볼 수 있으리라.
속으로 계산을 끝낸 난 상대방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제가 스미소니언의 전시회에 참여하길 바라신다는 거죠?”
“물론입니다.”
“그거 혹시 단독전도 되는 거예요?”
“……예?”
역시나 그들은 내가 질문을 하자마자 표정이 바뀌었다. 두 눈이 동그랗게 변하며 잠시 말까지 잃어버리는 것이 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단독 전시회. 화가 혼자 모든 전시회를 책임지고 만들어 내는 것. 그건 내가 최근에는 거의 하지 않은 전시회 방식이었다.
비엔날레부터 시작해 라고시안에 걸린 그림들까지. 모두 다 나 혼자만의 전시가 아니라 누군가와 같이 한 일이었으니까.
그랬던 내가 갑자기 혼자서 단독 전시회를 입에 담으니, 저런 표정을 짓는 것이리라.
“제 이름인 신윤성을 단 단독 초대전. 그것도 가능한 건지 궁금해서요.”
“그…… 작가님. 저희가 원래 기획한 전시회는 한미 작가님들과 함께한 단체전입니다.”
알고 있었다. 한국 화가와 미국 화가들 몇 명. 그들이 이미 거론되고 있다는 사실을 필립으로부터 들은 상태였으니까.
난 그걸 알면서도 몰랐다는 듯이 아무렇지고 않게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그럼 어렵다는 말씀이시군요?”
“그게…….”
“음. 그럼 이번에는 아무래도 좀 어려울 것 같아요.”
내가 이 말을 하자마자 그들의 낯빛이 굳어지는 게 보였다. 또한 이 말에는 내 옆에서 잠자코 앉아 있는 누군가도 놀라게 한 모양이었다.
[크흠. 작가님. 진짜 안 하실 겁니까?]오죽하면 필립이 내게 한국말로 이런 질문까지 할 정도였으니까.
[잠깐만요.]이들 앞에서 한국말을 길게 하는 건 예의가 아니었다. 이래 보여도 난 예의 없는 걸 무척이나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예의 없는 행동을 할 리가 없지 않은가. 나라 망신도 아니고. 그렇기에 난 필립에게 길게 이야기 하는 대신 가만히 있을 것만 부탁했다.
“작가님! 어려우시다니요.”
“제가 이 뒤에도 좀 바빠서요.”
“……국립 현대 미술관 전시회는 진행 중이시지 않습니까. 휘트니는 곧 끝나고요.”
과연 준비성 하나는 확실했다. 상대방은 이미 내 일정을 줄줄이 꿰고 있었다.
그러나 거기에 흔들릴 내가 아니었으니.
“제가 아직 학생이라서요. 교환 학생도 고려 중이고…… 하여튼 좀 어려울 것 같네요.”
“…….”
“단독 초대전도 아니고 단체전이면 제가 이미 많이 해 본 거라…… 학업을 우선하고 싶습니다만.”
그 말을 끝으로 난 활짝 미소를 지었다. 눈앞에 있는 상대방의 눈빛이 고민에 휩싸이는 게 훤히 보였다.
“그러니 만약 단체전이면…… 죄송하지만 전 어려울 것 같네요.”
물론 그 와중에도 무척이나 안타깝다는 표정을 최선을 다해 짓는 걸 잊지 않는 나였다.
* * *
간단한 만남 후 필립은 날 숙소 쪽으로 데려다 주는 중이었다. 둘만이 가는 차 안. 필립은 그제야 한숨과 함께 속내를 드러내었다.
“후…… 아까는 진짜 식겁했습니다.”
“아, 그랬나요?”
“예. 무려 스미소니언인데…… 거기서 단독전을 열어 달라고 하시다니요.”
“죄송해요. 의논도 안 하고, 제 마음대로 말해서.”
“괜찮습니다. 어차피 작가님의 의지가 가장 중요한 것이니…… 다만 궁금은 하네요. 왜 그러신 겁니까?”
“과하다고 느껴서요.”
“과해요?”
“예. 뭔가 속셈이 있는 것 같기는 한데…… 그게 뭔지는 잘 안 보여서요.”
분명 우리에게 말하지 않은 다른 뜻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표정은 잘 숨기지 못해 남들에게 종종 들키지만, 이래 보여도 눈치는 꽤 빠르지 않은가.
그런 내 촉이 정확하다면, 분명 말하지 않은 뭔가가 스미소니언에 있었다.
“그게 무슨…….”
필립은 내 말에 이해할 수 없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운전을 하는 와중에도 말끝까지 흐리며 되물어 볼 정도였으니.
분명 직감적으로 이상한 부분이 느껴졌다. 그러나 난 이내 어깨를 으쓱이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눈빛을 보였다.
“근데 제 요구 조건을 이렇게까지 들어주는 걸 보니,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드네요.”
뭘 노리는 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스미소니언이 단독 전시회까지 열어 주려고 한다면, 난 뭐가 되었든 상관없었다.
단독 전시회. 그거 하나만 하면, 상대가 뭘 노리든 그 이상으로 내가 얻어 낼 자신이 있었으니까.
“자기네들도 의논해 보고 알려 준다고 했으니…… 좀 기다려 보죠.”
“만약 작가님의 뜻을 안 들어주신다고 하면 어찌하실 겁니까?”
“그게 무슨 소리예요?”
“원래 하려던 그 단체전만 가능하다고 하면요. 그래도 하실 거예요?”
“안 할 건데요.”
“……진짜요? 안하시게요? 무려 스미소니언인데?”
“스미소니언이 아니라 스미소니언 할아버지라고 해도 안 해요.”
“대체 왜…… 비엔날레나 다른 단체전은 잘 참가하셨으면서.”
“그거야 제가 재미있을 것 같아서 했죠. 근데 이건…… 그다지 끌리지가 않네요.”
“…….”
“진짜 단체전만 하라고 하면, 전 그냥 스위스 쪽 준비나 할래요.”
“아…… 그러고 보니 저희에겐 그쪽도 있었죠.”
그제야 필립은 다른 쪽도 생각해 낸 듯 보였다. 원래 휘트니가 아니었다면, 진작에 참가했었을 수도 있는 그 아트 페어. 세계에서 가장 큰 미술 행사인 그거 말이다.
“예. 아트 바젤. 명색이 세계 최고의 아트 페어라고 하니, 그 정도면 스미소니언은 충분히 잊을 수 있다고 보거든요.”
사실 스미소니언은 원래부터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은 아니었기에. 지금까지의 다른 일들과 달리 내 흥미는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었다.
하지만 무려 ‘그 스미소니언’이다. 그곳에서 날 위해 단독 초대전까지 열어 준다면 이야기가 다르지 않겠는가.
* * *
위싱턴으로 돌아온 스미소니언 직원들. 그들은 오자마자 상부에 보고부터 했다. 이건 예상과 너무도 다른 비상 사태나 다름없었으니까.
“뭘 열어 달라고 했다고?”
“단독 초대전이요.”
무려 스미소니언에서 하는 단독 초대전. 살아 있는 화가 중 그걸 한 화가는 두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기 어렵다는 그 단독 초대전이었다.
오죽하면 죽고 나서 미술사적으로 교과서에 이름이 알려져야 가능하다고 하는 것이 이 스미소니언 미술관의 단독 전시회였으니. 이들이 이런 반응을 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걸 지금 생존 화가인 것도 모자라 아직 새파랗게 어린 작가가 열어 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하는 꼴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