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Yun-bok's Modern Art Studies in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2
2화 다시 새로운 세상에서
천지가 개벽했다.
난 최근 이 말을 실감 중이었다. 이것만큼 지금 내 상황을 잘 표현한 문장이 또 있을까.
뿌옇던 시야에 웅웅거리는 소리까지. 설마하니 이대로 눈도 안 보이고 귀도 안 들리는 걸까 걱정하던 건 잠시였다.
내 귀에는 어떤 말들이 또렷하게 들려오기 시작했으니까.
‘분명 말이 유사하거늘.’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에는 무슨 소리를 하는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분명 들리는 말에는 규칙성이 있었는데도.
처음 왜에 갔을 때 이런 느낌이었다. 귀에 들리는 말소리를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차츰차츰 주변에서 하는 언어를 이해했다.
변화된 말에도 분명 비슷한 점이 많았으니까. 덕분에 난 여기가 내가 살던 곳의 미래란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살던 조국과는 다른 어떤 곳.
‘조선은 조선인 것 같은데, 참으로 희한하구나.’
눈에 보이는 사람들의 생김새부터 시작해 언어까지. 여긴 분명 내가 아는 곳이 맞았다.
하지만 너무도 익숙하지 않은 풍경과 소리들. 그건 여전히 내겐 낯선 세상이었다.
덕분에 확신하기까지 오래 걸렸다. 미래임을 확인한 내 눈엔 참으로 신기한 물건들 투성이었다.
‘그림이…… 움직이다니.’
갖가지 이상한 물건 중 그의 시선을 유난히 사로잡은 것. 그건 선명한 색으로 움직이는 그림들이었다.
어머니께서 보시는 그림들은 단 한 순간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아주 역동적으로 움직였으니까.
[지금, 뭐라고 한 거예요?] [못 들었어? 이혼하자고.] [이혼이라니.] [저 애가 내 자식이 아니란 것 언제까지 숨길 수 있을 줄 알았어?]무슨 그림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림은 선명하기 짝이 없었다. 분명 어떤 거장의 작품이리라.
마치 또 다른 현실을 보여 주는 그림. 이 정도로 선명하게 표현할 수 있다니. 그야말로 미친 세상이었다.
내가 가만히 그 그림을 보고 있자 누군가 나를 들었다. 며칠간 지켜본 바에 따르면 이 사람은 이 몸의 어머니셨다.
아니, 이제 내가 다시 태어났으니 내 새로운 어머니라고 할까.
그녀는 날 들어 올린 후 곧바로 품으로 안았다.
“우리 윤성이 또 TV 보고 있었어?”
윤성. 이건 내 아명이 틀림없었다. 추측의 이유는 간단했다. 날 보는 사람마다 그렇게 불러 대었으니.
‘이번 생은 아명부터 예쁘구만.’
난 이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성인 되어 다른 이름을 가지면 아쉬울 지경이었으니까.
‘호도 이만큼 예쁜 걸 가져야 하는데.’
하지만 이 생각은 부질없었다. 새로 태어난 곳에선 아명이나 호를 따로 쓰지 않고 하나의 명칭을 끝까지 쓰는 듯했기에.
말의 억양이 달라졌다 해도 계속 듣다 보니 알아듣는 데 어렵진 않았다. 애초부터 비슷한 부분이 꽤 많았으니.
‘다시 태어나도 조선 사람이라니.’
모국에서 다시 태어난 기분은 괜찮았다. 난 내 나라를 싫어하진 않았으니까. 다만 아쉽긴 했다.
‘다른 나라를 가기 어렵겠군.’
조선에서 왜로 가긴 정말 힘들었다. 덕분에 난 청나라에는 가 보지도 못했으니.
그러나 내 이런 생각은 얼마 안 있어 바뀌었다. 천지가 개벽한 세상은 나라마저도 통째로 바꿔 놓았다.
여긴 내가 과거 살았던 곳이 아니었으니.
텔레비전. 혹은 티브이라고 부르는 그림.
저 움직이는 큰 그림. 이 신통한 물건은 내게 많은 것을 알려 주었다. 해외로 가기 쉽다는 것도. 세상이 어찌나 찬란하게 변하고 있는지도 말이다.
도장에서 찍어 낸 듯 세상을 생생히 보여 주는 기물. 내가 여기가 어딘지, 그리고 언제인지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세상을 이리도 잘 알게 해 주다니. 참으로 좋은 그림이군.’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주는 그림. 그건 그가 한평생 그려 왔던 것이었다.
그는 저 움직이는 그림이 참으로 좋았다.
하지만 난 계속해서 그 그림을 보고 있을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무슨 수를 쓴 것인지 내 옆에 다른 사람이 오면 그 그림은 새까맣게 변해 버렸으니까.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도 오신 것 같은데.’
난 젊은 여자와 남자를 보며 이들이 이번에 다시 태어난 육체의 부모라는 사실을 확신했다.
아이의 옆에서 애틋하게 바라보는 부부. 그건 아무리 봐도 부모의 눈빛이었으니까.
덕분에 괜스레 이전 생의 부모님에 대한 기억 역시 떠올랐다.
‘아버지. 어머니. 소자는 다시 태어났습니다.’
내가 감상에 빠져 있는 사이에도 그들은 내 관심을 끌려고 노력했다.
“윤성아. 여기 볼래?”
딸랑. 딸랑.
요란한 소리가 나는 물건이 그들 중 하나의 손에 들려 있었다.
하지만 난 그런 물건보다도 현실감 넘치는 저 움직이는 그림. 텔레비전이란 게 더 중요했다.
그랬기에 내 시선은 그곳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그러나 이런 내 행동은 부모님의 한숨을 불러온 듯했다.
“후, 우리 윤성이 진짜 큰일이네.”
어머니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으니까 말이다.
* * *
이가영. 그녀는 최근 배 아파 낳은 아들을 보며 걱정이 깊어지고 있었다.
아들이 그 나이 또래 애들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른 애들과 달리 엄마인 그녀보다도 TV가 좋은 모양이었다.
딸랑― 딸랑―
아들의 옆에서 장난감을 흔들며 관심을 끌려던 그녀. 가영은 결국 포기하고 남편에게 하소연을 시작했다.
한숨은 덤이었다.
“후, 우리 윤성이 진짜 큰일이야.”
“큰일이라니. 뭐가?”
방에서 나온 남편인 신주혁. 그는 아내가 한탄하는 소리를 들으며 아들 옆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최대한 시간을 내서 아이를 보려고 했다. 주혁은 여느 때처럼 아이를 바라보며 웃었다.
“아이. 착하다. 우리 윤성이는 오늘도 울지를 않네.”
주혁이 보기에 그의 아들은 참 순했다. 잘 울지 않는 것은 물론 칭얼거린 적도 없었다.
오죽 울지 않으면, 아이의 기저귀가 갈아 줄 때가 되었나 부모가 알아서 확인해야 할 정도였으니.
그의 아들인 윤성이는 부모를 고생시키지 않는 아이였다.
그러나 아내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었다.
“우는 게 문제가 아니야.”
“응?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보기엔 윤성이가 TV를 너무 좋아하는 것 같아.”
포기한 듯 한숨을 쉬는 아내. 그런 그녀를 보며 주혁은 다른 애들이 어땠는지 돌이켜 보았다.
“원래 애들은 다 그렇지 않나?”
주혁은 손쉽게 다른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스마트폰을 달고 살았지.’
주혁이 기억하는 아이들은 다들 TV나 스마트폰과 친근했다. 윤성이보다 큰 애들의 경우였지만 말이다.
“안 그래.”
“아…… 안 그래?”
어딘가 태평스러운 주혁을 보며 가영은 답답해졌다. 그녀가 보기에 남편은 사태의 심각함을 몰랐기에.
“후, 내가 요즘 우리 윤성이 때문에 얼마나 공부 열심히 하는지 알지?”
“그럼. 알지.”
그녀는 바쁜 생활 속에서도 틈나는 대로 육아 공부 중이었다. 아이를 위해 그야말로 검색의 달인이 되어 가고 있었으니.
“내가 찾아보니까. 너무 어릴 때는 스마트폰이나 TV는 안 보여 주는 게 좋다고 하더라고.”
“그래?”
“그렇다니까. 이거 봐 봐.”
그녀는 자신이 링크를 남겨 둔 자료를 보여 주었다. 슬쩍 곁눈질로 본 주혁은 머리를 긁적였다.
확실히 그곳에는 그런 내용의 글이 적혀 있었으니까.
“음, 근데 내가 알기론 적당한 정도는…… 오히려 애의 정서 발달에 좋다고 하던데.”
주혁은 문득 떠오른 생각을 말했다. 그는 언젠가 들은 내용을 상기하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아내의 생각은 달랐던 모양이었다. 주혁의 말에 그녀는 다다다 말을 쏟아 내기 시작했으니까.
“잘 생각해 봐.”
그녀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혹시 윤성이가 엄마나 아빠라고 말하는 거 들어 본 적 있어?”
“어…… 그러고 보니, 딱히 없는 것 같은…….”
“봐 봐. 당신도 들어 본 적 없지?”
주혁의 망설임을 잡아낸 그녀. 가영은 말끝을 흐리는 남편을 보며 입을 열었다. 확신에 차 있는 어조였다
“윤성이가 벌써 돌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 옹알이조차 안 해.”
“옹알이도 안 했었나?”
“그렇다니까. 원래 이맘때쯤이면 모방 행동이나 옹알이를 한다고 그러더라고.”
가영은 걱정스럽다는 눈빛이 되었다.
엄마였기 때문일까. 그녀는 아들이 또래들과 다른 점이 있다는 걸 그 누구보다 빨리 느끼고 있었다.
그런 아내를 주혁은 토닥였다. 불안해하는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한 행동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말자. 우리.”
“어떻게 걱정을 안 해. 혹시 무슨 문제 있는 걸 수도 있잖아.”
그녀는 온갖 생각이 다 드는 모양이었다. 그런 아내를 보며 주혁은 그녀의 손을 잡아 주었다.
“정말 그렇다면 우리가 잘 도와주면 되지.”
거기까지 말한 주혁은 아내의 관심을 돌리기로 마음먹었다. 이러다간 그녀의 걱정이 끊임이 없을 듯했기에.
“자자. 우리 그러지 말고 곧 있을 좋은 일만 생각하자.”
“곧 있을 좋은 일?”
“윤성이가 곧 있으면 돌이잖아!”
태어난 아기에게 중요한 시기인 첫돌.
동시에 대한민국 부모들에게 자녀의 첫돌은 어떤 행사를 하는 때였다.
“그러니까 우리도 윤성이의 돌잔치를 준비해야 하지 않겠어?”
“맞아. 그거 꼭 준비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