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Yun-bok's Modern Art Studies in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203
203화 작품들의 화룡점정을 찍을 신작
생일 카페란 건 내가 태어난 일시가 언제인지 만천하에 알리는 것이었다. 그걸 알리면서 다 같이 축하하자는 의미가 큰 것이었기에.
그 동아리의 친구들도 내 생일이 마침 축제와 겹치니 알려 버리겠다고 하는 것이었으니.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과해.’
너트뷰를 보면 볼수록 난 생일 카페는 과하다고 느꼈다. 이런 내 심정에 쐐기를 박아 넣은 건 클리프였다.
이전 축제까지는 그런 걸 하진 않았다고 하니. 연예인도 유명인도 아닌 나 때문에 전통을 깨는 건 반갑지 않았다.
이런 간절한 심정을 가지고 열심히 설득한 덕분일까. 난 일차적인 저지선을 만들 수 있었다.
그 친구들이 직접 만나서 구체적인 계획을 다시 짜 보자고 했으니까!
동아리 회원도 아닌 외부인인 나에게 이 정도까지 호의를 베푼 건 상대방도 많은 배려를 한 것이었다.
‘자세한 직접 대면을 하면서 정하면 될 것 같으니…… 일단 급한 불은 끈 건가?’
클리프에게 들은 정보를 바탕으로 다시 계획을 세워 본 결과, 제일 좋은 건 그냥 내 작품 몇을 활용한 일일 카페 정도를 하는 것이었다.
미술 작품을 활용해 카페의 품격을 높이는 곳은 이미 있었다. 여기서 착안해 축제 때 유사한 카페를 차리는 것 정도가 딱 좋으리라.
그렇게 난 기분 좋게 그들과 다음을 기약하며 난 통화를 종료했다.
그 순간이었다. 막 통화가 끝난 내 스마트폰 화면에 메시지가 와 있다는 걸 본 것은.
‘응? 필립이잖아. 어쩐 일로 전화도 모자라 문자까지 남긴 거지?’
나보다 내 수업 시간을 더 빠삭하게 알고 있는 사람. 그가 바로 필립이었다. 작가님의 스케줄을 알고 있어야 한다며 내 에일대 시간표를 통째로 가져갔으니까.
그렇기에 그는 당연히 알고 있었다. 학기 수업 중간 이렇게 짬 나는 시간에 내가 통화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그런 필립이 전화를 한 것도 모자라 내가 전화를 안 받으니 문자까지 남길 정도라면, 그건 뭔가 일이 터진 것이었다.
약간 긴장된 마음으로 침을 꿀꺽 삼킨 난 얼른 문자부터 열어 보았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지?”
필립으로부터 온 말도 안 되는 연락. 난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작가님. 스미소니언 측에서 다다음달 초쯤에 전시전을 하려고 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제가 조만간 코넷티컷으로 가서 말씀드리겠습니다.]다다음 달 초. 말이 다다음 달이지, 실제로는 한 달 정도의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내가 아는 상식선에서 이렇게 빠르게 전시회는 치러질 수가 없었으니. 자연스럽게 난 이 문장 자체를 이해할 수 없었다.
곧 에일대 쪽으로 오겠다는 필립의 말.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부분은 딱 거기뿐이었다.
‘후…… 온다니 일단 기다려 봐야겠네.’
속으로 한숨을 내쉰 난 모든 의문을 머릿속에 밀어 넣은 채, 필립이 이쪽으로 오는 것을 기다리기로 했다.
* * *
필립은 정말로 귀신처럼 빠르게 날아왔다. 연락한 바로 다음 날 그는 이미 내 눈앞에 도착해 있었으니까.
‘……얼마나 빨리 출장 일정을 잡은 거야?’
상대방이 순식간에 먼 길을 왔는데, 가만히 있던 내가 시간을 안 낼 수는 없는 법.
거기다 다행스럽게도 오늘은 마침 수업도 없는 날이었다.
‘그러고 보니, 필립이 내가 오늘 수업이 없어서 한가하다는 걸 모를 리 없잖아.’
과연. 일부러 오늘 시간을 내 온 것이 분명했다. 내일부터는 다시 내가 바쁘게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해야 할 테니.
덕분에 우리는 좀 더 깊은 대화를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문자 봤어요. 그게 대체 뭔 소리예요?”
물론 성격 급한 난 곧바로 본론부터 꺼내들었다.
“당장 한 달 뒤에 전시회를 한다는 게 맞아요?”
“정확하게 보셨습니다.”
“다른 전시회도 아니고 단독 초대전을 진짜로 그렇게 하겠다고요?”
“예. 그렇다더군요.”
“이게 무슨 번갯불에 콩 볶아 먹는 것도 아니고…….”
전생에 조선 사람이었고, 현생에 한국 사람이기 때문일까. 난 그 누구보다 ‘한국식 빨리빨리 문화’에 잘 적응했다.
그런데 그런 한국보다도 더 빠른 일 처리를 하는 미국이라니. 나로서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말도 안 된다고 여겼던 난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부터 꼬집었다.
“전시회를 그렇게 빨리 여는 게 가능한 거예요?”
화가 중 작품 완성 속도 하나는 자신 있던 나였다. 조선에서와 달리 망가지지 않은 내 건강한 육신은 내게 무시무시한 작품 제작 속도를 선물했으니까.
그런 나로 인해 일반적으로 내 전시회는 다른 화가들보다 빠르게 열리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런 나조차 완전 백지인 상태에서 고작 한 달 만에 전시회를 연 적은 없었다. 그런 제안을 들은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조선에서는 물론이고 지금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데…….’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완전 처음 겪는 상황.
그런 내 당황을 읽었음일까. 필립은 차분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우선 그게 스미소니언의 계획입니다. 마침 그때 지금 하는 전시회가 끝난다고도 하고요.”
지금 스미소니언 아시아관에서 열리는 전시회가 조만간 막을 내린다는 뜻. 그러나 지금 내 귀에 들어오는 건 그 부분이 아니었다.
“……제가 작품을 안 그렸는데 그게 된다고요?”
물론 난 매일 꾸준히 그림을 그렸다. 지금도 그건 절대 쉬지 않는 나의 습관이자 생활이었다.
원래 그림도 일종의 근육이 필요한 법. 하루라도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당연히 그에 따른 실력은 줄어들기 마련이었다. 이걸 전생과 현생을 통해 아는 난 당연히 손에서 붓을 놓지 않았다.
다만 문제는 내가 매일 그리는 그 그림들이 사람들의 눈에 보여도 될 수준인지였다.
습작을 세상에 내놓을 수는 없는 일. 그렇기에 작품의 질, 그건 다시 따져 보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랬기에 당연히 내가 지금 스미소니언에게 줄 수 있는 작품은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 와중에 고잘 한 달쯤 뒤에 전시회를 하겠다니. 심지어 무려 단독 초대전을 말이다.
다른 화가와 같이하는 전시회와 달리 단독 초대전은 온전하게 내 작품들로만 전시관을 꽉 채워야 했다.
그런데 대체 뭘 믿고 스미소니언은 저렇게나 서두른다는 말인가.
인상까지 찌푸리는 날 보며 필립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 이게 그들의 최대 장기 중 하나입니다. 작가님.”
“그게 무슨…….”
“미국 최대, 아니 세계 최고의 박물관이 어찌 생겨났을 것 같습니까?”
스미소니언은 미국 정도가 아니라 세계에서도 손에 꼽히는 박물관이었다. 자국민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관람하기 위한 사람들이 늘 몰려드는 곳이었으니까.
“이 정도로 대형 박물관은 오랜 세월 운영 하고 있는 곳입니다. 자료를 수집하고 모으는 건 그야말로 도가 텄죠.”
이제 완전히 한국 사람처럼 각종 관용 어구까지 구사하는 필립이었다. 그 한국식의 묘한 단어들을 영어로 듣고 있으니, 더 귀에 쏙쏙 내용이 들어왔다.
그 덕분에 난 잠시 생각할 수 있었다.
스미소니언이 긴 세월 동안 이 정도의 박물관을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이유. 그건 간단한 것이었다.
‘구하기 어려운 자료까지 이렇게 모아 두는 이들이라면…… 내 작품 정도는 식은 죽 먹는 기분으로 모았겠지.’
속으론 이미 반쯤 정답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난 이를 곧바로 드러내는 대신 필립에게 확인하는 걸 택했다.
“그 말씀은 설마…….”
“예. 짐작하고 계신 게 맞을 겁니다.”
“…….”
“작가님의 과거 작품들. 그걸 속속들이 빌려 오고 있는 모양입니다.”
“허.”
“뭐. 수집가들 입장에서 스미소니언에 한번 전시된 작품과 그렇지 않은 작품은 이름값에 차이가 있으니…… 허락했겠죠.”
스미소니언은 그 정도의 유명세는 가지고 있었다. 스미소니언에 오래 전시되었다는 이유 하나만 가지고도 작가의 이름값이나 그림 가격이 올라가는 게 현실이었으니까.
“……10년도 넘는 기간 동안 전시한 작품을 다 모았다는 거예요?”
“물론 그건 아닙니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는 표정 덕분일까. 필립은 슬쩍 이런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완벽하게 다 모은다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니까요. 허나, 나름대로 괜찮게 수집한 것만은 분명합니다.”
“과연. 그래서 고작 한 달 뒤에 전시회를 하겠다는 소리가 나왔군요.”
“바로 보셨습니다.”
고개를 끄덕거리는 필립. 그런 그를 보며 난 문득 든 의문이 있었다. 미술 전시를 하면 당연히 요구하는 걸 저쪽에선 내게 아직 말하지 않았기에.
“근데 제게 새로 작품을 달라는 말도 없이…… 그게 가능한 거였군요. 그 정도로 많이 수집한 거예요?”
다시 이 시대에 태어난 지도 벌써 20년이 넘었다.
만약 그 기간 동안 전시하고 판매한 작품들을 모조리 모았다면? 충분히 단독 초대전을 하고도 남을 만한 숫자가 모이리라.
“아. 그러고 보니 이걸 보여 드렸어야 하는데, 바로 이야기를 하다 보니 깜빡했군요.”
“보여 줄 거요?”
“예.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한 달 뒤에 전시회를 하겠다는 말이 너무 충격적이라 까먹을 뻔했네요.”
너털웃음을 터트리는 필립. 그런 그를 보며 괜스레 내가 다 민망해졌다.
그가 내게 보여 줄 걸 까먹은 이유는 내 탓일 가능성이 높았으니까. 자리게 앉자마자 질문부터 퍼부었는데, 제대로 기억하면 신기한 일이었다.
“먼저 이걸 좀 봐 주셨으면 합니다.”
필립은 가방에서 태블릿을 꺼냈다. 그러면서 내게 기다렸다는 듯이 한 파일을 열어 보여 주었다.
“제가 이걸 위해서 여기까지 온 것이거든요. 아하하하하.”
“이건…….”
그가 보여 주는 화면을 보며 내 두 눈이 커지는 게 느껴졌다. 그만큼 이건 내 심장까지 놀라게 만들었기에.
“스미소니언이 이번 전시를 위해 모은 작가님의 작품 목록입니다.”
필립이 보여 준 건 지금 스미소니언이 확보한 내 작품들의 목록이었다. 오랜 세월이 지나 이제는 그린 기억만 남아 있는 작품들.
그 실물이 태블릿 안에 사진으로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신미인도에, 경화수월에, 입몽에…… 와우.”
그 외에도 많았다. 하다못해 리처드 교수님의 집무실에 있던 작품까지 떼어 오려고 하는 모양이었으니. 굉장히 광적으로 내 작품을 빌려 온 티가 났다.
“용케도 각 전시회마다 화제가 된 그림들은 다 가져온 느낌이네요.”
스미소니언의 큐레이터들이 무척 유능한 게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다면, 이 정도로 작품들을 긁어 올 수가 없었을 테니.
“휘트니에 걸어 둔 자화상까지…… 이 정도면 제가 작품을 더 안 해도 이미 단독 초대전이 가능할 것 같은데요?”
그 정도의 작품을 스미소니언은 조달하는 중이었다. 과연 이 정도는 되니까 한 달 만에 단독 초대전을 한다는 미친 발상이 가능한 것이리라.
“후후. 그래서 안 그리실 생각하십니까?”
필립은 내가 이미 뭐라 말할지 안다는 듯 여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런 그의 반응에 힘 입에 내 말에도 단호함이 들어갔다.
“아뇨. 그럴 리가요. 명색이 단독 초대전인데 구작만 내놓을 수는 없죠. 제가 죽은 것도 아닌데요.”
화가가 죽어서 새로운 작품을 그릴 수 없다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전시회는 늘 신작이 함께해야 한다고 여겼다.
다시 태어난 이래, 난 단 한 번도 이를 어긴 적이 없었고 말이다.
“오오. 그럼 어떤 걸 염두에 두셨는지 제가 미리 좀 알 수 있겠습니까? 힌트만이라도 좋습니다.”
“그건 당연히 비밀이죠.”
내 말에 그는 알 만하다는 눈빛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일부러 불쌍한 표정을 짓는 그를 보며 난 확실하게 예고를 했다.
“너무 서운해하시지 마세요. 다음에는 이 변천사의 최신판을 볼 수 있을 테니까요.”
환생 후 아기 때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내가 쭉 그려 온 작품들. 그 작품들의 화룡점정을 찍을 신작. 난 그걸 그려 볼 작정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