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Yun-bok's Modern Art Studies in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207
207화 시즌제로 하겠다니, 재미있는 발상이네
사건은 바야흐로 한 통의 전화로부터 비롯되었다.
[작가님. 저희 거의 다 도착했습니다. 바로 작업실로 가면 될까요?]필립에게서 온 전화였다. 평소라면 혼자서 왔을 그가 저희라고 표현한 이유. 그건 바로 스미소니언 측과 함께 왔기 때문이었다.
보통 내 전시회의 경우 다른 화가들보다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 모름지기 조선 출신으로서 손 하나 빠르다는 건 자부할 수 있는 나였기에.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고작 한 달. 그 기간 안에 작품을 완성하려고 하다 보니, 아무래도 시간이 촉박했다.
그 결과 난 마감 직전에서야 겨우 이번 단독 초대전을 위한 대형 작품을 완성했다.
그러다 보니 필립을 먼저 보여 줄 시간이 없었다. 그게 라고시안 담당자인 필립과 스미소니언 직원인 조셉이 같이 오는 이유였다.
‘아예 작품을 옮기겠다고 여럿이 온다고 했으니, 내가 맞이하러 나가는 것이 예의인 법.’
속으로 결심한 난 작업실 밖으로 향했다. 그러면서 통화에 대고 내가 간다고 이야기하는 걸 잊지 않았다.
“제가 정문 쪽으로 마중 나가겠습니다. 요즘 보안이 좀 강화돼서요.”
과연 미국. 얼마 전 이 근방에서 무슨 범죄가 있었다고 들었다. 총기 사건이라나 뭐라나. 그 덕분에 최근 학교 내 보안이 한층 강화된 상태였다.
[그럼 저희야 무척 감사하죠.]“양쪽에서 다 오시는 만큼 제가 가야죠.”
화기애애하게 통화를 끊은 난 천천히 교정을 거닐었다. 가을 특유의 알록달록함이 절정에 달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여러 단풍잎들이 내 발에도 채이는 것이 느껴졌으니까.
‘이제 완전 늦가을이네.’
날씨도 확연히 쌀쌀해진 상태였다. 이렇듯 꽤 기온이 낮아진 주변과 달리 학교 자체는 떠들썩했다.
‘음. 축제인가.’
알록달록한 풍경은 단풍 때문만은 아니었다. 곳곳에서 학생들이 걸어 둔 팻말들이 빛나고 있었으니까. 그게 교정을 보다 화려하게 꾸미고 있었다.
대학교 특유의 가을 축제. 그게 한창인 모양이었다.
‘뭐 나야 동아리도 없으니, 나중에 대충 둘러보기만 하자.’
이 순간까지만 해도 난 에일대의 학생 중 한 명으로서 가벼운 마음으로 축제를 즐길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 광경을 목격하기 전까지, 난 지극히도 평온하고 태평한 상태였다.
‘어?’
그런 내 눈에 들어온 뭔가가 있었다. 그것도 심히 익숙한 느낌이 드는 뭔가가. 그렇기에 난 우선 가까이 다가갔다.
‘이, 이게 다 뭐야?’
독특힌 분위기의 카페였다. 거기엔 사람들이 모여서 삼삼오오 떠들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손에는 익숙한 그림이 박힌 종이컵이 들린 채였으니.
심지어 카페 곳곳에 프린팅 되어 있는 그림 장식들도 어딘가 익숙했다. 그도 그럴게 그건 내 작품들을 사진으로 출력한 것이었으니까.
이 혼란스러운 풍경에 난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난 종이컵과 장식만의 문제가 아니란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인파 사이를 바쁘게 돌아다니는 이들. 누가 봐도 카페를 운영하는 그들의 옷에도 떡하니 그림이 박혀 있었으니까. 내 작품이 프린팅된 티셔츠를 입고 있었으니. 모르려고 해도 모를 수가 없었다.
‘우선…… 여기가 뭔지부터 물어보자.’
아찔해진 정신을 바로 세운 뒤, 심호흡을 했다. 그렇게 겨우 이성을 멀쩡하게 만든 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런 내 시야에 마침 적절한 한 명이 들어왔다.
다들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는 그때, 앞치마만 두른 채로 멍하니 서 있는 어떤 사람. 말을 붙이기 좋아 보이지 않는가.
“저기요.”
“손님이시면 먼저 온 분들이 계시니, 잠깐 기다려…… 어?”
내 말에 반사적으로 뭔가를 안내하려던 그. 그는 나와 얼굴이 마주치자마자 두 눈이 커졌다.
“설마…… 윤성 신?”
“뭐?”
“누구라고?”
작게 중얼거린 내 이름. 그러나 주변의 반응은 생각보다 작지 않았다. 근처에 있던 사람들 서너 명이 다 이쪽을 바라보는 게 느껴졌으니까.
이 기묘한 카페에서 일을 하고 있는 만큼 알아볼 것이라 생각하긴 했다. 내 그림이 이렇게 곳곳에 붙어 있는 데서 있는데, 설마 날 모를 것이라 여길 만큼 어리석진 않았으니까.
그렇다고 해도 이 정도로 이름만 듣고 바로 알 줄은 몰랐지만.
그 덕분에 약간 당황한 난, 나도 모르게 이렇게 물어볼 정도였다. 바보 같게도 말이다.
“어…… 절 아세요?”
“당연히 알죠! 우리 카페 이번 컨셉이 윤성 신인데!”
하도 목소리가 컸기 때문일까. 이제는 여기서 일하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손님들까지도 이쪽을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일단 이 시선들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난 자리를 옮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랬기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그는 내 예상보다 흔쾌히 긍정을 표했다. 바빠 보이는 카페였기에 쉽지 않을 것이라 여겼는데 말이다.
“물론이죠. 야야. 나, 잠깐만 산책 갔다 올게.”
한 손을 흔들면서 슬쩍 주변에 양해를 구하는 그. 그런 그를 바라보며 동료들은 기가 막히다는 얼굴이 되었다.
“와. 부럽다. 일 안 하고 윤성 신이랑 대화 타임이라니.”
“어차피 지금은 나 쉬는 시간이잖아. 어딜 가든 내 맘이지.”
“저도! 제게도 뭐 물어보셔도 되는데요! 저도 데려가세요!”
“야야. 넌 그거 다 굽기 전까지는 어디 못 가. 빨리 구워. 그 빵 기다리는 사람만 한 트럭이다.”
“윽.”
잠시 후 우리는 카페로부터 약간 멀어질 수 있었다. 앞치마도 풀어 버린 그는 한층 더 여유를 찾은 기색이었다.
“후아. 일일 카페다 보니 정신이 없네요.”
“그래 보이네요.”
이 근방의 다른 카페나 음식점을 둘러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같은 축제 내의 카페임에도 지금 그들이 온 그곳은 유난히 사람이 많았으니까. 소위 말하는 대박 카페였다.
“이게 아무래도 특이성도 있고, 보기에도 멋져 보이고, 커피 맛도 좋아서 더 입소문이 나고 있습니다. 하하하.”
“그거야 참 잘된 일인데요…… 대체 저게 어찌 된 거예요?”
지금 내게 중요한 건 카페가 좋은지 나쁜지가 아니었다. 저기 저 알 수 없는 현상에 관한 것이었지.
“제 기억에 제 생일 카페 대신 분명 가벼운 미술 카페 하기로 한 기억이 있는데요.”
“어? 저희 동아리 장에게 들으신 거 아니셨어요? 이미 어떤 컨셉의 카페인지 다 전달했다고 하던데.”
“그거야 들었죠. 간단하게 출력물 프린트해서 한다고.”
곤란하다고 인상을 찌푸리던 그. 하지만 내 말이 끝나자마자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하. 그렇죠. 원래보다 더 간단해지긴 했죠. 작가님의 작품이 워낙 눈에 들어와서 약간만으로도 분위기가 확 바뀌더라고요.”
아무래도 우리의 대화가 헛도는 느낌이었다. 저게 심지어 원래보다 더 간단하게 한 거라니.
‘간단하게의 기준이 나랑 다른 거네.’
그제야 난 이 문제의 원인을 알아차렸다. 학교 내에서 하는 학생 축제다 보니 나와 라고시안 모두 간단한 기획안 정도만 받아 본 상태였다.
거기엔 분명 간단하게 출력한 그림들을 이용해 카페 컨셉을 꾸민다고 되어 있었다.
그걸 난 고작해야 한 두 개 출력해서 걸어 놓는 것으로 알아들었다. 보통의 미술 카페가 그런 식이었으니까.
하지만 이 친구들에게 ‘간단함’은 저렇게 온갖 군데에 그림을 붙여 놓은 것도 포함되는 모양이었으니.
“그…… 저 대형으로 적혀 있는 숫자는 설마.”
“당연히 작가님 생일이죠. 원래 컨셉이 생일 카페에서 가져왔으니까요.”
협의 당시 생일 카페 컨셉을 포기하진 않을 것이라 했다. 다만 내게 약하게 할 것이란 약속은 했다.
‘티를 최대한 내지 않겠다고 하는 게…… 고작 이 정도였어?’
한국의 그 유명 연예인들에게 하는 것처럼 대놓고 축하한다거나 생일이라거나 이런 말은 없었다.
하지만 저 정도면 알 만한 사람은 알지도 몰랐다. 그렇게 크게 숫자가 박혀 있는데, 한 사람도 호기심을 가지지 않을 리는 없었으니.
‘내 얼굴만 안 박혀 있을 뿐. 거의 다른 건 다 다른 방식으로라도 했잖아…….’
초상권을 필사적으로 지켰기 때문일까. 다행스럽게도 이 카페에 내 얼굴이 박제되어 있지는 않았다.
그 덕분에 난 그나마 이 자리에 자유롭게 서 있을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까 그 카페에 온 사람들의 시선에 진작 얼굴에 구멍이라도 났을 게 분명했다.
“……그래도 전 설마하니 정말로 이렇게 하실 줄은 몰랐는데요.”
“저희 생각보다도 카페는 할 수 있는 게 많더라고요!”
그는 이 카페가 진짜로 마음에 든 듯, 신이 나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종이컵에 프린팅하는 것부터 시작해 카페 곳곳을 꾸미는 것도 그림으로 다 가능하니까요.”
“……그야 그렇죠.”
“이렇게 해 놓고 보니, 축제 카페 중에서 저희가 제일 있어 보이는 모습이라 사람들도 엄청 많이 옵니다.”
이왕 하는 것, 성공한다면 좋으리라. 그리고 이 카페는 아무것도 모르는 내 눈으로 봐도 지금 상당히 잘나가고 있었다.
‘이걸로 다른 사람들까지 내 그림에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은데?’
많은 이들이 내 작품에 흥미를 가지는 것만큼 좋은 게 없었다. 잠깐의 부끄러움 따위 남들이 관심을 가져 준다면 얼마든지 감수할 용의가 있었으니.
내가 처음 한 각오보다 이 카페는 내게 더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었다.
“이 그림들을 그린 게 저희 에일대 학생이라고 하니 다들 더 신기해 하시더라고요!”
아니나 다를까. 그는 딱 내가 생각하고 있는 부분을 짚어 말했다.
“이번에 반응이 좋으면 다음번에 시즌2를 진행하는 것도 고려 중입니다.”
“시즌2…….”
과연 시리즈물을 사랑하는 미국인다운 말이었다.
‘카페를 시즌제로 하겠다니, 이것도 재미있는 발상이네.’
감탄한 내가 뭐라고 하기 전, 등 뒤에서 심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작가님. 왜 여기 계십니까?”
우리가 걸어가던 곳은 길 한복판이었다. 문제는 그 길이 정문과도 이어져 있다는 점이었다.
다양한 인종들이 많은 에일 대학교. 그러나 이 안에서 동양인은 의외로 소수였다. 그 덕분일까. 나란 존재를 필립과 일행들은 멀리서도 잘 발견한 모양이었다.
“작가님께서서 여기 계셔서 오긴 했는데…… 이야기 중이셨던 모양이군요.”
“아, 그게요.”
“오. 작가님 지인들이신가요? 그럼 저희 카페 한번 가 보시는 것도 좋습니다.”
‘헙.’
속으로 숨을 들이켠 난 나도 모르게 긴장했다. 아예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 거기 가는 것과 필립을 포함한 이들이 그 카페에 가는 건 다른 일이었으니까.
“카페요?”
“예. 여기 있는 작가님 작품들이 메인 컨셉인 카페거든요!”
하지만 하늘은 내게 시간을 충분히 주지 않았다. 차마 말릴 새도 없이 그는 열심히 카페를 홍보해 버렸다.
“그, 일단 제 작업실로 가시죠!”
나중에 내가 없는 상태로 이들이 그 카페에 가거나 말거나. 그건 내 알 바가 아니었다.
그러나 어지간해서는 나와 함께 거기로 가는 건 막고 싶었다. 형형색색의 알록달록한 색으로 꾸며진 그 카페에 굳이 같이 가고 싶진 않았으니까.
“에헤이. 갈 때 가더라도 여기까지 왔는데, 음료 한 잔 들고 가는 것도 괜찮죠.”
“어…….”
“저희 카페 커피 맛있습니다. 원두 엄청 좋은 거 썼거든요. 과일주스도 좋아요! 싱싱한 생과일을 썼거든요.”
내 방해 공작보다 그의 홍보가 더 강력했다. 그건 아마도 생각보다 뜨거운 가을 햇살 탓도 있었으리라.
“마침 목도 말랐으니 좋네요.”
“그러고 보니 작가님 작업실의 음료를 축낼 수는 없으니, 하나 사 가는 것도 괜찮겠군요.”
이미 분위기는 완전히 저쪽으로 넘어간 상태였다. 그렇기에 난 꼼짝없이 이들과 함께 다시 그 카페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망했네. 스미소니언에서 온 사람들이 그걸 보고 뭐라고 할지 모르겠는데.’
이미 필립을 포함한 라고시안이야 이 카페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나와 함께 기획서를 검토해 준 사람이 필립이었으니까.
하지만 스미소니언 측은 달랐다. 그들은 아 카페의 존재도 모르고 있었을 테니, 분명 보고 나면 깜짝 놀라리라.
아니나 다를까. 이런 내 예상은 적중하고야 말았다.
* * *
처음 카페가 보일 때만 해도 슬쩍 인상을 찌푸리던 그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카페의 온전한 모습을 목격하고 나자 오히려 진지한 표정이 되어 입을 여는 게 아닌가.
“작가님 이거…….”
“그, 그게요.”
자초지종을 다 말하려면 긴 시간이 필요했다. 무려 한국의 문화인 생일 카페부터 이야기해야 하는 일이었으니까.
순간적으로 잘 나오던 영어까지 잊어버릴 정도로 난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내가 뭐라도 설명하기 위해 어렵게 입을 연 그 순간이었다. 상대방이 조금 더 빨랐던 것은.
“이거 엄청 좋은 아이디어네요!”
“……예?”
“이런 식의 카페라니. 저희도 가능하겠군요.”
“저기…….”
“원래 전시회는 종종 이렇게 쉬는 공간이 있으면 좋습니다. 특히나 스미소니언은 가족 단위로도 많이 찾으시거든요.”
당황한 내 표정 따윈 보이지 않는다는 듯이 조셉은 줄줄이 본인의 생각을 늘어놓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