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Yun-bok's Modern Art Studies in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208
208화 그건 작가님이 아닌 남들이 정하는 것
아무리 봐도 어지간한 대화로는 그의 집중력을 깰 수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이럴 때 좋은 건 상대방이 관심 있어 할 만한 주제로 대화를 꺼내는 것이었으니.
“가족 단위로 많이 오는 것과 카페가 무슨 상관이에요?”
원래 이 카페는 한국의 생일 카페에서 형식을 빌려 온 것이었다. 연예인들이나 캐릭터의 생일 카페를 누가 가족 단위로 간다는 말인가.
그렇기에 난 조셉이 하는 말에 의문을 표한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즉시 내 말에 답을 해 주었다.
“상관있죠. 작가님의 작품들은 주로 장르화이니까요.”
“그게 무슨…….”
“장르화는 추상화나 다른 기하학적인 작품에 비해 비교적 사람들 눈에 잘 익어요.”
그는 주문한 음료를 받더니 마시는 대신 컵을 눈높이로 들어 올리는 게 아닌가. 누가 봐도 컵에 붙어 있는 내 작품 사진을 관찰하는 모습이었다.
“종이컵을 이렇게도 활용할 수 있군요. 나쁘지 않은 아이디어네요.”
잉크가 묻어 나오는지 확인하듯 몇 번 종이컵의 표면을 매만진 조셉. 그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이렇게 상품에 프린팅했을 경우…… 보다 눈에 잘 들어온다는 말이죠. 본인이 진짜로 예술을 구가하고 있다는 느낌도 강하고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특히나 작가님의 경우 안 그래도 보는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작품이 많죠. 요즘 화가들에 비해서요.”
“……요즘 화가들이요?”
“예. 창의성이 가장 중요시되고 있다 보니, 시선을 잡는 작품보다는 특이한 작품을 주로 그리거든요.”
그의 말은 정확하게 현대 미술의 핵심을 관통하고 있었다. 기계가 발달하고 AI가 그림을 그리는 시대. 그렇기에 작가들은 더 인간의 창의성에 매달리는 중이었다.
그 덕분에 보는 이에게 충격적이고 더 기괴한 작품이 나오기 쉬운 게 요즘의 현대 미술이었다.
“그게 관람객에게 쇼크를 주기에는 좋지만, 이런 카페를 하기에는 좀 그렇죠. 아무래도.”
그럴 수 있었다. 포르말린에 말린 상어나 말의 사체, 이런 걸 가족 단위로 오는 카페의 종이컵에 박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나마 예술 작품이라고 하니 참고 보는 것뿐.
티셔츠나 종이컵, 혹은 접시에 박아 넣기 좋은 쪽은 아무래도 그런 류보다는 내 장르화 쪽이 나았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이들은 주제 선정을 잘했군요.”
“그러네요. 평범했다면 그냥 묻혔을 테고, 너무 이상한 걸 잡았다면 여기 이렇게 손님들이 즐겁게 커피를 마시진 않았겠죠.”
“그렇죠? 이거…… 분위기 잡기에도 좋고, 눈에도 잘 들어옵니다. 이러면 기억에도 확실히 각인되는 법이니까요.”
조셉의 극찬에 이어 필립까지 눈을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아예 진지하게 토론하기에 이르렀다.
“이걸 좀 퀄리티 높게 뽑으면…….”
“만약 전시관 내에 카페를 만들 예정이시면 그건 저희와 의논이 필요합니다.”
“물론입니다. 이렇게 일개 학생들이 하는 카페와는 아무래도 다르죠. 저희는 기념품까지 생각하는 중이었으니까요.”
“오호라. 기념품이라…….”
“저희가 상업적인 전시관은 아니지만, 그래도 기념품은 중요하죠. 그 전시회의 마지막 인상이니까요.”
“암요. 맞는 말씀입니다.”
“이 카페를 보니 기념품도 재미있는 걸 여럿 시도해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역시…… 저희 많은 대화가 필요하겠군요.”
“요즘 SNS에는 덕질이라는 게 유행이던데. 그걸 이 카페와 연관 짓는 것도 괜찮아 보입니다.”
두 사람의 대화는 계속 이어지는 중이었다. 둘의 의사소통을 듣던 난 어이가 없었다.
저건 말이 기념품이지 아무리 봐도 카페와 함께 굿즈까지 만들겠다는 것 아닌가.
‘어째 단독 초대전을 하겠다고 처음 말했을 때보다 점점 일이 커지고 있는 기분인데.’
속으로 내가 떨떠름한 기분에 휩싸여 있는 사이. 일행들은 하나둘 주문한 음료를 손에 들었다.
그러더니 나에게 재촉하기에 이르렀다.
“좋군요. 이거 확실히 심도 깊은 회의가 필요해요.”
“그러기 위해선 어서 신작을 모셔 가야겠군요.”
“확실히 그래야겠네요. 다들 마실 거 들었으면 어서 가시죠.”
필립과 조셉을 포함한 일행들. 그들의 눈길이 전부 나에게로 향했다.
‘……생각보다 반응이 괜찮아서 다행인가.’
워낙 반응이 긍정적이기 때문일까. 내 예상과 달리 그리 민망한 기분이 들지 않았다.
‘그래. 가자. 가. 원래 작품 보여 주고, 가져가라고 부른 것이니.’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쉰 난 얼른 미소를 지으며 앞장섰다. 작업실로 함께 가기 위함이었다.
* * *
한 달, 아니 정확하게는 내가 소식을 들은 지, 5주 만에 열릴 예정인 전시회, 그게 바로 스미소니언의 전시회였다.
그 덕분일까. 난 이번에야말로 정말 전시회 직전에야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다.
‘후…… 내 예상보다 더 오래 걸렸지. 한 달이면 그래도 시간이 좀 남을 줄 알았는데.’
시간을 평소와 달리 아슬아슬한 부분까지 사용한 만큼 그림의 질은 자신이 있었다. 지금의 내 실력으로 사력을 다해 만들어 낸 역작. 그게 바로 이번 작품이었다.
“이거 이거…… 작가님의 작품을 이렇게 다 같이 보는 건 거의 처음 아닌가요?”
“아. 죄송합니다. 이번에는 제가 좀 늦었네요.”
그의 말대로 원래라면 전시회 관계자들에게 보여 주기 전, 필립이 먼저 봤어야 했다. 난 라고시안의 전속 화가였고, 필립은 내 담당자였으니까.
“아닙니다! 절대 그런 의미가 아니에요!”
하지만 필립은 그런 의미로 한 말은 아닌 듯 급격하게 고개를 저었다.
“작가님 정도면 전시회 일정에 맞춰 얼마나 잘 그려 주시는 화가신데요.”
그는 급하게 말을 덧붙이며 내 말이 오해라는 듯 필사적으로 설명을 더했다.
“제 말은…… 그냥 그만큼 기대된다는 소리였습니다. 작가님께서 이렇게까지 시간을 다 쓴 작품이 많지는 않으시니까요.”
그런 필립의 말에 동감하듯 조셉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저 또한 기대하고 있습니다. 오죽 기대하고 있으면, 다른 큐레이터들과 이렇게 같이 왔겠습니까.”
확실히 내 예상보다 인원이 좀 많긴 했다. 기껏해야 조셉과 필립을 포함하여 네다섯 정도를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도착한 인원은 무려 8명. 그 덕분에 아까 카페에 들어갈 때 남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을 수 있었다.
“좀 많이 온 느낌이긴 한데요.”
“후후. 다들 한시라도 빨리 보고 싶어 해서요.”
“아니. 뭘 그렇게까지…….”
“작가님께서 저희가 작품을 모은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이 작품을 그리기 시작하셨죠?”
“예. 그랬죠.”
“그 정도로 곧바로 머릿속에 그려진 작품이라면, 분명 이번 전시회와 퍼즐같이 잘 맞을 테니. 저희가 제일 먼저 봐야지요.”
직업의식이 참으로 투철해 보이는 대답이었다. 물론 그 멋진 말 뒤에 진짜 속내도 슬쩍 덧붙였음에도 그들의 마음은 대단해 보였다.
“사실 기본적인 작품 정보를 듣고 나자 더 기대한 면도 있습니다. 흐흐흐.”
어딘가 주책맞게 미소를 지은 조셉. 그런 조셉을 보며 나 또한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기본적인 정보라 하면…….”
“작품의 크기가 무려 9㎡ 아닙니까.”
“정확하게는 가로세로 300cm에 가로 100cm짜리 세 작품을 붙여 놓은 거긴 한데요.”
이 작품의 특징이었다. 직사각형 형태의 그림 셋을 붙여 정사각형 크기의 그림을 만들어 내는 것. 그게 이번 나의 그림이었다.
“그걸 한데 모아서 봐야 하면 그게 가로세로로 300cm와 다름없는 대작인 거죠! 전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전문가스러운 말이라기보단 순수한 기대감이 가득 찬 말이었다. 그 이야기를 하면서 두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는 조셉이었다.
“……일단 저 따라오세요. 작품 크기가 크기다 보니, 좀 안쪽에 두었으니까요.”
“옙.”
멀리 들어갈 필요도 없었다. 내 작업실이 꽤 큰 편이긴 했다. 그러나 이 정도 규모의 그림을 어디 깊숙한 곳에 둔다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렇기에 우리는 금세 작품의 앞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거군요.”
“네에. 완성본인 만큼 혹시나 해서 덮어 두었어요.”
“잘하셨습니다. 그럼 어디…….”
쉬익―
천이 치워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사람들 사이엔 묘한 소리만이 감돌았다.
“와…….”
“흠.”
“이건…….”
조셉과 같이 온 이들이 하나같이 신음에 가까운 단어를 중얼거렸다. 어지간해서는 티를 내지 않은 사람들. 그런 그들의 눈빛까지 흔들리게 만든 것이었으니.
그들이 스미소니언에서 일하며 본 명화만 몇인가. 당장에 지금 스미소니언 미술관들에는 미술사적으로 유명한 거장들의 그림도 즐비했다.
그런 작품들도 직접 옮겨 본 이들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알 수 있었다.
천이 치워지는 그 순간 이방의 공기도 어딘가 달라졌다는 것을.
과학적으론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림이 드러났다고 산소나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바뀔 일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정말로 그들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림이 그들의 눈에 들어온 그 순간 저도 모르게 온 정신이 그림에 집중된 기분이 들었으니까.
이 자리에 있는 다른 이들이 감탄한 것처럼 조셉도 탄식한 게 분명했다.
꽤 긴 시간 동안 침묵하던 그의 첫 마디에 그런 감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으니까.
“이거…… 작품명이 뭡니까? 작가님.”
“우유함영중(優游涵泳中). 여유롭고 한가하게 예술을 음미하는 중이란 뜻이에요.”
원래 우유함영이라는 사자성어가 있었다. 한가롭게 학문이나 예술의 이치를 깊이 음미한다는 뜻의 사자성어였다.
그 사자성어에 현대식으로 ‘하는 중’이란 뜻의 ‘중’ 자를 붙인 말이 바로 작품명이었다.
“제 전시회에 오는 사람들은 미술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으시죠.”
반응을 보아하니, 좀 더 설명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조셉뿐만이 아니었다. 여기 있는 8명이 모두 내 입에 집중하는 감각이 피부로 느껴졌으니까.
“종종 아트 페어나 전시회를 돌아다닐 때 제 작품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을 봤는데요. 상당히 인상 깊더라고요.”
“그래서 작품명이…….”
“예. 아마 오시는 분들도 이 그림을 보고 제가 느낀 그 묘한 기분을 느끼시길 바래서 그렸습니다.”
“으흠. 그래서였군요.”
간략한 설명을 들은 조셉은 납득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라뇨?”
“이걸 보자 저희도 방금 그 전시회에 있는 모습이 상상되었거든요.”
“오. 그럼 대성공인데요. 여긴 전시장도 아닌데 그걸 느끼실 정도면요.”
조셉의 말을 들은 내 기분도 좋아졌다. 여기 있는 이들은 모두 8명. 그들이 한결같이 반응하는 것이, 이번 작품도 괜찮을 거란 확신을 줬으니까.
“결정했습니다. 작가님.”
내가 속으로 기분 좋아하는 사이. 조셉은 진지한 눈빛으로 이쪽을 바라보았다.
“작가님께서 아시는지 모르겠는데요. 사실 이번 단독 초대전. 제가 거의 총괄 큐레이터나 다름없습니다.”
그건 이미 알고 있었다. 그 정도 지위가 아니라면 필립과 함께 그림을 가져가겠다고 왔을 리가 없었을 테니.
그런데 그걸 갑자기 지금 말하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
“제가 책임지고 이 작품을 가장 좋은 위치에 놓겠습니다.”
“어…….”
“솔직히 지금 작가님의 작품 중 가장 화제가 되는 건 휘트니 비엔날레에서 전시하셨던 입니다.”
외국인의 입에서 또박또박한 한국어 발음이 흘러나왔다. 그가 그 작품에 대해서 몇 번이나 발음해 봤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대중에게 내놓은 작품 중 비교적 최근에 가까운 동시에, 휘트니에서 화제가 된 작품. 그렇기에 가 현재 꽤 유명하긴 했다.
“헌데, 이 그림은 제가 볼 땐 무조건 그걸 능가할 것으로 보입니다.”
“역시 조셉. 보는 눈이 있으시군요.”
조셉의 진지한 말에 활짝 웃으며 맞장구치는 필립. 그런 그의 대답 덕분일까. 조셉은 한층 더 확실한 의지를 담아 의견을 전했다.
“. 그건 그림 자체도 좋았지만, 화제성이 큰 역할을 한 감도 없지 않은데…… 이걸 보고 실감했습니다.”
“실감이요?”
“예. 작가님께서는 확실히 장르화의 대가시라는 것을요.”
대가. 한 분야에서 거의 정점에 이르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를 들은 난 당연히 민망해져서 얼른 반박했다.
“대가라니…… 아직 그런 말을 듣기는 이르다고 생각하는데요.”
“그건 작가님이 정하시는 게 아니죠. 남들이 정하는 것이지.”
내 애매한 반박에 정론을 되돌려 주는 조셉. 그는 답을 해 주면서도 눈은 그림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러니 이건 이번 전시회의 핵심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 돌아가면 이 작품의 자리부터 고민하도록 하겠습니다. 작가님.”
그렇게 말하며 씩 미소 짓는 조셉. 자신감 넘치는 눈빛 때문일까. 그의 웃음은 어쩐지 든든한 기분마저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