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Yun-bok's Modern Art Studies in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209
209화 런던예술대 측에서 보내온 조건
가로와 세로 길이가 무려 3미터인 작품을 넘기고 나자 작업실이 다 비어 보였다.
‘분명 평소랑 비슷한 방식으로 작품을 준 건데…… 이상하게 마음이 싱숭생숭하네.’
어쩌면 지금까지와 달리 전시회를 위해 준비한 작품이 아니기에 그런지도 몰랐다. 이번 그림은 엄밀하게 말하면 스미소니언을 위해 그린 건 아니었으니까.
그냥 평소에 습관처럼 그리던 대형 작품을 완성시켜 내보낸 것이었으니. 이런 감정이 드는 것이이라.
‘얼른 전시회가 시작했으면 좋겠네. 거기 걸려 있는 내 작품을 보고 나면…… 이런 감정도 좀 가시겠지.’
이제 1주일 앞으로 다가온 스미소니언 전시회. 그걸 기다리며 난 잠시 쉬기로 했다.
‘그동안 미뤄 둔 거나 천천히 해야겠다.’
작업실의 청소부터 시작해 널브러진 도구들의 정리까지. 그렇게 현실을 정리하고 나자 생각난 건 온라인상의 정리였다.
‘그러고 보니, 메일함 정리 안 한 지도 한참이네.’
평소라면 틈틈이 들어가 봤을 내 개인 메일함.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작품에 집중하느라 잘 확인하지 못했다.
이를 떠올린 난 얼른 컴퓨터 앞으로 향했다. 그리고 거기서 비로소 발견하고야 말았으니.
‘……생일 카페 메일이 여기 있었네.’
이걸 진작 열어 봤어야 했다. 그렇다면 아무 생각 없이 밖에 나갔다가 그런 광경을 목격하진 않았으리라.
‘스마트폰으로 너무 대충 봤어…….’
상대적으로 큰 대형 화면인 컴퓨터와 달리 폰으로 메일을 확인할 때는 대충 넘기는 내 안 좋은 습관. 그게 이번 사달을 만들었다고 봤다.
‘그래도 덕분에 스미소니언 측에게도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지 뭐.’
다음부터는 주기적으로 메일을 정리해야겠다는 다짐. 그 결심과 함께 난 긍정적인 쪽으로 생각했다.
내가 그대로 두었으니, 그런 눈에 띄고 창의력이 샘솟는 카페가 만들어진 게 아니겠는가.
‘어?’
카페에 대한 메일을 넘긴 난 다시 정리할 건 정리하는 중이었다.
쓸데없어 보이는 메일들 사이, 익숙한 메일 주소와 발신자가 적혀 있는 뜻밖의 메일을 볼 수 있었다.
‘리처드 교수님이 왜 메일을 보내셨지?’
전공 교수님이자 주임 교수님인 리처드 교수님. 그분은 도움이 될 것이라며 아예 내게 전화번호까지 주셨다.
언제든 연락하라는 소리와 함께 내 전화번호까지 받아 가신 교수님. 그렇기에 내게 연락하실 일이 있으실 경우, 문자나 전화를 주로 하셨다.
그분과 메일을 주고 받은 건 거의 입학 초기. 그 정도뿐. 그렇기에 난 신기한 마음마저 들었다.
‘아하. 이래서 메일을 보내신 건가.’
메일의 내용은 한눈에 보기에도 상당히 길었다. 뭔가 공식적인 문서란 느낌이 잔뜩 풍기는 것이었기에, 난 자세를 바로한 채 찬찬히 읽어 나갔다.
‘이건…… 감사를 드려야겠는데.’
주된 내용은 한 학교의 지원에 대한 정보였다.
‘UAL에서 이렇게까지 해 주는구나.’
UAL, 전체 이름은 University of the Arts London. 내가 1순위로 교환 학생을 가려고 했던 곳. 바로 런던예술대였다.
교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거기서 내게 상당히 좋은 조건을 제시하고 있었다. 그걸 교수님께서 내게 전달하신 게 바로 이 메일이었다.
‘음. 근데 이게 가능한가?’
우리가 흔히 런던예술대라고 알고 있는 이 대학교는 사실 6개의 칼리지가 함께 모여 있는 대학교였다.
즉 어지간한 교환 학생은 이 6개의 칼리지 중 한 곳에서만 공부할 수 있다는 소리였다.
사실 교환 학생뿐만이 아니라 일반 대학생의 입학도 그렇게 이루어지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내게는 그런 제한이 없는 모양이었다.
직접 와서 6개 칼리지 내에서 원하는 수업을 마음껏 들으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니 말이다.
‘원래는 첼시 정도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러면 다른 데도 한번 맛을 볼 수 있겠는데?’
런던예술대에서 순수 미술 관련 수업을 하는 칼리지는 6개 중에 총 3곳이었다.
먼저 내가 제일 먼저 고려했던 첼시 칼리지 오브 아트. 일명 첼시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첼시는 ‘사물을 만드는 것을 통해 생각하는 것’이라는 정신에 바탕을 두고 있는 만큼 좀 더 개방적인 학교였다.
런던대 내에서도 국제 대학생이 많은 편에 속하는 첼시는 외부 활동이 많은 칼리지였으니까.
그랬기에 국제 학생이라고 할 수 있는 내가 가장 많은 걸 배울 수 있으리라고 여겼다.
‘첼시가 안 되면 캠버웰도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이지.’
그리고 내가 다음으로 탐냈던 칼리지는 캠버웰.
순수 미술을 페인팅, 드로잉, 조각, 사진, 그리고 컴퓨터 미술로 나눠 각각의 기법을 이해하는 데 중점을 두는 칼리지였다.
과거의 전통 그림을 재해석하기도 하면서 현대적인 논쟁을 즐기는 칼리지인 만큼 내가 두 번째로 관심을 둔 곳이었다.
조선에서 다시 태어난 나만큼 과거와 현대를 잇는 존재는 없다고 여겼으니까. 캠버웰 또한 내 고려 대상인 칼리지 중 하나였다.
‘근데 이러면…… 센트럴 세인트 마틴까지 가 볼 수 있는 건가?’
끝으로 센트럴 세인트 마틴. 여기는 이 셋 칼리지 중에서 가장 실험적인 걸 많이 하는 곳이었다.
현대 미술의 다양성을 인식하고 있기에 새로운 형태의 작품 개발을 즐기며, 2D를 넘어 3D, 4D 혹은 아예 XD 중 하나를 선택해 공부한다고 했다.
이 중 어디를 갈지 치열하게 고민해 선택한 것이 첼시였는데, 이렇게 된다면 셋 다 조금씩은 맛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디 보자. 그 다음은 재정적인 지원이네.’
구체적인 액수와 함께 내가 교환 학생을 갈 경우 받을 수 있는 돈에 관련된 혜택이 적혀 있었다.
그러나 어차피 에일대도 장학금으로 다니고 있는 나였다. 그 덕분일까. 아무래도 내 눈에 더 들어오는 건 이쪽이 아니었다.
학비야 솔직히 내라고 하면 낼 생각이었으니까.
‘음. 근데 이 정도 혜택이면…… 다른 데는 굳이 고려 안 해도 되겠는데?’
교환 학생의 제도 특성상 1순위뿐만이 아니라 2순위와 3순위도 함께 선택해야 했다. 당연히 나도 런던예술대가 아닌 다른 대학도 서류에 적어서 낸 상태였다.
리처드 교수님의 연구실에서 화상으로 면접도 함께 봤고 말이다. 그런데 1순위 고려 대상이었던 런던예술대에서 이 정도의 조건을 제시한다면 굳이 다른 곳은 볼 것도 없으리라.
‘영국에서 스위스 가는 정도야 뭐. 어렵진 않겠지?’
교환 학생을 가 있을 1년. 그 기간 동안 난 높은 확률도 아트 바젤 스위스. 세계 최대 아트 페어라고 불리는 그곳에 참가할 예정이었다.
그게 스위스를 포함한 다른 대학들도 후보군에 넣어 둔 이유였다.
그러나 런던예술대가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날 오라고 한다면, 아트 바젤 하나만을 보고 굳이 다른 곳을 살필 필요가 없었다.
드드드드득―
‘뭐야……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더니만.’
이 한국식 옛말이 미국에서도 통용될 줄이야. 내가 메일을 확인하기 무섭게 교수님에게서 연락이 오고 있었다.
어른을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되는 일 아니겠는가. 그렇기에 난 얼른 목소리를 가다듬고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보통 교수님이 학생에게 전화를 걸어 이런 말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왜냐고? 일반적으로 학생보다 교수가 더 바쁜 경우가 많았으니까.
그러나 윤성의 작품 활동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리처드 교수는 전화하자마자 우선 사과부터 했다.
“괜찮습니다. 교수님 말씀하셔도 됩니다.”
스미소니언에 그림도 넘겼겠다, 당장 해야 되는 일도 없겠다. 요즘만큼 내가 여유가 있을 때가 잘 없으리라.
[후후. 다행이야. 다른 건 아니고 내가 메일을 하나 며칠 전에 보냈는데, 바빠서 그런가 아직 확인을 하지 않은 것 같아서.]역시나 지금 보고 있는 이 메일 때문에 연락하신 모양이셨다. 그도 그럴 게 보낸 지 꽤 시일이 지났음에도 내가 확인을 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었으니.
“아. 그거 지금 막 확인했어요. 교수님.”
[오. 바쁜 게 좀 줄었나 보네.]내 대답에 교수님께서는 목소리가 밝아지셨다.
[한창 작업실 들어가 있던 게…… 전시회 준비하는 것 같았는데.]“전시회 맞아요.”
과연 리처드 교수님. 내가 최근 작업실에서 거의 살다시피 한 이유를 정확하게 짐작하셨다.
[오오오. 혹시 어디서 하나?]“어, 그게요.”
순간적으로 고민했다. 워싱턴 DC에 있는 스미소니언 국립 아시아 미술관에 내가 전시회를 한다는 건 아직 일반인들에게 알려지진 않았기에.
‘솔직히 언론에 홍보만 안 했을 뿐. 알만한 사람은 다 알 것 같은데…….’
한국과 미국이 같이 엮여 있는 만큼 이미 알고 있는 관계자들은 많았다. 물론 그게 완전히 공식적으로 알려져 있다는 건 아니었다.
거기다 전시회가 이제 1주일 앞으로 다가왔으니, 오늘이나 내일쯤 본격적으로 언론 홍보도 나오리라.
어쩌면 이미 언론사에서 나올 준비를 다 했을지도 모르고 말이다. 그걸 계산한 난 교수님에게 이야길 해 드리려고 했다.
다만, 교수님의 말이 조금 더 빨랐을 뿐.
[아…… 설마 이번에도 한국인가?]내가 교수님에게 알려도 되는지 어떤지 순간적으로 망설이는 사이.
교수님께서는 뭘 상상하신 모양인지 급격히 시무룩하게 목소리를 바꾸셨다.
[그 이번의 작품상인가 올해의 작가상인가도 한국에서 해서 아직 가 보지 못했는데…… 쩝.]미국과 한국은 물리적으로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제 아무리 발전된 이 시대라고 해도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쉬울 리 없었으니까.
거리도 멀고 시차도 완전 정 반대에 가까운 곳. 그런 곳을 보통 사람이 쉽게 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음. 저렇게 반응하시니, 왠지 바로 말해 드리기 아까운데.’
뭔가 바로 정답을 말하는 것보다 기대감을 올리고 싶었다. 감히 교수님에게 하긴 어려운 생각이었지만, 나도 이제 미국 생활한 지 몇 년. 이 정도는 괜찮으리라 여겼다.
결심을 굳힌 난 교수님에게 약간의 실마리를 드리기로 했다. 그렇지 않았다간 너무 실망하실 것이 눈에 보였으니까.
“한국 아닙니다. 교수님. 미국에서 해요.”
[오호. 그거 좋네! 아주 좋아.]“예. 그것도 조만간 할 거예요. 한 일주일이나 이주일 뒤?”
[오오오. 혹시 어디인지는 아직 못 말하는 건가?]“아. 그건…….”
[무리해서 말해 줄 필요는 없네. 어차피 그 정도 기간밖에 안 남았으면, 곧 알게 될 일이니.]미국은 한국보다 이런 비밀 보장에 대한 계약이 훨씬 철저한 편이었다. 그걸 익히 아는 리처드 교수님은 내게 다정하고 조심스럽게 입을 여셨다.
거기에 마음이 약해진 난 조금 더 구체적인 힌트를 드렸다. 명색이 내 전공 교수님이신데 이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리라.
[정확하게 말씀드릴 수는 없는데요. 워싱턴에서 할 것 같아요. 전시회.]워싱턴 DC에 있는 미술관이 어디 한둘인가. 그렇기에 난 여기까지는 말해도 된다고 여겼다.
[워싱턴! 이번에야말로 직접 현장 방문을 제대로 할 수 있겠어! 어이쿠. 그럼 내 이럴 때가 아니지.]딱히 어느 전시관에서 한다고 하지 않았음에도 교수님께서는 충분히 만족스러워하셨다.
먼 한국에서 해서 보기 어려울 줄 알았는데, 미국 심지어 저 멀리 서부도 아니고 동부인 워싱턴이라고 하니. 엄청나게 기분이 좋으신 모양이셨다.
[같이 갈 동료를 좀 모아 봐야겠구만…… 어디 보자.]“동료요?”
[후후. 아무래도 이번에는 윤성, 자네가 아니라 내가 좀 바빠질 것 같으이. ]갑자기 급격하게 들뜬 기색이 역력하신 교수님이셨다. 그러더니 심지어 아예 전화를 끊으려고 하시는 게 아닌가.
[일단 전화는 여기까지만 하세나.]물론 그러는 와중에도 내게 연락을 하신 목적을 한 번 더 상기하시는 건 잊지 않으셨으니.
[참! 메일 확인 꼼꼼히 하고! 내가 최대한 좋게 해 달라고 해서 나쁘지 않은 조건이긴 한데…… 이런 건 당사자의 의사가 제일 중요한 법이니.]“그러고 보니 교수님. 그 메일 말이에요. 대체 어찌 된 거예요?”
전화상으로도 의아하다는 기색이 역력하신 교수님이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