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Yun-bok's Modern Art Studies in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210
210화 단독 초대전을 할 정도의 한국 화가
“아뇨. 그건 다 알아들었는데요. 제 말은 이 조건이 교환 학생 가는 제게 가능한 조건이 맞는 건가 해서요.”
일반적으로 교환 학생이나 파견 학생은 등록금을 전액 내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원래 해당 학교의 학생들보다 받을 수 있는 혜택도 적었다.
사실 이건 당연한 일이었다. 학교의 입장에서야 멀리서 오는 교환 학생보다 본교의 학생을 우선시해야 맞는 것이었으니.
‘여기가 완전 처음 가 보는 영국의 대학교인 걸 감안하면…… 이건 파격적인 걸 넘어 말도 안 되는 수준이지.’
라고시안이 미국에 있는 갤러리였기에 난 에일대 입학 전 이미 미국에 어느 정도 이름을 알린 상태였다.
모르긴 몰라도 그게 내 에일대 입학에 어떤 영향을 줬으리라.
하지만 영국은 아니었다. 한국과 미국에서 주로 활동하는 나였다. 날 잘 알 리 없는 영국의 대학에서 학부 입학생도 아닌 일개 교환 학생에게 이 정도의 특별 혜택을 주다니.
내가 막 환생한 직후라 이 세상의 물정을 몰랐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이상 이상한 건 짚고 넘어가는 게 맞았다.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하는 나 때문일까. 드디어 교수님의 무거운 입이 열리셨다.
[크흠. 원래는 안 된다고 하던데…….]“어…… 그럼 혹시 잘못 보내신…….”
[당연히 그건 아니지! 날 뭐로 보고!]혹시나 잘못 보낸 것인지 의심할까 펄쩍 뛰는 리처드 교수님이셨다.
“그럼 진짜 이게 가능하다고요? 1년간 런던예술대의 모든 칼리지에서 수업을 듣는 게요?”
믿을 수 없다는 나의 말투에 교수님께서는 특유의 자랑스러움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말하셨다.
[그쪽 입장에서야 윤성이 네가 가 주는 것 자체가 감사할 일 아니냐.]“아니. 그건 뭔…….”
날 잘 알지도 못하는 영국의 대학에서 내가 가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라니. 제자를 예뻐하시는 리처드 교수님 특유의 과찬이 담긴 말씀이셨다.
하지만 어이없다는 내 심정이 전화로도 전해진 모양이었다.
[음. 솔직히 말하면…….]역시나 뭔가 있었다. 이제야 비로소 말이 될 것 같은 느낌에 난 교수님과의 통화에 한층 더 집중했다.
[내가 골든 스미스 대학 이야기를 했거든. 그래서 뭐 마려운 강아지마냥 조건을 팍팍 퍼 준게 아닌가 싶은데.]골든 스미스 대학교. 그 또한 익히 아는 영국의 명문대였다. 사실 내가 가려는 런던예술대보다 현대에 순수 미술 화가는 더 많이 배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학교였으니까.
‘에일대랑 비슷한 느낌이라 이번에는 빼 버렸지만…… 명문대긴 하지.’
딱 1년만 하는 교환 학생. 그런 만큼 난 압축된 실전을 겪고 싶었다. 그게 좀 더 현장감 넘친다는 런던예술대를 선택한 이유였다.
라이벌 대학 이름이 나오자마자 조건이 급격히 올라갔다고 말씀하시는 교수님. 그런 리처드 교수님의 말씀을 들은 난 어처구니가 없었다.
‘한국도 연고전이냐 고연전이냐 매일 싸운다던데…… 이건 뭐 더하네.’
한국에서도 라이벌이 확실하게 형성된 대학들은 그들만의 경쟁심이 확고히 있었다. 물론 이건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지금 다니고 있는 에일대도 뭐만 하면 하바드랑 경쟁한다고 난리도 아니었으니까.
[그러니 마음껏 조건을 다 써먹어 보게나. 이왕 해 준다고 하는 거 다 해야 하지 않겠나. 후후.]“……예. 안 그래도 그러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교수님께서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그 조건을 활용하지 않는다면, 그건 멍청하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전생에서나 현생에서나 난 바보는 아니었다. 원래 바보는 풍속화, 아니 장르화를 그리기 어려운 법이었기에.
[자네라면 오죽 어련히 알아서 잘할까. 내 학생들이 다 자네 같으면 나도 참 편할 것 같은데…… 쩝.]내 굳은 대답에 교수님께서는 기뻐하시면서도 묘한 기분이긴 하신 모양이셨다. 무언가 다른 걸 떠올리신 듯 입맛을 다시는 것을 보니.
그러시더니 뭔가 다시 생각이 나셨다는 듯, 급하게 전화를 종료하려는 교수님이셨다.
[아. 내 정신 좀 보게. 그럼 이만 여기까지 하지.]“예. 바쁘실 테니 얼른 들어가세요. 교수님.”
[다음에 또 통화하자고. 우리 신 작가님.]상대방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난 공손히 두 손으로 전화를 끊으며 고개를 숙였다.
내게 이렇게까지 많은 지원을 해 주시는 스승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 * *
알렉스 유니언은 최근 오랜만에 알던 지인을 만나러 온 참이었다.
고급스러운 레스토랑. 그곳에서 웨이터의 안내를 따라가자 프라이빗한 자리에 한 사람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선생님. 오셨군요.”
알렉스가 들어서기 무섭게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 깔끔하게 갈색 머리를 빗어 넘긴 앨드리치였다.
“오. 많이 기다렸나?”
“아닙니다. 그리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이제 큐레이터와 작가 관계도 아닌데, 뭘 이렇게 빨리 와 있고 그러나?”
“그래도 선생님이신걸요. 제가 먼저 와야죠.”
알렉스가 한창 전시회를 많이 할 그 시절. 앨드리치가 한때 그의 전시회 큐레이터였던 적이 있었다.
그걸 이용해 농담을 던지는 알렉스를 보며 앨드리치 또한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 당시가 떠올랐다는 듯이 말이다.
“그러고 보니, 이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네.”
“예전에 선생님께서 제게 파스타를 사 주셨을 때가 마지막이니…… 거의 2년만이죠.”
“……그게 벌써 그렇게나 되었다고?”
나름 같은 업계에서 일을 하며 서로 교류를 하는 두 사람이었다. 그런 두 사람이 벌써 만나지 않은 지, 2년이 넘었다니.
알렉스는 새삼 세월이 엄청나게 빨리 간다는 걸 느꼈다.
“예. 제가 더 일찍 찾아뵀어야 하는데……”
“아니. 뭐. 다들 사회생활 하다 보면 그런 거지.”
민망한 듯이 멋쩍게 웃는 상대방을 보며 알렉스는 손을 내 저었다. 두 사람이 오랜만에 보는 게 어찌 그만의 잘못이겠는가.
“나도 작품 활동이나 어디 좀 다니느라 바빴으니, 자네만 미안할 필요 없지.”
“그러고 보니, 한국에 가셨다고 하셨죠. 거긴 잘 다녀오셨나요?”
최근 앨드리치가 연락을 취했을 때, 알렉스는 한국행이 예정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걸 기억한 그가 질문을 던진 것이었다.
“잘 갔다 왔지. 후후. 너무 잘 다녀와서 재미있었다고나 할까.”
그러면서 의미심장하게 웃는 알렉스였다. 다시 생각해봐도 이번 한국 여행은 그에게 무척이나 흥미로운 관광이었다.
“즐거우셨나 보군요.”
“한국 음식도 맛있고 문화도 좋았네만…… 마지막에 친구들끼리 재미있는 내기를 해서 더 좋았네.”
“내기요?”
원래 사람이란 존재는 내기에 관심을 가지는 법 아니겠는가. 알렉스의 내기란 말에 앨드리치 또한 흥미를 보였다.
“무슨 내기요?”
“후후. 그건 아직 말해 줄 수 없어. 그냥 그림 관련되었다고밖에는.”
말하려던 그는 앞에 놓인 물을 한 모금 마시며 의미심장하게 웃기만 할 뿐이었다.
뭔지는 몰라도 저렇게 말씀하시는 걸 보니 앨드리치는 알렉스가 상당히 유리한 내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작품 관련이면…… 선생님을 이길 사람이 없겠네요. 이미 승리하신 거나 다름없으시겠어요.”
“그렇지도 않아. 나랑 같이 내기한 친구들이 다들 한가락 하거든.”
거기까지만 말할 뿐 더 말하지 않은 알렉스 유니언. 그런 그를 보며 슬쩍 화제를 돌리는 앨드리치였다.
“그러고 보니, 한국도 이제 이 시장이 확실히 커졌나 보네요. 프리즈에서 서울에 들어간다고 하는 게 엊그제 같았는데요.”
“아시아 시장이 그만큼 커진 거겠지. 내가 볼 때 한국은 아직도 성장의 여지가 충분히 남은 곳이야.”
이번 여행으로 한국에 가 보고 확실하게 깨달았다. 아직은 순수 미술의 불모지에 가까운 한국이지만, 앞으로도 그럴 리는 없다는 것을.
“그래요?”
“그럼! 나오는 화가들의 면면도 보통은 넘을뿐더러, 시장 자체가 가진 잠재력도 만만치 않으니까.”
“화가들이 보통이 아니라…… 하긴. 최근 한국 화가가 좀 유명해지고 있기는 했죠.”
알렉스의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한다는 뜻을 표했다. 그런 앨드리치의 반응에 오히려 알렉스가 신기하다는 기색을 보일 정도였기에.
“오. 뭐야. 자네까지 알아?”
“……명색이 제 직업이 있는데. 저는 더 잘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이래 보여도 그의 직업은 큐레이터였다. 그런 그가 화가를 모르고 있어서야 말이 되지 않았다.
그런 그를 뻔히 알면서도 감탄하는 알렉스. 그 덕분에 앨드리치는 순간적으로 할 말까지 잃어버릴 뻔했다.
하지만 알렉스 또한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었으니.
“아니. 난 관장 일 하면서 이제 그쪽은 신경을 덜 쓰는 줄 알았거든.”
뉴욕 현대 미술관. 통칭 MoMA. 뉴욕에서 가장 거대한 현대 미술관인 동시에 가장 비싼 입장료를 받는다는 그곳.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관람객 숫자를 갱신한다는 그 거대한 미술관 관장을 맡고 있는 이가 앨드리치였으니까.
회화부터 시작해 조각, 설치 미술 등등. 가지고 있는 작품들의 대부분 미술계에 이름을 뚜렷하게 남긴 작가들 것이었다.
그런 곳의 관장으로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앨드리치였다. 그렇기에 알렉스는 그가 바빠서라도 최근 화가들을 잘 모르리라고 여겼다.
“모마가 어디 동네 미술관도 아니고, 거기 관장이면 좀 모를 수도 있다고 여겼거든.”
“뉴욕 현대 미술관의 관장이니 더 업계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죠.”
“그거야 정론이지.”
“솔직히 선생님께 하는 말이긴 한데요. 바쁘긴 해요.”
그가 햇병아리 큐레이터일 때부터 알던 알렉스이기 때문일까. 앨드리치는 순순히 제 속마음을 드러내 보였다.
“그래서 원래 외부 의뢰도 잘 안 하는 편인데…… 선생님 말씀을 들어 보니 아시아 한번 다녀오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아시아 시장이 그 정도로 잠재력을 보인다니. 업계인으로서 한 번은 직접 방문해 보는 것이 좋으리라.
“오호. 그리 말하는 걸 보니, 거기서 뭔가 일거리가 들어온 건가?”
“예. 원래는 거절할 생각이었는데요.”
“흠. 어디 말이나 해 보게나. 어떤 일인데?”
업계 관련 동향에 두 눈을 반짝이는 알렉스였다. 그런 그를 보며 앨드리치는 문득 알렉스가 얼마 전 여행을 다녀온 나라를 떠올렸다.
“마침 선생님께서 한국에 다녀오셨다고 하시니, 알 수도 있겠군요.”
“아니. 한국이 뭐 어디 붙어 있는 쥐꼬리만 한 나라인 줄 아나? 거기 나름 큰데야. 그곳에 있는 모든 걸 내가 다 아는 게 아니라고.”
한국에 대해 잘 모르는 미국인들은 종종 이렇게 생각하곤 했다. 실제로 미국에 비해 나라 규모도 작고 멀리 있는 곳이었기에.
한국에 갔다 왔다고 하면 늘 받는 질문을 떠올린 알렉스. 같은 말들을 또 듣기 싫은 그가 먼저 선수를 친 것이었다.
“그래도 스미소니언에서 단독 초대전 할 정도의 화가면 아실 것 같아서요.”
“스미소니언에서 단독 초대전을?”
순식간에 알렉스의 관심은 그쪽으로 쏠렸다. 무려 스미소니언에서 그것도 단독 초대전을 하는 화가라니. 그 정도의 화가를 그가 모르고 있다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뭐야. 그런 화가가 있었다고? 그게 누구인데?”
“잠시만요. 직접 보여 드리는 게 낫겠군요.”
그러면서 그는 태블릿을 보여 주었다. 알렉스의 나이가 나이인 만큼 큰 화면으로 보여 주는 것이 낫다고 여겼기에.
거기엔 기사가 하나 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