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Yun-bok's Modern Art Studies in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215
215화 준수하게 생긴 어린 천재 심사 위원
부동의 1위를 자랑하던 소더비는 어느새 크리스티에 많이 따라잡힌 상태였다. 심지어 그 후발 주자인 필립스까지 뒤를 추격하고 있었으니.
그렇기에 소더비는 더 심혈을 기울여 경매를 계획하고 있었다. 오늘의 회의도 이를 위함이었다.
각자의 앞에 모니터가 하나씩 놓인 회의실. 거기서 입을 연 것은 맨 앞자리에 앉은 한 남자였다.
“이번 안건을 시작하기 전에 라이노에게 감사의 인사부터 전하고 싶습니다.”
소더비 이브닝 경매에 올라갈 목록을 정하는 회의. 그 주 진행자인 올란도는 이 말부터 꺼냈다.
소더비 소속의 라이노는 이번에 신선하면서도 괜찮은 매물을 물어 왔다. 잘하고 있는 직원에게 좋은 칭찬을 해 주는 것만큼 훌륭한 동기 부여는 없으리라.
“라이노가 필립스는 물론 크리스티보다도 한발 빨리 움직였기에 이번 그림을 받아 올 수 있었습니다. 우선 박수로 시작하시죠.”
짝짝짝―
“그럼 라이노가 스미소니언과 협상해 가져온 그림입니다. 우선 작품부터 보시죠.”
그의 말에 이 자리에 있는 모두의 시선이 각자 앞에 놓인 모니터로 향했다. 이들은 각 분야의 전문 감정사들이었다.
그림의 정확한 추정가를 정하는 사람들. 소더비에서 가장 눈이 좋다고 하는 이들도 지금은 한껏 긴장하고 있었다.
소더비의 이브닝 경매는 그 정도의 위력이 있었으니까.
“먼저 작품명 . 개선되고 개발된 식사를 의미하는 한국어 제목을 가진 그림입니다.”
각자의 앞에 놓인 고해상도 모니터. 어마어마한 화질을 자랑하는 그 화면에는 작품의 정보와 사진이 나타났다.
“한국어랑 한자군요. 보아하니 윤성 신 화가의 작품이겠네요.”
“그렇습니다.”
소더비 이브닝 경매는 오프라인 경매 중에서도 세계 최고의 물건들만 모이는 곳이었다.
메이저 중에 메이저인 만큼 여기 모인 이들은 제목 하나만으로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 작품의 화가가 누구인지를. 그리고 어떻게 이 작품이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말이다.
“스미소니언과 협의가 된 모양이네요?”
“맞습니다. 저희 이브닝 경매에 이번 작품을 의뢰하겠다고 스미소니언이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한 사람은 곰곰이 생각하는 기색으로 먼저 입을 열었다.
“이거 최초 아닌가요? 기존에 신 작가의 작품이 소더비 이브닝에 나온 적 있었나요?”
“없었습니다. 이번이 최초 맞습니다.”
올란도의 단호한 대답에 몇몇이 웅성거리는 게 느껴졌다. 그중 한 명이 이렇게 입을 열 정도였으니까.
“진짜로요? 이 정도의 화가가 아직 이브닝 경매에 안 나왔다는 말이에요?”
소더비의 이브닝 경매는 분명 대단했다. 하지만 매달 열리는 만큼 이 정도의 작가라면 아예 넘을 수 없는 벽은 아니었다.
작품의 평균 가격이 100만 달러를 가뿐히 넘어가는 화가거늘. 그런 윤성 작가가 아직도 소더비에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 이상한 일이었다.
“이브닝은커녕 소더비에 나온 것도 처음입니다.”
“……그게 말이 돼요? 그럼 처음부터 바로 이브닝 경매에 올린다는 건가요?”
일반적인 과정은 아니었다. 보통 화가들은 단계를 거쳐서 이브닝 경매에 나왔으니까.
일반적으로는 그림 가격이 서서히 오르며 마이너 경매 시장에서 메이저 시장 쪽으로 이동하는 법이었다.
그런데 아래와 중간 과정을 모조리 생략하고 곧바로 소더비의 핵심인 이브닝 경매에 나오다니. 상당히 특이한 일이었다.
다른 이의 어이없다는 투의 질문을 들은 올란도. 그는 주 진행자로서 왜 이렇게 된 일인지부터 답하기로 했다.
“예.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올려야 해요.”
“아니 그게 무슨…….”
“이미 스미소니언 측에서 제시한 추정 가격이 미화 500만 달러를 넘어간 상황입니다.”
“으흠…….”
“500만…… 확실히 그 정도는 될 법하죠.”
이들이라고 업계의 분위기를 모르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수집가들 사이의 의견을 그만큼 잘 귀담아듣는 것이 바로 이 사람들이었다.
“이 정도 금액의 그림을 이브닝이 아닌 다른 경매에 내놓는다는 것도 우습지 않겠습니까.”
그의 말을 들은 다른 사람들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처음 질문을 하기로 한 이는 이 정도의 설명에 만족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아니. 이 그림이 이브닝 경매에 나오는 걸 반대하는 게 아닙니다.”
최소 추정가가 500만 달러쯤 되면 소더비 경매에서도 상당히 고가인 물품이었다. 그렇기에 이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었으니.
“제 말은 이 정도 화가의 작품이 진짜 경매에 그렇게 안 나왔다는 걸 믿을 수가 없다는 것이라서요.”
그가 이렇게 과거 기록에 집착하는 이유가 있었다.
이전 경매에서 얼마 낙찰되었는지. 그건 그야말로 중요한 기준점 중 하나였으니까.
“정말로 오프라인 경매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경매 전체로 봐도 크리스티 온라인 경매. 거기 딱 한 번만 나왔으니까요.”
그러면서 그는 모니터에 다른 화면을 하나 더 띄웠다. 거기엔 윤성 신 화가의 유일무이한 경매 작품이자 낙찰 작품이 들어 있었다.
“작품명 . ‘거울에 비친 꽃과 물에 비친 달’이라는 뜻의 작품입니다. 크리스티 온라인 경매에서 감정가 10만 달러였죠.”
“10만 달러? 고작?”
지금 그들이 의논하는 작품의 가격에 비교해 보면 10만 달러는 고작이라는 말에 어울렸다.
이런 사람들의 반응을 예상한 올란도였기에 그는 별다른 내색 없이 설명을 이어 나갔다.
“예. 근데 실제 낙찰가는 무려 32배도 넘는 320만 달러였죠.”
“32배라니…….”
“당시 크리스티 서버까지 다운시킬 정도의 인기였습니다.”
어지간해서는 나오지 않는 숫자긴 했다. 보통 감정가와 낙찰가가 차이가 난다고 해도 그렇게 심하진 않았으니까.
그 정도로 심한 게 일반적이라면 사람들이 감정가라는 걸 믿어 줄 리가 없었다.
“그 엄청난 격차 덕분에 크리스티가 작품 볼 줄 모른다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였습니다.”
올란도의 말에 다른 사람들의 눈빛에 긴장한 기색이 서렸다. 잘못했다간 그런 부정적인 말을 그들도 들을 수 있었기에.
“그 당시 윤성 신 작가의 작품을 감정한 이들은 지금 크리스티에서 밥줄이 끊어졌을 겁니다.”
“크흠.”
“커험. 험.”
“우리는 그러지 말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안 그래도 요즘 감정가와 낙찰가가 잘 맞지 않아서 신뢰성이 떨어지네, 마네 하는 소리가 나오는 중이니까요.”
올란도의 그 말을 들은 모두는 침을 꿀꺽 삼켰다. 다들 충분히 정신을 차리고 있는 게 느껴졌기 때문일까.
그는 다시 한번 손바닥을 짝 친 후 입을 열었다.
“자. 그럼 슬슬 본격적인 회의를 해 보도록 하죠. 이번 윤성 신의 작품은 총 둘입니다.”
각자 앞에 놓인 모니터 화면이 분할되며, 두 작품이 동시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둘 다 현재는 스미소니언 국립 아시아 미술관에서 전시 중입니다. 전시가 끝나자마자 저희가 인수해 올 것이고요.”
올란도의 능숙한 손짓에 따라 다시 한번 화면이 바뀌었다. 역시나 먼저 그들의 눈앞에 보인 사진은 쪽이었다.
“스미소니언 측에서 제시한 최소 추정가는 500만이라고 말씀드렸는데. 여기에 대해 의견을 주는 것으로 시작해 보죠.”
소더비의 한 달을 책임질 이브닝 경매의 출품작 감정. 그것이 드디어 개시되었다.
* * *
송예림은 속으로 한껏 심호흡을 하는 중이었다.
‘후아. 후아.’
아직 임신은커녕 결혼도 하지 않은 그녀. 하지만 예림은 어디선가 본 라마즈 호흡법을 떠올리며 심신을 가다듬고 있었다.
주변에 있던 다른 작가들은 물론 촬영 스태프들은 그런 메인 피디의 모습이 재미있었다.
이제 막 입봉을 앞둔 새파랗게 어린 피디. 그렇기에 그들은 가볍게 긴장을 풀어 주기 위해 노력했다.
“피디님 입봉이라고 너무 긴장하신 것 아니세요?”
“그러게요. 뭘 그렇게 왔다 갔다 하세요?”
“그냥 앉아 계세요. 어련히 알아서 잘 오실까.”
틈틈이 유리문 밖을 확인하는 그녀. 예림을 보며 다들 한마디씩 놀리는 중이었다.
주변의 놀림 덕분일까. 머쓱해진 그녀는 그제야 좀 차분해진 기분으로 자리에 앉았다.
“오시는 분이 좀 많아요? 그러니 제가 이러는 거죠.”
“아니…… 뭐 할리우드 대스타가 오는 것도 아니잖아요. 다들 큐레이터나 교수님이시라면서요.”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들 방송국에서 오래 일한 사람들이었다. 그 때문일까. 그들은 예림의 반응을 이해하지 못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유명한 대배우나 스타가 오는 것도 아닌데, 피디가 뭘 그렇게 긴장하냐는 어투였으니까.
원래 방송에서 제일 권한이 강력한 사람은 피디였다. 방송을 하나의 배로 비유한다면, 선장이나 우두머리에 가까운 사람이 메인 피디였기에.
“저로서는 할리우드에서 오는 사람보다 더한걸요.”
하지만 그런 주변의 반응을 보면서도 예림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그 작가님 팬이신가 보네요.”
이미 함께 팀을 꾸리며 예림이 왜 이러는 줄 대충은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스태프들의 말에 그녀는 좀 민망한 듯 볼을 붉혔다.
“팬도 팬인데요. 솔직히 현실감이 좀 없어서요.”
“왜요?”
“이런 게 한국에서도 가능할 줄 몰랐거든요.”
한국인들은 외국 화가는 오히려 잘 알아도 자국의 화가들은 잘 모르는 경우가 더 많았다.
국가의 경제적 수준에 비해 순수 미술계에서는 거의 불모지에 가까운 나라였으니. 그런데 그런 곳에서 공중파 방송으로 대대적인 심사를 하다니. 믿기 힘든 일이었다.
지금 그녀의 머릿속을 흔드는 걱정거리는 딱 둘이었다.
하나는 그녀가 초짜 피디라 잘해야 한다는 걱정. 그리고 나머지는 윤성 작가님에 대한 것이었다.
‘작가님이 그림은 끝내주게 그리시지만…… 방송은 처음이실 거 아니야. 심지어 나이도 어리시고.’
이들이 본격적인 생방송 전 넉넉하게 녹화 시간을 짜 둔 이유. 그중 가장 큰 것이 신윤성 작가 때문이었다.
순수 미술계는 언론에 종종 나오는 다른 예체능계와 달랐다.
연예인 못지않게 활동하는 체육계나 영상 출연이 익숙한 클래식 쪽과 달리 이 분야는 영상 노출이 극히 적었으니까.
한국에서 순수 미술계는 작품으로 말하는 만큼 이런 식의 방송 출연이 무척이나 적었다.
당연히 신윤성 작가도 처음이라고 알고 있었다.
신문이나 서면 인터뷰는 한 적이 있어도 이렇게 장시간 대대적인 촬영은 처음이라고.
본인 몸값도 아니고 그리는 작품의 가격이 수십억 단위가 넘어가는 화가임에도 예림이 윤성을 걱정하는 이유였다.
‘나라도 잘해야지.’
그녀가 속으로 다시 마음을 다잡는 사이. 작가들은 조만간 있을 촬영에 대해 이야기하는 중이었다.
“그래도 다행이지 않아요? 국립 현대 미술관이 협조를 잘해 줘서.”
각 기관들에게 촬영 협조를 얻어 내는 것. 방송에서 작가들이 가장 어렵게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번 촬영은 이 부분에 있어선 어려운 점이 전혀 없었다. 따로 장소를 정할 필요도, 협조를 힘겹게 쟁취할 이유도 없었으니까.
“그쪽에서 의뢰한 방송이나 다름없다고 하니까…… 잘해 줘야죠.”
“그렇다고 해도 이 정도면 어지간한 드라마보다 더 잘해 주는 것 아니에요?”
“맞아요. 지난번 ‘달빛의 미술관’이었나? 그 시청률 잘 나온 드라마도 고작해야 잠깐 촬영 허가 내준 게 전부니까요.”
“와…… 그 정도면 우리한테 몇 시간이나 준 건 진짜 잘해 준 거네요. 심지어 다 못 찍으면 다음 날도 된다고 했잖아요.”
그렇게 소소한 대화를 나누는 와중이었다. 갑자기 예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것은.
“피디님?”
“저 1층으로 마중 가겠습니다.”
아무래도 그녀는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는 대신 로비에서 기다리는 걸 택할 모양이었다.
남들이 뭐라 하기도 전에 곧바로 스마트폰과 겉옷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을 보니 말이다.
그리고 잠시 뒤, 그녀는 한껏 미소를 지은 채로 돌아왔다. 뒤에는 두 사람을 더 데리고서.
“안녕하세요. 신윤성이라고 합니다.”
예림이 데려온 사람 중 하나는 곱상하고 깔끔하게 생긴 미청년이었다. 그 앳된 얼굴을 본 순간 몇몇 스태프들은 두 눈을 반짝였다.
‘오. 얼굴 괜찮잖아?’
‘뭐야. 이 정도면 실물이 더 나은데?’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 이 말은 늘 방송에서는 통용되는 말이었다.
피디만 초보일 뿐. 이 자리에 있는 다른 이들은 다들 방송국 물을 몇 년씩 먹은 사람들이었다. 그렇기에 이들은 윤성의 얼굴을 보자마자 단번에 감이 왔다.
준수하게 생긴 어린 천재 심사 위원. 이걸 잘만 활용하면 재미있는 장면이 나올 수 있겠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