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Yun-bok's Modern Art Studies in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220
220화 경매를 고려해 보려고 합니다
‘내 심사가 아니라 소더비 때문에 태도가 바뀐 것이었네.’
전생에서도 이런 사람들이 참으로 많았다.
‘도화서에 들어갔을 때도 이런 인간들 참으로 많았지.’
조선시대 화공으로서는 들어갈 수 있는 최고의 기관이 도화서였다. 그 덕분일까. 난 거기 들어갔다 나오면서 변하는 사람들의 눈초리를 많이 봤다.
이 다나카라는 이도 그런 인간들 중에 하나일 게 분명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을 상대하는 내 대답은 심드렁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도 뻔한 인간에게는 뻔한 대답을 해 줄 수밖에.
“네. 뭐…… 스미소니언에서 소더비에 출품했다고 듣긴 했습니다.”
“크으. 그것도 스미소니언에서 출품하는 작품이라니. 요즘 유찰률이 높아지고 있다는데…… 잘되시길 바라겠습니다.”
분명 예의 바른 어투를 가장하고 있었으나, 묘하게 무례했다. 원래 난 이런 묘한 말투를 참는 군자가 아니었다.
인상을 찌푸린 내가 그 말투를 지적하기 위해 입을 열려는 그때. 나보다 한발 빠르게 입을 연 이가 있었다.
“신윤성 작가님의 이번 작품은 잘 되는 정도가 아니라 최고가를 갱신하실 가능성이 높습니다.”
나타난 이는 나와 마찬가지로 심사 위원 중 한 사람이었던 앨드리치였다.
나와 다나카가 영어로 대화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그는 자연스럽게 영어로 우리의 말에 끼어들며 대화에 합류했다.
“유찰을 걱정할 게 아니라 얼마에 팔릴지를 기대해야 하는 수준이라는 거죠.”
“관, 관장님. 전 그냥…….”
“보는 눈이 그 정도시라면…… 다음에 저희가 도쿄 모리 미술관과 협약할 때 참고해야 할 것 같군요.”
도쿄 모리 미술관. 거기의 수석 큐레이터인 다나카였다. 그렇기에 그는 마치 사레라도 걸린 듯 연신 헛기침 해 댔다.
“커험. 크흠. 제가 장시간 심사하느라 몸이 좀 안 좋아서 실수한 것 같군요.”
그러면서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려는 다나카였다. 그러나 뉴욕 현대 미술관의 관장씩이나 되는 사람은 이런 헛소리가 통할 위인이 아니었다.
“여기 장시간 심사 안 한 사람 없을 텐데요.”
“그게 방송 울렁증이라는 지병이…… 크흠.”
“그럼 여길 왜 나오신 겁니까?”
“험험. 아무래도 전 진짜 몸이 안 좋아서…… 대기실에 먼저 가 봐야 할 것 같군요.”
그 말을 끝으로 누가 붙잡을 새라 뒤를 돌아 버리는 다나카였다.
싱겁게 등장한 것만큼이나 어이없이 사라지는 그. 그런 상대의 뒷모습을 흘끔 본 앨드리치는 어깨를 으쓱였다.
“도망갔군요.”
“……누가 봐도 도망간 거긴 하네요.”
“쯧. 보는 눈이 저렇게 없어서야.”
다시 한번 더 혀를 찬 앨드리치였다. 그는 뉴욕 현대 미술관, 통칭 모마라고 불리는 곳의 관장인 만큼 금세 표정을 갈무리했다.
“작가님의 이번 방송 인상적이었습니다. 역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뉴욕에서 오신 거면 진짜 멀리서 오시긴 했네요.”
나야 어차피 한국이 모국이고, 앞으로 방학 기간은 이쪽에서 보낼 생각이었기에 거리가 상관없었다.
그러나 그는 달랐다. 뉴욕 현대 미술관이라는 대형 미술관의 관장은 그만큼 하는 일이 많았다.
그럼에도 그가 지구 반대편에 있는 한국까지 왔다는 건 상당한 결심을 했다는 뜻이었다.
‘나보다 다른 큐레이터들이 더 관심이 많아 보였는데.’
큐레이터로서 뉴욕 현대 미술관의 관장까지 된 인물. 그에 대한 다른 심사 위원들의 관심도는 나 못지않게 높았다.
내가 화가이자 어린 나이 때문에 관심을 가진다면, 저쪽은 큐레이터로서 올라갈 수 있는 최고봉에 올라갔기에 관심을 보인다고 해도 좋았다.
“제가 여기 온 이유는 작가님 때문이었는데…… 막상 와 보니 한국도 좋은 나라네요.”
“한국 좋죠. 그런데 저 때문에 오셨다고요?”
“예. 스미소니언에서 최초로 단독 초대전을 하는 화가가 궁금해서요.”
나 못지않게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던 그. 그런 앨드리치가 나 때문에 이 ‘올해의 작가상’ 생방송에 출연했다는 건 뜻밖의 소식이었다.
“그런데 와 보니 그 화가가 이제는 소더비 이브닝에 작품까지 내보낸다고 하니, 역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서 싱긋 웃는 앨드리치였다. 그런 상대방을 바라보며 난 확실히 소더비의 위력을 느끼는 중이었다.
다나카부터 시작해 눈앞에 있는 앨드리치까지. 소더비에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내게 말을 걸고 있지 않은가.
“관장님께서 그런데 관심을 가지실 줄은 몰랐는데요.”
뉴욕 현대 미술관의 관장쯤 되면 소더비에 나오기만 해도 최고가를 위협하는 작품들을 많이 봤으리라.
그렇기에 난 그가 이 정도까지 소더비 경매에 관심을 가지는 게 뜻밖이었다.
“관심이 당연히 있죠. 저희 또한 종종 경매로 작품을 수급하기도 하거든요.”
‘그게 무슨 상관이지.’
어차피 경매는 수집가들의 무대라고 생각하는 나였다. 아트 페어도 아니고, 소더비 경매에 뉴욕 현대 미술관의 관장이 뭐 이렇게까지 관심을 가진다는 말인가.
내가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그는 한층 더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의미심장하게 입을 열었다.
“마침 구하기 어려운 작가님의 작품이 경매에 나온다고 하니…… 딱 좋군요.”
“뭐가 딱 좋다는…….”
“경매를 지켜보며 올라가는 가격을 요즘은 인터넷으로도 충분히 볼 수 있죠.”
내 말이 들리지 않는다는 듯. 그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두 눈까지 반짝였다. 그러더니 영문로를 소리를 계속하는 게 아닌가.
“가격을 보고 저희도 한번 고려해 보려고 합니다.”
이제 슬슬 짜증이 난 내가 뭘 고려하려고 하냐고 물어보기 직전. 그제야 그는 온전하게 본인의 속내를 밝혔다.
“명색이 뉴욕 현대 미술관인데, 스미소니언에서 ‘최초’의 타이틀을 가진 작품을 구매조차 고려하지 않는 건 말이 안 되니까요.”
대놓고 미술관의 자본을 바탕으로 경매에 참여할까 한다는 이야기. 그걸 아주 환한 미소와 함께 이야기하는 모마의 관장님이셨다.
* * *
생방송도 끝났겠다, 원래라면 작품을 위해 다시 작업실에 박혀 있으려는 나였다.
하지만 그런 나조차 맛있는 것을 먹기 위해서라면 잠깐의 외출 정도는 충분히 할 용의가 있었으니.
어린 시절 날 본 영향으로 이런 날 잘 아시는 박현민 선생님. 그분께서는 내게 맛있는 곳을 소개해 주신다며 약속을 부탁하였다.
그것이 내가 방송 촬영이 끝나고 며칠 지나지도 않아서 이 자리에 있는 이유였다.
“바쁘실 텐데 이렇게 바로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요. 저도 맛있는 것 먹고 좋은데요.”
무려 ‘올해의 작가상’에 선정된 작가이신 박현민 선생님. 그분께서는 혼자서 날 만나러 온 것이 아니셨다.
“안녕하십니까. 작가님! 이유안입니다. 팬이에요!”
당당하게 내 팬을 자처하며 본인을 소개하는 이분. 이번 ‘올해의 작가상’에 박현민 선생님과 함께 작품을 출품하셨던 이유안 작가셨다.
“사실 오늘 유안이가 너무 선생님을 뵙고 싶어 해서 이렇게 만난 거긴 한데…….”
“그렇습니다! 제가 진짜 작가님이랑 밥 같이 먹는 게 소원이었거든요! 역시 꿈은 이루어지는 거군요.”
“후…… 야. 넌 좀 얌전히 말할 수 없냐?”
“이 정도면 얌전한 거 아닌가? 인사하고 말한 거잖아.”
“어휴.”
한숨을 쉬시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박현민 선생님이셨다. 그런 두 사람의 대화를 보며 난 한 가지 깨달을 수 있었으니.
“두 분이 친하셨나 보네요?”
“친하다기보단…… 그냥 아는 사이입니다.”
“이 자식이 이렇게 말해도 저희 꽤 친합니다. 작가님.”
당당하게 친분을 과시하는 이유안 작가님. 그런 작가님을 보며 박현민 선생님께서는 솔직하게 친한 사이임을 밝히셨다.
“사실 업계가 좁아서 어지간하면 다 알죠. 아시잖습니까. 저희 작가들 숫자 별로 안 되는 거요.”
순수 미술계는 어지간해서는 전업 작가 하기 힘든 세계긴 했다. 상업 미술과 달리 빈익빈 부익부가 심하기 그지없었으니까.
그래도 이렇게까지 친한 것을 보면 자연스럽게 궁금해지는 법이다.
“그럼 ‘올해의 작가상’에 참가하신 네 분이 서로 다 아시는 거예요?”
“안민 작가님은 저희보다 많이 후배라 잘…… 정석비야 뭐 알긴 압니다만.”
더 어린 나이의 안민 작가에게는 똑똑히 ‘작가님’이라는 말을 붙이는 현민 선생님이셨다.
반면에 비슷한 나이 또래라고 할 수 있는 정석비 작가에게는 그냥 아무런 호칭을 붙이지 않는 것을 보니 알 수 있었다.
“……선생님. 정석비 작가님 싫어하시는군요.”
“……싫다기보단.”
누가 봐도 싫어한다는 표정을 한 채 입을 여시는 박현민 선생님이셨다. 그러더니 잠시 뭐라 말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침묵을 지키시는 게 아닌가.
그런 선생님을 대신해서 입을 연 쪽은 옆에 있던 이유안 작가였다.
“싫어하는 것 맞아요.”
“이유안.”
“왜. 이게 뭐 비밀 이야기도 아니고. 사실 여기 있는 현민이가 ‘올해의 작가상’ 타고 나서 정석비가 워낙 업계에 구시렁거려서요.”
“구시렁이요?”
“예. 뭐…… 스승님 이름값이라는 둥. 10년 전에 상 한번 잘 타서 계속 잘 나간다는 둥. 그 외에도 기타 등등 많았죠.”
이유안 작가님은 가만히 있는 박현민 선생님이 답답하다는 듯, 아예 본인이 나서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따지고 보면, 관람객 투표부터 시작해 심사 위원 점수까지 다 현민이가 1위 했잖아요? 그런데도 저러고 다닌다니까요.”
“……정석비 말대로 차이가 미미하긴 했지.”
“원래 미미한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는 것 몰라? 넌 명색이 화가 한다는 사람이 미미함에 대해 그렇게 말하면 어떡하냐?”
적당히 끼어들려는 박현민 선생님의 말문까지 막아 버리는 이유안 작가님. 그 덕분에 난 정석비라는 사람의 각종 악명을 고스란히 잘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진짜 걔가 돈이랑 힘만 더 있었으면 뭔 짓을 했을지 모른다니까요. 그나마 여기서 멈출 수 있어서 다행이죠.”
“그래도 그런 이야길 들으셨으니, 속이 상하셨겠네요.”
나야 뒤에서 뭔 험담을 하든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성향이지만, 박현민 선생님은 다르실 수 있었다. 그렇기에 난 먼저 위로의 말부터 건넸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내 예상보다 더 편안한 기색으로 입꼬리를 올려 웃으셨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번 ‘올해의 작가상’ 덕분에 기사도 꽤 나오고 해서요. 그런 말들 따위 다 괜찮았습니다.”
“아…… 기사요.”
그 말을 들은 난 속으로 당황하며 약간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내 어색함의 이유. 그건 간단했다.
이번 ‘올해의 작가상’에 대해 가장 많은 기사가 나온 사람은 따로 있었으니까.
‘그거 진짜 좀 그렇던데…… 괜찮으시려나?’
보통은 이런 순위 경쟁하는 프로그램의 경우 전부 1위에게 기사의 초점이 맞춰지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실제로 나도 호기심에 차 기사를 검색해 보고 민망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으니까.
아무리 봐도 기사가 나온 수량을 비교해 보면 1위를 한 박현민 선생님보다는 내 쪽이 훨씬 많았다.
작품 자체에 대한 언급도 내 작품에 관한 이야기가 더 많았으며, 기사의 숫자도 차원이 달랐으니까.
그 덕분일까. 난 괜스레 선생님을 보기 좀 민망해졌다. 분명 ‘올해의 작가상’에 뽑힌 건 선생님이신데, 어째 주목은 내가 더 받는 기분이었기에.
이런 내 속내를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박현민 선생님께서는 몇 안 되는 기사만으로도 엄청나게 기뻐하시는 기색이 역력하셨다.
“이게 다 작가님 덕분입니다. 원래 ‘올해의 작가상’은 이 정도로 기사가 많이 나오는 상이 아닌데…… 덕분에 제가 이렇게 언론에도 많이 나오네요.”
박현민 선생님뿐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옆에 앉으신 이유안 작가님 또한 순수하게 기뻐하는 감정만을 드러내셨다.
“전 이 정도로 기사에 제 이름이 많이 나온 게 처음이었거든요. 그래서 기사도 많이 캡처해 두었습니다.”
“저도 황금 사자상 이후로 오랜만이었어요.”
내 묘한 기색과는 달리 두 분 다 내게 감사 인사를 표하셨다. 내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주목받는 일이 없었을 것이라며 연신 미소를 지으시는 두 분이셨다.
그러더니 심지어 이런 말씀까지 하는 거 아닌가.
“작가님 덕분에 이렇게 잘되었는데, 저희가 뭐 해 드릴 수 있는 게 없군요.”
“아니, 제 덕분이라니요. 전 딱히…….”
“작가님 덕분 맞습니다. 그래서 뭐라도 좀 감사의 인사를 표하려고요.”
박현민 선생님의 말에 옆에서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는 이유안 작가님이셨다.
“그렇다고 물질적인 건 이미 작가님께서 부족한 게 없으실 것 같으셔서요.”
“거기다 명색이 심사 위원과 참가자인데, 물질적인 게 오고 가면 나올 뒷말도 있을 수 있고요”
확실히 그건 그럴 수 있었다. 다시 태어난 이 세상은 충분히 그런 말이 나오고도 남았다.
“그래서 다른 쪽으로 보답을 준비했습니다. 작가님.”
저렇게 말씀하신다는 의미는 돈이나 값비싼 선물과 같은 종류의 보답은 아니라는 소리였다.
그러다 보니 나 또한 궁금해졌다. 아직 받을 생각이 들지 않은 그 보답이란 게 대체 무엇인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