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Yun-bok's Modern Art Studies in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221
221화 한국 현대 미술사에서 중요한 이름
도움이 될 것이라 당당하게 말하는 이유안 작가. 하지만 그와 달리 박현민 선생님은 어딘가 민망한 기색이 역력하셨다.
“솔직히 이게 작가님에게 도움이 되실지 잘 모르겠지만요.”
“예?”
“음…… 저희의 경험대로면 나름 필요하실 것 같기도 하지만요.”
‘그러니까 그게 뭔데?’
저렇게 애매하게 말하면 사람은 더 궁금해지는 법이다. 나 또한 호기심을 참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이상할 정도로 머뭇거리는 박현민 선생님과 웃고만 있는 이유안 작가님을 번갈아 보며 입을 열려는 그때였다.
“식사 나왔습니다.”
마침 그 순간이었다. 우리가 주문한 요리가 나온 것은. 전생에서는 잘 먹을 수 없었던 회와 고기의 조합. 그 신선한 느낌에 난 눈을 빛냈다.
“여기 둘 다 맛있습니다. 작가님. 보통 고기가 맛있으면, 회가 별로고 회가 좋으면, 고기가 별로인데…… 여긴 둘 다 괜찮거든요.”
박현민 선생님의 말씀대로 어느 쪽이든 괜찮았다. 뭘 먹던 입에서 가히 사르르 녹는 기분이었으니까.
‘역시 다시 태어나길 잘했어…….’
환생하지 않았다면, 이 맛있는 음식을 먹어 보지 못했을 것이 아닌가.
내가 두 눈을 감고 맛을 음미하는 찰나, 박현민 선생님께서는 조심스럽게 입을 여셨다.
“그럼 작가님께서는 소더비 경매 전까지는 한국에 계시는 거예요?”
아무래도 이 업계에 있는 어지간한 사람들은 다 아는 모양이었다. 내 작품이 조만간 소더비에 나온다는 것을.
‘다들 기사를 찾아보시는 건가…… 어찌들 아시는 거지.’
다른 화가들의 정보를 잘 모르는 내가 보기엔 이건 확실히 신기한 일이었다. 동시에 감사한 일이기도 했고 말이다.
그렇기에 난 현민 선생님의 질문에 구체적으로 답을 해 드렸다.
“그거 안 그래도 고민 중이에요. 다음 학기에는 영국을 갈 것 같아서요.”
소더비 이브닝 경매가 열리는 곳. 그곳은 바로 내가 조만간 교환 학생으로 갈 영국의 런던이었다.
“자, 잠깐만요. 작가님 교환 학생을 영국으로 가시는 거예요?”
“네에. 런던예술대로 갈 것 같아요.”
“이거 생각보다 더 쓸모가…….”
“우와. 타이밍 진짜 끝내주네.”
내 런던행에 놀랐다는 듯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는 두 분이셨다. 그러더니 이내 알 수 없는 의견까지 교환하시는 게 아닌가.
“작가님. 사실 저희가 준비한 건 간단한 가이드북입니다.”
“가이드북이요?”
“예. 작가님의 그림이 소더비에 나오신다고 해서요. 마침 저랑 이 친구가 유학한 곳도 영국이고요.”
두 분이 유학 생활을 영국에서 하셨을 줄이야. 이건 내가 몰랐던 사실이었다.
“거기다 작가님 정도시라면 언제든 런던에서 전시회를 하실 수도 있으니…… 혹시나 해서 준비를 하긴 했거든요.”
“맞습니다. 그런데 설마하니 바로 다음 학기에 영국에 가신다고 하실 줄은…….”
“가이드북이면 영국에 대해 알려 주는 거예요?”
솔직히 이때까지만 해도 난 속으로는 심드렁했다. 그도 그럴 게 지금 시대는 이전 내가 살던 조선과 달랐으니까.
잠깐 손가락만 놀리면 얼마든지 수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시기. 그게 지금이었다.
그런 와중에 가이드북이라고 해 봐야 그렇게까지 내 흥미를 자극할 리 없었다.
하지만 두 분의 말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정확하게는 런던 생활에 대해 알려 주는 내용입니다.”
“맞아요. 런던 내에서 숨겨진 명소나 영감을 얻기 좋은 곳. 맛있는 식당이나 편의 시설 같은 것이 주로 들어 있죠.”
맛있는 식당. 내 귀에 꽂힌 단어는 그것이었다.
‘영국 음식이 별로라는 이야기가 있던데…… 그건 확실히 도움이 되겠네.’
나와 입맛이 비슷한 한국인이신 두 분이 보증하는 식당. 그곳이라면 나도 충분히 맛있게 먹을 수 있으리라.
‘예로부터 경험은 돈을 주고 살 수 없는 법이라는데…… 가벼운 선물로는 딱 좋네.’
어지간한 선물보다 분명 더 도움이 될 만한 물건이었다.
“안 그래도 소더비 경매 전에 미리 영국에 갈까 했는데…… 귀한 선물 잘 쓰일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분명 난 선물에 대한 감사 인사를 표현한 것이었다. 하지만 두 분의 귀에는 다른 말에 더 중요하게 들린 듯 보였다.
“경매 전에 영국에 가신다고요?”
“고민 중이거든요.”
“아니, 왜…… 설마 참가하시게요?”
물론 난 소더비 경매에 원한다면 충분히 참가할 수 있었다. 학기 중이 아닌 방학인 만큼 시간이 있었으며, 괜찮을 작품을 고를 만한 눈도 있다고 자부했으니.
그러나 어째 두 분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어째서 지금…….”
“어…… 소더비면 안 되는 이유가 있는 거예요? 제가 알기론 무척 좋은 경매 회사로 알고 있는데요.”
“……작가님. 이 기사들을 봐 주세요.”
“……이거 다 언제 모아둔 거예요?”
너무도 자연스럽게 내게 폰을 보여 주는 선생님. 그곳에서 보이는 기사 목록이 어째 심상치 않았다.
내 작품이 나오는 소더비 경매에 대해 어찌나 잘 정리해 두셨는지 감탄할 지경이었다.
이 정도면 밥 먹고 이 일만 하는 라고시안보다 더 잘하는 기분이었기에.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했죠. 근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작가님.”
“…….”
“이 제목들만 봐도 감이 오지 않으세요?”
곧 있을 소더비 경매에 내 작품이 나온다는 인터넷 기사들. 그리고 그와 관련된 영상 링크였다.
선생님의 말씀과 달리 난 이것만 봐서는 도무지 현민 선생님께서 뭘 이야기하고 싶으신지 짐작할 수 없었다.
“후…… 감이 안 오시나 보군요. 이건 다음 달 소더비가 미는 메인 작품이 작가님의 것이란 소리입니다.”
“그게 뭐 어떻다고…….”
“지난달 소더비는 이브닝 경매에 미국의 현대 화가라고 불리는 에드워드 하퍼의 작품이 나온다고 대대적인 기사를 냈죠.”
“아, 그건 저도 봤어요.”
“그 작품은 결국 소더비 런던에서 1,210만 파운드에 낙찰이 되었죠.”
이거만 해도 한국 돈으로 200억 원쯤 되는 돈이었다. 미국에서 잠깐 있었던 덕분일까. 예전에 어려웠던 환율 계산도 이제 대충은 가능해진 나였다.
“그리고 지지난달은 구스타프 클림프의 을 아주 확실하게 밀어줬죠.”
“그것도 본 기억이 있는데요. 무슨 기록 세웠다는 내용이었는데…….”
“예. 정확하게 8,530만 파운드로 소더비 런던 경매에서 올 상반기 최고가 기록을 갈아 치웠죠.”
“……대체 이런 건 다 어찌 아시는 거예요?”
나로서는 신기했다. 그림이 얼마에 낙찰되었는지 이 정도로 잘 알고 계시다니. 그것도 내 작품이 아닌 남의 작품을 말이다.
그런 내 반응에 박현민 선생님은 묘한 눈빛으로 빙긋 웃으셨다.
“저 말고도 아는 이들 많을 겁니다. 소더비 경매는 어지간한 작가들의 꿈이거든요.”
꿈. 그만큼 많은 작가들이 원한다는 의미이리라.
“후…… 막연한 꿈인 저희와 달린 지금 작가님에게는 현실이시죠.”
“…….”
“거기다 이렇게 대대적인 홍보 기사가 난다는 건, 지금 작가님의 작품이 이번 달 소더비가 밀기로 한 작품이라는 뜻입니다.”
“그건 너무 앞서 나가신 것 같은데요. 그리고 그게 제가 경매 전 거길 구경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는데요.”
지금 이야기가 나온 작품들은 그야말로 대단한 금액으로 낙찰이 되었기에 기사가 나온 것들이었다.
즉, 보통이라면 이렇지 않으니, 기사가 나왔다는 것이리라.
그런 특이한 건을 가지고 나와 엮어서 이야기를 하다니, 이 과한 평가에 난 부정할 수밖에 없었다.
“제가 알기로 대부분 매월 열리는 이브닝 경매는 한국 돈으로 100억 원 이하가 많다고 들었거든요.”
100억 원이 뭔가. 한국 돈으로 몇십억 정도인 경우도 많았다. 낙찰되는 물품이 많은 만큼 유찰되는 물건도 많았기에 벌어지는 일이었다.
“심지어 요즘 경매 시장이 어렵다면서요.”
여기에 한술 더 떠서 요근래 경매 시장은 불황이었다. 낙찰 금액 자체가 줄어들었으며, 금액대도 전반적으로 낮아지고 있었으니까.
“그러니 경매 전에는 여기 계시는 게 좋습니다. 괜히 근처에 갔다가 이상한 불똥이 튈 수도 있으니까요.”
“이상한 불똥이요?”
“예. 허니, 되도록 영국은 경매 끝난 후 들어가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저 또한 동의합니다. 자칫 잘못하다간, 우리나라보다 심하다는 영국의 황색 언론에 시달리실 테니까요.”
황색 언론이라고 하니 대충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근거 없는 소문을 퍼트리는 이들. 그런 이들 때문에 몸을 사리라는 것이리라.
‘하기야. 몇 년 전에 작품 가격 조작하는 화가에 대해 대대적으로 영국 언론이 보도했지…….’
대표적인 영국의 현대 화가라고 불리는 어떤 이. 그가 본인의 작품의 가치를 올리기 위해 다른 이와 함께 경매 조작했다는 내용이었다.
심지어 그건 명백한 사실로 밝혀지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이미 그런 전례가 있는 이상, 경매에 나오는 작품을 그린 내가 나타나면 무슨 소리를 할지 눈에 선했다.
‘경매를 위한 전시는 미술관 전시랑은 다르다고 해서 꼭 가 보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교환 학생 때를 기약해야 할 것 같네.’
백문이 불여일견. 100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좋다는 뜻으로 내가 예로부터 좋아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번이 유일한 기회라면 모를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난 순순히 다음을 기약하기로 마음먹었다.
* * *
“흘흘. 결국 내가 이겼구만.”
이민철은 알렉스와 통화를 하는 중이었다. 그들끼리 한 소소한 내기. 그 승자가 바로 그였기에.
[그러게, 요즘 자네 운이 아주 미친 모양이야.]“운은 무슨! 이건 엄연히 작품 보는 실력이야! 어때 부럽지 않나? 흘흘.”
“아, 손자…….”
상대가 말하는 이민철의 손자. 그건 바로 신윤성의 이야기였다.
[그 나이에 소더비라니, 나도 못 해 본 일인데…….]예술가들의 예술가라고 불리는 알렉스 유니언. 살아 있는 화가들 중 가장 그림 가격이 비싸기로 유명한 그였다.
하지만 그런 그조차도 신윤성의 나이에 소더비 경매에 본인의 작품을 올리진 못했다.
[이놈의 자식은 언제 소더비 갈 수 있을까 모르겠구만…… 신 작가는 벌써 이브닝 경매라니.]“뭐. 언젠가 가지 않겠는가? 그쪽도 전도가 아주 유망하던데.”
이민철의 말에도 알렉스는 회의적인 모양이었다.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여는 것을 보니 말이다.
[살아 있을 때 가면 참 좋을 것 같기는 한데…… 가능할지는 하늘만이 알겠지.]알렉스의 그런 솔직한 반응 때문일까. 민철도 조금씩 깊은 속내를 드러낼 수 있었다.
“난…… 솔직히 걱정이 되더라고.”
[걱정? 아니, 신 작가 되는 정도의 인물도 걱정을 하나?]“하지. 지난번 크리스티 경매에서 윤성이 작품이 괜찮게 판매되었거든.”
손자의 일거수일투족을 나름대로 잘 지켜보는 민철이었다. 그렇기에 당시 어떤 과정을 거쳐 경매가 진행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대중 예술인 영화가 홍보를 더 해 줘서…… 진짜 괜찮은 가격에 낙찰이 되었지.”
[근데?]“헌데, 요즘 워낙 그림 가격이 떨어지는 추세 아닌가. 아무래도 불황이고 하니.”
사실이 그랬다. 몇 년 전 고가에 낙찰되어 팔린 작품들 그들도 다시 경매 시장에 나오면 힘을 못 쓰는 경우가 많았다.
엇비슷한 가격에 낙찰이 되면 그나마 안도의 한숨을 내쉴 지경이었다. 그 정도로 현대 미술 시장은 상태가 좋지 않았다.
[쯧. 어지간한 화가는 살아 있을 때 밟지도 못하는 경매야. 간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지.]“그야 그렇지만…….”
[거기다 무조건 잘 안 된다는 것도 아니잖아. 혹시 알아? 크리스티 경매 때보다 더 입소문 타서 엄청난 결과를 보일지도?]“아이고야. 그럼 좋겠지만, 그게 어디 쉬운가.”
[그래도 신 작가 정도면 앞길 탄탄하지. 싹수도 좋은 데다가 이번에 잘만 나오면 그야말로 순풍에 돛 단 듯 나아갈 테니.]“……그렇기야 하겠지만.”
[잘만 하면 지금의 입지에 그야말로 박아 넣는 역할이 될 것이 분명하지. 이번 경매는.]그 부분은 이민철도 동의했다.
‘살아 있는 작가임에도 소더비에서 화제가 된다면…… 그림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기억할 것이야.’
미술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아는 현대 미술가의 이름들이 몇 명 있었다.
대표적으로는 한국인 최초로 100억 원이 넘는 가격에 낙찰된 작품의 화가, 김한기가 있었다.
그 외에도 물방울 화가라고 불리는 김성열, 소 그림이 잘 알려진 이장섭까지.
이들은 미술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도 알고 있을 정도의 화가들이었다.
미술에 대해 잘 모르는데 어찌 화가가 유명해졌냐고? 간단했다.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들이 유명한 이유는 이들의 작품 가치가 엄청나기 때문이었다.
최초가 주는 힘. 거기에 작품이 가지는 막대한 경제적인 가치까지. 그 결과 이들은 한국 현대 미술사에서 중요한 이름이 되었다. 순수 미술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까지 상식처럼 관심을 가질 정도로.
그럴 때, 만약 그의 손자인 신윤성이 소더비에서도 심상치 않은 결과를 낸다면?
이런 화가가 최근 들어 등장하지 않는 한국이었다. 그런 만큼 충분히 그 아성을 넘볼 수 있게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