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Yun-bok's Modern Art Studies in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26
26화 제 그림 어때요?
전시회.
그건 내게 새로운 기분을 선사했다. 이렇게 많은 이들에게 그림을 선보이다니.
준비를 꽤 공들여 한 만큼 내 설레는 마음도 컸다.
그런 마음으로 그곳에 발을 들였을 때, 어머니가 내게 처음으로 인사시킨 분. 보아하니 어머니의 친우인 모양이었다.
‘근데 어머니의 친우이신데 아직도 결혼을 하지 않았다니. 세월이 무섭네.’
이럴 때마다 내가 태어난 곳이 조선과 한참을 다름을 실감했다.
예전이라면 자식이 뭔가. 손주도 있을 나이가 어머니의 연세셨다. 전생의 나도 혼인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눈총을 꽤나 받았으니까.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그녀는 허리를 굽혔다. 이 또한 조선과 다른 점이었다. 아이와 눈을 맞추기 위해 선뜻 허리를 굽히다니.
“네가 입구의 그림을 그린 거야?”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내게 질문하는 여자. 그분에게 난 우선 인사부터 했다. 첫인상은 중요한 법.
“어머니의 친우분이신 도연 이모께 인사드립니다. 전 신윤성이라고 합니다.”
“……너, 참 예의 바르구나.”
잠시 어이없다는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더니 그녀는 한 손을 들며 친절하게 인사를 덧붙였다.
“그래, 윤성아. 나도 만나서 반가워. 그런데 진짜 이걸 네가 그렸다고?”
“윤성이가 그린 것 맞아.”
인사와 함께 다시 쏟아진 질문. 거기에 답을 한 건 어머니셨다.
“꽤 잘 그리지 않았어?”
“너 지금 꽤 잘 그렸냐고 물어본 거야?”
허탈하다는 듯 되묻는 그녀. 자신의 친구가 왜 그러는지 안다는 듯 어머니의 입가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이 그림 보고 애 아빠가 삐질 정도였거든. 그러니까 잘 그린 거지.”
들어오는 곳에 걸어 둔 그림. 보자마자 아버지가 토라지신 작품이었다. 아들은 엄마만 신경 쓴다나 뭐라나.
당연히 그건 아니었다. 출구 쪽엔 아버지를 그린 것이 있었으니까. 안 그래도 그걸 보고 바로 기분이 풀리시긴 했다.
내가 잠시 다른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에도 두 분은 도란도란 대화 중이셨다.
“와. 미친……. 그 그림을 이 조그만 애가 그렸다고…….”
조그맣다니. 그렇지 않아도 요즘 사람들은 다들 키가 훤칠했다. 다들 과거에 태어났다면 장군감들이었으리라.
덕분에 전생에도 작았던 난 걱정이 되었다. 이번 생에 그 정도 키였다간 짜리몽땅하다는 소리를 들을지도 몰랐다.
‘내 나이 평균 키보다 작은 것이 안 그래도 신경 쓰이는데!’
첫인상이 좋아야 한다는 말 취소다. 원래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고운 법.
덕분에 발끈한 난 나도 모르게 바로 물어보고야 말았다. 상대가 예의를 지켜야 하는 어른이었음에도.
“제 그림 어때요?”
“뭐?”
“가지고 싶은 마음은 드나요?”
솔직히 막 엄청나게 자신 있지는 않았다. 그것도 그럴 게 난 아직 이 시대에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었으니까.
‘시간이 별로 없었지.’
좀 아쉬웠다. 최선을 다해 준비했음에도 부족해 보였으니까. 이 정도로 충분할지. 과연 남들의 눈과 심장을 사로잡을 수 있을지.
그림을 그리면서도 꽤 고민했다. 확신이 없었기에 그 고민은 꽤 깊었다. 어느 정도가 되어야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을까.
지금 시대는 내가 있었던 조선과 달랐다. 영상은커녕 사진도 없던 시절이었던 그때다. 심지어 안료도 현대처럼 풍부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소유하고 싶은 그림을 그리긴 상대적으로 쉬웠다고 본다. 지금 이 시대보다는 그랬다는 거다.
대표적으로 내 그림을 본 당시의 많은 이들이 그 그림을 가지고 싶어 했으니까.
그림을 보는 순간 여러 가지를 상상할 수 있는 그림. 이야기가 있는 화폭. 이것 하나만은 내가 단원 김홍도보다 나았다. 당연히 당시의 난 자신감도 있었다.
하지만 과연 지금도 그럴까?
난 이 의문을 풀기 위해 계속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내 그림이 어떤지, 어찌 보이는지, 어떤 생각을 들게 하는지 말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난 혈육에 둘러싸여 있었다. 뭐든 내 그림이라면 다 좋다고 해 줄 사람들 말이다.
그렇기에 이건 기회였다. 마침 날 작다고 말한 이 어른이라면 객관적으로 말해 주리라.
“그림을 가지고 싶냐고?”
“네에.”
나올 답을 기대했다. 그러나 내 기대는 빗나갔다. 내 물음에 상대는 오히려 질문으로 답했기 때문이었다.
“애가 진짜 성숙하구나. 질문이 좀 특이하네?”
“특이한 거예요?”
어디가 특이하다는 건지 모르겠다. 당연히 제일 중요한 게 이 질문 아닌가.
내 의문 어린 표정 때문일까. 그녀의 목소리가 더 상냥해졌다.
“응, 보통 애들은 잘 그렸냐고 물어보지 않니?”
“그래요? 물론 그것도 궁금하긴 해요.”
물론 어린애들은 그것도 궁금할 수 있었다. 나 또한 어린 시절에는 그랬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근데 전 그것보다 제 그림을 가지고 싶은지가 더 중요하거든요.”
“왜 그게 더 중요한데?”
“잘 그렸다고 다 갖고 싶진 않으니까요.”
관상용 그림이란 말이 있다. 정말 잘 그렸음에도 어쩐지 손이 가진 않는 그림. 내가 원한 건 그런 그럼이 아니었다.
사람의 욕구를 자극하는 그림. 상상력과 소유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작품. 그런 그림을 그리고 싶었기에.
지금은 박물관에 걸려 있는 미인도도 그랬고, 다른 작품들도 마찬가지였다.
누구나 갖고 싶어지는 그림. 그게 내가 생각하는 그림의 최고봉이었으니.
“허…… 얘가 말도 잘하네.”
신기하다는 듯 날 바라보는 그녀였다. 그 묘한 눈초리를 마주 보며 난 슬슬 인내심이 바닥나고 있었다.
다시 아이가 되었기 때문일까. 어쩐지 전생보다 참을성이 없어지는 기분이었다.
상대가 어머니의 친우가 아니셨다면 진즉에 뒤를 돌았으리라. 다른 데로 가서 다른 사람의 반응이라도 보고 싶었으니까.
‘그래서 가지고 싶다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
내 표정이 점점 나빠졌기 때문일까. 가까이 다가온 아버지께서 날 안아 올리시는 것이 느껴졌다.
“윤성아, 엄마는 친구랑 이야기하게 우린 가서 아이스크림 사 먹을까?”
아이스크림.
신묘한 힘을 가진 단어를 들었다. 내 어깨에서 힘이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입안에서 구름처럼 달콤하게 녹는 음식이었다. 그 차갑지만 달달한 맛은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천상의 맛이었으니.
꿀꺽―
상상이 절로 된 나는 침이 절로 넘어갔다.
“아이스크림이요?”
“그래, 오늘은 특별히 이 아빠가 더 맛있는 아이스크림 먹게 해 줄게.”
난 아버지를 바라보며 재빠르게 계산하기 시작했다.
전시회는 며칠간 진행된다고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내게 시간은 충분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은 좀 더 이따가 들어도 되지 않나?’
어머니가 같이 가지 않으실 예정. 그렇다면 내가 좀 더 많이 먹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되었다.
“저 초코랑 바닐라 다 먹어도 돼요?”
“그럼. 이 아빠가 바닐라 시킬 테니, 윤성이가 초코 시켜서 나눠 먹자.”
난 흘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어차피 여기 있어 봤자 내가 원하는 대답은 들을 수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가는 것이 이득이리라.
“네에, 완전 좋아요.”
난 활짝 웃으며 아버지의 손을 꼭 잡았다. 이 보 전진을 위한 일보의 후퇴란 대부분 옳은 법이다.
* * *
아버지와 함께 멀어져 가는 아이. 윤성이를 보던 도연은 슬쩍 질문을 던졌다.
“애가 참 똘똘하네. 몇 살이야?”
물어보면서 그녀는 대강 나이를 짐작해 보았다. 말을 또박또박 잘하는 데다가 눈빛이 초롱초롱한 것이 초등학교 저학년쯤 되는 듯 보였다.
이것도 키를 고려한 추측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예상은 바로 빗나갔다.
“7살이야. 내년에 학교 들어가.”
“뭐? 7살? 그럼 만 6살이라는 소리야?”
“맞아.”
아이의 뒷모습을 끝까지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는 가영. 그런 그녀를 보며 도연은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와…… 세상엔 진짜 천재란 게 있구나.”
“그건 너무 과한데.”
“과하긴 뭐가 과해. 6살에 저런 그림을 그려 낸 게 과하지.”
다시 그림을 봐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게 아직 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미취학 아동의 작품이라니.
세상은 역시나 요지경이었다.
‘방금 네에, 라고 대답했지?’
말끝을 길게 늘이는 아이. 귀여운 꼬마였다. 그 속에 숨겨진 그림 실력은 그렇지 않았지만.
‘무슨 애가 저런담.’
아직 미혼인 그녀. 주변에 윤성이 또래의 아이가 없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본인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려고 했다.
‘내가 어릴 때 어땠더라?’
당연히 기억날 리가 없었다. 하지만 잘은 몰라도 눈앞의 아이 같지는 않으리라.
궁금증이 생긴 그녀는 좀 더 질문하기로 했다. 마침 옆에 그런 천재적인 아이의 부모가 있지 않은가.
“그림 공부는 어떻게 시킨 거야? 막 어릴 때부터 조기 교육 이런 거야?”
“아니. 이런 말 하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는데…….”
어째서인지 잠시 머뭇거리던 가영. 그녀는 주변을 한 번 둘러보더니 목소리를 더 낮췄다.
“윤성이는 진짜 스스로 붓을 잡았어.”
“뭐?”
“제일 먼저 한 말이 붓 달라는 소리였거든.”
이게 뭔 미친 소리인지. 당연히 애가 제일 먼저 하는 말은 엄마나 아빠 아닌가?
어리둥절해하는 도연을 향해 가영은 입을 열었다. 윤성이가 어린 시절 했던 행동은 지금 생각해 봐도 특이했다.
“그러니까 입 한 번 떼지 않던 애가 처음으로 말한 소리가 붓 달라는 소리였다는 거지?”
“그렇다니까. 너도 믿기 힘들지?”
확실히 사연을 들어 보니 신기했다. 그 순간, 이 모든 걸 들은 도연의 머릿속에 번개가 쳤다.
‘이거…… 팔리겠는데?’
순수 미술 시장은 다른 예술 시장에 비해 침체되어 있다. 음악이나 체육에 비해 재능이 두드러지는 분야가 아니었으니까.
세월의 힘을 가장 무시할 수 없는 분야가 바로 이쪽이었다. 톡톡 튀는 재능보단 시간이 더 좋은 작가를 만들어 냈으니.
덕분에 그 어떤 예체능 분야보다도 어린 천재가 나오기 어려웠다.
‘이 와중에 나오는 어린 천재면…… 이거 꽤 괜찮지 않나?’
우리나라만큼 어린 천재에 환호하는 나라가 또 있을까. 그 어떤 분야를 막론하고 대중들은 천재에 환호했다.
한 번 해당 분야에서 나온 천재는 그 분야의 위상까지 드높일 정도였다. 그만큼 사회적인 파급력이 막강했으니.
그건 그 천재가 어릴수록, 그리고 그 재능이 뛰어날수록 그 열기는 높았다.
“저기 가영아. 나, 네 아들에 대해 기사 좀 써도 될까?”
이를 떠올린 도연은 침을 꿀꺽 삼켰다. 어쩌면 오늘 온 것이 그녀의 인생은 물론 다른 곳도 바뀌게 만들지도 몰랐다.
“원래 이 전시회 취재하러 온 것 아니었어?”
“이 전시회 말고. 네 아들에 대해 좀 써 보려고.”
“윤성이?”
“응, 괜찮으면 아이 인터뷰도 좀 하고.”
“인터뷰…….”
“내가 포인트는 확실하게 다 아들에게 잡아 줄게.”
“윤성이보다는 아빠 걸 하는 게 낫지 않겠어?”
이민철 화백은 유명인이다. 그에 비하면 무명인 신윤성. 그렇기에 가영은 차라리 아버지 인터뷰를 추천하는 듯 보였다.
“아니야. 그건 다른 기자들이 충분히 쓸 거야.”
하지만 도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민철 화가의 인터뷰는 별로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이미 다른 기자들이 몇 개씩 뽑아낼 것이 분명하니까. 도연이 원하는 건 그런 흔한 게 아니었다.
“내가 무조건 네 아들 기사는 괜찮게 뽑아 줄게. 그 대신.”
그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이 말이 핵심이었기에.
“윤성이라고 했나? 썰 좀 풀어 봐. 네 아들에 대해서.”
도연은 확신했다. 이 기사 잘만 하면 퍽 괜찮은 그림이 나오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