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Yun-bok's Modern Art Studies in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27
27화 어린 천재
이민철 화백 가족전―‘동상이몽’
손자인 신윤성 작가와 함께.
지난 15일 금요일 서울 홍림아트센터에서 이민철 화백의 가족전이 개최되었다.
할아버지와 손자가 같은 길을 가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그 어떤 분야든 한 가족이 같은 일을 한다는 건 대를 이었다는 뜻이니까.
하물며 그게 부모와 자식이 아닌 조부모와 손자라니. 보기 드문 형태임은 분명했다.
추상화가 이민철 화백과 그 손자가 함께한 가족전.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필자는 입구에서부터 시선을 사로잡는 전시전을 오랜만에 보았다.
할아버지와 어머니가 모두 그림을 그렸기 때문일까.
이제 고작 7살이라는 아이의 그림이 심상치 않았다.
그렇기에 필자는 보호자인 어머니의 허락하에 짧은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다.
[Q. 화가로서 첫 데뷔다. 자기소개를 부탁한다.]―이름은 신윤성. 호는 아직 없다. 나이는 올해 7세로, 부친인 신주혁과 모친인 이가영 사이에서 출생했다.
[Q. 특이한 자기소개다. 그러고 보니 약력도 첫걸음을 시작한 이라고 적혀 있다.]―이전과 달리 난 다시 시작했으니 그렇다. 아직 손도 완전하지 않으니, 첫걸음을 뗀 게 맞다.
[Q. 손이 완전하지 않다니. 어딜 다친 건가.]―다치진 않았다. 단지 다 자라지 못해 어려서 그럴 뿐. 그림을 그리다 보면 좋아질 일이다.
[Q. 스스로 완전하지 않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그림을 그린 것인가.]―완전하지 않은 것보다 더 싫은 게 그림을 못 그리는 거다. 그림을 그리지 않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Q. 그럼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딱히 계기 같은 건 없었다. 내 앞에 붓이 보였고, 난 그리고 싶은 것을 그렸다.
[Q. 그림이 동양화스럽다. 앞으로 그쪽을 그릴 생각인가.]―동양화스럽다는 말을 들어도 뭔지 잘 모르겠다. 다만 난 내가 본대로 내가 느낀 대로 계속 그려 나갈 작정이다. 다행히 내겐 건강한 몸과 충분한 안료가 있으니까.
[Q. 자꾸 건강한 몸이라 말하다니. 어디가 아팠던 건가.]―지금은 그렇지 않다. 하지만 아직 몸이 어리니까 조심하려고는 하는 편이다.
[Q. 말투가 상당히 어른스럽다. 정말 7살이 맞는 건가.]―난 태어난 지 그 정도 된 것이 확실하다. 여차하면 우리 부모님에게 확인해 보는 것이 정확할 거다.
[Q. 할아버지의 그림에 대해 어떻게 보나.]―본인만의 색채가 확실하시다. 그만큼 망설임이 적어 보여서 부럽다. 나도 언젠가는 남에게 그런 느낌을 풍기는 그림도 그려 보고 싶다.
[Q. 이번 전시회에서 무얼 표현한 건가.]―내가 여기에 태어나면서 겪고 본 것들. 그중에서도 내 시선을 사로잡는 것들을 주로 뽑았다.
[Q. 그것들을 그린 이유가 뭔가.]―내 시선을 사로잡은 장면이라면 남들도 관심이 있을 테니까.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Q. 다음 전시회에 대한 계획이 있는가.]―아직 모르겠다. 이번 것도 할아버지와 함께하지 않았다면 안 했을 것이다.
[Q. 이번 전시회에 대한 소감은.]―해 보니 좋은 경험이었다. 한 번 해 봤으니 다음번에 한다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화가 신윤성. 그의 나이는 올해 7살로 만 6세였다. 7살 아이임에도 인터뷰에 막힘이 없었다.
고작 7살의 나이로 확고히 자신을 표현하는 화가. 천재 화가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는 게 아닐까.
주류 미술계에 새롭게 나타난 이 천재 화가의 작품들. 홍림아트센터 측은 이번 전시회를 30일까지 진행한다고 밝혔다.
통합뉴스 김도연 기자
* * *
제임스 킴.
미국에서 나고 자란 그는 한국계 3세다. 그는 친구이자 그의 담당 에이전시 전담 매니저인 톰에게 용건을 전달하는 중이었다.
“또 기사를 출력해 오라고?”
“그래.”
“네 기사도 아니잖아?”
제임스 킴. 그는 현대 미술계에서 꽤 유명한 작가다. 심심치 않게 기사까지 나오는.
하지만 제임스는 톰을 보며 한심하다는 눈초리만 보낼 뿐이었다.
“내 기사면 출력해 오라고 하겠어? 그냥 스마트폰으로 보면 되는데.”
“……아니, 그럼 누구 기사인데?”
거기까지 말한 톰. 그의 머릿속을 스치는 사람이 있었으니.
“설마.”
“맞아. 이민철 작가님이 최근 전시회를 했대.”
이민철 작가. 톰 또한 익히 아는 인물이었다. 미술계에서 꽤나 알려진 원로 작가였으니까.
“전시회를 했다고? 내가 왜 몰랐지?”
이민철 작가 정도 되는 사람이 전시회를 했다면 톰이 몰랐을 리 없었기에. 그러나 제임스는 그럴 만하다고 답했다.
“모국에서 작게 여셨는 모양이더라고.”
“모국이면 한국?”
“응, 옥션 쪽에서도 아직 소식이 없으니 몰랐을 수 있지.”
경매 리스트 업도 아직 안 되었다는 소리였다. 그제야 어느 정도 납득한 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네가 소식을 빨리 안 거네.”
“그렇지. 그러니까 빨리 기사들이나 출력해 와.”
“알았어. 기다려. 바로 시킬 테니까.”
톰이 스마트폰을 꺼냈다. 아래 직원에게 시키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제임스는 고개를 저었다. 그가 원하는 바는 신속함이 생명이었다.
“한국어로 된 거라 몇 개 없을 테니, 네가 가는 게 빠를걸?”
“젠장. 아래층까지 갔다 와야 하잖아.”
제임스가 원하는 건 고화질의 출력물일 것이 뻔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이 발달한 이 시대에 굳이 출력해 오라는 건 수집이라도 해 두겠다는 소리였으니까.
달칵―
“정말 몇 개 없네.”
“그치?”
“이민철씩이나 되는 화가여도 생각보다 한국에선 별로 안 유명한가.”
“뭐. 한국이 그렇지.”
톰은 정말로 금방 도착했다. 그는 몇 장 되어 보이지 않는 출력물을 내밀었다.
팔락―
제임스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그의 담당자가 잘 출력해 온 것으로 보였으니까.
한국계 작가인 그는 한국어도 일부 할 줄 알았다. 덕분에 그는 순식간에 출력해 온 기사를 읽을 수 있었으니.
꾸깃―
그런 그의 손에서 한 기사가 무참하게 구겨졌다. 톰은 그런 제임스를 보며 기겁했다.
“야야, 종이 꾸기지 마.”
톰은 재빠르게 제임스의 손에서 종이를 빼앗아 들었다.
“설마 나보고 구겨졌다고 또 내려가서 출력해 오란 소리 하려는 건 아니지?”
나머지 기사들은 다 곱게 파일에 넣던 놈이 갑자기 이건 왜 이렇게 험하게 다룬다는 말인가.
“너 미쳤어? 다른 건 다 잘 스크랩하면서 이것만 왜 취급이 이따위야?”
“네가 이상한 걸 뽑아 오니까 그렇지.”
“이상한 거라니?”
톰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딱 제임스가 부탁한 대로 일을 수행했을 뿐이었으니.
“네 말대로 이민철이란 글자가 들어간 기사를 전부 출력해 온 건데?”
“후…… 한국어를 모르는 네게 부탁한 내 잘못이지.”
“아냐. 나 이제 약간은 할 줄 안다고.”
“알파벳만 좀 아는 걸 우린 영어를 안다고 하진 않지.”
톰의 한국어가 딱 그 정도 수준이라는 의미였다. 그 신랄한 말에 톰은 다시 한번 종이를 들여다보았다.
여전히 제임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 톰. 그는 결국 제임스를 향해 질문을 던지고 말았다.
얘가 왜 이러는지는 알아야 할 것 아닌가. 제임스는 그만큼 톰에게 중요한 고객이었으니까.
“대체 뭐가 문제인데?”
“이거 자체가 문제야. 그러니까 왜 이따위 걸 출력해 온 건데?”
“와…… 어이가 없네. 네가 이민철 작가의 이번 전시 관련 기사는 다 뽑아 달라고 했잖아.”
“그러니까 이 선생님 것만 뽑아 오지. 왜 이 손자인지 하는 어린애 인터뷰까지 가져온 거냐고.”
“어린애? 인터뷰라니?”
어리둥절한 톰의 표정. 그런 그를 보며 제임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방금 찢을 뻔한 그거. 이민철 선생님의 손자 인터뷰야.”
“엥? 그랬어?”
“그래. 그것도 그냥 인터뷰가 아니라 무슨…… 대단한 작가인 것처럼 표현해 놓았더라고.”
제임스는 명백히 비꼬고 있었다. 그만큼 그 인터뷰가 싫은 것이 분명했다.
“그랬어? 가족전 한다고 화가의 손자까지 인터뷰한 건가?”
톰은 그제야 제임스가 왜 이러는지 납득했다. 이민철 작가의 팬보이인 제임스니까. 싫어할 법도 했다.
“근데 언제부터 한국이 이 정도로 미술에 관심이 많은 나라였지?”
“……그게 무슨 소리야?”
“아무리 그 이민철 작가의 손자라고 해도, 이 정도로 기사까지 나오는 게 신기해서.”
톰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한국에서 현대 미술은 그야말로 그들만의 문화에 가까웠다.
그런데 경매의 최고가를 갱신한 것도 아닌 고작 가족전. 그 전시회를 개최했다고 이렇게 기사까지 나오다니.
꽤 기이한 일이긴 했다.
“뭐, 그 가족전의 당사자였으니, 인터뷰 정도는 할 수도 있지. 그래도 이 선생님이신데.”
제임스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그런 친구를 흘끔 옆으로 쳐다본 톰은 기사를 읽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기사와 달리 인터뷰 형식으로 쓰인 기사. 덕분에 상당히 문장들이 단문 형식이었다.
아직 한국어가 서툰 톰도 금세 해석할 수 있을 정도였다. 요즘 스마트폰은 그 정도로 잘되어 있었으니까.
덕분에 그는 제임스보다 더 빨리 이 기사가 쓰인 이유를 알아차렸다.
“오? 네가 말한 그 손자라는 애, 대단한 꼬마였네.”
“꼬마?”
아무리 신인 작가라지만 꼬마라니. 평소의 톰은 잘 쓰지 않는 말투였다.
묘한 얼굴이 된 제임스를 향해 톰은 신기하다는 듯 속삭였다.
“얘, 7살인가 봐.”
“뭐?”
7살이라니. 믿을 수 없었다. 지금 고작 7살짜리가 이민철 화가와 전시회를 함께했다는 말인가.
“아, 한국식 나이일 테니, 6살이라는 소린가? 그럼 더 엄청난데.”
제임스 덕분에 한국만의 특이한 나이 계산법을 알고 있는 톰. 그는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이 무릎을 탁 쳤다.
“와, 인터뷰를 한 이유가 있었네. 무슨 6살짜리가 그림을 다 그려서 전시하냐?”
“…….”
“그래서 여기 천재라고도 하네. 역시 어느 나라든 어린 지니어스는 유명해지기 좋네.”
“그게 다 할아버지의 힘이겠지. 빠드득.”
“뭐, 아무래도 그 영향이 없지는 않겠지만.”
제임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톰의 말이 더해질수록 그의 낯빛은 시시각각 시뻘겋게 변했다.
“6살이 이 정도로 그리면 천재라고 불려도 할 말 없지.”
“어린 천재라니? 하!”
“아니…… 6세가 그림 그린 거면 충분히 대단한 거지.”
기가 막힌다는 제임스의 반응. 그런 상대를 보면서도 톰은 할 말을 다 했다. 물론 슬쩍 눈치를 보는 건 잊지 않았다.
“여기 사진으로 봐도 그림을 꽤나 잘 그린 것 같은데?”
“그림은 원래 사진으로는 잘 모르는 것 알잖아.”
톰의 대답에 제임스의 기분은 점점 더 하강 곡선을 그렸다. 당연히 그의 말투는 점점 더 차가워지고 있었다.
“못 그린 작품도 얼마든지 잘 그림 것처럼 만들 수 있는 게 기자고 사진이야.”
“그거야 그렇지만…….”
말끝을 흐리는 톰의 반응에 제임스는 벌떡 일어났다. 그러더니 결심한 듯 두 눈을 빛냈다.
“좋아, 결정했어.”
“뭘?”
“거기 쓰여 있잖아. 전시회를 30일까지 한다고.”
그게 뭐가 어떻다는 말인가. 어리둥절해하는 톰을 보며 그는 입꼬리만 올려 미소를 지었다.
“한국에 갈래.”
“뭐?”
“마침 오랜 기간 칩거하시다가 전시회를 하시는 이 선생님도 뵙고 싶으니. 딱 좋네.”
“…….”
“이참에 한국에 한 번 다녀오지, 뭐.”
미국에 있던 한 예술가.
치아까지 뿌드득 갈며 분노한 그는 결심했다. 이참에 아예 한국까지 가 보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