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Yun-bok's Modern Art Studies in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30
30화 계약은 신중해야 하는 법
성 회장은 많은 미술 작품을 봐 왔다. 당연히 어지간한 그림 작품은 그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없었다.
어지간한 작품들. 그 정도는 단 몇 초면 감상하는 데 무리가 없었으니까.
우뚝―
그런 그가 오늘 여러 번 발걸음을 멈추었다. 입구부터 시작해서 벌써 그 횟수가 한 손을 넘어가는 중이었다.
그는 한 작품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서울의 한 거리. 누가 봐도 사람들이 많이 돌아다니는 장소를 표현한 그림이었다.
다만 그 그림의 세밀함이 그의 눈에 뚜렷히 박혀 왔을 뿐.
거리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색달랐다. 의상부터 시작해 머리까지. 심지어 세세하게 표현되어 있는 표정도 확연히 차이가 있었다.
그림 자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 그건 진철의 발걸음을 붙잡기에 충분했다.
결국 그는 그 앞에 선 채로 물어보고야 말았다. 이미 예상하는 답을 말이다.
“……혹시 이것도?”
“예, 신윤성 작가의 작품입니다.”
“…….”
신인 작가가 이렇게 그의 시선을 사로잡는 게 대체 얼마 만인지. 기억하기 어려웠다.
작가도 사람이었으니, 신인이면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은 법. 그런 신인 작가가 그의 마음을 이렇게까지 동요하게 만들다니.
‘이 그림들은 사야겠는데.’
대량 생산 하는 상품에도 인간의 심성을 자극하는 예술이 들어가면 잘 팔린다. 그게 문화의 힘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최근 많은 기업이 상품에 문화를 집어넣으려고 노력했다. 그가 생각하기엔 그림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제 고작 첫 전시회를 하는 신인. 그런 존재가 이 정도로 심성을 자극할 줄 안다면 사 둘 만한 가치가 충분했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기도 하니, 일석이조겠군.’
그림 자세가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서울의 거리를 이런 식의 동양화적 느낌이 들게 표현할 수 있다니.
이 그림은 그의 개인적인 심미안에도 만족스러웠던 것. 그렇기에 성 회장은 망설이지 않았다.
“요즘 신인 작가의 호당 가격이 얼마쯤 하지? 여전히 5만 원 정도인가?”
“일반적인 미대 졸업생 중 잘 받으면 그 정도 해요.”
그의 질문에 답한 건 딸인 효림이었다. 이곳의 관장인 만큼 그녀 또한 기본적인 것들은 잘 알고 있었다.
“보통 그 정도를 기준으로 그림 가격을 형성하죠.”
“그럼 보통이 아니면?”
“그거야 천차만별이죠. 호당 10만 원 이상도 하니까요.”
“으흠.”
진철은 딸의 말을 들으며 턱을 쓰다듬었다. 사업가인 그는 이미 대략적인 계산을 마친 뒤였다.
“그럼 한 천만 원 정도면 살 수 있겠구만. 안 그런가?”
성 회장은 이번엔 장훈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그가 이 전시회의 실무자이니. 당연히 금방 답변을 할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장훈은 식은땀을 흘리며 머뭇거릴 뿐이었다.
“그, 그게 좀…….”
“왜? 무슨 문제라도 있나?”
상사의 문제가 있냐는 질문. 이 물음만큼 무서운 게 어디 있으랴. 장훈은 최대한 호통을 덜 들을 대답을 생각했다.
필사적인 고민 끝에 그는 조심스럽게 설명을 시작했다.
“이미 그림 구입에 대한 문의가 많이 들어온 상황입니다.”
“헌데?”
“그런데…… 작가님께선 전시회를 다 끝나고 이야기하자고 하셔서요.”
전시회 전만 해도 신윤성 작가의 그림은 말 그대로 화제성을 위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화랑 입장에서는 신경을 덜 쓴 게 사실이었다.
그림 자체를 확보하기보단 전시회에 출품하는 것 자체를 중요시했으니.
이 정도로 반응이 좋을 줄 몰랐기에 한 실수였다.
“허 참.”
“제 추측이긴 한데…… 어쩌면 안 팔려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게 무슨…….”
성 회장은 어이가 없어졌다. 그림을 팔지 않을 거라면 뭐 하러 전시회를 한다는 말인가.
그러나 문득 그는 윤성의 나이를 떠올렸다. 아직은 사회에 대해 잘 모를 그 나이를.
“일곱 살이라고 했지. 아직 돈의 무서움을 모를 때긴 하군.”
“그것보단 따로 드리고 싶은 사람이 있으셨던 것 같거든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백 단위도 아니고 천 단위인데…….”
거기까지 말한 성 회장은 입을 다물었다. 그의 머릿속에 순간적으로 스친 의문. 그걸 물어보기 위함이었다.
“설마 천 이상으로 부른 사람이 많은가?”
그림 한 작품에 천만 원이 넘는 것. 신인 작가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원래라면 거의 없을 일. 그러나 성 회장은 방심하지 않았다. 그가 떠올린 생각을 남들은 하지 않는단 보장이 없기에.
아니나 다를까, 그의 의문에 대한 답이 들려왔다.
[많을걸요. 나만 해도 5천을 써서 냈으니까.]성진철 회장은 처음 보는 인물이었다. 청년과 중년의 경계에 선 외향. 갑자기 성 회장의 말에 끼어든 그는 한국어가 아닌 영어로 말을 시작했다.
“이 무슨 무례한.”
[나도 갑자기 말을 끼어들고 싶진 않았는데. 보아하니 여차하면 내 그림을 뺏길 것 같아서 말이지.]이 자리에 있는 많은 이가 영어를 할 줄 알았다. 그러나 정작 영어로 말하고 있는 그는 한국어를 모르는 기색이었다.
무례하다는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 말만 했으니까.
“뭐?”
[보아하니, 경호원 끌고 다니시는 게 높으신 분 같은데.] [야야. 너 왜 갑자기 말을 걸고 그래? 내가 이러라고 통역해 준 게 아닌데.] [나 말리지 마. 내가 언제 내 걸 빼앗기는 거 봤어?]상대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오자 일행이 말리는 것이 보였다. 그렇게 일행이 말리는 와중에도 그는 거침이 없었다.
[당신.] [상당히 무례한 태도로군.] [그건 미안. 그런데 알다시피 경매가 아닌 이런 전시회 작품은 까딱하면 빼앗기기에 십상이잖아?]경매는 그나마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었다. 돈이란 물건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전시회에서 작품을 구매하는 건 달랐다.
정보가 없다면, 해당 전시회 측에서 초청을 해 주는 VIP가 아니라면, 그 그림을 얻을 방법이란 없었으니까.
[이런 전시회 그림은 까딱 잘못하면 뺏기기 쉬우니까. 말 좀 걸어 본 겁니다.]삐딱한 자세에 삐딱한 태도였다. 먼저 그림을 잡는 사람이 임자인 만큼 기 싸움에서 질 생각이 없다는 얼굴이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미묘하게 부딪치는 그때. 그들의 눈싸움을 끊은 건 장훈의 한마디였다.
“작가님께선 이 그림은 파실 생각이 없으시다고 하셨기에…….”
“뭐라?”
반응이 빠른 건 당연히 한국어를 알아들은 성 회장 측이었다.
“아니, 팔지도 않을 그림을 전시회에는 왜 내놓은 거야?”
“그…….”
[뭐? 그림을 안 판다고? 아니, 왜?]뒤늦게 통역을 통해 알아들은 그까지 장훈을 쏘아보았다. 장훈으로서는 억울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작가가 팔지 않겠다고 하는 걸 왜 화랑에게 뭐라고 한다는 말인가.
하지만 그 속내를 그대로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당연히 그는 식은땀만 줄줄 흘릴 뿐이었다.
“아버지 말씀 안 들리세요? 어찌 된 겁니까?”
관장인 효림까지 재촉해 대는 상황. 장훈이 할 말은 정해져 있었다.
“……죄송합니다.”
“뭘 해야 할지 아시겠죠?”
“바로 작가님에게 연락드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장훈은 재빠르게 폰을 꺼내 들었다. 이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 * *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찾아오는 법.
이 속담은 조선이 아닌 이 시대에도 통용되는 듯했다. 내가 할아버지와 대화를 나눈 지 얼마 되지 않아, 연락이 왔으니까.
할아버지는 여전히 든든하게 내 옆자리에 앉아 계셨다. 전시회의 사람들. 그들은 찾아오자마자 곧바로 본론부터 꺼내 들었다.
“그러니까, 우리 윤성이의 작품을 팔고 싶으시다는 거군.”
할아버지 옆에서 이에 대한 설명을 전부 들은 나다. 그렇기에 그들의 대답이 궁금해졌다.
“할아버지의 그림이 아닌 제 그림인 거죠?”
“그렇습니다.”
“왜요?”
“예?”
“전 할아버지와 같은 유명 작가가 아니잖아요?”
그림이 좋은 것은 사실이리라. 하지만 이 정도로 다급하게 그림의 판매에 대해 물어 올 필요가 있을까.
“할아버지, 그게 뭐였죠?”
“뭐 말이냐.”
“멀리 있어도 손에 붙잡고 말하면 목소리 잘 들리는 거요.”
“이거 말하는 거냐? 전화기? 스마트폰?”
“네, 스마트폰이요.”
이 시대의 필수품에 가까운 물건. 어지간한 사람들은 손에 떼 놓지도 않는 것. 그게 스마트폰이었다.
스마트폰이 있는데, 이렇게 직접 찾아올 이유가 있을까.
“저 스마트폰이라는 걸로 멀리서 말해도 되는 걸 이렇게 지금 말씀하시는 이유가 있지 않으신가요?”
“그거야…….”
내 말에 말끝을 흐리는 두 사람. 큐레이터라 불리는 장훈과 한 여성. 그녀는 내 작품이 전시된 곳의 관장이라고 했다.
이름이 성효림이었던가. 어쨌든 그녀에게 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이런건 질질 끌 필요가 없었으니까.
“이미 비싸게 사고 싶다는 사람이 있는 거죠?”
“…….”
“그것도 얼마 전에요.”
나와 할아버지는 주기적으로 이 전시실에 온다. 오늘도 진작부터 오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그거에 비해 이 자리는 너무 급조한 티가 나.’
원래라면 전시회를 먼저 돌았으리라. 그런데 난 지금 할아버지와 함께 웬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흠흠. 비싸게 사고 싶다는 사람이라니요.”
“그게 아니라면, 갑자기 이 정도로 적극적일 리는 없으니까요.”
내 말에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난감하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뭐가 되었든 난 상관없겠지.’
조선에서도 그랬든 내 본질은 결국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다. 난 작품을 내가 생각하는 적당한 가격에 이들이 팔기만 하면 문제없었다.
그런 그들을 보며 난 결심을 드러냈다.
“뭐, 그림은 팔 겁니다.”
“오, 잘 생각하셨습니다. 작가님.”
내 말에 표정이 환해지는 상대방. 누가 봐도 다행이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럼 일단 열 작품 중…….”
“잠시만요. 전 다 판다고 하지는 않았는데요.”
“예?”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보아하니 그들은 내가 전시회에 출품한 전 작품을 팔 것이라 여긴 모양이었다.
“그 그림 중 주인이 이미 정해져 있는 것들이 있어요.”
“주인이면…….”
“팔 수 없는 비매품이란 뜻입니다.”
원래도 아예 안 파는 것으로 되어 있는 그림들. 당연히 이미 내가 주고 싶은 사람이 있기 때문이었다.
“제가 팔건 딱 세 점. 그러니까 세 가지 작품이에요.”
“그런…….”
“만약 내키지 않으신다면 더 줄여도 상관없는데요.”
나로선 이 세 작품도 겨우겨우 타협한 것에 불과했다. 원래라면 이번 전시회의 작품들은 다시 내 손에 들어올 예정이었으니까.
“아닙니다!”
기겁한 얼굴이 된 두 사람. 특히나 윤 큐레이터 쪽은 다급한 얼굴로 재빠르게 말을 이었다.
그러면서도 옆을 흘끔대는 것이 어째 눈치까지 보는 모양새였다. 무언의 눈짓을 주고받은 두 사람. 장훈과 효림은 박수를 치며 나와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마음을 바꿔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세 작품! 좋습니다. 아주 좋아요!”
그렇게 말한 장훈은 신속하게 태블릿을 꺼내 들었다. 그야말로 전광석화 같은 속도였다.
“그럼 세 가지 작품에 대한 계약에 대해 이야길 해 보실까요?”
“아, 그거 바로 서명할 수 없는 것 아시죠?”
계약은 신중해야 하는 법. 이건 조선에서나 여기서나 모두 통용되는 말이었다.
이 세 건에 대해서 부모님과 충분한 상의를 할 것이다. 그 이후 서명을 해도 늦지 않으리라.
“물론입니다. 충분히 고려해 보신 후 사인하셔도 됩니다.”
순조롭게 진행되었기 때문일까. 장훈은 환하게 웃으며 기분 좋은 얼굴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