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Yun-bok's Modern Art Studies in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32
32화 미래가 더 기대되는
장훈은 제임스를 앞에 두고 있었다. 전시회 중에도 VIP들은 이런 식으로 그림을 구입했으니까.
“이번 전시회 중 구매 가능한 그림은 이 그림뿐입니다.”
“…….”
쏘아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쫄아들었을 매서운 시선이었다.
하지만 이런 일이 익숙한 장훈은 능숙하게 넘기는 중이었다.
“다른 그림들은 아예 팔지를 않는다고?”
“예, 그렇습니다.”
다만 아무리 그라도 이 정도 대답만 해선 안 된다는 건 알았다. 어찌 되었든 상대는 홍림의 VIP이며, 해외에서까지 날아온 고객이었다.
“사실 전시회의 그림들은 비매품들이었습니다.”
“전부? 하나도 빠짐없이?”
“예, 작가님께서 애초부터 팔지 않으시겠다고 못을 박아 두셨던 그림들입니다.”
“대체 왜?”
“듣기론 누군가에게 선물을 하신다고……. 더 이상은 개인 정보라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이미 다 말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장훈의 말을 들으며 제임스는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아직 나이가 어려서 돈맛을 모르는 건가?”
그 말을 못 들은 척하며 장훈은 다시 화제를 돌렸다. 신윤성 작가에 대한 개인적인 이야기가 길어져서 좋을 일이 없었다.
오늘 그들이 만난 이유는 작품의 판매 때문이었으니까.
“어찌 되었든 저희가 제임스님에게 팔 수 있는 그림은 단 한 작품뿐입니다.”
“나머지 둘은?”
제임스는 이미 알고 있었다. 신윤성 작가가 홍림에 내어 놓은 그림은 총 세 점.
그런데 팔 수 있는 게 하나뿐이라면, 나머지 둘은 어디로 간다는 말인가.
“하나는 다른 고객님이 구매하실 예정이시고 나머지는 저희 홍림에서 보유할 계획입니다.”
“신 작가의 작품 하나를 가지고 있겠다는 거군.”
대부분의 미술관이 잘하는 일이었다. 미래가 기대되는 작가의 작품을 소유하는 것.
그 작가의 이름값이 올라갈수록 그 그림의 가치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을 테니까.
이를 잘 알고 있는 제임스였다. 하지만 이 경우는 좀 달랐다. 그렇기에 그는 기분 나쁜 기색을 드러냈다.
“내가 바보인 줄 아나?”
“예, 그게 무슨.”
“이 홍림아트센터랑 오대전자와의 관계를 모를 만큼 멍청이는 아니라는 소리거든.”
관장 자체가 오대전자 회장의 딸이었다. 이건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물어봐도 알 법한 관계였다.
“…….”
“그러니 난 이 그림을 포기할 생각 없다는 뜻이지.”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은 상대를 보며 제임스는 입꼬리를 올렸다. 특유의 비웃는 표정을 본 장훈은 얼른 말을 더했다.
오해하지 말라는 듯 손사래를 쳤다. 나름 필사적이었다.
“화랑 소유인 것과 개인 소유인 건 엄연히 다릅니다.”
물론 제임스에겐 그다지 소용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장훈은 이미 이런 상황을 예상했다는 듯 거침이 없었다.
“정 믿지 못하시겠다면, 한 가지 계약서를 쓰겠습니다.”
“계약서?”
“예, 문서는 믿으시겠죠?”
“무슨 계약서를 말하는 거지?”
“다음 신윤성 작가님의 전시회가 있을 때까지 저흰 이 작품을 팔지 않겠습니다.”
“……아예?”
“예, 아시지 않습니까. 저희 입장에서도 한 작품 정도는 가지고 있는 게 좋다는 거요.”
화랑이 어떤 작가의 작품을 보유하고 있는 이유. 그건 몇 가지 되지 않았다. 하물며 그게 신윤성 작가처럼 신인이라면 이유는 뻔했다.
‘하긴 그래야 다음에도 또 신 작가의 전시회를 한다고 설칠 수 있을 테니까.’
속으로 이유를 짐작하면서도 그는 다른 말을 입으로 했다. 원래 협상이란 그런 것이었으니.
“다음 신 작가의 전시회도 홍림에서 한다는 보장이 없을 텐데?”
“홍림은 이 나라 최고의 화랑입니다.”
장훈은 덤덤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읊었다. 그만큼 홍림의 위치는 이 나라의 미술계에서 확고부동했기에.
“저희가 그 지위를 유지하는 이상 신 작가님도 저희를 선택해 주실 것입니다.”
“……좋아, 무슨 뜻인지는 알겠어.”
이렇게까지 말한다면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렇기에 제임스는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어차피 용건은 그림을 구입하는 것뿐이었으니까.
하지만 홍림이 이 정도의 의지를 가지고 있다면 밑밥 하나는 깔아 두는 게 좋으리라.
“20만 달러를 바로 현찰로 쏘지.”
이 말에는 장훈도 깜짝 놀랐다. 20만 달러라니, 현재의 환율로 환산하면 2억이 훌쩍 넘는 돈이었으니까.
신인 작가의 그림값으론 엄청난 편이었다.
하물며 원래 홍림에서 그림값으로 책정한 금액은 10만 달러도 채 되지 않았다.
한국 돈으로 1억 원인 그림. 그것도 절대로 적은 가격은 아니었으니까.
“원래 이 그림의 가격은 약 7만 달러쯤 됩니다만.”
장훈은 침을 꿀꺽 삼켰다. 조심스럽게 가격을 거론하는 그를 보며 제임스는 의자에 등을 기댔다.
“나도 알아. 환율을 두드려 보면 대충 그 정도 나오는 거.”
“……저희가 어떤 걸 해 드리면 됩니다.”
“크으, 눈치가 빨라서 좋네.”
이 바닥에서 꽤 구른 장훈은 알고 있었다. VIP 고객이 일부러 비싸게 그림을 살 때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너무 긴장할 것 없어. 간단한 부탁이니까.”
그 말에도 장훈의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여전히 긴장한 상대를 보며 제임스는 가볍게 입을 뗐다.
“앞으로도 윤성 신의 관한 소식이 있으면 나한테 제일 먼저 알려 줄 것. 그게 내 부탁이야.”
“……겨우 그게 답니까?”
“아니, 하나 더 있지. 내가 뭔 말을 전해 달라고 할 때 잘 전달해 주고 답 받아 오기.”
“그건 또 무슨.”
“한마디로 심부름 좀 해 달라는 건데. 이 정도는 가능하지 않나?”
장훈이 좀 더 구체적으로 물어보기 전, 제임스의 말이 빨랐다. 그는 곧바로 확답을 듣겠다는 듯 대답을 은근히 강요했다.
2억이 넘는 돈이다. 거기다 상대는 홍림의 VIP. 결국 장훈이 할 수 있는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좋습니다. 그 부탁, 들어드리도록 하죠.”
“굿. 그럼 난 이제 가 봐야겠군. 슬슬 출국할 시간이라.”
장훈의 말이 나오기 무섭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제임스를 보며 장훈은 작별 인사를 전했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내 부탁이나 잊지 말라고.”
달칵―
제임스를 보낸 장훈은 슬슬 자리를 정리했다. 그런 그를 도와주러 들어온 아래 직원은 슬슬 장훈의 눈치를 보는 중이었다.
“뭐. 궁금한 거라도 있어?”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눈치만 보는 그를 향해 장훈은 대놓고 물어보았다.
“……진짜 안 파실 겁니까?”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그러나 장훈은 단박에 그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아차렸다.
“당연히 안 팔지.”
꽤 단호한 음성이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들은 상대방은 단호함이 덜 느껴진 모양이었다.
“물론 해당 작가의 작품이 있다는 게 추후 그 작가의 전시회를 여는 데 좋다는 건 동의하지만…….”
“그뿐만이 아니야.”
“그럼요?”
“지금 파는 것보다 미래가 더 기대되니까.”
어리둥절해하는 상대를 보며 장훈은 턱을 쓰다듬었다. 아무래도 좀 더 설명을 해야 할 필요성이 보였다.
“음, 쉽게 말해 피카소나 모네의 작품을 가지고 있는 화랑. 어떨 것 같아?”
“그야 그 위상이…… 아, 잠깐만요. 그 정도라고요?”
모네랑 피카소라니. 화가로서 그 정도 위상을 가진 이들은 굉장히 드물었다.
작품을 가지고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화랑의 품격을 높이는 화가들. 어지간히 이름을 날려서는 절대 도달할 수 없는 경지였다.
“그 정도일지 아닐진 아직 모르지.”
장훈은 어깨를 으쓱였다. 미래는 어찌 될지 아무도 모르는 법. 다만 그 가능성을 볼 뿐이었다.
“하지만 그림값이 비싸질 화가라는 건 확실해. 이 정도면 이 작품을 가지고 있을 만해.”
화랑 입장에서는 투자할 만한 가치가 충분한 화가.
그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이었다. 그가, 그리고 홍림이 그러한 선택을 한 이유를.
“이건 신윤성 화가의 첫 전시회 작품이잖아.”
“그렇죠.”
“첫 전시회의 첫 작품. 만약 그 화가의 몸값이 높아진다면, 어떨 것 같아?”
그 화가가 뛰어난 화가라는 전제하에, 나이가 많은 원로 화가쯤 되면 특급에 가까운 가격을 찍는다.
그런데 신윤성 화가는 이제 고작 일곱 살. 앞으로 얼마나 더 발전할지, 어느 정도의 경지까지 올라갈지 그 누구도 모른다.
하지만 처음 신윤성 작가의 작품을 본 장훈은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작가는 된다는 걸.
“그 가치가 천정부지로 치솟겠군요.”
“바로 그거지.”
상대의 말에 장훈은 미소 지었다. 초등학생도 할 수 있는 계산. 이 계산이 맞을지 틀릴지 이제 기다리는 것만 남았다.
* * *
“작가님. 다음 전시회는…….”
“생각 없어요. 아직은.”
할아버지의 작업실. 그곳에서 난 이제는 익숙해진 얼굴을 다시 마주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 사람이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소리를 한다는 점이었다.
“전시회는 이제 끝난 것 아니었어요?”
그림이란 게 하늘에서 떨어지는 장대비가 아니었다. 그런데 곧바로 다음 전시회라니.
‘그나마 이번 전시회가 가능했던 것도 내가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려서였는데.’
이 시대에 태어난 지 어언 7년. 그리고 다시 붓을 잡은 지 4년. 그동안 그린 그림이 있었기에 열 작품을 전시회에 내보일 수 있었다.
“원래 전시회는 더 작품이 많아야 된다면서요?”
“그, 그게.”
말끝을 흐리는 그를 보며 난 짐작이 맞았음을 깨달았다. 역시나 곧바로 전시회는 무리다.
“그런데 무슨 전시회예요.”
내 표정이 썩어 들어가는 걸 보았기 때문일까. 그는 다급한 어조로 말을 덧붙였다.
“그…… 다음 전시회라는 게 급한 게 아닙니다. 작가님.”
“급하지 않은데, 왜 지금 이렇게 하시는 건데요?”
왜 작업실까지 찾아와서 말하냐는 질문.
얼핏 보면 순수한 어린아이의 의문에 불과했다. 하지만 속내가 시커먼 어른의 입장에선 뜨끔한 모양이었다.
“그, 다만 지금 계약해 두시는 게 작가님에게도 좋으시거든요.”
“제게요?”
“예, 안정적으로 작품 활동을 하실 수 있으시고, 또 저희와 전속 계약을 체결하시면 여러모로 혜택이 많으시거든요.”
“혜택이라…….”
“괜찮으시다면, 우선 제가 먼저 이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태블릿을 펼쳐 들었다. 곧바로 설명을 하려는 그를 향해 난 빠르게 손사례를 쳤다.
“아, 괜찮습니다.”
“예?”
“진짜 전 당분간은 전시회 할 생각이 없거든요.”
“…….”
“흘흘흘. 애가 없다고 하니, 날 그렇게 쳐다봐도 소용이 없네만.”
뒤에서 가만히 지켜만 보시던 할아버지. 차까지 여유롭게 한 잔 걸치시며 웃기만 하셨다.
“아니, 그럼 혹시 뭘 하실지 여쭤봐도 될까요. 작가님.”
이 말에는 할아버지도 날 바라보셨다. 궁금하신 듯했다. 그러나 내가 할 일은 별거 아니었다.
“할아버지랑 하는 전시회가 끝났으니, 밀린 일들 해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