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Yun-bok's Modern Art Studies in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34
34화 모두가 그리기 쉬운 것
내가 다른 애들보다 그림을 잘 그린다는 것. 그건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나야 이번이 두 번째 삶이 아닌가. 그것도 주구장창 그림만 그린 삶이 두 번째이니. 내 나이 또래보다 잘 그릴 수밖에.
‘아니, 애초부터 못 그리는 게 이상한 거 아닌가.’
지금의 나와 비교당하는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이라니. 그건 상대가 나처럼 환생이라도 하지 않은 이상, 비교 대상에게 너무 불공평한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내 그림은 이 반에서 독보적이었다. 20명 있는 이 반 학생들이 그림을 그릴 때, 난 이미 여기서 반쯤 열외였다.
난 단 한 번도 담임 선생님의 도움을 받은 적이 없었으니까. 그 어떠한 미술 관련된 시간에는 말이다.
그러니 지금 내 눈앞에서 이야기를 꺼내는 선생님의 말씀을 당연하게 들릴 수밖에.
“환경 미화요?”
“응, 물론 윤성이에게 이 일을 하라고 하는 게, 싫을 수도 있다는 거 선생님도 알아.”
“딱히 싫다기보다는, 좀 갑작스러운 게 사실인데요. 선생님.”
“……윤성이는 어려운 말도 잘하는구나.”
내가 초등학생치고 이해력이 높다는 사실을 아는 선생님. 그녀는 날 쉬는 시간에 살짝 따로 부른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야기의 요지는 간단했다. 나보고 환경 미화를 위해 교실 꾸미기를 주도적으로 해 보라는 것이었으니까.
어머니로부터 무언가를 들으신 듯.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입을 여셨다.
“그…… 어머니께 듣기론 입학 전에 전시회도 하고 그랬다며?”
“네에, 할아버지랑 했어요.”
벌써 몇 달의 시간이 흘렀다. 할아버지와 한 전시회는 내게 특별했다. 이 시대에도 내 그림이 통한다는 사실. 그걸 일부나마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기에.
“할아버지면 이민철 선생님이시지?”
“우리 할아버지 아세요?”
“당연히 알지! 선생님도 미술 좋아하는걸.”
급격히 높아지는 목소리. 아무리 봐도 그냥 좋아하시는 정도가 아니었다.
미술에 관심이 없다면 모를 수도 있는 게 할아버지 성함이셨다. 그런데 이런 반응이라니. 이쪽 분야에 상당한 관심이 있는 게 분명했다.
‘어쩐지 내 그림에 관심이 많아 보이시더니.’
주말마다 하는 그림일기란 숙제. 딱 봐도 아이들에게 하루를 돌아보게 만드는 좋은 학습법이었다.
단언컨대 세상에 대충 그려도 되는 그림은 없다.
내가 미인도를 박물관에서 본 뒤 이 생각은 더 확고해졌다. 사람은 죽어도 그림은 남는 법.
대충 그린 그림이, 나 혼자 보겠다고 그린 그림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모른다.
내 그림을 평가하는 건 현시대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미래 시대의 사람들도 포함될 것이기에.
당연히 난 숙제를 위한 그림에도 꽤 공을 들였다. 그리고 내 그림일기에는 눈앞에 계신 선생님의 감상평이 꽤 구체적으로 들어가 있었다.
‘친구와 논 장면의 표현법이 재미있다거나, 표정이 인상적이었다는 내용을 1학년 그림일기 답으로 쓰진 않지.’
물론 나 또한 이게 특이하다는 걸 깨달은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내 옆자리에 앉은 아이. 송지민이가 자랑스럽게 자기 그림일기를 보여 줄 때 비로소 알게 되었으니까.
거기엔 간단한 칭찬과 단순한 답변이 달려 있었다. 내 그림일기에 쓰인 말들과 비교해 볼 때, 분량은 비슷해도 내용은 확연하게 달랐다.
“선생님처럼 미술을 좋아하면, 자연스럽게 윤성이의 그림이 특별하다는 걸 알게 돼.”
“딱히 특별할 것까지야…….”
“아니! 네 그림은 특별한 게 맞아. 선생님은 네 나이 또래의 아이가 그런 그림을 그리는 걸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내 말에 순식간에 반박한 선생님. 내 표정이 떨떠름했기 때문일까. 그녀의 얼굴이 변했다. 아차한 기색이었다.
“음음. 이게 아니라……. 어쨌든 다시 말하면, 선생님도 윤성이가 특별하다는 걸 알아서 좀 부탁을 하나 하고 싶어.”
“부탁이요?”
“응, 선생님이 우리 반에서 이제 곧 환경 미화로 교실 뒤편을 꾸며야 한다는 이야기했지?”
“네에.”
“그것 때문에 윤성이에게 부탁을 하나 할까 해서.”
“그게 뭔가요?”
“그때 윤성이는 괜찮으면, 네가 주도적으로 환경 미화를 이끌어 가 보는 게 어떨까?”
“주도적이요?”
“원래 선생님은 친구들의 그림을 다 그려서 하나씩 붙일 생각이었거든. 그런데 윤성이 그림이 아무래도 좀…… 차이가 있으니까.”
다 같이 그림을 전시하기. 그런 일을 했다간 내 그림이 홀로 튈 것이 뻔했다. 우리 반에서 내 그림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꽤 독보적이었으니까.
“아무래도 화풍이 다르긴 하죠.”
“그 정도가 아닌…… 어쨌든 다르다는 건 윤성이도 이해하지?”
“네에.”
“원래는 다른 반처럼 반장에게 시킬까도 했는데, 그것보다 이게 더 좋은 방법 같아서.”
그러니까 나보고 교실 뒤편을 꾸미는 데 대장 역할을 해 보라는 의미였다. 아니나 다를까 이어지는 선생님의 말씀은 내 예상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말인데. 윤성이의 주도로 다 같이 환경 미화로 교실 뒤편을 꾸며 보는 건 어떨까?”
“…….”
내가 잠시 침묵을 지키자 선생님은 내 의욕을 올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셨다.
“선생님이 시간은 충분히 줄게. 친구들과 다 같이 해 보는 거지.”
“다 같이…….”
“응, 다 같이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보는 거야. 어때?”
그 순간 내 머릿속을 스친 기억이 있었다.
‘전생에서는 해 볼 수 없었던 일이네.’
내가 잠시나마 몸을 담았던 도화서. 그곳은 화공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당연히 국가 주도로 대형 작품을 만들 일이 있을 때 많은 이가 함께 작업하곤 했다.
그러나 난 말로만 들은 그 일을 실제로 경험해 볼 수 없었다. 그런 대형 일감을 맡기 전 도화서를 나와야 했으니까.
‘20명과 함께 작업해 볼 기회가 많지 않긴 하지.’
현재 다니는 반 학생은 정확하게 스무 명이었다. 비록 아이들이라고 해도 이 정도의 인원이 협동해서 하나의 작품을 진행하는 일이 많을 리 없었다.
‘각기 다른 실력과 개성을 지닌 아이들을 모으면 어떤 작품이 나오려나?’
자연스럽게 호기심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새롭거나 색다른 것을 시도해 보는 일만큼 재미있는 건 없었으니까.
단번에 흥미가 생긴 난 똑바로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확실히 해야 할 부분이 있었기에.
“전권은 주시는 거죠?”
“……뭐 전권?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윤성이는 아는 거야?”
“당연하죠. 그러니까 제 권한이 어디까지인지 궁금해서요. 친구들에게 제 뜻대로 시킬 수 있는 건가요?”
내 물음에 선생님은 잠시 고민하시는 기색이 역력하셨다. 그러더니 마음을 굳히신 듯 입을 여셨다.
“내일 아침에 선생님이 반 친구들에게 말해 놓을게. 한번 다 같이 해 보렴.”
“네에. 그렇게 하시죠. 선생님.”
난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이 이렇게까지 해 주신다는데 재미있는 일 하나쯤 더 해도 좋으리라.
* * *
스무 명의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였다. 교실 뒤편을 꾸미는 일을 위해서였다.
선생님은 아예 멀찍이 있는 컴퓨터 앞에 서 계셨다. 어지간해서는 참견하지 않으실 모양이셨다.
난 교실 앞에서 슬쩍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먼저 중요하게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 있었기에.
“근데 너네들, 내가 이렇게 회의 시작해도 괜찮아?”
“응? 안 될 게 뭐야?”
“맞아, 선생님이 윤성이보고 하라고 하셨잖아.”
“……다른 반은 반장이 한다던데? 난 반장이 아니잖아.”
내 말에 아이들의 시선이 이 반의 반장에게로 쏠렸다. 반장인 우영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더니 똑 부러지는 목소리로 의견을 표했다.
“우리 엄마가 사람은 잘하는 걸 해야 한다고 했어. 우리 반에서 제일 그림 잘 그리는 건 너잖아.”
역시 반장. 저게 겨우 8살짜리가 할 말인가.
우영이는 고만고만한 아이들 속에서 유난히 어른스러운 아이였다. 거기에 그는 다른 아이들이 쉽게 동조할 수 있는 말까지 꺼내 들었다.
“신윤성 네가 하는 게 다른 반을 이기기도 좋을 것 같고.”
“맞아! 우리 3반은 이겨야 해.”
“3반이 아니라 2반도 이겨야지!”
“이왕 하는 거 우리 잘해서 1등! 1등 하자!”
과연 아이들이었다. 벌써부터 들썩들썩하는 게 이 집중력이 얼마나 갈 수 있을지 걱정될 지경이었다.
그 순간 지민이가 끼어들었다. 그것도 매우 당당하게 허리에 손까지 얹고서.
“솔직히 윤성이만 있으면 우리가 다른 반 다 이길걸?”
“왜?”
“내가 짝꿍이어서 아는데, 진짜 그림 잘 그린다?”
그 말에는 다른 아이들도 동의하는 기색이었다. 아무래도 반별 대항전은 초등학교 1학년도 불타오르게 만드는 모양이었다.
“나도 알아!”
“맞아, 윤성이 그림 진짜 잘 그려! 우리 엄마보다 잘 그리는 듯.”
“우리 엄마보다도! 엄마가 그림일기 도와주는 것보다 윤성이가 도와주는 게 더 멋져.”
본의 아니게 아이들 부모님의 그림 실력까지 알려졌다. 난 슬슬 다른 곳으로 튀어 나가려는 대화를 얼른 붙잡았다. 그대로 두었다간 어디까지 뻗어 나갈지 몰랐다.
어떻게 해서든 이 아이들과 함께 환경 미화를 해야 했으니까.
“자. 그럼 우리가 다 같이 하는 건 뭐가 좋을지부터 생각해 볼까?”
난 이미 생각해 둔 게 있었다. 하지만 일단 모두 함께하는 그림 작업이었으니, 아이들의 의견도 듣고 싶었다.
혹시 또 모르는 일이었다. 내가 생각지도 못한 좋은 생각이 나올 수도 있으니.
“포토몬스터 그리자!”
“아냐, 곰수 그릴래. 귀여운 게 좋아.”
본인들이 좋아하는 온갖 캐릭터들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서로 설왕설래하던 아이들. 계속된 대화는 슬슬 기운 빠지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냥 엄마한테 부탁할까?”
“난 아빠한테 말하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막상 하려니 막막한 듯 어른들에게 물어보자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어리다고 어려운 것을 모르지 않았다.
교실 뒤편을 온전히 아이들만의 힘으로 꾸민다는 게 쉽지 않다는 것. 다들 이야기하다 보니 확실하게 깨닫는 듯 보였다.
아이들의 힘이 빠지려는 그때, 난 입을 열었다.
“우리 다 같이 잘 그리는 걸 한번 그려 보는 게 어떨까?”
교실 뒤편 꾸미기. 선생님께서 그 말을 하시자마자 내게 든 생각이 있었다. 난 이를 떠올리며 친구들을 둘러보았다.
“그런 게 있어?”
“없을걸. 난 그림도 잘 못 그리는데.”
8살. 이 나이만 되어도 아이들의 그림 실력은 차이가 났다.
구도를 잘 잡아서 꽤 명확한 사물을 그리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아예 그림 자체를 어려워하는 아이도 있었으니까.
이왕 하기로 한 일. 난 이 반의 모든 아이가 참석하기를 바랐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은 간단했다.
쉬우면서도 각자의 개성이 잘 드러내는 공통된 주제. 그거 하나만 있으면 되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다들 여기 있는 모두가 다 그리기 쉬운 거니까.”
“그게 뭔데?”
“그런 게 있다고?”
모든 친구들의 의문 어린 얼굴들. 그들을 쭉 둘러본 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