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Yun-bok's Modern Art Studies in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38
38화 세계 3대 비엔날레 중 하나
비엔날레.
처음 저 말의 의미를 알았을 때 들었던 생각. 그건 뭔 놈의 말을 이따위로 만드는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비엔날레가 뭔지는 알지?”
“들어는 봤죠.”
2년마다 열리는 국제 규모의 전시 행사. 그걸 그렇게 부른다고 알고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비엔날레가 총 세 개야. 그중 하나인 휘트니 비엔날레가 지금 진행 중이거든.”
“몇 달 전 시작했다곤 들었어요. 근데 그게 저랑 무슨 상관인 거죠?”
휘트니 비엔날레.
미국에 사는 미술인들의 축제라고 들었다. 다만 난 나와는 관련이 없다고 느꼈다. 내가 알기로 휘트니 비엔날레는 오직 미국인들만을 위한 것이었으니까.
“참가 자격이 여기 사는 사람들만 된다면서요. 그래서 전 한 번쯤 구경할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요.”
“애초에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비엔날레에 너보고 나가라고 말할 리가 없잖아?”
“그럼…….”
“내가 말한 건 베니스거든.”
베니스 비엔날레.
3대 비엔날레 중에서도 최고로 손꼽히는 것이었다. 다른 비엔날레와 달리 올림픽처럼 국가관을 운영하기에 열기도 더 뜨겁다고 들었다.
“할아버지께서 딱히 그런 말씀 없으셨는데.”
“조만간 말하실 거다. 아직은 어린 너보고 관광이나 즐기라고 말씀 안 하신 거겠지.”
“……그러는 당신은 제게 왜 말씀하시는 건데요?”
“난 손자가 없어서 할아버지의 마음 따윈 모르지. 그 대신 이 소식을 제일 먼저 알려 주면 네 얼굴이 어떻게 변할지 궁금했고.”
“제 얼굴이요?”
“역시나 넌 내가 말하는 걸 다 이해하는 거지? 이제 겨우 초등학교 입학생인데도 말이지.”
날 기이한 물건 보듯 관찰하는 그 눈빛. 그 날카로운 시선에 난 어깨를 으쓱였다. 이럴 땐 어린 나이가 최고였다.
“사실 이해가 전혀 안 되는데요.”
“흥. 그런 거짓말에 속을 리가. 나 충분히 설명 잘하지 않았나? 어디가 이해가 안 되는 건데?”
명백히 한 명의 어른으로 대하는 모습. 이 사람은 내 겉가죽의 나이에 속지 않았다. 저걸 누가 어른이 아이에게 알려 주는 말투로 보겠는가.
‘이참에 그냥 궁금한 거나 물어 보지, 뭐.’
상대가 날 아이가 아닌 한 명의 예술가로 본다면, 그에 맞게 물어봐 주는 게 도리이리라.
어린아이다운 행동 대신 궁금한 점을 묻기로 마음먹었다.
“그거 제가 알기론 최고의 비엔날레인가로 들었는데, 아무나 참가가 가능한 거였어요?”
“오호, 정말 뭔지 알고는 있네?”
‘이 아저씨가 진짜…….’
내 썩어 가는 얼굴빛을 본 그는 만족했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어린애 놀리는 걸 좋아하나니. 심보가 꽤 고약한 아저씨였다.
“기본적으로 베니스에서 초청하는 작가면 가능하지. 다만…….”
세계의 어디 언어나 말은 끝까지 들어 봐야 하는 법. 저 뒤에 나올 말이 핵심일 것이 분명했다.
“다만 뭔데요?”
“기본적으로 비엔날레는 신인도 참석하고 하니, 아트 페어보다는 꽤 열린 축제지.”
“그 신인이라고 해도 아무나 참가가 가능하지는 않을 텐데요?”
난 고작 할아버지와 단 한 번의 전시회를 한 게 다였다. 내 그림을 찾는 이가 많았던 조선과 달랐다. 아직 이 시대에는 내 그림을 찾는 이가 없었기에.
“이 꼬마 진짜 눈치도 빠르네. 맞아, 아무나는 어렵지. 그렇다고 네가 못 오는 건 아니야.”
“……제 나이 때문인가요?”
“딩동댕. 내년도 있을 비엔날레는 기본적으로 ‘모든 이들의 꿈’이 큰 주제거든.”
그는 단박에 정답을 맞춘 날 보며 기특하다는 듯 웃었다. 신이 난 듯 아예 양손까지 펼치며 설명을 이어 갔다.
“여기서 말하는 모든 이, 여기엔 다양한 인종, 다양한 연령대를 모두 포함하는 법이지.”
“다양한 연령대면…….”
“맞아, 전 세계를 뒤져도 네 나이에 너만큼 표현력을 갖춘 화가가 많을까?”
그의 질문에 대한 답. 이건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그건 없겠죠.”
“뭐야, 재수 없게 너도 네가 천재인 줄 아는 거냐?”
“천재는 아니지만, 전 특이하긴 하니까요.”
수백 년 전쯤 살던 사람이 환생했다. 이런 경험을 한 이는 오직 단 한 사람. 나뿐이리라. 이런 내가 특이한 게 아니라면 이 세상에 특이한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뭐. 그걸 세상 사람들은 천재라고 하긴 하지. 어쨌든 보통 베니스에서 하는 비엔날레는 몇 년간 이름을 알린 작가들을 대상으로 많이 해.”
“……이름을 빨리 알리라는 거군요.”
“그렇지. 난 네가 이번에 꼭 참여했으면 하거든.”
“이번에요? 이유가 있나 보죠?”
“있지. 이번 비엔날레에 나도 나갈 것 같거든.”
“그거 설마…….”
“맞아. 이런 기회가 아니면, 너 나랑 같은 전시장에 서는 건 불가능하지. 어때? 재미있지 않겠어?”
대놓고 한자리에서 작품을 비교해 보겠다는 뜻이었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깨달았다. 이 사람이 날 찾아온 이유를. 제임스는 날 위해 온 것이 아니었다.
“당신 혹시 아는 작가한테 다 이러고 있죠?”
“크크크, 맞아. 너 정말 똑똑하긴 하구나?”
“비교 한번 당해 보라는 거군요. 작품에 대한 자신감 하나는 엄청나네요, 당신.”
“그럴지도 모르지. 나 같은 화가가 아닌 이상 자칫 잘못하면 망신이긴 하니까. 크크.”
본인의 이름값을 아는 자의 말이었다. 그는 스스로를 가리키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내가 아는 놈들은 다들 나올걸? 이번에야말로 계급장 떼고 붙는 올림픽인데.”
“제가 거기 참여할 수 있을진 모르겠는데요. 할 수 있다고 해도 나갈진 생각해 봐야죠.”
냉소적인 태도에도 그는 태연했다. 그 대신 선글라스를 다시 쓰며 눈빛을 가렸다. 그러더니 당연한 것을 말하듯 심드렁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꼬마야, 난 네 그림을 봤어. 그림에는 작가의 욕망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법이지.”
그 말을 하는 그의 눈빛은 날카롭지 않았다. 마치 세상에 있는 당연한 사실을 이야기하듯 담담할 뿐이었다.
“사람들이 가지고 싶은 그림을 그리겠다는 네 욕망. 새로운 형태의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네 욕심.”
“…….”
“내가 아는 넌 이런 기회를 놓칠 꼬마가 아닌데, 내가 틀린 건가?”
틀리지 않았다. 아니, 너무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서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사람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그림. 가지고 싶다는 마음을 들게 만드는 작품. 이 모든 건 정확하게 나의 목표를 꿰뚫고 있는 것이었으니.
아마 그가 이런 내 마음을 잘 아는 이유는 간단할 것이다. 그 또한 비슷한 마음이겠지.
‘아, 그래서 비슷하다고 한 건가.’
이런 사람이 참여하고 싶어 하는 미술인들의 축제. 그게 비엔날레라니. 조선에서부터 노는 걸 즐긴 내가 거부할 리가 없었다.
당장이라도 하겠다고 외치고 싶었다. 그러나 이성은 내게 다른 말을 하도록 만들었다.
“당장 내년이면 할 게 많겠네요.”
“정확하게는 아직 2년 가까이 남긴 했어. 그래도 할 게 많은 건 사실이지. 넌 아직 작품도 별로 없을 테니까.”
“그럼 나중에 할아버지 오면 상의하고 정할래요.”
내 당돌한 말에 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든지 기다려 줄 수 있다는 태도였다.
“그러도록 해. 네가 아직 혼자선 뭘 할 수 없는 법적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잊은 건 아니니까.”
* * *
할아버지는 금세 돌아오셨다. 혼자 나서실 때와 달리 함께 오신 분이 있다는 점이 달랐다.
“으흠, 좋은 기회인 것 같구나.”
“좋은 기회 정도가 아닙니다, 선생님! 신인 작가에겐 최고의 데뷔나 다름없어요.”
할아버지와 함께 나타난 이는 나도 익히 아는 사람인 홍림의 장훈이었다.
할아버지가 홍림의 전속이 되며 자연스럽게 친해진 장훈. 그는 이번 뉴욕행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일을 하기 위해 온 모양이었다.
“정말 신선한 얼굴을 찾고 있다면, 작가들이 엄청나게 몰릴 겁니다. 진짜 화가라면 그 누구든 내볼 수 있게 생겼으니까요.”
우리보다 먼저 도착해서 일하고 있었던 만큼 이 소식에 대해선 할아버지나 나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내가 제임스에게서 토막토막 들은 정보를 하나로 정리해 주었다.
“아직 정확한 정보는 더 나오지 않았지만, 블라인드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
“그런가?”
“예, 기본적으로 역량이 된 작가 중 최근 물오른 실력만 보고 뽑을 테니까요.”
사실 지금쯤이면 이미 정해진 작가들이 많을 수도 있었다. 제임스조차 본인이 참여할 것 같다고 하지 않는가. 이런 대규모 행사는 벌써부터 참여자를 정해 놓는 게 원칙이었으니까.
장훈은 슬슬 누구누구가 나온다는 소문까지 돈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그 작가 중 한 명으로 내 손주가 거론된 건 아니지 않나?”
“그랬었죠. 하지만 얼마 전부터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이야기가 다르다라…….”
“잘 아시지 않습니까. 이 분야에 혜성 신인이 어떤 의미인지.”
이름을 알리기 쉽지 않은 분야였다. 그것도 젊은 화가가 이름을 알리긴 하늘의 별을 따는 것보다 어려웠으니.
그런 의미에서 보면 난 운이 좋은 편이었다. 할아버지의 손자로 태어났고, 그림을 잘 그리는 재능도 갖췄으니 말이다.
“천천히 시장에서 인정받아야만 그 이름에 힘이 생기는 곳입니다. 그런데 슬슬 수집가들 사이에선 신 작가님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윤성이의 이름이 벌써 알려지기 시작했나?”
할아버지는 뜻밖이라는 얼굴이셨다.
“나랑 겨우 가족전 한 게 다 아닌가. 그런데 벌써 이야기가 돈다고?”
“나올 수밖에요. 삼대째 미술가 집안, 첫 작품부터 고가에 팔린 이력. 거기다 독보적인 나이까지.”
내 얼굴에 금칠을 해 주고 계셨다. 스스로 잘난 척하는 건 잘해도 이렇게 남의 칭찬을 듣는 건 어쩐지 늘 낯짝이 뜨거워지는 기분이었다.
이런 내 기분을 눈치채지 못하신 듯, 그는 계속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신 작가님이 가진 이런 조건은 다시 나오기 어려우니까요. 엄청난 희소성이죠.”
“그래도 그렇지…….”
“사람들은 원래 단 하나뿐인 것에 열광하는 편이죠. 아시잖습니까. 여기도 비슷하다는 사실.”
장훈의 이야기를 들으며 난 생각에 잠겼다. 제임스의 말대로 이건 나쁘지 않은 기회였다.
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었으니. 그거만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근데 할아버지, 그거 참여하는 거 자체가 어렵지 않아요?”
“그러고 보니 작가님은 몇 년 전 참여하셨죠.”
장훈의 말을 들은 난 눈이 휘둥그레졌다. 바로 내 옆에 아예 거길 가 본 사람이 있었다니.
“할아버지 해 본 적 있어요?”
“흘흘. 이 할애비는 이래 보여도 그림밥 오래 먹었어. 당연히 베니스에도 몇 번 다녀왔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말씀하시는 할아버지. 그런 할아버지의 옆에서 장훈은 이에 대해 설명을 더했다.
“베니스 측에서 더 와 달라는 거 후배들에게 양보한다고 안 가셨죠.”
“우와, 역시 할아버지.”
내가 감탄하는 사이에도 할아버지는 턱을 쓰다듬으실 뿐. 그러더니 이번 일에 대해 가능성을 내게 점쳐 주셨다.
“아트 페어보단 비엔날레가 신인에게 쉽긴 하지만, 베니스쯤 되면 어렵지.”
할아버지의 답은 부정에 가까우셨다. 늘 내 그림의 가능성을 크게 봐 주시던 할아버지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다니. 확실히 현실적으로 어려운 모양이었다.
“그럼 역시…….”
“하지만 윤성이 너 정도 되면 해 볼 만할 거다. 대신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게 있어.”
“그게 뭔데요?”
명심해야 할 것. 난 이에 대해 집중해서 듣기 위해 허리를 똑바로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