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Yun-bok's Modern Art Studies in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62
62화 이게 고등학교 학생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니
미국 최고의 명문대들의 집합체 아이비리그. 그중 하나인 에일대 미대의 입학 요구 서류는 심플했다.
교수들이 가장 신경 써서 보는 핵심. 그건 8개의 작품이 포함되는 포트폴리오였으니까.
이 포트폴리오를 제대로 심사하기 위해 교수 다섯 명이 모였다. 사실 이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일반적으로 아이비리그쯤 되면 학생의 입학 심사를 입학 사정관이 한다. 교수가 아니라.
그러나 소수 정예이며 최고의 재능을 가진 학생들만을 뽑겠다는 에일대.
그들의 의지는 교수가 직접 가르치고 함께 나아갈 학생들을 뽑도록 만들었다.
그 때문일까. 에일대 학생들은 업계의 어느 분야에서도 인정받고 있었다.
“자자, 오늘도 열심히들 해 봅시다.”
모인 교수 중 가장 연장자인 줄리아나. 그녀는 다른 교수진들을 둘러보며 심사의 시작을 알렸다.
교수들은 모인 만큼 서슴없는 비평을 시작했다. 냉철하고 명확한 분석을 위해 서로 의견을 교환하기로 한 것이었다.
“223번 학생은 연필 사용이 괜찮군요.”
“그건 그렇습니다만, 그 대신 색 사용이 기껏해야 고등학생 수준입니다.”
공정도와 정확성을 위해 모든 지원자의 정보는 가려진 상태였다. 그렇기에 교수들은 지원자들에게 부여한 수험 번호만을 보며 평가하고 있었다.
고등학생 수준. 이건 입학 자격에 미치지 못한단 소리였다.
일반적인 고등학교 학생이 이 에일대에 들어올 수 있을 리 없었으니까.
“다음은 317번 학생이군요. 이제 거의 막바지긴 하니, 잠시 쉬었다가 하죠.”
각기 다른 포트폴리오를 보고 심사하는 일은 보통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들을 며칠에 걸쳐서 이 일을 하고 있었다. 방금처럼 틈틈이 휴식도 취해 가면서 말이다.
“올해는 어째 좀 수준이 애매하네요.”
휴식 시간임에도 교수들의 평가는 끊이질 않았다. 줄리아나에게 이야기를 꺼낸 사람은 댄이라고 불리는 젊은 교수였다.
“애매하다라…….”
“요즘 애들이 다들 튀려고만 하지 기본기가 점점 부족해지는 게 사실로 보이더군요.”
물론 미술에서 창의성과 독창성은 중요했다. 작가 고유의 독특함이 없다면 프로로서 이 계통에서 살아남을 수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것들은 전부 기본이 되었을 때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아직 기본기도 없는 이들이 본인들이 천재인 것마냥 작품을 늘어놓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포트폴리오를 보면 교수진들은 참 기분이 묘해졌다.
“그 기본기를 보충해 주는 것이 많으니 그럴 수밖에.”
본인 때는 어땠다는 이야길 할 필요는 없었다.
AI가 만드는 그림이 세상에 나오고 있는 시대였기에. 그러다 보니 학생들은 기본보다 톡톡 튀는 점을 더 강조하려고 들었다.
“그럼 정말로 본인만의 독창성을 뽐내던가요. 이 무슨 애매함인지. 쩝.”
댄의 투덜거림을 이해하는 줄리아나였다. 그는 젊었다. 그렇기에 가장 열정적으로 업계를 살피는 교수기도 했다.
그런 그가 보기에 학생들의 작품은 어디에서 영향을 받았는지가 너무 명확하게 보였다.
“다른 화가의 작품을 보고 배우는 것. 좋죠, 좋아요. 그래도 독창성을 말하려면 최소한 본인만의 색채는 일부 들어 있어야지. 이건 뭐…….”
이건 빈센트 반 고흐. 이건 폴 세잔. 심지어 아주 최근의 현대 화가들에게 영향을 받은 아류작들 천지였다.
그들의 작품을 자신만의 뜻으로 해석해 표현했다면 또 달랐다. 그나마 그걸 한 시도라도 보인 작품들은 저기 웨이팅 리스트에 올라가 있었으니까.
“이 정도 수준이면 올해 합격률은 더 낮겠군요.”
“그건 그럴지도 모르겠는데요. 작년도에 6% 정도였으니, 잘못하면 5% 아래가 되겠군요.”
줄리아나와 댄의 대화를 들은 다른 교수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재능이 없고 자격이 되지 않는 이들을 뽑느니. 안 뽑는 것이 낫다고 보는 게 이들 교수진의 생각이었다.
“그럼 잠시 쉬었으니, 다시 시작들 하시죠.”
“그게 좋겠군요.”
잠시 종이만 넘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칫 지루함에 빠지려는 그때. 줄리아나의 눈에 들어온 포트폴리오가 있었다.
“어? 베니스 비엔날레?”
세계 최대 미술 축제 중 하나인 베니스 비엔날레. 2년마다 열리는 대규모 국제 행사인 만큼 그녀도 늘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베니스 비엔날레의 출품작이 뜻밖에도 이 자리에 나타났다. 그것도 당시 최고라는 무려 황금사자상 수상작이.
절대 있을 것 같지 않은 일개 학부 지원생의 포트폴리오에 말이다. 그녀는 여기 있는 모든 교수진들의 주의를 집중시켰다.
“여기 395번 좀 보시죠. 다들.”
395번. 이걸 본 교수진들은 저마다 탄성을 터뜨렸다.
“오호, 이거 참.”
“역시 진짜는 뒤에서 튀어나오는군요.”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이라니. 이거 거의 교수급 아닙니까.”
이 자리에 있는 교수진들도 가져 보지 못한 상이었다. 전 세계 규모로 2년마다 딱 한 번씩 열리는 비엔날레전. 거기서 무려 1등을 했다는 소리였으니.
정말로 이 정도면 이건 어지간한 대학교의 교수급이긴 했다.
그러나 더 특이한 소리는 이다음에 나왔으니. 펄럭이며 뒷장을 살펴보던 한 교수의 입이 열리면서부터였다.
“그것보다 저 이 그림. 실물로 본 적이 있습니다.”
“이 그림이라뇨?”
“D 포트폴리오에 나와 있는 그림이요. 현 라고시안 갤러리 소장품입니다.”
술렁―
순간적으로 교수진들의 눈이 커졌다. 비엔날레의 수상 작품은 어딘가 먼 이야기인 감이 있었다.
그러나 라고시안 갤러리 이야기는 달랐다. 바로 그들의 코앞. 뉴욕에 있는 대규모 갤러리였기에.
“라고시안 갤러리요?”
“거기가 학생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고요?”
“예. 전속 작가의 작품이라며, 소장하고 있더군요.”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라고시안 갤러리 전속이 왜 에일대 학부에 지원한다는 말인가.
에일대 학부는 물론 에일대에서 박사 과정을 졸업한 이들도 들어가기 쉽지 않은 갤러리.
그게 라고시안이었다. 그 라고시안 갤러리는 그만한 파워를 가진 곳이었다.
여기까지 들은 줄리아나는 결심했다. 아무래도 이건 확인이 필요해 보였으니까.
“죄송하지만 밖의 조교 좀 불러와 주시죠.”
“예? 교수님 갑자기 그게 무슨.”
“이거 아무래도 지원서가 잘못된 것 같아서요. 이건 학부생 지원서일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제야 교수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1월은 학부생뿐만 아니라 다른 지원서들도 넘쳐 나는 달이었다.
줄리아나 교수의 말이 일리가 있었다. 어쩌면 다른 지원서가 학부생 지원서들 속에 섞여 들어온 것일 수도 있었다.
“아, 그럴 수 있겠군요.”
“우리가 학생의 인적 사항을 확인하는 건 형평성에 위배되니, 조교를 통해서 확인시키시죠.”
“좋습니다. 역시 줄리아나 교수님. 공정하고 명확하십니다.”
다들 줄리아나의 말에 동의했다. 그 때문일까. 그들의 일 처리는 신속했다.
똑똑―
다시 심사를 하고 있는 그때.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이 방문을 두드릴 사람은 딱 한 명. 그들이 확인을 맡긴 조교뿐.
“오, 들어와요. 그래, 확인해 봤나요?”
줄리아나는 조교가 들어오자마자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조교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여기 있는 사람들의 예측을 한참은 빗나가게 만들었다.
“예. 이건 학부생 지원서가 맞습니다, 교수님. 오류는 없었어요.”
“그게 무슨……. 아무리 늦깎이 학생이라고 해도 정도가 있는데. 제대로 확인한 것 맞습니까?”
줄리아나는 저도 모르게 되묻고 말았다. 하늘 같은 교수의 추궁에 조교는 살짝 억울해졌다.
덕분에 말이 길어졌다. 원래는 하면 안 되는 말까지 해 버린 것이었다.
“진짜 학부생이 맞습니다. 나이까지 정확하게 현 고등학교 학생이 맞으니까요.”
“자, 잠깐만요.”
원래라면 조교를 혼내야 하는 줄리아나였다.
일부러 이렇게 철저하게 인적 사항을 배제하는 이유가 뭐겠는가. 다 차별 없이 실력 위주의 학생을 선발하기 위함이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조교는 그들에게 정보를 하나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워낙 충격적인 소식을 들은 나머지 까먹고 말았다. 그녀 또한 사람이었으니까.
“진짜로 현재 학교에 다니고 있는 고등학생이란 말이군요. 착오나 잘못된 것 없이…….”
“줄리아나 교수님, 실례지만 끼어들어 죄송합니다. 근데 진짜 오류는 없었습니다.”
억울하다는 듯 말하는 조교를 보며 그녀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이건 확실히 그녀의 실수였다.
“미안하군요. 나무라려는 건 아니었습니다. 혹시나 해서 확인했을 뿐입니다.”
교수의 말에 조교는 머뭇거렸다. 무려 다섯이나 되는 교수님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으려니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으니까.
“그, 그럼 전 나가 봐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절대 혼낸 거 아니니 그렇게 들렸다면 내가 다시 사과하고 싶네요.”
“아닙니다. 서로 오해가 있었던 듯싶네요. 그럼 전 이만 나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교수님들.”
탁―
조교는 재빠르게 인사를 하고 문을 닫았다. 확실히 이 자리에 있는 것이 불편하긴 한 기색이 역력했다.
“나중에 다시 사과해야겠군요. 제가 너무 성급하게 의심했네요.”
“교수님 마음 이해합니다. 저 또한 같은 의심을 했으니까요.”
줄리아나의 말에 동료 교수들이 하나둘 말을 보탰다. 그녀의 반응을 이해한다는 말이 대다수였다.
“그나저나 와우, 진짜 감탄밖에 안 나오는군요. 이게 고등학교 학생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니.”
현재 학교에 다니고 있는 고등학생. 제아무리 늦깎이 학생이라고 해도 그쯤 되면 나이가 뻔했다.
심지어 조교의 반응을 보니 늦게 학교를 다니는 학생도 아닌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정말로 이제 10대인 학생이 이런 그림들을 그려 낼 수 있었다는 건데.
“아까 하던 말이나 자세히 해 보세요. 이걸 라고시안에서 본 게 확실합니까?”
“확실합니다. 여기서 지금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전 이 작가의 이름도 알 것 같군요.”
“이름까지 기억할 정도라니…….”
“라고시안이 지금까지 전시하던 그림들과 완전 그 느낌이 달랐으니까요. 그래서 정보를 좀 찾았죠.”
한 교수의 말에 다들 흥미진진한 얼굴이 되었다. 아무리 미술계에 별의별 일이 다 있다지만, 이 정도로 재미있는 사건은 드물었다.
현 대형 갤러리의 전속 작가가 에일대 학부에 지원하다니!
“그래서 찾아보니, 진짜로 고등학생이 맞았던 겁니까?”
“솔직히 그건 몰랐습니다. 제가 알 수 있던 건 이 작가의 이름과 이메일뿐이었거든요.”
그게 딱 라고시안이 공개한 범위였다. 어차피 작가의 성별이나 나이 따위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당시에는 별다른 의혹 없이 넘어갔었다.
그러나 이쯤 되니 신기하긴 했다. 이런 특별한 작가를 라고시안은 왜 꽁꽁 감춰 둔다는 말인가.
손에 쥔 다이아몬드의 광채를 마음껏 드러내도 모자랄 판에.
“덕분에 이 작가의 나이가 고등학생이란 걸 지금 알게 되었으니. 다시 라고시안에 가서 할 말이 생겼군요.”
“할 말이요?”
“댁네 수장고에서 썩히지 말고 이런 괜찮은 그림을 가지고 있으면, 좀 내어놓으라고요.”
현대 미술계의 트렌드 때문일까.
라고시안에서 자기들 갤러리에 전시하거나 아트페어에 내어놓는 작품은 때때로 이상함을 넘어 괴상했다.
“거긴 걸핏하면 매번 이상한 것만 늘어놓는데, 이런 작품도 가지고 있었다니…….”
“허허허.”
“제가 그 멀쩡하다 못해 괜찮은 작품을 보고 얼마나 어이가 없었는지 아십니까? 아시지 않습니까. 이런 건 많은 이들이 봐야 합니다.”
포트폴리오에 찍힌 사진은 꽤나 고화질이었다. 그러나 이 정도로 해당 그림의 힘을 표현할 수는 없었다.
“작은 그림임에도 그 느낌이 기이했습니다. 유화와 수채화를 함께 사용해서 자칫 잘못하면 지저분해 보이거나 과할 수 있음에도 그런 느낌 따윈 받지 못했으니까요.”
“그 정도였습니까?”
“제가 본 작품. ‘창문 속 운동장’은 그런 작품이었습니다.”
한문과 한국어. 끝에 영어까지. 그가 읽을 수 있는 건 영어로 된 작품명과 간단한 해설이었다.
작가: 윤성 신/ 작품명: ‘창문 속 운동장’
그가 라고시안 갤러리에서 본 꽤 작은 사이즈의 작품 옆에 붙어 있던 정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