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Yun-bok's Modern Art Studies in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69
69화 대한민국의 고3이란
알찬 일거리가 생긴 방학이 끝이 났다. 영화든 아트 페어든 내일 당장 해야 하는 일은 아니었으니. 난 천천히 준비만 하면 되었다.
그렇기에 난 다시 한국에 돌아왔다. 대한민국 고등학생으로서 보내는 마지막 1년. 고3 생활을 하기 위함이었다.
‘음. 고3, 고3 하니 확실히 애들도 변한 건가.’
평소라면 시끌벅적했을 교실. 그 안에서 아이들은 나름대로 조용하게 있었다. 확실히 대한민국의 입시란 건 대단한 듯 보였다.
그러나 그런 내 생각은 아주 잠시였다. 큰 소리를 내며 다급하게 다가온 친구가 있었기에.
“윤성아! 나 너한테 부탁할 게 있어.”
박동원. 이름 때문에 한때 모 회사의 참치라고 엄청나게 놀림을 받던 친구였다.
그래도 우리 반에선 굉장히 성실한 축에 드는 아이로 나와도 꽤 친했다. 그런 아이가 이런 얼굴로 하는 진지한 부탁이라니. 심히 궁금해지긴 했다.
“뭔데?”
“나…… 네 작업실에 한번 가 보면 안 될까?”
난데없는 부탁이긴 했다. 하지만 방학이 끝나자마자 만난 친구의 첫 부탁. 딱히 못 들어줄 이유는 없었다. 어려운 건 아니었으니까.
‘아직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간 거는 아니니까. 와도 괜찮겠지.’
무슨 심경의 변화 때문인지는 몰랐다. 그러나 내가 아는 이 친구는 이러는 이유가 있을 게 분명했다.
그렇기에 난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안 될 것 없지. 근데 좀 치울 게 있어서.”
“난 언제든 괜찮아. 너 좋은 시간이면 되니까.”
“뭐, 그렇게 길게 걸리진 않을 거야. 오늘 치울 테니까. 내일 올래?”
단번에 떨어진 내 허락이 뜻밖이라는 듯. 동원이의 얼굴이 멍해졌다.
“어? 그래도 되는 거야?”
“가능하지. 내 작업실이니.”
라고시안과 계약을 맺은 후 난 내 작업실을 얻을 수 있었다. 할아버지의 작업실보다 더 큰 공간이었기에. 친구 한둘쯤 초대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화가의 작업실이라. 그건 나도 궁금한데?”
“잠깐만, 그럼 나도! 나도 윤성이 작업실 놀러 가 볼래.”
이런 일에 빠지기 싫어하는 내 친구들 두 명이 더 몰려왔다.
김진우와 정민우까지. 단박에 들러붙는 두 사람을 보며 동원이는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난 놀러 가는 거 아니거든?”
“그럼 뭐 하러 가는 건데?”
“그건…….”
우물쭈물하는 친구를 아이들은 기다려 주지 않았다. 그 대신 아예 약속만 확정 지을 뿐이었다.
“그럼 내일 윤성이네 작업실 가기로 한 거다? 진짜 괜찮지?”
“괜찮아, 내일 주말이니까. 오후쯤 오면 될 것 같은데?”
“좋지!”
그렇게 개학하고 얼마 안 있어서 난 친구들을 작업실에 초대하게 되었다.
* * *
난 작업실을 전반적으로 한번 둘러보았다. 어머니 말에 따르면 돼지우리 같았던 작업실이 그래도 강아지 집 정도로는 진화한 모양새였다.
‘이 정도면 되었으려나?’
원래도 그리 깔끔떠는 성격은 아닌 나였다. 청소는 딱 내가 불편하지 않은 정도만 하고 살았으니까.
드드득―
그 순간 내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확인해 보니 친구들이 이 앞까지 도착한 듯 보였다.
덜컥―
“자, 들어와.”
세 명의 친구들은 그래도 어디서 본 건 있는지 뭔가를 들고 내 작업실을 찾았다.
“자, 엄마가 이거 가져가랬어.”
“이건 내가 산 거다?”
무슨 집들이도 아니고 휴지며 간식까지. 다 큰 사내놈들이 이걸 바리바리 들고 왔을 생각 하니 어쩐지 웃겼다.
이런 내 심정을 모르는 내 친구들은 내 작업실을 보자 다들 두 눈이 휘둥그렇게 변했다.
“우와.”
“와, 뭔가 신기하다.”
이리저리 기웃대던 친구들은 어느새 다시 내 옆으로 모였다. 자리에 앉으면서도 작업실에 대한 감상을 끊임없이 늘어놓았다.
“신윤성, 이 짜식. 너 진짜 화가였구나.”
“그럼 가짜겠냐?”
확실히 이런 친구가 없다 보니 다들 신기한 기색이 역력했다. 내게 질문도 끊이지 않았다.
“여기 다 네가 돈 내서 하는 거야? 부모님 도움 하나도 안 받고?”
“안 받아. 딱히 받을 필요성이 없어서.”
“오오, 이 자신감.”
“막 연예인처럼 그 소속한 데서 이런거 다 지원해 주는 거야?”
아이들에게 익숙한 건 확실히 연예계 쪽인 듯 보였다. 그쪽이랑 연관 지어서 이해를 하려고 하는 것을 보니.
“라고시안 전속이라 거기서 지원해 준 건 맞아.”
딱히 지원해 주지 않았어도, 이 공간은 이제 내 힘으로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난 해 주겠다는 걸 안 받는 성향이 아니었기에.
자연스럽게 더 좋은 곳으로 작업실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럼 어디 소속만 되면, 이렇게 지원도 받고 괜찮은 거지?”
“일단 갤러리 소속이 되면 좋은 면이 많이 있긴 해.”
처음 여길 오기로 이야기를 꺼낸 동원이. 확실히 궁금해하는 게 많은 느낌이었다.
“그림도 연예인이랑 비슷하겠지? 성공하면 엄청 좋지만…… 실패하면 먹고살기도 힘든 거.”
“비슷한 면이 있는 건 사실이지.”
과거 이미 한 번 그 실패한 화가였던 적이 있었기에 난 더 정확하게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말로 좋다면, 생계를 따로 해서라도 그 일을 하게 되는 게 사람이더라고.”
취미로 남는 이들이 그런 쪽이었다. 단지 그림이 좋아서. 그리는 걸 즐기기에. 밥벌이를 다른 걸 하면서도 그걸 하는 사람들.
정말로 그림을 사랑하는 이들이 그런 자들이었다.
“어떤 사람이 성공하는 건데? 천재? 막 그림 잘 그리는 사람?”
“그건 그 누구도 몰라. 심지어 그림은 더더욱 모르지.”
나조차 알 수 없었다. 도화서에서 쫓겨나고 안료값도 없어서 동생 신세나 졌던 게 과거의 혜원 신윤복이었다.
그랬던 신윤복이 지금은 조선의 3대 화가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었다. 그 당시 잘나갔던 다른 도화서 동기들을 뛰어넘어서.
“다만 최선을 다해 그리는 거지. 늘 그 당시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것. 그 외에는 모든 게 내 손을 떠난 거니까.”
동원이는 잠시 말없이 가만히 있었다.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기색이었다. 친구의 진지한 면에 다른 이들까지 덩달아 침묵하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역시나. 우리 중 가장 단호한 성격인 김진우. 그의 입이 열리며 분위기는 바뀌었다.
“그럼 이제 말해 봐.”
“뭘?”
“갑자기 개학하자마자 윤성이 작업실에 오고 싶다고 한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그야말로 핵심을 찌르는 어투였다. 진우의 말에 우리들의 시선이 단번에 동원이를 향했다.
“…….”
“야야, 없다고 하지 마라. 나 아니란 거 다 안다?”
진우가 옆을 툭툭 치는 말에도 가만히 있던 그. 동원이는 그제야 겨우 입을 열었다.
“나 미대에 가고 싶어.”
드디어 나온 본론이었다. 덕분에 순식간에 주변이 조용해진 것이 느껴졌다. 나처럼 나머지 두 사람 다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은 게 분명했다.
“…….”
“…….”
잠시간의 침묵 후 아이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난 차마 입을 뗄 새도 없었다.
“드디어 우리 반에서도 미친놈이 한 명 나왔군.”
“역시 입시는 다들 돌게 만든다니까. 고3이 다 되었는데, 미대라니.”
“야. 동원. 너 어제 뭐 잘못 먹었어?”
주변의 친구들이 죄다 한마디씩 거들자 동원이는 참지 못한 듯 소리쳤다.
“나 원래도 그림 못 그리진 않았어!”
그건 사실이었다. 관찰력이 좋은 건지. 감각이 좋은 건지. 동원이는 무언가를 따라 그리는 건 잘하는 편이었다.
“그거야 애니 좀 끄적인 거고. 입시 미술 완전 빡세다는 거 모르냐?”
김진우. 원래도 말이 아주 촌철살인인 경향이 있는데, 오늘은 아주 날 잡은 모양이었다.
“우리 고3이야. 지금부터 미대 준비하겠다고 하면, 너 선생님이 오케이할 것 같아? 아니, 부모님은?”
그는 최근 무언가가 느낀 게 있는 듯 작정하고 줄줄이 쏟아 내는 중이었다.
“너네 부모님이 ‘오냐, 내 아들. 그리하여라’ 할 리 없다는 거 잘 알 텐데? 근데 미대를 가겠다고? 이제 와서?”
동원이는 성실한 편이긴 했으나, 성적도 딱 중위권인 학생이었다.
지금 이 시기에 공부를 놓고 미술을 한다면, 성적에도 악영향이 갈 게 분명하긴 했다.
진우의 냉정한 말에 약간은 풀이 죽은 듯 어깨를 늘어뜨린 채 중얼거리는 동원이었다.
“알긴 하는데, 지금도 안 하면 후회할 것 같단 말이야. 사람은 역시 좋아하는 걸 해야지.”
본인에게 감탄한 듯 고개를 끄덕이는 동원. 하지만 역시나 매정한 진우였다. 그는 동원의 말에 똑똑히 반박했다.
“사람은 좋아하는 걸 해야 하는 게 아니라 잘하는 걸 해야 하는 거야.”
“넌 친구가 하겠다는데 왜 이렇게 삐딱하냐? 응원은 못 해 줄망정.”
“삐딱한 게 아니라 현실을 말해 주는 거지, 현실을.”
진우의 말에 안 들린다는 듯 고개를 젓던 동원. 그는 다시 목표물을 나로 바꾼 모양이었다.
“에이. 몰라, 몰라. 윤성아, 어쨌든 너 나 도와줄 수 있어?”
“도와주다니 뭘?”
갑작스럽게 도와 달라고 하면 내가 뭔지 어찌 안다는 말인가.
다만 이 경우는 대충 짐작은 갔다. 주변에 미대에 진학하기로 한 게 나뿐일 테니.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었기에.
“기술적인 면을 키우는 거면, 학원이 나을걸? 난 누구를 딱히 가르쳐 본 적은 없어서.”
전생에서 그림을 배우는 방식은 도제식이었다. 스승 아래에서 일대일 혹은 일대다로 배우는 방식.
난 아버지에게 그림을 배웠다. 그 이후부터는 온전하게 내 몫이었다. 문제는 난 다른 이들을 가르쳐 본 적이 아예 없었다.
“나한테 배울 수 있는 건 별거 없을걸?”
전생에서도, 현생에서도 난 아직 누군가를 가르치기엔 부족했다. 스스로 남을 가르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이상. 함부로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그림이란 부분은 생각보다 섬세했기에. 가르치는 이의 영향을 안 받을 수 없었으니까.
“그래도 내 주변에서 네가 제일 잘하는데…….”
“애초에 난 작업실에서 혼자 그림 그리는 성향이라. 딱히 누굴 가르치기 애매해.”
내가 직접 보고 느낀 것을 나만의 색채로 표현하는 것. 난 그걸 계속 혼자 해 왔다. 과거 협업을 했을 때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역시 그렇겠지…….”
얘가 무언가에 얽매여 있는 게 느껴졌다. 잘은 몰라도 고민이 많은 시기이긴 했다. 대한민국의 고3이란 존재가.
과거와 달리 풍요로워진 이 세상. 이 시대에서 처음으로 맞는 인생의 중요 분기점 중 하나일 테니.
‘쯧, 애가 풀 죽어 있는 모습을 보는 건 안 좋아하는데.’
아무래도 전생의 여파일까. 난 내 나이 또래 애들이 좀 어리게 보일 때가 있었다.
아직 약관도 안 된 애들이 어깨가 축 늘어져 있는 걸 보면 안쓰럽다고나 할까.
‘아까 내 그림을 유심히 봤지?’
작업실 곳곳을 신기해했던 아이들과 동원이는 확실히 반응이 미묘하게 달랐다.
동원이가 공간을 둘러본 건 잠시뿐. 아직 미완성인 내 그림들도 꽤 관심 있게 보는 걸 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 방법도 괜찮겠지.’
속으로 생각을 정리한 난 입을 열었다.
“내가 딱히 도와줄 수는 없지만…… 가끔 이렇게 작업실에 오는 거 정도는 괜찮아.”
혼자서 적적한 작업실이긴 했다. 부모님과 할아버지 정도만 가끔 오실 뿐. 이 공간은 온전히 나 혼자인 곳이었기에.
“미리 말한 하고 오는 건 언제든 환영이야.”
“……그, 그럼.”
동원이는 주먹을 쥐었다 폈다 고민하는 게 보였다. 그러더니 드디어 내게 입을 열었다.
“나 당분간만 여기 와도 될까?”
역시나 내 대답이 정답이었던 듯. 동원이는 그제야 조금씩 속내를 털어놓았다.
“너만 괜찮으면, 미술 학원 숙제 같은 거 여기서 해 보고 싶어서.”
“입시 미술은 대부분 학원에서 그리게 할 것 같긴 한데…….”
“그렇긴 하겠지만, 그래도 진짜 딱 일주일! 아니, 네가 싫으면 며칠만이라도 되니까.”
“아니, 괜찮아. 일주일도 괜찮고, 원한다면 더 있어도 돼. 단 그림 그리러 오는 경우에만.”
이 공간은 온전하게 그림을 위한 공간이었다. 어설픈 다른 용도로는 절대 사용할 수 없었다.
제아무리 그게 내 친구들이라고 해도.
“어차피 너도 그림 그리려고 오는 거면, 딱히 방해 될 것도 없고.”
‘오히려 내겐 좋을 수도 있고.’
영화 건이며 아트 페어 건까지. 난 구상해야 할 작품들이 널려 있었다. 주변에 소소한 대화를 통해 머리를 환기시킬 사람이 있어서 나쁠 건 없었다.
“진짜 고맙다, 윤성아. 역시 넌 내 베프! 아니, 베프를 넘어 멋진 놈이다. 진짜로.”
“고마워할 것 없어. 그림 안 그리면 바로 쫓아낼 거니까.”
내 단호한 대답에 친구들이 질린 얼굴이 되었다. 그림에 있어선 늘 진심인 나를 익히 알고 있기에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난 오늘부로 여기 못 오겠다. 그림엔 관심이 없어서.”
“나도. 뭐 그다지…….”
작게 중얼거리는 친구들의 말에도 동원이는 기분이 좋아진 듯. 연신 미소를 감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