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Yun-bok's Modern Art Studies in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70
70화 실력과 환경, 운까지 따른 경우
진우는 윤성이의 작업실에서 나오는 동원이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딘가 기죽어 있던 요 며칠과 꽤 달랐기에.
아무래도 이 자식의 속내를 좀 파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기에 진우는 앞서가는 친구에게 대뜸 다시 물었다.
“너 진짜 미대 입시 준비하게?”
“응, 할 거야.”
이전과 달리 아주 확신에 찬 대답이었다. 며칠 전까지 어딘가 머뭇거리던 기색이었는데, 그게 확실하게 사라져 있었다.
어쩐지 이놈이 왜 이러는 지 알 것 같은 진우. 그는 곧바로 속내를 꺼내 들었다.
“괜히 윤성이 보고 하겠다는 거 아냐?”
“……어?”
누가 봐도 정곡을 찔린 얼굴이었다. 오죽하면 앞서가던 놈이 뒤까지 돌아보며 쳐다보겠는가.
“아니, 옆에 신윤성 같은 사람이 있으니까. 하고 싶은 거 아닌가 해서.”
친구가 본 신윤성은 굉장히 특이했다. 같이 학교에 다닐 땐 이런저런 것에 호기심이 넘치는 친구였다. 배우는 걸 꽤 성실하게 했다. 동시에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약간의 기계치라는 점을 제외하면 윤성이는 평범했다. 그런 내 친구가 밖에선 이름만 검색하면 나오는 화가라니.
물론 연예인만큼 유명하진 않았다. 하지만 학교 내에선 오히려 어지간한 연예인들보다 더했다. 본인 작품으로 돈을 버는 화가라는 존재. 그건 연예인들보다 더 보기 힘든 사람이었으니까.
“윤성이 때문인 건 맞긴 한데…….”
“너 진짜! 야, 걘 엄청 특수 케이스야.”
그 나이에 전시회를 하는 화가 신윤성. 어른들도 하기 어렵다고 들었기에. 그들의 친구는 특이하긴 했다.
“실력과 환경, 그리고 운까지 따라 줘야 가능한 경우라고.”
친구가 화가였기에 진우는 잘 알았다. 그들의 옆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웃는 녀석이 어떤 사람인지.
어린 나이에 화가의 길을 열어 줄 수 있는 할아버지. 그리고 거기에 부응할 수 있는 본인의 재능과 실력. 동시에 한국 최초의 황금사자상 수상자라는 기록까지.
환경과 실력. 마지막으로 운까지 모두 가진 그야말로 굉장히 특수한 경우였다. 대한민국에서 다시 나오기 힘든 케이스란 뜻이었다.
그가 볼 때 동원이는 그걸 모르는 게 분명했다. 그러니 신윤성을 따라서 미대에 간다고 말하는 것이리라.
이 순진한 친구를 위해 좀 더 이야기하려는 그때. 동원의 입이 열렸다.
“바로 그거 실력.”
“뭐?”
“윤성이 때문인 거는 맞는데. 그건 걔 그림 실력 때문이야. 단순히 헛바람이 든 게 아니라.”
보아하니 그는 진우가 무슨 말을 하는지 눈치챈 듯 보였다. 문제는 진우가 이제 동원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게 뭔 소리야?”
동원은 진우를 보다가 갑자기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걸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모른다는 듯 발로 땅을 툭툭 치면서.
한참을 그러고 가만히 있던 그. 슬슬 친구들의 인내심이 바닥나기 직전에 드디어 말문이 열렸다.
“나 가족들이랑 방학 때 미국 여행 갔다 왔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고3을 앞두고 많이들 해외여행을 하기에. 부모들도 자식들도 즐길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할 테니.
그런데 그게 지금 이 순간 왜 나온다는 말인가.
“원래는 그냥 친구 그림이 걸려 있다길래 궁금해서 간 것뿐이었거든?”
신윤성이 그림 잘 그린다는 건 이 학교에 다니는 이들이면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것도 그럴 게 혼자서만 미술 시간에 룰루랄라 놀면서도 할 거 다 하지 않는가.
연필로 그리는 것부터 시작해 간단한 물감 작업까지. 윤성이는 자기 작업은 수업 시간이 시작한 뒤 얼마 안 있으면 금세 끝마치곤 했다.
그 뒤에 슬슬 움직이며, 남이 하는 걸 도와주는 게 주된 업무였다. 거지 같던 그림도 이상하게 윤성이의 손을 타면 멀끔하게 변하기 일쑤였으니.
그랬기에 더 궁금했다. 신윤성이 하는 전시회. 다른 어른 화가들이랑 같이하는 건 어떤 느낌일까 하고.
“근데 전시회 장소부터 보통은 아니었어.”
라고시안 갤러리라고 명패가 붙어 있는 곳은 꽤 컸다. 최근 들어 미술관을 잘 가지 않은 동원이 보기엔 정말로 거대한 장소였다.
“거기까지만 해도 놀릴 생각이 만만이었거든?”
생각해 봐라. 이 정도 전시관에 전시하는 작가들은 다들 굉장히 잘 그리는 화가들일 게 분명했다. 그 사이에 끼어 있는 친구라니.
교실에서 다른 애들을 놀리듯 놀릴 수 있을 거라고 여겼다. 애들 사이에서 최고인 신윤성이라고 해도 어른들 사이에서 그렇지는 않을 테니까.
친구인 신윤성이 그림을 잘 그리는 건 알았다. 하지만 그건 고작해야 같은 학생들 사이에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했다. 잘해 봐야 또래 사이에서나 특출난 존재. 즉, 도토리 키 재기 정도라고 여겼기에.
하지만 단순하게 놀러 간 기분으로 향한 전시장은 그에게 다른 걸 보여 주었다.
“그거 아냐? 나 아직 제목도 기억난다? 다녀온 지 한 달이 다 되어 가는데?”
‘창문 속의 운동장’
거대한 다른 화가들의 그림에 비해 크기는 작았다. 하지만 그 안에 표현되어 있는 디테일이, 사람들의 표정이, 그의 발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남학생과 여학생이 운동장에서 꼭 붙어서 있는 모습. 그걸 숨어서 지켜보는 아이. 그리고 공 차는 학생들에, 허리에 손을 올리고 있는 선생님까지.
그림 곳곳에는 찾으면 찾을수록 학교에서 보는 모습들이 담겨 있었다. 분명 가느다란 선인데, 움직이지 않는 그림인데, 살아 숨 쉬는 것 같았다.
“심지어 나랑 같이 간 엄마랑 아빠도 그거 보고 예전 생각이 난다고 했어.”
아들의 말에 따라 온 미술관. 대부분은 슥 보고 지나가던 부모님이었다. 그런 두 분의 발걸음까지 멈춰 서게 만든 그림. 그게 친구인 신윤성의 그림이었다.
“……그거 보고 미대에 가고 싶어진 거야?”
이해할 수 있었다. 원래 미대를 꿈꾸던 아이들은 어떤 작품을 보고 그쪽으로 진로를 바꾸기도 했다. 동원이의 경우 그게 친구의 작품이었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진우의 말에 동원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라고?”
“응, 그때만 해도 그냥 별생각이 없었거든.”
사실이었다. 모처럼 간 해외여행은 즐거웠다. 그렇기에 윤성이의 그림은 놀라웠을 뿐. 여행을 하는 게 우선이었다. 재미있는 것들투성이였으니까.
그렇기에 그때만 해도 동원의 머릿속에는 별생각이 없었다.
“그럼 왜…….”
“여행 다 끝나고, 집에 와서 내가 그거 한번 그려 보려고 했거든.”
원래도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긴 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애니의 캐릭터 같은 걸 종종 따라 그리기도 했으니까.
그 순간 동원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다시 그림을 그리던 그때의 느낌이 떠오른 모양이었다.
“분명 나도 같은 운동장을 봤거든. 윤성이랑 내 자리는 고작해야 한 칸 차이였으니까.”
앞뒤로 한 칸. 약간의 차이만 있을 뿐. 신윤성이 보는 장면은 그 또한 볼 수 있었다.
“심지어 난 윤성이 작품도 봤잖아. 당연히 그리기 쉬울 거라고 생각했거든?”
아예 처음부터 그리는 것도 아니었다. 백지 위에 그린다고 해도 그는 이미 신윤성의 작품을 꼼꼼하게 본 적이 있었다.
충분히 그릴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아니, 정확하게는 쉽게 그릴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진우는 동원이의 다음 대답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질문을 했다. 이왕 말을 시작했으니, 끝장을 보는 게 좋을 거라고 여겼으니까.
“그런데?”
“……그런데 도무지 그 그림이 안 나오는 거 있지?”
다시 그때가 떠오른다는 듯. 동원은 허탈하게 미소를 지었다.
비슷하게는 할 수 있었다. 윤성이만큼은 아니래도 동원이 또한 어디 가서 그림 못 그린다는 소리를 들어 보진 않았으니까.
하지만 수십 개의 종이를 동원해도 결과는 같았다.
보는 사람을 멈추게 만드는 힘. 멀리서 보면, 가까이 다가와서 한번 보고 싶게 만드는 마력. 그림 안에 있는 인물의 세밀한 표정까지 보게 만드는 집중력.
윤성이의 그림과 달리 동원이의 그림에는 그게 없었다.
그걸 깨닫고 나자 친구가 진짜 말도 안 되는 존재로 보였다. 정말 저게 나랑 같은 걸 보고 같은 걸 배운 친구라고?
그런데 이 정도로 차이가 난다고?
“종이가 문제인가? 물감이 문제인가? 진짜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거든.”
수십 번쯤 같은 그림을 그려 보니 알 수 있었다. 이건 재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리는 사람이 문제였다.
“덕분에 알게 되었지. 내가 잘 그린다고 생각했던 건…… 진짜 별거 아니라는걸.”
“그거였네. 갑자기 미대를 가겠다고 하는 이유가.”
“정답. 나도 그런 그림을 그리고 싶어졌거든. 그럼 역시 미대를 가서 배워야겠지?”
“……그렇겠지.”
“그 신윤성도 미대를 가잖아. 물론 나랑 가는 미대는 완전 다른 곳이겠지만.”
이미 격차는 하늘과 땅 차이로 벌어져 있었다. 동원은 그걸 인정했다. 솔직히 평생 한다고 해서 따라잡을 거란 생각도 들지 않았다.
지금도 잘하는 친구가 나중에 가면 얼마나 잘할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으니까. 안 그래도 그가 아는 친구 신윤성은 반쯤 그림에 미쳐 있었다.
조금 전에 보고 온 작업실에 널려 있는 그림들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남들이 게임하고 만화 보며 놀 때, 쟨 그림을 그렸을 게 분명했다.
“그러니까 나도 갈 거야, 미대. 그럼 지금보다는 훨씬 낫겠지.”
혹시 아는가. 하늘을 바라보다 보면 하늘은 못 되어도 하늘을 나는 사람은 될 수 있을지도.
노력하면 그만큼은 못해도 이미 상대가 지나간 길 정도는 따라서 걸어갈 수 있으리라.
동원이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 미대를 가겠다고 결심하게 된 이유였다. 물론 그 당사자에게는 절대 말할 생각이 없었지만.
이건 친구로서의 자존심 문제였기에. 입이 찢어지는 한이 있어도 비밀이었다.
* * *
친구들이 고등학교 3학년 입시에 몰두할 때. 나 또한 바빠지고 있었다. 다른 이들은 공부를 해야 했지만, 난 그림을 그려야 했기에.
‘우선은 영화 쪽부터 해결해야겠는데.’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삶을 논할 때 많이 쓰는 말이기에 이미 다른 이들에게 익숙한 문장이었다.
‘어지간해서는 단 하나의 그림으로 납득시키기 어렵긴 해.’
직접 그림이 눈앞에 있어도 설득하기 어려운 게 사람이었다. 하물며 난 카메라가 가진 렌즈라는 걸 통해 작품을 보여야 했다.
‘이럴 땐 뭔가를 더 봐야지.’
머리를 색다르게 하는 제일 좋은 방법. 그건 다른 사람들의 작품을 보는 것이었다. 반드시 그림이 아니어도 좋았다.
책이든, 드라마든 상관없었다. 어떠한 작품이든 영감을 주곤 했으니까. 수많은 종류 중 내가 선택한 건 영화였다.
‘오호, 이 장면 재미있네.’
외국의 한 유명 가상 스파이를 주제로 한 영화였다. 이 영화 안에서도 그림이 나왔다. 정확하게는 영국에서 유명한 한 회화 작품이.
무려 그 나라의 국민 화가라고까지 불리는 사람의 작품이었기에. 나 또한 이미 알고 있는 것이었다. 원래 뭔가를 알고 보면 더 많이 보이는 법.
난 인상적이었던 만큼 영상을 한 번 더 돌렸다. 그러자 내 눈앞에 다시 한번 그림과 영화가 펼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