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Yun-bok's Modern Art Studies in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74
74화 무슨 마법을 부렸길래 이런 기묘함이
“아!”
할아버지의 말씀을 들은 동원이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명백히 깨달았다는 그 표정을 보며 난 슬쩍 질문을 던졌다.
“이제 너도 보여?”
“그 말씀 들으니 보이는 것 같아.”
본인이 발견한 것이 신기한 듯. 동원이는 여기저기 그림의 곳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먼저 여기! 내가 제일 잘 봤던 게 이 부분이었거든. 몇 안 되는 사람들이 몰려 있는 부분이니까.”
그가 처음으로 짚은 곳은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부분이었다.
“처음에는 애들이 모여서 노는 거라고 여겼어. 배경도 눈이 오는 거니까…… 눈 가지고 노는 줄 알았지.”
실제로 아이들의 옷 곳곳에는 검댕이 묻어 있었다. 얼핏 보면 눈싸움이라도 한바탕 하느라 더러워진 모습이었다.
“근데 이거 잘 보면…… 애들이 추워하는 거 맞지?”
“정답! 역시 너 관찰력이 꽤 좋은 거 같은데.”
동원이의 말은 정확했다. 노느라 정신없어 보였던 아이들. 그건 정확하게는 추운 겨울에 옷도 못 입은 채 더러워진 아이들이었다.
가느다란 선으로 표현한 미묘하게 어두운 표정. 그걸 동원이는 확실하게 잡아챈 듯 보였다.
“그리고 여기!”
하나를 맞추고 나자 신이 난 듯. 그는 연신 그림의 다른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나 처음에는 이 사람…… 쓰레기 버리러 간다고 생각했거든. 쓰레기통 근처에서 봉투를 들고 있었으니까.”
집 안을 청소하고 쓰레기를 정리하는 모습. 그건 얼핏 보기엔 한적한 겨울의 풍경이었다.
하지만 이걸 반대로 뒤집으면 그런 평화롭고 행복한 모습이 아니었다.
“그런데 잘 보니까. 이거 쓰레기를 들고 들어가는 모습인 것 같더라고. 몸의 방향이 이상해.”
“오…… 너 벌써 두 개째다?”
“근데 이 사람은 왜 쓰레기를 들고 가는 거야? 이걸 잘 모르겠어서 오래 걸린 듯한데.”
“흘흘. 그건 내가 답해 줄 수 있겠구나.”
우리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계시던 할아버지. 이 시대에서 오래 사신 만큼 알고 계신 부분이 많으신 분. 그렇기에 설명을 꼼꼼히 하실 수 있었다.
“예전에는 너무 가난하면 이렇게 쓰레기를 주워다가 태워서 난방을 떼거나, 요리를 했단다.”
“진짜요? 왜…… 예전에도 석탄이나 연탄 같은 거 쓰지 않았어요?”
“그건 그나마 돈이 있는 집이었지.”
할아버지의 대답에 동원이는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그러더니 날 보며 신기하다는 듯 질문을 던졌다.
“와…… 넌 이걸 어떻게 안 거야? 누가 말해 준 거야? 학교에서 배우는 것도 아니잖아.”
“뭐, 어쩌다 보니.”
당연히 누가 말해 준 건 아니었다. 이건 실제로 조선에서 있었던 방법이었을 뿐.
볏짐, 길가에 흩어진 잡초, 심지어 고약한 냄새가 나는 정체불명의 것들까지.
추위와 맞서기 위해서 태울 수 있는 건 태워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얼어 죽었을 테니까. 그 당시로서는 마땅히 해야 하는 삶의 지혜였다.
‘나무를 구할 수 없을 때, 주로 사용하는 방법이었지.’
눈이 너무 많이 오게 되면 나무를 구하기 어려워졌다. 심지어 그렇게 구해 온 나무들도 제대로 사용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나무란 건 생각보다 다루기 까다로웠으니까.
그러나 이런 내 경험을 여기서 이야기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는가. 환생했다는 소리를 해 봐야 정신 나간 취급이나 받을 게 뻔하니까.
그렇기에 난 진실을 말하는 대신 다른 소리로 주의를 돌렸다.
“그리고 또 더 발견한 거 없어?”
“아! 방금 말씀해 주신 것 들으니까 하나 더 있어.”
동원이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떠올린 바가 있는 듯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그림의 한 부분을 향해 손가락을 들었다.
“그럼 이 굴뚝의 연기. 밥 짓는 게 아니라 쓰레기 태우는 연기인 거야?”
“그 또한 정답. 근데 이건 좀 쉽지 않았나?”
유난히 시커먼 색이 강조된 굴뚝의 자욱한 연기. 이건 밥을 짓거나 빵을 구울 때 나는 따뜻한 연기가 아니었다.
쓰레기를 태우며 나는 것. 딱 봐도 몸에 해로워 보이는 검은 안개였다.
내 도발적인 어투에 동원이는 얼른 다른 말을 덧붙였다. 본인이 알아낸 것에 대해 잘 반응해 주니 신이 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럼 이거! 여기 두 군데 불빛도 달라.”
동원이는 양손을 동원해 그림의 끝을 가리켰다. 거기엔 건물 속 작은 불빛들이 표현되어 있었다.
“한쪽은 고층 건물에 빛이 하얀 계열이고, 한쪽은 저층에 연한 노란 빛. 이거 일부러 대비시킨 거 맞지?”
이로써 난 확신할 수 있었다. 동원이는 확실히 본인이 늦게 미대를 간다고 할 만했다.
그림을 그리는 데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것. 바로 관찰력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맞아. 이쪽은 빈민가고, 저긴 부촌이거든.”
조선 시대 한양에서도 양반들이 모여 사는 반촌(班村)과 거지들이 모여 있는 빈민굴이 존재했다.
내가 알기로 영화의 배경은 지금 시대보다 약간의 과거. 그 시대라고 해서 빈민가와 부촌이 없을 리가 없었다.
언뜻 보면 평범한 풍속화로 보이는 이 작품. 난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반전을 숨겨 두었다.
“와, 이거 내가 말하고도 미쳤네. 너…… 이거 말고도 더 있을 것 같은데, 맞아?”
“야야.”
“아……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미쳤다는 표현이야 친구들 사이에서 충분히 쓸 수 있는 말이었다. 그러나 지금 여기에는 할아버지가 계셨으니. 난 동원이의 옆구리를 살살 쳐 입조심을 시켰다.
할아버지께서 인자하고 좋으신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손자뻘 되는 우리로서는 조심해야 하는 부분도 분명히 있었다.
“흘흘,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나도 젊을 때 한 성깔 했거든.”
“죄송합니다…… 근데, 윤성아. 내가 말한 게 다 아니지? 어쩐지 네 표정이 더 있다는 얼굴인데.”
그렇긴 했다. 이건 조선에서부터 잘하던 내 장점이 더 발전된 결과였다.
은밀한 남녀상열지사를 그릴 때도, 양반들의 유희거리였던 뱃놀이를 풍자해 그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림 속에 소소한 장치를 숨겨 두는 것. 그건 내 특기였다.
‘지금 시대에는 대부분 많이 찾아낸 상태였지’
사실 조선 시대부터 남아 있는 내 그림은 낱낱이 분석된 채였다.
달의 모양부터 시작해 여인의 옷 안에 숨겨져 있는 장신구의 의미까지. 세월의 힘이 그림의 모든 비밀을 파헤치게 만들었다.
‘그럼 지금의 그림은 얼마나 찾아낼 수 있으려나?’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난 착실하게 동원이에게 답을 했다.
“좀 더 찾아봐. 내가 바로 말을 해 주는 것보다 스스로 찾아보는 게 재미있지 않겠어?”
“흘흘. 그래도 친구라고 잘 이야기해 주는구나.”
“……이게 잘해 주는 거에요? 제대로 말해 주는 게 하나도 없는 기분인데.”
어딘가 떨떠름한 동원이의 중얼거림에 할아버지는 크게 웃으셨다. 그러더니 본인의 궁금한 부분 또한 내게 물어보시는 게 아닌가.
“다른 거는 이 할애비가 다 이해할 수 있어. 헌데, 도무지 이건 모르겠구나. 이 기묘함.”
“기묘한 느낌이요?”
“그래. 대체 무슨 마법을 부렸길래, 이런 기묘함이 드는 거냐?”
할아버지는 여전히 그림에 시선을 둔 채였다. 이 비밀을 반드시 알고 싶으시다는 듯, 그 눈빛은 깊었다.
“네 그림이 섬세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건 분명 네가 가진 장점이지. 하지만 그 정도론 이런 느낌을 받기 어려워.”
어린 시절부터 내 그림을 꾸준히 봐 오신 할아버지. 그렇기에 동원이와 달리 할아버지는 곧바로 그림들의 특징을 잡아내셨다.
하지만 그런 할아버지조차도 내가 이번에 한 건 예측하지 못하신 게 분명했다.
“분명 머리론 평화로운 풍경인데, 기분은 기이할 정도로 나쁘더구나. 마치 머리보다 감각이 먼저 안 느낌이었어.”
할아버지는 정확하게 그림에 대해 표현하셨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 그런지는 모르시는 듯 보였다.
“할아버지…….”
“오, 설명해 주는 거냐?”
“네에.”
“그래, 어서 말해 보거라. 대체 무슨 비법을 동원한 게야?”
“비법은…… 영업 비밀입니다.”
“……뭐?”
기가 막힌다는 표정의 할아버지를 보며 난 미소 지었다. 그 옆의 동원이까지 입을 벌리고 있는 걸 보니, 어쩐지 더 큰 소리로 웃고 싶어졌다.
그러나 이러다간 진짜 화내실 수도 있으셨다. 물론 내가 괜히 이러는 건 아니었다. 나로서는 말할 수 없는 이유가 분명 있었으니.
“미리 알아내신 건 괜찮지만, 제가 먼저 온전히 모든 걸 깔 수는 없죠. 이건 아직 의뢰인에게도 보이기 전이라서요.”
그림을 먼저 보이는 정도야 문제가 없었다. 감독님에게 허락도 받았으니까.
하지만 그림의 모든 비밀을 전부 밝히긴 좀 그랬다. 그럼 할아버지나 동원이가 무슨 재미로 영화를 보겠는가.
“영화 다 보고 나서도 잘 모르시겠으면, 그때는 설명해 드릴게요. 너도 그 뒤에 해 줄게.”
할아버지와 동원이를 번갈아 보며 난 아예 쐐기를 박았다. 지금 당장 입을 열 의지가 없다는 걸 알려 주기 위해서였다.
“야, 너 이거 영화에 나온다고 했지?”
“응, 애초부터 에드워드 감독님의 의뢰작이었거든.”
“좋아, 딱 기다려. 영화 개봉하자마자 내가 보고 온다.”
“정말로?”
“어차피 아직 찍지도 않았다며? 그럼 개봉할 때쯤에는 내가 대학생일 텐데. 당연 볼 수 있겠지.”
그 짧은 새 그런 점까지 다 계산한 동원이였다.
“나 솔직히 궁금하긴 하거든. 이 그림이 영화에 어떻게 나올지.”
동원이는 내 예측보다 포기가 빨랐다. 계속 더 설명을 요구할 줄 알았는데, 그 대신 영화를 보고 오겠다고 말하는 중이었다.
“네 말대로 영화 다 본 다음에도 모르겠으면, 그때 설명 들을래. 원래 스포일러는 사양이니까.”
하지만 그런 동원이와 달리 할아버지는 포기가 안 되는 모양이셨다.
“흠흠, 이 그림…… 언제 미국 가냐?”
“그건 갑자기 왜요?”
“이 할애비는 여전히 궁금하거든. 허나, 네가 안 알려 주겠다니 어쩌겠느냐. 혼자서 알아내 보는 수밖에. 흘흘.”
보아하니 당분간은 내 작업실에 종종 오실 모양이셨다. 물론 난 이미 알고 있었다. 할아버지께서 작업실에 오셔도 조만간 소용이 없어진다는 것을.
“정확하게는 아직 모르는데요. 얼마 안 걸릴걸요?”
“아니, 왜?”
“에드워드 감독님이 오늘 통화한 바로는 한국 와서 보겠다고 했거든요.”
“……직접 여길 오겠다고 하더냐?”
“네, 그러셨는데요. 곧 비행기표 끊으실 듯합니다만.”
“……거참, 뭘 직접 온다고.”
나처럼 할아버지께서도 깨달으신 듯했다. 본인이 나름대로 내 그림을 연구해 볼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 * *
할아버지에게 그렇게 이야기했다지만 난 그래도 꽤 시간이 있을 줄 알았다. 미국과 한국. 예전이라면 쉽게 오고 갈 수 없는 거리였다.
그건 이 시대에도 쉬운 건 아니었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라고 불리는, 최고 빠른 교통수단으로도 10시간이 넘게 걸렸으니까.
‘진짜로 금방 오시네.’
하지만 내 예상과 달리 에드워드 감독님의 행동력은 빠르셨다. 순식간에 비행기표를 구하신 듯 내게 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보낸 시간을 보아하니, 나와 통화한 날 비행기표를 예매하신 게 분명했다.
‘감독님이 마음에 들어 하시려나 모르겠네.’
내 나름대로는 분명 최선을 다한 작품이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애초부터 다른 이의 의뢰로 만들어진 작품이었으니. 그 당사자의 마음에 드는 것이 우선이었다.
약간의 걱정을 마음 한편에 품은 채 난 메일함을 정리했다. 그사이 눈에 익숙한 메일 주소가 일부 보였다.
‘어? 이거…….’
메일 주소의 뒷부분에 또렷하게 박힌 에일이란 글씨. 이건 에일대의 누군가 보낸 메일이었다.
그러나 내가 평소에 메일을 주고받았던 교수님의 이메일 주소와는 좀 달랐으니. 난 순간적으로 의문이 들었다.
‘에일대의 다른 누군가 보낸 건가?’
혹시 다른 교수가 보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난 얼른 열어 보았다. 메일을 열자마자 굵은 글씨로 된 단어가 날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