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Yun-bok's Modern Art Studies in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79
79화 거울에 비친 꽃과 물에 비친 달
경매란 단어보다 내게 익숙한 건 흥정이었다.
그 옛날 조선에서도 장터에서 물건을 사고팔 때 흥정을 했다. 내가 본 경매는 그것이 좀 더 세련되게 체계화된 것이었다.
[하아, 다 좋은데 왜 하필이면 온라인인지 모르겠군요.]전화기 너머에선 깊은 한숨이 들려왔다. 어지간히도 마음에 안 든다는 게 수화기로도 느껴질 정도였다.
온라인이라니. 그냥 들었을 때는 비대면으로 하는 쇼핑몰이 떠올랐다. 나 또한 필요한 물건이 있을 때 종종 사용하는 구매법이었다.
[크리스티는 좋은데…… 왜 온라인인지. 아오, 아까워라.]“거기면 안 좋은 거예요?”
상대방이 너무 흥분하는 게 느껴졌기에. 난 결국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아는 온라인이란 건 최첨단을 달리는 좋은 수단이었기에.
[소더비에 비해 밀린다고는 하나, 크리스티도 좋습니다. 여기에 작가님의 작품이 나온다는 건 분명 긍정적인 신호예요.]소더비와 크리스티.
둘 다 세계 최고를 다투는 경매 회사다. 어지간한 고가의 미술품들은 다들 그 경매 회사를 통해 거래된다고 보면 좋았다.
과연 라고시안. 그쯤 되면 그 정도 경매가 아닌 이상 눈에 차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그럼 괜찮은 거 아닌가요.”
[그런데 작가님의 작품이 온라인 쪽으로 나온다는 게 문제입니다.]“그게 왜요?”
[아무래도 큰 경매는 오프라인. 그것도 메이저 경매니까요.]대충 큰물과 작은물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난 왜 필립이 이렇게까지 안타까워하는지 알 수 없었다.
[후…… 사실 그것보다도 저희의 영향력이 좀 적습니다.]“예? 영향력이요?”
[크리스티 온라인은 오프라인에 비하면 이제 막 키워 가고 있는 형편입니다. 대신 본인들의 입김이 그만큼 강해요.]“으흠.”
[오프라인이었으면 저희가 좀 더 서포트를 해 드릴 수 있었을 텐데…….]안타까워하는 필립과 달리 난 아직은 그렇게까지 나쁜 점을 잘 모르겠다. 어쨌든 중요한 부분은 대충 알아들었다고 여겼다.
그러나 필립의 말은 끝난 게 아니었으니.
[라고시안에 작가님 그림에 대한 문의가 이미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경매에 작가님 작품이 올라오는 건 나쁘진 않은 소식이죠.]“그래요?”
[예, 경매에 나와서 공식적으로 가격을 인정받은 작품은……. 아무래도 수집가들에게 또 다른 인상을 주니까요.]대충 알 것 같았다. 경매란 모두에게 열려 있는 공간이었다. 그렇기에 거기서 결정된 가격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중요하게 느껴질 수 있었다.
‘내가 보기엔 그다지 의미는 없을 것 같지만…… 라고시안도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긴 하네.’
내게 중요한 건 더 좋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지, 같은 그림을 더 비싸게 파는 쪽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와 전속 계약이 되어 있는 곳이 이 정도로 신경을 쓰니. 나도 모르게 관심이 가긴 했다.
“근데 그걸 어찌 아신 거예요? 아직 나오지도 않았다면서요.”
분명 필립은 그림이 경매에 나올 예정이라고 했다. 나왔다는 것이 아니라.
그건 아직 경매에 올라가지도 않은 그림에 대해 먼저 알게 되었다는 소리였다.
[작가님께서 저희 전속이시니, 저희에게 크리스티에서 확인차 연락이 왔습니다.]“확인이요? 뭘요?”
[진품인지, 언제 적 그림인지. 이런 거요.]나에게 직접 연락을 하는 대신 라고시안에 물어본 모양이었다.
“그럼 진짜 나오는 거군요. 경매에…… 처음이네요. 제 작품이 경매에 나오는 건.”
당분간은 나올 일이 없을 거라고 여긴 게 사실이었다. 그래서 경매에 대해 공부를 하지 않은 것도 있었다.
내 그림을 사 간 이들은 하나같이 정말로 원해서 사 갔다. 그런 이들이 다시 내 그림을 경매에 내놓을 리가 없다고 여겼으니까.
어지간한 일이 아니라면, 그림을 팔지 않을 사람들. 그게 내가 본 내 그림의 소유주들이었다.
그런데 경매에 나온 걸 보니, 내 예측이 틀린 듯 보였다.
[사실 오히려 늦은 편입니다. 작가님의 작품 정도면 충분히 나오고도 남죠.]늦은 거였나? 빠른 게 아니라?
그렇다고 해도 이게 왜 이렇게 호들갑을 떨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결국 누군가 내 그림을 되팔려고 내놓았다는 거 아닌가.
내 감상은 딱 이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나와 달리 상대방은 나와 느끼는 바가 미묘하게 다른 것 같았다.
“그러게요……. 첫 경매군요, 확실히.”
[저희도 지속적으로 정보를 업데이트하여 작가님께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경매에 나온다는 걸 알려 주는 게 용건이었다는 듯. 그는 급하게 전화를 끊을 기미를 보였다. 그런 상대방을 막은 건 나였다.
“아, 잠깐만요. 그래서 대체 경매에 나온다는 제 그림이 뭡니까?”
이렇게나 길게 통화를 하고도 난 그림에 대한 이야기는 들을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끊기 전에라도 물어봐야 했다.
[제가 말씀 안 드렸군요, 작가님. 이번 경매에 나올 그림은 작가님의 가장 최근 작품입니다.]“제 가장 최근 작품이라니. 설마…….”
[예상이 맞으실 겁니다. 최근 작가님께서 저희에게 말하고 의뢰받으신 그 그림이니까요.]“경화수월입니까?”
경화수월(鏡花水月).
풀이를 하면 거울에 비친 꽃과 물에 비친 달이라는 뜻. 실제 보이는 것과 그 속내가 다른 내 그림을 표현하기에 적절하다고 여겨 붙여진 내 그림의 작품명이었다.
[예, 그렇습니다. 작가님.]그 말을 들은 난 하마터면 수화기를 놓칠 뻔했다. 내가 가장 최근에 내 곁에서 떠나보낸 작품이 다시 주인 없이 세상을 나올 모양이었다.
* * *
경화수월은 내가 분명 에드워드 감독에게 넘긴 작품이었다. 작품의 가격도 꽤 넉넉하게 받았다.
그렇기에 더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이 작품이 경매에 나온다는 말인가.
분명 이거로 영화를 찍겠다고 했는데.
‘이게 뭐가 어찌 된 거지?’
곧바로 걸자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미국과 여긴 밤낮이 완전 반대였다.
그렇게 난 하루를 기다렸다. 그럼에도 내게 회신은 돌아오지 않았다.
뚜― 뚜― 뚜―
잘만 통화할 수 있었던 에드워드 감독과의 전화 연락이 계속해서 닿지 않았다. 전화가 안 되면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하는 법.
난 곧바로 이메일에 들어갔다. 어쩌다 전화는 못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미리 이메일로 편지를 남겨 둔다면 이건 답을 받을 수 있으리라.
어느새 일주일. 난 계속 에드워드 감독과 연락을 할 수 없었다. 머릿속이 실타래처럼 뒤엉킨 기분이었다.
언제까지 이런 상태로 있을 수는 없는 법. 일단 인생에 있어서 어른을 찾아가 보기로 마음먹었다.
나보다 경험이 많기에 길을 열어 줄 수 있는 자. 다행히도 내겐 그런 사람이 곁에 있었다.
* * *
“할아버지!”
내 주변에 믿을 만한 어른. 그중 제일은 누가 뭐라고 해도 할아버지였다.
그 나이에도 늘 열정적이신 우리 할아버지. 오늘은 다행히도 작업실이 아닌 거실에 계셨다.
난 손자의 특권으로 할아버지를 큰 소리로 부르며 그 앞으로 향했다.
“아이구, 깜짝이야. 왜 소리를 지르면서 들어오누.”
너트뷰를 보고 계셨던 듯 할아버지께서는 들고 계시던 폰을 내려놓으셨다.
“죄송해요. 제가 방해한 거죠?”
“흘흘, 괜찮아. 우리 손주가 온 게 더 중요하지.”
“헤헤.”
할아버지의 앞에서 애교를 부리며 난 일단 자리를 잡았다.
할머니께서 주신 과일을 우물우물 씹으며 한참을 일상적인 이야기만 하던 나. 드디어 여기 온 본론을 꺼내 들었다.
“할아버지, 제 작품이 경매에 나왔대요.”
“뭐?”
사과를 드시던 할아버지의 눈이 동그랗게 변하셨다. 난데없이 무슨 소리를 하냐는 표정이셨다.
“그 경매가 어디냐? 얼른 말해 보거라. 이 할애비도 참여 좀 해 봐야겠다.”
“……아직 안 올라왔어요.”
당장이라도 경매에 참가하실 듯한 기색이 역력하신 할아버지. 그런 그분을 보며 난 떨떠름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 제게 그림 달라고 하시면 되잖아요? 무슨 경매를 할아버지가 참여하신다고 그러세요?”
“이 녀셕아, 그게 같아? 경매는 경매만의 매력이 있는 법이거늘.”
경매만의 매력이라. 아무래도 할아버지를 찾아온 게 잘한 모양이었다.
“경매만의 매력이 대체 뭐예요?”
“음…… 그거 설명하기 좀 어려운데. 우선 네 작품이 나온다는 경매가 어디냐?”
“크리스티라고 들었어요.”
“허 참, 크리스티라……. 첫 경매가 곧바로 크리스티라니. 내 손주지만 난놈인 건 분명하구나. 흘흘.”
잠시 감탄사를 터트리시던 할아버지. 이내 턱을 쓰다듬으시면서 다시 내게 질문을 던지셨다.
“근데 윤성아, 네 작품이라는 거. 혹시 메이저 목록에 올라온 거냐?”
“메이저요?”
순간 난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메이저라니. 그럼 마이너도 있다는 소리인가?
그러고 보니 필립에게서 메이저 경매에 대해 얼핏 들은 것 같기는 했다. 다만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을 뿐.
“쯧쯧, 윤성이 너 경매 쪽은 하나도 공부하지 않았구나.”
혀까지 차시는 할아버지. 어지간하면 칭찬만 하시는 할아버지를 아는 난 그런 그분의 태도에 주눅이 들었다.
그 덕분일까. 목소리는 절로 작아졌다.
“찾아보긴 했는데요…….”
예전부터 난 상업적인 면을 잘 부각시키는 화가는 아니었다.
발품을 팔면 더 좋은 값에 그림을 팔 수 있다는 소리를 들었음에도, 그것보다는 그림 자체에 더 공을 들이자는 쪽이었으니까.
“그래도 대충은 공부했어요. 소더비가 최고란 건 아는걸요.”
그 순간 내 머릿속을 스친 건 필립과의 통화였다. 분명 소더비만은 못해도 크리스티가 좋다고 했던가.
그 말은 바꿔 말하면 최고는 소더비라는 소리 아니겠는가.
속으로 내 임기응변에 감탄하는 사이. 할아버지의 얼굴이 약간 풀어지신 게 보였다.
“아예 모르진 않는 모양이구나. 근데 왜 메이저를 모를꼬.”
“온라인은 아는데요.”
“그건 또 아는구나. 대체 공부를 어찌한 게야? 이렇게나 듬성듬성 알다니.”
정확하게는 공부를 했다기 보단 필립을 통해 들은 것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난 이참에 할아버지에게 확실하게 배우기로 마음먹었다.
“메이저가 제일 큰 거죠? 그 뒤가 온라인일 것 같은데.”
“흘흘, 그렇지. 눈치는 있구나.”
다시 웃는 얼굴로 돌아오신 할아버지는 이내 술술 설명을 시작하셨다.
“원래 큰 경매는 오프라인으로 한단다. 그 당시 가장 귀한 물건들이 나오는 경매. 그걸 메이저라고 부르지.”
“그럼 온라인은…….”
“귀한 물건만 있는 데다 현실에서 하기에 어지간해서는 접근조차 어려운 게 메이저라면, 그 틀을 깬 것이 온라인 경매다.”
다시 말해 비대면으로 하는 경매인 동시에 그만큼 물건의 가격들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경매란 소리였다.
“아, 그래서 필립이 실망했던 거군요.”
그제야 난 왜 필립이 그런 반응인지 알아차렸다. 직접 눈으로 보지 못하고 비대면으로 하는 경매. 눈으로 보는 게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그림에겐 아무래도 불리한 구조였다.
만약 내 그림이 평범한 보통의 그림이었다면 나 또한 마찬가지였으리라.
“윤성이 네 그림이 온라인에 나온다고 그쪽에서 아쉬워한 게로구나. 그렇지?”
“예, 그렇긴 했어요.”
“……흘흘. 어째 넌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는 표정이구나?”
“……티 나요?”
“그럼. 이 할애비가 누구인데. 헌데, 왜 그렇게 여기는 게야? 그림은 아무래도 직접 보는 게 제일 좋은 거 알지 않니.”
할아버지의 말씀은 정확했다. 그렇기에 어지간한 명작들은 실물로 봐야 했다.
제아무리 카메라의 기술이 발전해도 실제로 봤을 때의 느낌을 온전히 담기는 어려웠으니.
그러나 내 이번 작품만은 달랐다. 제목부터 거울과 물이 들어가지 않는가. 둘 다 실제를 보여 주지 못하는 것들이었다.
“그건 대부분 그렇죠. 그런데…… 이번 제 경매의 그림은 안 그렇거든요.”
“안 그렇다고?”
“할아버지도 참. 사람도 카메라발이란 게 있는데 그림이라고 없겠어요?”
원래부터 영화를 위해서 만들어진 그림. 그것이 경화수월이었다.
어쩌면 이번 내 작품에 한해서만은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이 나을 수도 있었으니. 난 이를 필립에게 알려 줘야 하나 고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