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Yun-bok's Modern Art Studies in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84
84화 최저가는 10만 달러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특히나 몰입해서 그림을 그렸기에 더 그랬을 것이다.
내가 작업실과 학교만을 다니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좀 뜸하던 필립으로부터의 연락이 도착했다.
한창 여러 작품을 동시 작업하고 있기에. 내 작업실의 상태가 엉망이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나는 필립의 다른 곳에서 만났다.
호록―
‘요즘은 이게 참 맛있단 말이야.’
달달한 밀크티라테. 우유가 들어간 홍차의 풍미와 함께 단맛이 강한 음료였다. 요즘에는 이걸 마시면 머리가 깨어나는 기분이 들어 좋았다.
차가운 얼음이 들어간 밀크티라테를 한 모금 마시는 사이. 마주 보고 앉은 필립의 입이 열렸다.
“온전한 경매 일정이 잡혔습니다, 작가님.”
“온전한이요?”
경매 일정이면 일정이지, 온전한은 또 뭐란 말인가. 내 의문 가득한 눈길에 필립은 찬찬히 설명을 시작했다.
“크리스티 온라인 경매는 미리 시간과 날짜를 공지합니다. 그리고 해당 주최 측이 정해지죠.”
“주최요? 그게 크리스티 아니었습니까?”
“크리스티는 각 나라마다 관리하는 사무소를 두고 있습니다. 이번 경매는 크리스티 뉴욕의 관할이죠.”
기존에 경매에 대해 공부하며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다.
크리스티는 경쟁사인 소더비보다 더 많은 지점을 전 세계에 보유하고 있었다. 각 사무실에서 매해 치러지는 경매의 규모가 어지간한 회사의 매출을 훌쩍 뛰어넘었으니.
과연 세계적인 경매 회사인 만큼 나름 체계적으로 일 처리가 진행되었다.
“감독님 측에서 작품을 출품한 곳이 뉴욕 사무소인 만큼 그쪽에서 경매를 주관하게 되었습니다.”
“오호, 그랬군요.”
에드워드 감독님의 부인이 급하게 낸 만큼 뉴욕 사무소가 편했으리라.
“프리뷰 날짜가 확정된 만큼 작가님의 작품에 대한 관심도를 측정하기 좋겠죠.”
새로운 경매 소식과 같이 등장하는 게 프리뷰였다. 경매에 나오는 작품을 직접 전시하는 행사. 그게 프리뷰였으니까.
“그럼 프리뷰도 뉴욕에서 하는 거예요?”
“그렇습니다. 크리스티 뉴욕 사무소의 관할이니까요.”
당연하다는 필립의 말을 들으며 아쉬움을 삼켰다. 미국 뉴욕. 방학이 아닌 이상, 가기 쉽지 않은 곳이었다.
이 발전된 시대에서도 가기 위해선 수많은 시간을 쏟아야 하는 곳이었기에.
‘학교를 빠지고 갈 수는 없는데.’
가까운 곳에서 했다면 훌쩍 날아가서 내 작품이 포함된 프리뷰를 감상할 수 있었으리라.
프리뷰 자체는 최대한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지도록 무료인 만큼 시간과 비행깃값만 허락한다면 가능한 일이긴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보아하니 쉽지 않아 보였으니.
난 지금 엄연히 고등학교 3학년 1학기 중이었다. 동시에 해야 할 작품 작업도 많았으니.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였다.
“뉴욕이면 제가 가긴 쉽지 않겠군요.”
“그래서 작가님을 위해 이걸 가져왔습니다.”
아쉬워하는 날 향해 필립은 한 책자를 내밀었다. 깔끔하고 빳빳한 종이로 제작된 색색이 화려한 그것. 일명 도록이라고 불리는 것이었다.
도록 혹은 팸플릿이라고 불리는 것.
출품작 사진과 정보가 담긴 일종의 정보지였다. 작품의 이력이라고 할 수 있는 제목, 제작한 연도, 추정가, 재료 등등이 꽤 구체적으로 실려 있었다.
“온라인 경매도 이걸 제작해요?”
“물론입니다. 요즘 온라인 경매가 점점 더 커지고 있으니까요.”
이미 공식 홈페이지에 어지간한 정보는 다 올라와 있었다. 그렇기에 메인 경매도 아닌 온라인 경매. 그렇기에 난 이걸 받을 줄은 몰랐다.
“온라인 경매는 어떤 식으로 진행돼요? 대충은 알고 있는데…….”
말끝을 흐리는 날 향해 필립은 미소 지었다. 본인이 잘 아는 분야를 설명할 수 있어서 기쁜 기색이 역력했다.
“오프라인과 별반 차이는 없습니다. 특히나 작가님 작품이 올라가는 온라인 경매는 프리미엄이거든요.”
“프리미엄이요?”
“쉽게 말해 온라인 경매 중에서는 그래도 꽤 고가의 작품이 나오는 경매를 뜻합니다.”
필립의 설명은 이해하기 쉬웠다. 이쪽 시장에 대해 익숙하지 않은 날 배려하듯이.
“덕분에 오프라인과 별반 차이는 없습니다. 다만 기본적인 회원 가입과 계좌 인증은 해야 합니다만.”
일반적으로 주문하는 온라인 쇼핑몰과 비슷한 방식이었다. 확실히 온라인은 오프라인 메이저 경매에 비해 간단하고 쉽게 진행되는 듯 보였다.
“그래서 일정은 언제인가요?”
“약 한 달 뒤인 5월 6일. ‘크리스티 뉴욕 프리미엄 온라인 5월 경매’ 거기서 개시합니다.”
크리스티를 찾는 경매 참가자들 입장에서는 비교적 접근하기 쉬운 가격대의 물품들.
그것이 온라인 경매였다. 한국 돈으로 수백에서 수천 사이의 경매였으니. 가격이며 방법까지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높았다.
“작가님의 작품이 추정가 7만 달러에서 10만 달러로 되었습니다만…….”
“문제가 있나요? 그거 적절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림을 판 가격이 7만 달러였다. 그렇기에 추정가가 알맞다고 여긴 나였다.
“예, 문제가 좀 있습니다.”
“그게 뭔데요?”
혹시나 추정가에 대해 부정적으로 이야기할까 싶어 슬쩍 긴장이 되었다. 그러나 필립의 말은 그쪽에 대한 것이 아니었으니.
“에드워드 감독님 측에서 어지간한 가격에는 팔지 않으시겠다고 하셔서요. 최저 낙찰가를 10만 달러로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제는 어느 정도 몸이 회복되신 에드워드 감독님. 그로 인해 크리스티 경매에 대한 내용도 그분의 뜻을 따르는 중이었다. 원소유자가 에드워드 감독님이었기에.
그런데 그분의 결정이 특이한 모양이었다.
“아마도 추정가가 그보다 높았다면, 감독님께서는 그 높은 쪽 가격을 하셨을 것입니다.”
“그래요?”
“예. 10만 달러 아래로 낙찰되어 팔 바에는, 본인이 가지고 계시겠다고 하시더군요.”
그러면서 필립은 내게 이건 꽤 희귀한 경우라고 말했다.
“보통은 추정가가 최대 10만 달러면 그 절반인 최저 입찰가를 5만 달러에서 시작합니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최저 입찰가가 너무 높으면 경매에 참여하는 이들이 적어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특히나 요즘처럼 경매 시장이 죽었다는 소리가 나올 때는 더하죠. 추정가보다 낮은 낙찰가가 더 많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이번 에드워드 감독님의 결정은 확실히 특이했으니.
아마도 여차하면 본인이 다시 가져가실 작정이신 듯했다.
“……그럼 최저인 10만 달러에 사겠다는 사람이 없으면 에드워드 감독님이 다시 가져가신다는 거죠?”
사람의 인생이란 모르는 법. 팔릴 때까지 계속해서 전시장에 걸어 둘 수 있는 그림과 달리 이건 기간이 정해져 있는 행사였다.
혹시나 그 기간 내에 팔리지 않는다면, 못 팔 수도 있는 거 아니겠는가.
“소유주가 원한다면, 이브닝 세일 같은 행사에 최저가를 낮춰서 올릴 수도 있겠습니다만…….”
“안 그럴 거라는 소리시군요.”
“예, 감독님은 그렇게까지 파실 생각은 없으실 테니까요.”
이쯤이면 대강 경매 절차에 대한 이해는 했다. 어차피 프리뷰에 참석할 수 없다면, 내게 중요한 건 본경매였다.
“5월 6일 몇 시에 열리나요?”
“뉴욕 시각으로 자정. 그때부터 온라인 경매가 시작될 것입니다, 작가님.”
필립의 말에 난 폰을 들어 일정표에 해당 내용을 적었다. 첫 경매인 만큼 시작할 때의 반응을 보고 싶었으니까.
* * *
나의 첫 경매에 대한 관심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
미국 뉴욕 시각으로 5월 6일 자정에 시작한다고 말씀드린 그 순간부터 부모님께서는 디데이를 세기 시작하셨으니까.
“근데 거기 홈페이지는 괜찮대니?”
“홈페이지요? 그게 왜요?”
“얘 좀 보게. 그런 거도 신경 써야지. 예전에 무슨 콘서트 티켓이라도 예매하려고 하면 늘 홈페이지가 말썽이던데.”
온라인 경매를 콘서트 티켓팅으로 보고 계신 부모님. 재미있는 시각이었다.
요상한 걱정을 하는 부모님을 보며 난 웃음을 지었다. 역시나 어느 부모든지, 자식 일에는 괜한 것도 다 걱정이 되시는 게 분명했다.
“그건 가수가 어쩌다가 마음먹어야 열리는 거잖아요. 이건 매달 열리는 경매니까. 그 정도는 아니겠죠.”
“그런가?”
“예, 올 한 해 진행된 모든 온라인 경매에서 그런 일이 없었다고 하는걸요.”
내 작품이 들어가는 건 5월의 경매였다.
그전에 실시된 1월부터 4월의 경매가 문제가 없었던 만큼. 이번 또한 괜찮을 것이라 판단했다.
“역시 세계적인 회사라 그런가? 그럼 다행이지.”
“거기다 제 그림 경매는 콘서트처럼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건 아니니까요.”
예전부터 인지하고 있었다. 그림이란건 사실 꽤 사치스러운 취미이기 쉬웠다.
조선에서도 일반 백성들이 먹고살 만해지자 겨우 그림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게 내가 있던 시기였으니. 살았던 시기였으니.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림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진 이들은 분명 늘었다. 삶이 전반적으로 그 때에 비해 풍족해졌으니까.
그러나 진정으로 거금을 들여서라도 그림을 사려는 이들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상대적으로 여전히 그럴 만한 시간적인 여유와 돈이 많은 자들. 그들이 주로 이쪽에 관심이 많았으니까.
이건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비슷한 모양이었다.
‘전시회는 몰라도, 경매는 아무래도 그렇겠지.’
그림 자체를 보고 순수하게 즐기는 이들이 많은 전시회.
하지만 내가 본 크리스티 경매는 상업성이 극대화되어 있는 것이었으니.
‘정말로 사겠다고 마음먹은 사람들이 오는 곳인 만큼. 그 정도로 인간이 몰리진 않겠지.’
미국 시각으로 자정. 한국 시각으로는 대낮이었기에 난 여차하면 뒤늦게 들어갈 수도 있었다.
오늘이 주말이 아니었다면, 학교에 가서 몰래 폰으로 크리스티 온라인 홈페이지를 들여다봤으리라.
“근데 이게 뭐예요?”
“뭐긴. 원래 이런 건 이렇게 해 줘야 하는 거야.”
진짜로 한때 콘서트 티켓팅을 해 보신 모양이신지, 어머니와 아버지는 능숙하게 인터넷 타이머를 키셨다.
“5, 4, 3, 2, 1!”
기분 좋게 줄어드는 숫자를 세시던 부모님. 두 분의 얼굴은 이내 당황으로 물들었다.
“어?”
“응? 뭐야 나만 이런가?”
“왜요?”
간단하게 폰으로 들어간 난 그런 두 분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어서 고개를 갸웃했다. 나보다 더 호들갑이시더니. 왜 저러고 계신다는 말인가.
“안 들어가지는데?”
“이거 화면이 하얀 거 보니…… 진짜 서버 터진 거 아니니?”
“예? 그럴 리가요. 전 들어갔는데요.”
내 폰의 계정은 무사히 크리스티 경매하는 곳에 들어가 있었다. 그러나 부모님은 날 보며 혀를 끌끌 차실 뿐이었다.
“쯧. 윤성이, 너 새로 고침 해 봐. 정말 되는 게 맞나.”
못 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난 그 손쉬운 결정을 후회하고 말았다.
내 휴대폰 또한 두 부모님의 화면과 같은 모습으로 변해 버렸기에.
“……이거 왜 이러죠?”
“휴, 왜 이러긴. 서버 터진 거지.”
단 한 번도 이런 광경을 본 적 없는 난 기가 찼다.
“……저 잠시 통화 좀 하고 올게요.”
계속 이러고 있을 수는 없는 법. 난 일단 안 되는 화면 대신 통화 버튼을 눌렀다.
“필립, 저예요. 경매 사이트가 좀 이상한 것 같아서 전화 드렸는데요.”
나와 달리 아예 미국으로 날아간 필립. 분명 시차가 있음에도 그는 단번에 내 전화를 받았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이미 인지한 상태입니다, 작가님. 후, 원인은 대략적으로 파악해 두었습니다만…….]“그게 뭔데요?”
[영화 예고편. 그게 문제인 게 분명합니다.]필립의 목소리에 깃든 어처구니가 없다는 감정. 전화 속 목소리만으로도 느껴질 정도로 확실했다.
“영화 예고편이요? 그게 뭔 상관인데요?”
[영화사 공식 예고편에 작가님의 그림이 일부 나왔다는 건 아시죠?]일부러 경매의 시기와 영화 개봉을 맞췄기에 난 이미 예고편을 본 상태였다.
“예, 당연히 봤죠. 고화질 링크도 주셨으니까요.”
[바로 그 예고편이 문제입니다, 작가님. 거기에 작가님의 그림이 나왔지 않습니까.]필립의 한숨 소리에 난 더더욱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거 고작 5초였잖아요?”
겨우 5초. 10초도 안 되는 그 짧은 시간 나온 그림이 왜 문제가 된다는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