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Yun-bok's Modern Art Studies in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85
85화 이거 설마 처음이야?
분명 나 또한 그 예고편을 봤다. 그것도 오히려 남들보다 일찍. 에드워드 감독님께서 먼저 친히 알려 주셨으니까.
‘그때 별로 이상한 거 못 느꼈는데.’
인터넷에 올라간 고화질 링크를 통해 한 번 더 보기까지 했다. 그때만 해도 난 기분만 좋았을 뿐.
내가 의도한 대로 그림이 영상에 잘 나온 듯 보였으니까. 확실히 에드워드 감독님은 카메라를 잘 다루셨다.
그 덕분일까. 내가 의도한 대로 붓질을 세밀하게 한 부분까지 잘 나왔다.
비록 단 5초였지만.
[작가님, 제가 보내 드린 링크 보셨죠?]“예, 잘 봤었죠.”
[혹시 그 이후로 들어가 본 적 있으신가요?]있을 리가.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던 나다. 그런 걸 따로 챙겨 볼 새가 없었다.
“그 이후에는 없는데요. 왜요? 무슨 문제 있습니까?”
[예고편 아래 댓글에 이 그림이 경매에 나온다며, 링크가 달렸습니다.]“잠깐만요. 링크라면 설마…….”
[예, 크리스티 경매 사이트로 연결이 되더군요. 아주 정확하게.]그제야 난 필립이 왜 그렇게 말하는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말은 내 예상에서 빗나가지 않았다.
[저희의 예측에 따르면 원인은 그거입니다. 물론 정확한 건 사이트가 복구되면 확실히 알 수 있겠지만요.]필립의 말을 들은 난 사이트를 바꿔 들어갔다. 내 앞에 놓여 있는 컴퓨터를 한 손으로 조작하면서 말이다.
작동도 하지 않는 크리스티 사이트 대신 예고편의 링크를 들어가 보기로 한 것이었다.
‘진짜네.’
정말로 예고편의 댓글에는 해당 그림이 나온 사이트라며 떡하니 경매 주소가 달려 있었다.
심지어 그 댓글이 가장 위에 있었으니, 다른 사람이 찾아보기에도 좋아 보였다. 대체 이게 왜 맨 위에 달려 있다는 말인가.
[우선 작가님, 저희도 복구를 기다려 보겠습니다. 크리스티의 반응도 봐야 할 것 같고요.]“크리스티의 반응이요?”
[그렇습니다. 이번 경매는 엄연히 시간 제한이 있습니다.]온라인 경매인 만큼 시작 시간과 마감 시간이 초 단위로 철저했다. 필립이 지적한 건 이 부분이었으니.
[그 귀중한 시간 중 일부를 이렇게 소모했는데, 크리스티에서 아무것도 안 하는 건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피해 보상이라도 청구하시게요?”
이 시대의 사람들은 본인 권리를 잘 찾았다. 과거의 조선에 비해 훨씬 이런 제도가 잘되어 있었으니까. 그리고 라고시안은 이걸 하고도 남을 위인들이었다.
[저희가 그렇게 할 필요도 없을 겁니다. 크리스티에서 알아서 할 테니까요. 대충 시간 좀 늘려 줄 것 같긴 합니다만.]“그래요?”
[그래도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이제 다음번에 작가님의 작품이 경매에 올라갈 땐 반응이 달라질 것입니다.]어딘가 미묘한 확신에 찬 필립의 말이었다. 그는 그 광경을 상상이라도 한 듯 즐거운 목소리오 내게 쐐기를 박았다.
[전 벌써부터 다음 경매가 기대되기 시작하는군요.]* * *
스테파니는 이미 만만의 준비를 한 상태였다. 그녀가 아는 경매란 건 일단 기선 제압이 중요했으니까. 시작가를 확 올려놓는다면, 아예 덤빌 엄두도 내지 못하리라.
‘10만 달러가 최저가면, 그 2배나 3배를 부르면 충분하려나?’
그 정도 돈은 그녀에게 일도 아니었다. 30만 달러를 소모해 원하는 작품을 가지기. 그건 분명 남는 장사였으니까.
이런 행복한 상상도 잠시였다. 그녀의 옆에서 묵직한 저음이 들려왔으니까.
“이거 이렇게까지 준비해야 되는 거야?”
그녀의 말에 따라 컴퓨터를 세팅하고 있던 매니저의 떨떠름한 말이었다.
“팝 스타의 콘서트 티켓팅도 아니고, 뭔 놈의 데스크톱을 세 대나 세팅하는 건데?”
“모르는 소리. 이 그림을 나만 노리는 줄 알아?”
그녀는 매니저를 째려보았다. 그 심상치 않은 눈길에 상대의 어깨가 움츠러드는 게 느껴졌다.
“아니…… 그렇다고 해도 고작 그림인데, 뭐.”
“고작 그림이 아니야.”
그녀의 말투는 진지했다. 이미 다 알아보았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으니.
“일단 내가 아는 사람만 해도 이 그림에 관심 가진 사람이 꽤 된단 말이야.”
“그 정도야?”
“아, 짜증 나. 왜 하필이면 영화에 나와서는.”
그녀가 생각하기에 맹점은 그것이었다. 영화에 나왔다는 것. 그거만 아니었어도 이 정도로 경쟁이 빡세지지 않았을 테니까.
심지어 올라온 예고 영상을 보니, 어째 그 영화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그 누구보다 트렌드에 민감한 게 이쪽 업계였으니. 그녀가 눈치챈 걸 남들이 모를 리가 없었다.
“지금 별 시답잖은 것들까지 그림을 가지겠다고 난리란 말이야.”
“별 시답지 않은 것들이 누군데?”
그의 질문은 타당했다. 하지만 그녀는 매니저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는 듯 홀로 화를 삭이는 중이었으니.
“그림이라고는 쥐뿔도 모르는 애들이 죄다 영화에 나왔다며 달려들 거 생각하면, 열이 확!”
영화 관계자 중에는 돈이 많은 이들이 꽤 되었다. 그들 중 몇몇은 돈 냄새를 기가 막히게 맡는 사람들도 있었으니.
‘하필이면 예고편이 지금 공개될 게 뭐람.’
그거만 아니었어도 몇몇 경쟁자는 줄어들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이왕 이렇게 된 것 그녀는 돈으로 승부해야 했다.
‘제발 내 적수가 없었으면 좋겠는데.’
매니저에게 당당히 말한 것과 달리 그녀는 약간 겁을 먹은 상태였다.
시작가가 고작해야 10만 달러였으니. 그녀처럼 싸다고 여겨 달려드는 사람이 많을 게 뻔했기에. 그리고 그중에는 그녀의 재력을 능가할 사람이 있을 수도 있는 거 아니겠는가.
“우와, 진짜 인기 많나 보네. 서버 터졌어.”
“뭐?”
스테파니는 매니저가 가리키는 화면을 보았다. 정말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화면이 거기에 있었으니.
“원래 경매 사이트도 막 터지고 그러나?”
“그럴 리가 없잖아! 짜증 나. 역시 예상대로 사람이 몰리잖아.”
크리스티 경매 사이트가 터지는 건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냄새를 맡은 기자들이 벌써 붙은 게 보였다.
“서버 터졌다고 기사도 올라왔는데?”
매니저의 폰에는 이미 해당 기사가 보였다. 과연 미국의 기자들. 속도가 신속하기 짝이 없었다.
“이거 생각보다 보는 사람이 많구나.”
“그럼 많지. 심지어 이제는 금액도 꽤 커졌으니까.”
이제 스테파니가 할 일은 간단했다. 일명 ‘새로고침병’. 여기에 걸린 것처럼 미친 듯이 클릭을 하면 되었으니까. 온 세상의 짜증을 담아 손을 움직이는 그녀였다.
“근데 왜 이렇게 복구가 늦지?”
그녀와 마찬가지로 옆에서 피시를 클릭 중이던 매니저가 의문을 표했다. 늘 빠르게 돌아가는 연예계를 알기에 이렇게 늦는 게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었다.
“크리스티가 어디 서버가 터지는 걸 겪어 봤겠어?”
“……이거 설마 처음이야?”
“아마도 그럴걸. 메인도 아니고, 고작해야 온라인 경매 때문에 터질 줄 누가 알았겠어?”
그녀의 화가 섞인 어조에 매니저는 입을 다물었다. 이럴 때는 할 일만 잘하는 게 제일이란 걸 경험으로 알고 있었으니까.
* * *
LA의 대저택에서 한 스테파니의 예측은 정확했다. 실제로 크리스티 뉴욕은 당황하고 있었으니까.
“복구는 얼마나 걸리는 거야?”
“곧 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곧이 언제인데?”
“그건 저도 잘…….”
윌리엄은 그 말을 한 직원을 노려보았다. 크리스티 뉴욕이라는 거대 사무소를 총괄하는 그의 입장에서 이번 사태는 그야말로 비상사태였기에.
저따위 대답을 하는 부하 직원을 조만간 정리 해고하기로 마음먹었다. 미국에서 해고는 그리 어려운 게 아니었으니까.
“다시 물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나마 눈치가 있는지 행동은 빠릿한 상대였다. 그사이 그의 폰은 또다시 미친 듯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잠깐만, 나 전화 좀.”
전화기에 뜬 이름을 보며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름만 달랐을 뿐. 용건이 예측되는 전화. 이게 벌써 세 번째였기에.
“오우, 디킨스 씨. 오랜만입니다. 아, 서버요?”
그는 슬쩍 주변을 둘러보았다. 딱 봐도 아직은 복구가 멀었다.
“곧 될 예정입니다. 아하하하하.”
난처한 목소리를 하며 그는 적당히 넘어가려고 했다.
‘제발 빨리빨리 좀 해라, 이것들아.’
속으로 부하 직원들에게 욕지거리를 한 그. 다행히도 하늘이 그의 소원을 들어준 모양이었다.
“복구되었답니다!”
밖에서 들려오는 누군가의 목소리. 그건 그에겐 구원의 목소리였으니.
“오, 디킨스 씨. 서버가 복구된 모양입니다.”
전화를 하며 그 또한 다시 사이트를 눌러 보았다. 이전과 달리 잘 열리는 게 보였다.
“네, 제가 직접 확인했습니다. 이제는 문제가 없으실 듯합니다.”
겨우 전화를 끊은 그는 그제야 좀 긴장을 풀었다.
크리스티 사이트가 터져 나가다니. 이런 일은 뉴욕 사무소가 생긴 이래 난생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게 왜 하필이면 그가 사무소장일 때 겪게 된 건지 모를 정도로 특이한 일이었다.
“후, 이제 한숨 좀 돌리겠네.”
“저, 소장님.”
“또 무슨 일인데?”
“그게…… 여전히 서버 상태가 위험합니다.”
“뭐? 내가 최대치로 증설하라고 했는데?”
크리스티는 돈이 없는 회사가 아니었다. 명색이 세계 최대의 경매 회사 아닌가. 그렇기에 이참에 그는 서버의 상태를 최고로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그럼에도 어째 수하의 얼굴빛이 좋지 않았으니. 이상한 일이었다.
“그게…… 아무래도 직접 보셔야 알 것 같습니다만.”
그는 수하가 내미는 아이패드를 들었다. 그리고 두 눈이 동그랗게 변하고야 말았다.
“이, 이게 뭐야?”
크리스티 온라인 경매의 방식은 간단했다. 가입한 회원이 쓴 금액 중 가장 높은 금액. 그걸 현재의 낙찰가로 표시해 주는 방식이었으니까.
그런데 그 숫자가 심상치 않았으니.
“이거 최저 낙찰가가 얼마였어?”
“10만 달러입니다. 이번 온라인 경매 중에서는 꽤 괜찮은 매물이었죠.”
화가가 그린 지 얼마 되지 않은 그림이었기에 그림의 상태가 좋았다. 그리고 병원비를 위해 아내가 그림을 내어놓았다는 스토리 또한 훌륭했기에.
그 덕분일까. 이 그림은 어지간해서는 낙찰되리라 생각하긴 했다.
설마하니 이런 광경까지 예상한 건 아니었지만.
“근데 벌써 100만 달러를 넘어가고 있잖아? 내가 맞게 본 거지?”
숫자가 계속해서 바뀌고 있었다. 그 옆의 다른 그림이나 귀금속들의 숫자가 꼼짝도 하지 않고 고정된 것에 비하면 눈에 확 들어올 정도로.
100만 달러.
사이트가 이제 막 복구되었다. 그런데도 기존 시작가였던 10만 달러를 이미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무려 10배나 넘게 차이를 내면서 말이다. 그가 이곳 크리스티 뉴욕 사무소를 맡은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으니.
“잠깐만. 그럼 지금 사이트가 터진 원인이…….”
그는 손가락으로 화면을 가리켰다. 설마하니 이렇게 대놓고 원인 파악을 빨리하게 될 줄이야.
“예, 그렇습니다. 이 그림이 원인입니다.”
“와우, 고작 그림 하나 때문에 이 사달이 난 거였어?”
어이없다는 듯 그는 중얼거렸다. 그런 그의 옆에서 부하 직원이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애초부터 추정가가 너무 낮은 게 원인이었습니다.”
원래 문제가 터지면 누군가는 수습을 해야 하는 법.
크리스티 뉴욕 사무소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는 재빠르게 입을 열었다. 이런 건 먼저 선수를 치는 사람이 승리하기 좋다는 걸 아는 이상,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