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Yun-bok's Modern Art Studies in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86
86화 두고 보시죠, 작가님
문제가 발생하면 원인을 찾아야 하는 법. 이건 크리스티 뉴욕 사무소에서도 동일하게 발생하고 있었다.
부하 직원의 말에 윌리엄은 귀를 기울였다.
“그게 무슨 소리야? 자세히 말해 봐.”
“최근 작가가 7만 달러에 팔았다고 추정가를 7만에서 10만으로 정하다니…… 그건 어린애들도 할 수 있는 일 아닙니까.”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확실히 감정가를 정하는 이번 방식은 간단하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단순하게 정해 버리니, 실제 시장 가격과 맞지 않았던 게 분명합니다.”
상대의 확신 어린 말에 그의 인상은 절로 찌푸려졌다. 이쯤 되자 슬슬 궁금해지기 시작하는 게 있었기에.
“이 그림의 추정가를 정한 사람들 명단 좀 가지고 와.”
“예? 갑자기요?”
“그래! 이 꼴을 만든 것들이 그놈들이라며. 그놈들이 측정만 잘했어도 우리가 이런 일을 당했겠어?”
말을 하다 보니 더 열이 뻗쳤다. 추정가를 얼마나 대충 측정했으면, 벌써 10배의 차이가 난다는 말인가.
“지금 여기 봐 봐. 벌써 100만 달러야. 아니, 이 기세면 조만간 200만 달러겠네.”
그들이 말하는 사이에도 숫자는 계속해서 변하고 있었으니. 100만 초반을 바라보던 금액은 이제 200만에 육박해 있었다.
심지어 그 기세가 아직은 꺾일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이거 5월 경매잖아. 그럼 마감까지 1주일도 넘게 남은 거 아니야?”
“정확하게는 2주입니다. 보통 2주간 진행되고 남은 2주를 그다음 경매 홍보하는 시간을 가지니까요.”
매월 진행되는 온라인 경매의 루틴이 그랬다. 그리고 이로 인해 발생한 사소한 문제도 있었으니.
“그래서 말입니다만, 문제가 하나 더 있습니다.”
“여기서 또 문제가 있다고?”
이미 문제는 발생했다. 10만 달러짜리가 200만 달러에 가까워지는 사이. 발생한 문제가 한 둘이 아니지 않은가.
“별건 아닙니다. 만 하루 경매 사이트가 먹통이 되며 고객 불만이 있는 상태인 것뿐이니까요.”
혹시나 불똥이 더 튈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원래 이런 문제에 대한 보고는 최대한 줄여서 하는 게 맞았다.
“……여차하면 우리 쪽의 피해가 크다는 건가?”
“2주간이나 경매가 진행되는 이상, 그렇지는 않습니다만…….”
이게 만약 시작이 아닌 경매가 끝나기 직전에 발생했다면. 그야말로 아찔한 일이었다. 원하는 물건을 낙찰받지 못한 고객들의 불만이 이어질 것이 뻔했기에.
그렇게 생각하면 시작할 때 벌어진 게 다행이리라. 아니나 다를까. 상대의 말도 이와 연관이 되어 있었으니.
“만약 대응을 잘못하면 그때는 좀 위험해질 수도 있을 듯해서요.”
“그냥 제일 간단하게 경매 시간을 하루 더 주는 거로 하자고.”
머리가 아프다는 듯 한쪽 손으로 이마를 짚은 채 입을 여는 윌리엄이었다.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조치하겠습니다.”
그랬다간 스케줄이 꼬인다거나, 다음 경매에 지장이 있다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도저히 할 분위기가 아니었으니까.
“그럼 얼마까지 올라갈진 예측 가능한가?”
“그게, 이런 일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보니 쉽지는 않습니다만…….”
“……그래서 못 하겠다고?”
“아뇨, 역대 추정가와 실경매가의 격차를 조사해 보면 예측 가능할 겁니다.”
“그럼 얼른 해 오도록. 이 사고에 대해 변명하려면 예측이라도 잘해야지.”
본사에 올릴 보고서. 그는 이 사고에 대한 수습을 위해 이를 완벽하게 쓰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끝까지 이번 사태에 대비하는 걸 잊지 않았으니.
“그리고 서버 안 터지게 조심해.”
“물론입니다. 계속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한 번 벌어진 일은 실수로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그게 반복된다면 그건 무능력이 될 수 있으니.
상대의 반응에 끄덕이던 윌리엄은 고개를 돌렸다.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이.
“아차차, 한 가지 더 준비해 줘야 할 것 같은데.”
“뭔지 말씀해 주시죠. 바로 준비를 시작하겠습니다.”
“기사 검수.”
“예?”
이해할 수 없다는 그의 얼굴을 보며 윌리엄은 혀를 끌끌 찼다. 이렇게나 눈치가 없을 줄이야.
“이 사달이 났는데 기자들이 가만히 있겠어?”
“그럼…….”
“우리의 실수를 가리고 이쪽을 부각하자고.”
그는 다시 화면을 바라보았다. 이 순간에도 숫자가 계속해서 바뀌고 있는 그 화면을.
“후후, 마침 좋은 그림 나올 것 같으니까.”
그는 감각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미국의 현대 미술 시장은 새로운 이름을 기억하게 되리란 것을.
* * *
자고 일어나니 세상이 바뀌었다. 난 설마하니 환생씩이나 하고서도 이 말을 실감할 줄은 몰랐다.
“잘 가.”
“안녕.”
아무 생각 없이 나온 학교의 하굣길. 고등학교 3학년이라 다른 친구들은 늦게 끝났다.
그러나 거기에 난 예외였기에. 남들보다 하교가 빠른 편이었다. 문제는 교문 앞에서 벌어졌다.
“학생. 혹시 이 학교에 신윤성이라는 학생이 다녀?”
“잘 모르겠는데요. 전교생의 이름을 아는 건 아니라서요.”
바로 내 코앞에서 벌어진 기가 막힌 광경이었다. 이 학교에 다니는 신윤성이라는 이름의 학생은 아마도 나 하나뿐일 것이다.
그 이야긴 지금 저 정체불명의 사림이 찾는 게 나란 소리 아니겠는가.
“학생. 잠깐만. 혹시 신윤성…….”
“아, 몰라요. 저 바빠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요즘 아이들은 참 까칠했다. 그리고 그들이 지킬 수 있는 건 고작해야 교문 앞 정도였다.
교문을 벗어난 아이들은 그야말로 전광석화처럼 갈 길을 가며 사라지고 있었으니까.
하물며 그 학생의 숫자가 극히 적었다. 지금 나가는 학생들은 나처럼 이른 하교를 하는 이들뿐이었으니.
그 덕분일까. 그들은 하교하려는 학생들 하나하나를 최대한 붙잡고 물어보려고 하는 중이었다.
“저기 학생, 혹시 신윤성이란 학생 알아?”
‘설마하니 면전에서 이 질문을 들을 줄이야.’
이 질문 덕분에 확실해진 것이 하나 있었다. 이들은 내 얼굴을 모르는 상태였다.
그런데도 학교까지 찾아왔다니. 정보를 반쯤만 어설프게 알고 있다는 소리란 뜻.
‘대체 왜 온 거지?’
슬쩍 호기심이 피어오른 나였다. 발걸음을 어정쩡하게 멈춘 채 그들에게 역으로 질문을 던졌다.
“윤성인 같은 반 애인데요. 근데 왜 찾으시는 거예요?”
물론 이 순간, 내가 신윤성이라고 밝히진 않았다. 혹시 아는가, 이들이 해코지를 하려고 온 사람일 수도 있었다.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이 정체불명의 남성은 반색하며 내게 질문 세례를 퍼붓기 시작했다.
“오, 아는구나! 혹시 그 신윤성이 그림 그리는 학생이지?”
“그림이요? 그건 모르겠는데요.”
“그럼 너네 반 친구인 윤성이가 무슨 경매 같은 거 한다고 하지 않았어?”
“음, 그건 더 모르겠는데요.”
내 질문에 대한 답을 하는 대신 본인이 궁금한 것만 물어보는 그. 하지만 다행히도 난 이 몇 가지 질문을 통해 대략적으로 유추할 수는 있었으니.
‘크리스티 경매 때문인가?’
그러고 보니 그게 종료된 날이 어제였다. 일단 정보를 파악한 내 볼일은 끝났다. 더 물어볼 것도 없었으니.
“말씀 안 해 주실 거면 저 그냥 갈래요. 안녕히 계세요.”
“어? 자, 잠깐만, 학생!”
뒤에서 날 붙잡거나 말거나 곧바로 집으로 향했다. 어쩐지 오늘은 작업실을 가는 대신 집으로 가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삐삐삑―
자연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간 난, 내 동물적인 직감에 스스로 감탄했다. 이미 집에는 익숙한 얼굴들이 모여 있었기에.
“……여기서 뭐 하시는 거예요?”
“응? 오, 우리 아들 왔네. 오늘은 작업실 안 갔어?”
일을 하러 가신 어머니와 아버지와 아버지. 그 두 분이 없었기에 원래는 집이 비어 있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 이 집에는 아버지와 더불어 다른 분들도 계셨다.
“아버지, 오늘 강의 아니세요?”
“중간고사 기간이라. 금방 끝났지.”
그러고 보니 이맘때가 대학교의 시험 기간이라고 들었다. 우리 또한 중간고사 기간이 며칠 전이었으니. 일리가 있었다.
그렇다면 다음은 이쪽이었다.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와 계셨네요?”
“흘흘, 우리야 좋은 소식이 있다고 해서 왔지.”
“……그리고 그 좋은 소식은 필립이 가져왔겠군요.”
내 눈에 들어온 마지막 사람. 그는 라고시안에서 일하는 필립이었다. 내 떨떠름한 말에도 그는 그 어느 때보다 활짝 웃는 얼굴을 한 채 날 반겼다.
“오, 우리 작가님. 학교 마치고 오셨군요.”
우리 작가님. 그 소름 돋는 호칭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유난히 친한 척을 하는 그를 향해 난 미간을 가늘게 좁혔다.
“……뭐예요? 갑자기.”
“작가님께 전해 드릴 소식이 있어서 이렇게 왔습니다.”
대충 예상은 갔다. 그렇기에 난 먼저 선수를 쳐 입을 열었다.
“경매가라면 이미 알고 있는데요.”
“쯧쯧, 절대 모르십니다. 그 얼굴은 실감을 못 하시는 게 분명해요. 우선 이걸 좀 보시죠.”
그는 혀까지 차며 내게 태블릿을 들이밀었다. 이제는 익숙하게까지 느껴지는 그 아이패드를 받아 들었다.
거기엔 기사 하나가 떡하니 펼쳐져 있었다.
* * *
―10만 달러로 시작해 최종 320만 달러 낙찰.
―32배 뛴 가격에 크리스티, “앞으로 예술계가 이 화가를 주목할 것”
[아시아문화 이수련 기자] 미국 크리스티 뉴욕 온라인 경매에서 10만 달러에 경매를 시작한 신윤성 작가의 그림 가격이 32배가 뛴 320만 달러에 최종 낙찰됐다.이 작품은 미국 크리스티 뉴욕 온라인 경매 역사상 처음으로 서버까지 폭파되게 만들어 화제다.
21일(현지 시각) 에프파이낸스에 따르면 미국의 유력 경매사 중 한 곳인 크리스티 경매로 나온 신윤성 화가의 작품 ‘경화수월(鏡花水月)’이 시작가 10만 달러에서 32배가 오른 최종 320만 달러(약 40억 원)에 낙찰됐다.
크리스티 관계자는 “그동안 해당 작가의 작품이 경매에 나온 적이 없어 감정가를 결정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며, “이에 작품이 판매된 가격을 고려해 10만 달러로 시작가를 정했는데, 경매 시작 후 바로 서버가 터져 직원들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더 놀라운 것은 서버가 겨우 복구된 이후에도 계속해서 숫자가 바뀌었다”며 해당 낙찰가를 가지게 된 사연을 설명했다.
또한 “크리스티에 처음 온 입찰자들부터 시작해 기존의 고객까지 모두 치열하게 경쟁하였다”며 “이 작가의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된다”고도 덧붙였다.
한편, 현지에서 인터뷰한 데이빗 아르트 현대 미술품 분석가는 “윤성 신 작가는 아직 젊은 작가인데도 그림에서 심상치 않은 깊이가 느껴지는 화가”라며 “오랜만에 나타난 대형 신인의 등장에 미술계가 들썩였다”고 덧붙였다.
이수련 기자 [email protected]
* * *
기사를 다 읽는 난 고개를 들었다.
40억 원. 분명 이건 많은 돈이긴 했다. 하지만 내가 직접 그림을 판 금액도 아니었기에. 당장 내겐 그다지 실감이 되지 않았다.
“40억 원이군요. 320만 달러라고 봤는데요.”
미국 달러로 320만 달러. 그걸 환율로 바꾸니 이 금액이 나오는 모양이었다.
“기사가 한국어로까지 난 건 신기하긴 한데…… 이게 오늘 이렇게 바로 오실 일이에요?”
“역시 작가님, 본인에 대한 자각이 없으시군요.”
그는 내 반응에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혀까지 찼다. 그러더니 이내 의미심장하게 입을 여는 게 아니겠는가.
“이건 시작입니다.”
“시작이요?”
“곧 있을 전시회와 아트 페어 전에 작가님 이름이 한국에 강하게 인식될 테니까요.”
40억 원은 분명 큰돈이긴 했다. 그러나 내가 알기로 한국의 몇몇 화가는 이미 이 정도 금액의 그림을 판 기록이 꽤 많았다.
“그 정도까진 아닐 것 같은데요? 다른 한국 화가들도 있으니…….”
“그분들과 작가님은 차이가 있습니다.”
차이라니 무슨 차이가 있다는 말인가. 같은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그림을 그리는 화가인데.
“두고 보시죠, 작가님. 조만간 제가 하는 말을 듣는 것보다, 더 확실하게 실감하실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