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Yun-bok's Modern Art Studies in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87
87화 얼마나 준비되셨습니까
필립의 말이 뭘 의미하는지는 곧 깨달을 수 있었다. 먼저 시작은 몇몇의 작은 기사였다.
하지만 내 국적과 나이가 드러나자 한국에서는 서서히 불타오르기 시작했으니.
수면 아래에서의 관심 정도였다. 하지만 때마침 영화가 개봉하면서 그 관심도는 극에 달하기 시작했으니.
40억 원은 분명 적은 돈이 아니었다. 몇몇 한국 화가의 그림 중에서도 이 가격을 넘은 건 꽤 있었다.
그러나 필립이 말한 다른 점이 뭔지 파악하긴 쉬웠다. 문제는 내 나이와 생존 여부였다.
유럽이나 미국과 달랐다. 한국에서 생존 화가 중에도 몇몇 있기는 했다. 단독 그림이 40억이 넘은 화가가.
하지만 그 화가 중에 나이가 가장 어린 화가는 단연코 나였다. 조선에서는 화가의 나이를 덜 보았기에 나온 내 착각. 그 여파는 굉장했다.
무명이 갑자기 스타가 되었다면 이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정답은 ‘동종 업계의 사람들을 반응을 통해서’였다.
그럼 작은 스타가 그야말로 대스타가 되면 알 수 있는 방법은? 정답은 ‘댓글을 통해서’였으니.
그걸 확실하게 알게 된 나였다. 대체 무슨 기준인지 알 수 없었지만, 알고리즘의 선택으로 보게 된 한 영상. 거긴 그야말로 불타오르는 중이었다.
[18세의 화가 그림이 40억 원에 팔리게 된 사연]18살의 화가와 40억이라는 숫자의 조화. 이는 많은 사람들의 클릭을 불러온 게 분명했다.
어차피 내용은 뻔했으니까. 난 쭉 아래로 내려 댓글들을 확인했다. 거기엔 생각보다 많은 글이 쭉 달려있었다.
└윤성 신? 이거 한국인 맞지?
└맞음. 영상에도 나오잖아. 한국인 화가라고. 크리스티 소개에도 나옴. 빼박 한국인.
└미친…… 18살에 40억
└18살이면 고2임. 저 나이에 40억짜리 그림이면 더 나이 들면 뭐가 되는 거지?
└만 나이면 고2 아니고 고3이다. 그렇다고 해도 미쳤다 진짜. 그 나이에 40억짜리 그림을 그리다니.
└이거 직접 볼 수 있는 방법은 없나? 한번 보고 싶은데. 18살짜리의 40억 그림이면.
└직접은 못 보고 영상으로는 볼 수 있지.
└그거야 지금 보고 있잖아. 댓글 난독인가. 직접 보고 싶다는 건데.
└이거 영화에도 나온다는데? 너트뷰 검색 ㄱㄱ
└오… 그래서 더 비쌌던 건가. 역시 영화가 갓이다.
└영상에 나온 사진만으로도 어딘가 묘하네. 따뜻한 마을 풍경인데 기분은 처짐. 나만 그럼?
└그게 이 그림의 묘미라잖아. 영상 제대로 안 본 사람이 왜 이렇게 많아?
└맨날 뭔지 이해할 수 없는 그림만 보다가 이런 거 보니 좋다. 이게 미술이지.
└근데 신윤성이 누구? 이 정도 화가면 정보 검색하면 막 쭉쭉 나와야 하는 거 아님? 40억인데!
└한국 화가라는데 왜케 자료가 없냐. 다들 일 안 하는 듯.
└이제 냄새 맡고 좀 올리는 중인 것 같은데. 최근 자료들은 좀 보여.
그 밑에도 댓글은 꽤 길게 있었다. 나이가 어리다는 것. 그리고 살아 있는 한국인 화가라는 것.
이 두 가지 특이점 덕분에 난 한국에서 꽤 인기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 생각은 내 오산이었으니. 오히려 한국은 축소된 것인 모양이었다.
* * *
에드워드 감독님의 영화가 드디어 개봉했다. 감독님이 꽤 신경을 쓰고 계셨기 덕분일까.
미국과 한국에서 동시 개봉을 할 수 있었다. 그로 인해 난 꽤 빠르게 영화를 볼 수 있었다.
대형 블록버스터처럼 영화관이 많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꽤 많은 곳에서 상영을 했으니까.
불이 꺼지고 나오는 화면들. 그중 역시나 내 집중을 가장 잘 잡아챈 건 내 작품이 나온 장면이었다.
[이 그림이 어찌 보이나?] [전 그림을 감상할 만큼 여유가 있지도 고상하지도 않습니다만.] [이건 내가 주는 한 가지 시험이네. 그러니 답해 보게나.] [예예, 뭐 물어보시니 답해 드릴 수밖에요.]노년의 중후한 맛이 있는 남자와 젊지만 패기 넘치는 상대. 그들의 대화는 스크린에서 또렷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다들 좋아 보이는군요. 아이들은 노느라 정신이 없고, 굴뚝마다 빵 만드는 연기가 가득한 데다 눈이 소복이 쌓인 광경이 예쁘네요. 되었습니까?] [정말 그렇게 보이나? 이 그림이 평화롭고 아름답다고?]그 질문에 젊은 쪽이 잠시간의 침묵을 지키는 게 보였다. 그러나 금세 잘못한 게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네, 그런데요.] [재미있구만. 재미있어.] [뭐가요?] [이 그림의 진실은 자네의 생각과 정반대거든.]그 말을 시작으로 그는 내 작품의 의도를 정확하게 읊기 시작했다.
[저 멀리 보이는 고층 건물과 달리 허름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곳. 여긴 빈민가라네.] [자네가 노느라 정신없다던 아이들은 눈 오는 날 옷도 제대로 못 입고 떠는 아이들이지. 노느라 묻은 게 아니라 거리를 배회하다 먼지가 묻은 것뿐.] [마지막으로 굴뚝? 그건 빵 만드는 굴뚝이 아니라 쓰레기를 태워 집 안을 덥히는 것이라네. 그 예시로 집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쓰레기를 들고 있지. 밖으로 버리러 나가는 게 아니라.] [그만큼 돈이 없는 것이지. 이 그림 곳곳엔 이런 부분이 잘 드러나 있어. 헌데 명색이 영웅이라는 자네가 이걸 알아채지 못하면 어쩐다는 건가.] […….] [대놓고 그림에 나타나 있는 것도 못 알아채면서, 사람 사이의 일을 논하겠다고?]화면 속 상대의 얼굴이 빨갛게 변했다. 연기를 참으로 잘하는 배우였다.
[더 섬세하게 주위를 살피게.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 그게 자네의 목을 조를 테니.] [되었습니다. 알아들었어요.] [정말 다 알아들었나?] [그림의 특징 몇 개 발견 못 했다고 그러는 거면…….] [난 아직 가장 큰 특징은 말하지도 않았다네.] [……그게 뭡니까?] [맞춰 보게나. 충분히 시간을 줄 테니.]그 순간 화면은 정말로 내 그림을 세밀하게 보여 주기 시작했다. 소리까지 죽인 채 온전히 그림을 감상하라는 것처럼.
그 순간은 영화관 안쪽도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모르겠는데요.] [끌끌, 정답은 사람의 표정에 있다네.] [분명 이 그림 속의 사람들 현실은 녹록지 않지. 그럼에도 이들은 표정은 오묘해. 이 힘든 현실을 잘 살아가겠다는 것처럼.] [……제가 보기엔 절망하는 것 같은데요.] [후후. 정말 그리 생각한다면, 지금 자네의 기분이 그런 거겠지. 기회가 된다면 나중에 다시 보게나. 이들의 표정이 변한 게 보일 테니.]* * *
영화가 끝이 났다. 내 감각이 이상한지 잘은 모르겠지만, 내 느낌상 상당히 잘 만들어진 작품인 것 같았다.
다른 이들의 생각이 궁금해진 난 슬쩍 인터넷을 들어가 보았다.
이 시대는 폰만 있으면, 남의 반응 정도는 금방 알 수 있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이미 곳곳에는 영화에 대한 감상평이 널려 있었다.
―정말로 신기함. 그림이 양쪽 측면 모두로 보임.
―이건 백 프로 감독이 의도한 그림이지.
―화가의 의도에 감독이 맞춘 거 아님? 예전에도 그런 영화들 좀 있었잖아.
―근데 이거 누구 그림임?
―왜 기사 떴잖아. 신윤성 화가 거라고. 그래서 40억에 팔린 듯. 영화에도 나온 거니까.
―40억 ㄷㄷ 누가 산 건지는 나왔나?
―몰루? 어떤 부자가 샀겠지.
역시나 이 40억에 관한 이야기는 빠지지 않았다. 과연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림 가격에 대한 이야기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어? 야. 신윤성!”
그때였다. 누군가 등 뒤에서 내 이름을 크게 부르는 게 들렸다.
“신윤성? 그 그림 화가 이름이 신윤성 아닌가?”
“윤성이란 이름이 뭐 한두 개야? 당연히 동명이인이겠지.”
바로 옆에서 하는 소리에 어쩐지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에 난 재빨리 뒤를 돌아 내 이름을 부른 당사자를 바라보았다.
“뭐야, 너 여기 어쩐 일이야?”
“나 부모님이랑 영화 보러 왔는데.”
동원이는 여기서 만난 게 반가운 듯 금세 이쪽으로 다가왔다. 등 뒤에 서 계시던 우리 각자의 부모님들께서도 서로 인사를 하는 게 보였다.
“아이고,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저희 아들이 항상 민폐죠…… 작업실도 많이 찾아간다고 들었는데.”
서로 훈훈하게 이야기하시는 두 쌍의 부모님을 보며 난 입을 열었다. 당연히 상대는 동원이였다.
“고3이 영화라…….”
“야, 고3은 영화도 보지 말란 법 있냐? 너도 봤잖아!”
난 내 앞에 있는 친구. 동원이와는 다르지 않은가. 이미 갈 대학이 정해진 상황이었으니. 입시생이라고 하기엔 미묘했다.
“그러니까. 이거 왜 이렇게 빨리 개봉해? 분명 나 대학 가고 나서야 볼 줄 알았는데.”
“그렇게 됐다. 에드워드 감독님 열정이 대단한 걸 어쩌겠냐.”
내 그림을 쓰셨기 때문일까. 감독님은 한국 쪽에도 신경을 많이 쓰셨다.
‘뭐. 필립의 말에 따르면, 영화 시장에서 한국이 비중이 커서 그렇다는데,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거지.’
어떤 이유 때문인지는 확실치 않았다. 중요한 건 같이 개봉을 했다는 것 아니겠는가.
“대형 블록버스터 영화처럼 엄청나진 않지만, 입소문은 꽤 있는 게 확실해. 영화 중박은 칠 듯.”
“그래?”
“엉. 영화도 잘 나왔고, 무엇보다 윤성이 네 그림이 나온 장면이 진짜…….”
나도 영화를 보고 왔기에 동원이가 뭔 소리를 하는지 알아차렸다. 확실히 내 그림을 사이에 두고 하는 두 사람의 대화는 꽤 인상이 깊었다.
“크크크, 그래도 내가 먼저 봤다. 이것들 이제 다 스포로 죽었음.”
두둥! 하는 효과음이라도 넣어 줘야 할 것 같았다. 그야말로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하는 그 말에 내 대답이야 뻔했다.
“걔네가 죽는 게 아니라, 너가 맞을 것 같은데.”
“……그럴까?”
“그리고 애들도 이번 주말에 보겠다고 했어.”
“하긴. 네 그림이 나온다니까 더 관심이 가긴 하지.”
고개를 끄덕이던 동원이는 이내 생각났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야, 근데 이거 끝나고 뭐 있음?”
“없을걸.”
“그럼 우리 같이 밥 먹으러 가겠는데? 저기 봐 봐.”
동원이의 말은 정확했다. 우리들의 부모님은 그 짧은 시간에 의기투합하신 듯 이미 서로 하하호호 웃고 계셨다.
그러더니 금세 식사 자리까지 잡는 게 아니겠는가.
“뭐, 맛있는 거 먹으러 가면 좋겠지.”
천천히 어른들을 따라가며 난 고개를 끄덕였다.
* * *
얼마 전에 내 그림이 40억에 팔렸단 이야기를 할 때만 해도 필립은 활기차기 그지없었다.
얼굴빛도 환했고 표정 또한 무척이나 밝았으니까.
그러나 오늘 본 그는 그때와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으니. 초췌한 게 딱 봐도 내가 며칠간 밤새워 그림을 그릴 때의 모습이었다.
“저기, 괜찮으세요?”
호록―
차가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무슨 생명수 마시듯 하는 필립. 그런 그를 보며 난 일단 안부부터 물었다.
“……제가 이상해 보이나요?”
“이상하다기보단, 엄청 피곤해 보이시는데요.”
“확실히 한국에서 미국의 일을 하는 건 좀 힘이 드네요.”
일리가 있었다. 미국과 한국의 시간은 그야말로 정반대에 가까웠다.
거기가 낮이면 여긴 밤이었으니. 이 먼 곳에서 그쪽 일을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리라.
“그래도 지금까지 계속하신 거 아니었어요?”
“요즘 좀…… 많이 바쁘거든요.”
필립은 한 번 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이켰다. 그제야 정신이 좀 들었다는 듯. 한층 또렷해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전시회 문의가 아주 살벌할 정도로 많습니다.”
“전시회요?”
“그런 의미에서 작가님, 작품은 몇 점까지 준비되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