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Yun-bok's Modern Art Studies in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94
94화 화가 VS 명품 브랜드
신윤성 화가와의 아트 콜라보는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보였다.
화가 본인만 동의하면 각종 마케팅 용품을 만들 생각에 들떠 있던 마케팅본부. 그들에게 찬물을 끼얹은 건 의외의 사람이었다.
“누가 뭘 해?”
마케팅본부의 이명우 본부장은 제 귀를 의심했다. 굉장히 어이없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으니.
보고하러 들어온 부장의 말에 그는 슬슬 열이 올라왔다.
“그, 그게 김정후 본부장님께서 이건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며 반대를…….”
김정후 본부장. 대외협력본부의 본부장이었다. 그보다 선배인 동시에 이미 본부장 경력도 꽤 길었으니.
어지간한 일에서는 다른 본부장들도 한 수 접어 주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날카롭던 그의 반응이 한층 누그러들었다.
“우리 마케팅본부 일에 왜 대외협력본부장이 태클을 걸지?”
이렇게 말하는 이명우 본부장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사내 정치의 단면. 그게 시작될 기미가 보였으니까.
“그…… 이미 대외협력 쪽에서 협의 중인 명품 브랜드가 있다고…….”
“쯧, 이래서 업무가 겹치면 안 된다니까.”
대외협력본부와 마케팅본부.
분명 대기업임에도 어쩔 수 없이 업무가 겹치는 부분이 있었다. 잘 없는 경우긴 했음에도 일단 문제가 생기면 각 본부 간 갈등은 피할 수 없었으니.
‘차라리 내가 한번 가 보는 게 낫겠군.’
어차피 층이 다를 뿐. 대외협력본부장실의 위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당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본부장님? 어디 가십니까?”
“근무 시간 중에 타 본부 본부장 좀 만나는 거야 문제없지 않나?”
“그거야…….”
“잠깐 다녀오지.”
말끝을 흐리는 직원을 내다 버린 채 그는 발걸음을 옮겼다. 성큼성큼 큰 보폭으로 도착한 곳은 다른 본부의 본부장실이었니.
그 앞에 있는 젊은 비서. 그녀가 슬쩍 자리에서 일어나는 게 보였다.
타 팀의 임원급이 방문했으니. 자연스러운 행동이긴 했다.
“무슨…….”
어쩐 일로 왔냐는 그 뻔한 질문에 그는 턱짓으로 문을 가리켰다.
“안에 있으시죠?”
본부장이 있냐는 물음을 알아들은 그녀. 재빠르게 전화를 들어 안쪽에 알리려고 했다.
“예, 계십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됐어요. 제가 직접 노크하죠.”
직접 문 앞으로 다가간 그는 망설임 없이 손을 들어 두드리기 시작했다.
똑똑―
“뭡니까?”
안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딱딱했다. 잠시 입가의 근육을 푼 명우는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저 마케팅본부 이명우입니다, 본부장님. 좀 들어가도 될까요.”
달칵―
안에서 문이 열렸다. 직접 마중을 나온 상대를 향해 그는 활짝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본부장님이 직접 환대해 주시다니, 감사하군요.”
“나야말로 층도 다른 여기를 직접 찾아와 주니 고맙지요. 역시 젊은 게 좋아. 아주 힘이 넘쳐.”
그 미묘한 어투에서 그는 이미 명우가 왜 왔는지 알고 있는 느낌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자리에 앉자마자 그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아닌가.
“근데 이 본부장, 혹시 성효림 관장과 아는 사이인가요?”
같은 본부장이기에 존대는 하고 있는 상대방.
하지만 미묘하게 아래로 보고 있다는 것을 회사 생활이 긴 그가 모를 리 없었다.
그러나 저쪽은 같은 본부로 끝난다고 해도 마케팅본부보다 그 힘이 강력했다.
그렇기에 그는 갑작스러운 질문에도 순순하게 답을 하였으니.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갑자기 성효림 관장이라니요.”
성효림 관장.
누군지는 알고 있었다. 현 홍림의 관장인 그녀. 하지만 이들이 알고 있는 그녀에게는 다른 명칭이 하나 붙어 있었다.
바로 그들이 몸담고 있는 이 회사. 오너의 딸이었으니까.
“회장님 따님을 원래 알고 있는 사이냐고 물어보고 있는 겁니다.”
“직접 뵌 적도 없습니다만.”
애초부터 오대전자와 홍림아트는 일정 부분 거리가 있었다. 한쪽은 화랑이었고, 한쪽은 전자 쪽 기업이었기에.
더군다나 딱히 오너 일가의 일거수일투족까지 주목하는 게 아닌 그로서는 딱 이름만 들어 본 상대였다.
‘갑자기 그걸 왜 물어보는 거지?’
상대의 이해할 수 없는 반응에 그의 미간이 좁혀졌다. 그가 정답을 유추하는 그때. 저쪽에서 먼저 힌트가 흘러나왔다.
“성효림 관장님과 아는 사이가 아니라면, 난데없이 왜 국내의 화가랑 콜라보를 하겠다고 하는 겁니까?”
국내의 화가. 어투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못마땅함이 느껴졌다.
안 그래도 그 건으로 인해 여기 온 명우. 마침 저쪽에서 이렇게 판을 깔아 주니 말하기가 한결 수월했다.
“지금 신윤성 화가와의 아트 콜라보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예, 바로 그거입니다.”
역시나 명우가 왜 왔는지 아는 게 분명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명우는 확실하게 할 겸 속내를 쏟아 내기 시작했다.
“일단 신윤성 화가는 현재 가장 화제인 작가입니다. 본부장님께서는 40억 그림을 그린 18세 화가에 대한 기사를 보지 못하신 모양이시군요.”
상대가 삐딱하게 나온다면, 그 또한 그렇게 할 뜻이 다분했다. 명색이 같은 본부장 아닌가. 언제까지 선배나 상사 대접을 해 줄 생각 따윈 없었으니.
“심지어 그 화가가 대한민국의 화가인데, 우리가 아트 콜라보를 하지 못할 이유가 뭐가 있습니까?”
어딘가 냉기가 흐르는 그의 말에도 김정후 본부장은 느긋한 어조로 이야길 시작했다.
“물론 나쁠 건 없지요. 하지만 말 그대로 나쁠 게 없다는 거지. 좋다고는 할 수 없는 게 아니겠습니까.”
“……말장난하지 마시고 본론만 이야기해 주시죠.”
이 말일 기다렸다는 듯 그는 의미심장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더니 귀에 확 들어오는 단어를 입에 담았다.
“스넬이 콜라보를 제안했어요. 우리 대외협력본부의 성과죠.”
“스넬이요?”
세계적인 명품으로 유명한 브랜드, 스넬.
명품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 사람들은 있어도 스넬은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의 브랜드였다. 자랑스럽다는 듯 입을 열 만했으니.
“다음 콜라보로 스넬을 할 것 같으니……. 그 화가와의 아트 콜라보레이션은 어렵지 않겠습니까.”
당당히 승리했다는 얼굴을 보이는 상대. 그런 그를 보며 명우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스넬이면 이번에는 쉽지 않겠는데.’
화가 한 명 VS 오랜 역사를 가진 명품 브랜드.
마케팅을 모르는 다른 임원들은 분명 저쪽을 고를 것이 뻔했다.
‘헌데, 내가 보기엔 신윤성도 괜찮아.’
이미 그는 이번 결정을 계기로 신윤성 화가의 전시회도 한번 다녀온 상태였다.
사람들 속에서 반응을 본 순간, 그는 확신했다. 이번 아트 콜라보는 된다는 것을.
시기도 좋고, 화가의 작품성도 괜찮았다. 전자 기기인 스마트폰과 예술의 아트 콜라보라니.
이건 되는 작업이었다.
그런데 설마하니 그 콧대 높은 스넬이 이쪽으로 오겠다고 할 줄이야. 어지간한 기업과는 콜라보를 하지 않는 기업이기에 그 또한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물러설 수는 없는 법. 그 또한 한 본부의 본부장이었으니.
마침 그의 머릿속을 스치는 한 가지 아이디어가 있었다.
“이리된 김에 차라리 둘 다 해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둘 다요?”
그게 뭔 헛소리냐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그의 말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전 이번 아트 콜라보를 취소하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이미 뱉어 놓은 말도 있고요.”
그러니 같이하겠다는 뜻. 하지만 역시나 상대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걸 사장님이 승인해 주실 것 같습니까? 한 번 콜라보하는 데 들어가는 돈이 얼마인데…….”
콜라보레이션은 생각보다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작업이었다.
기존 생산 라인과 달라지는 것이 첫 번째요. 그에 따른 홍보까지 해야 했으니. 그게 두 번째였다.
떨떠름한 상대의 반응에도 그는 꿋꿋이 본인의 의견을 피력했다.
“그게 저희의 일이지 않습니까, 본부장님.”
“그렇다고 해도 무리입니다. 예산도 안 될뿐더러 실질적인 효용성도 별로예요.”
한 시즌당 하나. 그 정도가 딱 좋았다. 그러니 한 시즌에 두 개를 내겠다는 그의 말을 반대할 수밖에.
“이렇게 하시죠. 사장님은 제가 설득하겠습니다.”
“그게 무슨…….”
“누구의 안목이 좋은지 테스트할 기회 아니겠습니까?”
안목을 시험하겠다는 뜻. 이건 대놓고 도전장을 내민 것이나 다름없었다. 후배의 도발적인 말투에 그는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침묵을 지켰다.
여기에 명우는 아예 쐐기를 박아 넣었다. 상대가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도록.
“흐음, 이건 어떻습니까. 이번에 이기는 쪽이 앞으로 이런 행사는 전담하는 것으로 하죠.”
“……이런 행사면, 아트 콜라보레이션을 말하는 겁니까?”
“정확하게는 외부와의 협력 마케팅이나 홍보겠군요.”
“지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마케팅본부에서 이기면 다른 본부의 업무까지 잡아먹겠다는 것이었으니. 상대의 기가 막히다는 반응도 이해가 되었다.
“안 될 건 뭡니까? 뭐. 정 어렵다면…… 저희가 이 자리에 있을 때까지만 그렇게 하는 거로 하죠.”
명우는 이 기회를 빌어 도박을 시도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서로의 임원 임기만이라도 좋았다. 그가 이 자리에 있을 때만이라도 대외협력본부에서 하는 마케팅에 대한 간섭을 끊어 놓고 싶었으니까.
“동시에 내보면 알게 되지 않겠습니까?”
“…….”
“저희 중 누구의 눈이 좋은지 말입니다.”
자꾸만 마케팅본부의 영역을 침범하는 상대를 견제하기 위한 잽을 날린 것.
이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시간만 지나면 알게 되리라.
* * *
한국에서의 전시회가 끝이 났다. 내 이번 서울 전시회의 최종 성적표는 꽤 괜찮았다.
딱 떨어지는 숫자인 10. 바로 10개의 작품이 팔렸으니까.
‘가격 생각하면 이 정도 팔린 것도 말도 안 되는 느낌인데.’
오죽하면 필립이 내게 조만간 기사가 하나 더 나올 것 같다고 할 정도였다.
최근 한국에서 한 번의 전시회를 통해 이 정도 금액의 그림을 판 작가가 없다면서 말이다.
그 기사가 나올 때쯤이면, 내가 더 바빠질 것이 명확했다.
그렇기에 난 이 잠깐의 여유를 즐기기 위해 오랜만에 할아버지 작업실을 찾았다.
마침 내게 줄 것이 생기셨다며, 새로운 간식도 있다고 하시니. 그야말로 안성맞춤이리라.
“이게 뚱카롱이에요?”
“마카롱이라고 하는 거란다.”
“그 마카롱 중에서 크림이 넉넉한 걸 뚱카롱이라고 부른대요.”
“오호, 그럼 뚱카롱이 맞겠구나.”
바삭한 과자 사이에 들어 있는 달콤한 크림. 그 아름다움에 난 홀린 듯 간식을 집어 들었다.
‘맛있겠다.’
군침을 꿀꺽 삼킨 난 단숨에 입에 털어 넣었다. 크기도 한입에 먹기 딱 좋은 정도였다.
“흘흘. 천천히 먹어도 된다. 누가 뺏어 가는 거 아니니.”
날 보며 웃으시던 할아버지는 문득 생각나셨다는 듯 내게 질문을 하셨다.
“그나저나, 아트 콜라보라니. 그거 자세히 좀 설명해 보거라.”
“우물우물. 전화로 말씀드린 그대로인데요.”
이미 할아버지에게 오성전자에서 내게 아트 콜라보레이션을 제안했다는 걸 할아버지에게 말씀드렸다.
“네가 처음에는 단독으로 하는 것처럼 이야기 하지 않았니. 근데 스넬은 대체 무슨 소리인 게야.”
“아하, 그거요. 그쪽에서 그렇게 하자고 해서요.”
“후…… 윤성아.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게 아니야. 이건 네게 꽤 위험하단다.”
“위험이요?”
“그래, 스넬은 이미 잘 알려진 브랜드지. 스넬과 콜라보한 스마트폰이 나오면 꽤 많이 살 게야.”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이미 대충 필립을 통해 설명을 들은 나였다. 그렇기에 할아버지의 이야기에도 별다른 동요를 하지 않았다.
“그럼 네가 묻힐 수도 있거늘…….”
걱정스럽다는 듯 말끝을 흐리는 할아버지. 그런 할아버지를 향해 난 의미심장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