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Yun-bok's Modern Art Studies in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96
96화 이제는 기사로 접하는 작가님
신윤성.
익히 알고 있는 이름이었다. 10년 전의 인연 덕분일까. 유난히 그의 소식은 현민의 귀에 잘 들어왔다.
‘이제는 단순한 소식을 넘어 기사로 접할 수 있는 작가님이시지.’
업계에서의 소식이야 이미 한참 전부터 들려왔다.
지난 10년간 활동을 뜸하게 하는데도 그렇게 소식들이 들려오다니. 신기한 작가님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업계의 알음알음 정도가 아니라 아예 단골 기사로 볼 수 있었다.
경매의 낙찰 소식부터 시작해, 현재 전시회를 진행 중이라는 것까지 말이다.
“……신윤성 작가님이요?”
[예, 황금사자상 같이 수상하셨죠?]“그랬었죠. 10년 전에요.”
그 당시에도 보통의 어린아이는 절대 아니었다.
먼저 그 실력. 보통 미술계에서 천재라고 해도 기술적인 면이 두드러질 뿐이었으니.
탁월한 관찰력으로 세밀하게 그리거나, 혹은 본인만의 세계를 가지고 그쪽 그림만 잘 그리거나.
추상화면 추상화만. 정물화면 정물화만. 풍경화면 풍경화만을 잘 그리는 게 어린 천재의 대다수였다.
어쩔 수 없었다. 번뜩이는 감각이 타고났을 뿐. 세월의 힘을 빌어 성장을 한 건 아니었기에.
그런 의미에서 신윤성 작가는 일반적인 천재들과는 그 궤를 달리했다.
각 그림의 화풍에 이미 그때부터 능숙했다. 심지어 그 화풍에 본인만의 색채가 이미 들어가 있었으니.
특유의 동양적인 감각에 번뜩이는 창의성까지.
그 덕분일까. 이미 그 당시에 벌써부터 본인의 작품에 대한 확신이 있으셨다.
남들은 베니스 비엔날레의 수상을 현민이 주도한 줄 안다. 그것도 그럴게 당시의 신윤성 작가는 고작해야 초등학생이었으니.
오히려 그 때문에 지금 현민이 이렇게 된 것일 수도 있었다.
그에게 하는 기대는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작가의 역량인데, 실제론 그 정도가 아니었기에.
[신윤성 작가가 이번에 라고시안 소속으로 아트 바젤에 나온다는군요.]수화기 속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그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잠시 다른 생각을 했을 뿐. 대화를 아예 놓친 건 아니었다.
그로 인해 그는 곧바로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
“……설마 홍콩에 나오는 겁니까?”
[예, 이번에 열리는 아트 바젤 홍콩에 나온다고 하더군요.]역시나 그와 달리 세계적인 아트 페어인 아트 바젤이었다.
사실 낙수 효과를 기대하는 게 그가 참가하는 위성 아트 페어였다. 아트 바젤 홍콩을 위해 온 사람을 한 명이라도 더 붙잡기 위해 노력하는 일. 그게 그들의 할 것이었으니.
그렇기에 메인인 아트 바젤 홍콩의 참가 작가들은 그 근처의 작은 아트 페어 참가 갤러리들에게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중심 이벤트인 아트 바젤의 초청 작가를 알면, 비슷한 계열의 화가를 고를 수 있었으니까.
“신윤성 작가님 정도면 거기 나올 만하시죠.”
10살도 되지 않은 나이에 기묘할 정도로 본인의 작품에 확신이 가득했던 작가님.
마치 작품을 보는 사람들 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다른 이들의 욕망을 정확하게 캐치하셨었다.
고작해야 그 나이에 그랬던 작가였으니, 지금쯤이면 얼마나 발전했을지 감도 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 말을 들으며 현민은 한 가지 알아차릴 수 있는 게 있었으니.
“신 작가님이 홍콩에 나오셔서, 그쪽도 제게도 관심을 보였군요.”
이제야 완벽하게 이해가 갔다. 초대 작가 선정은 꽤 많은 요소들을 고려했다. 정말로 그가 말한 저 조건이 꽤 큰 영향을 미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원래 좋은 소식은 한 번에 오는 법. 지금의 현민에게 단비 같은 제안이 들려왔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님, 저희와 전속 계약을 해 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전속 계약. 딱 하나의 화랑에 소속되어 그림을 판매하는 것.
‘됐다!’
그는 하마터면 입 밖으로 소리를 지를 뻔했다. 괜찮은 갤러리의 전속 계약 화가면 일단 전시회는 문제가 없었으니까.
어느 유명한 작가는 갤러리를 골라서 전속 계약을 한다고 들었다.
그리고 더 대단한 작가는 아예 조건도 마구 조절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건 지금의 현민에게는 머나먼 남의 이야기일 뿐. 전속 자체가 어려운 게 그의 현실이었다.
그랬기에 이번 제안이 정말로 반갑기 짝이 없었다.
‘이번 계약만 하면…… 전시회도 하고 스승님께도 안 부끄러울 수 있어.’
우울했던 최근과 달리 희망이 부풀어 올랐다.
늘 부족한 제자에게 도움만 주시는 스승님. 모처럼 만에 스승님께 은혜를 갚을 수 있으리라.
[일단 아트 센트럴 준비해 주시죠. 작가님.]“네네, 알겠습니다. 시기는 이전에 말한 거랑 같은 거죠?”
[예. 아트 바젤 홍콩이 날짜를 바꾸지 않는 이상, 아트 센트럴이 바꿀 리가요.]아트 센트럴은 아트 바젤 홍콩의 위성 아트 페어였다. 물론 위성이라고 무시하기엔 여기 낸 수많은 갤러리들이 퇴짜를 맞았다.
그렇기에 여기에 박현민 작가가 초청되었다는 이유 하나만 가지고도 이렇게 전속 계약 제안이 들어오는 것이었으니.
[자세한 계약 조건은 만나서 협의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예, 예. 제가 가겠습니다. 사무실로 가면 될까요?”
[그러시죠. 그럼 되시는 시간 말씀해 주시면, 준비해 두겠습니다.]마음이 조급한 현민은 최대한 빠른 날짜를 원했다. 그렇기에 얼른 약속 시간을 잡아 버렸다.
[그럼 그때 뵙겠습니다.]“옙,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그는 심호흡을 삼켰다. 기쁜 마음에 연신 제자리를 빙빙 돌던 그. 확실히 좀 걸었다고 현실감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잠시 주먹을 쥐었다가 폈다 하며 고민하던 그. 현민은 결국 마음을 굳혔다.
‘좋아, 하자.’
상대는 모르겠지만 이미 은혜를 입었다. 비록 안 풀리는 현실을 감추고 싶어 하는 소심한 인간이지만, 그래도 그는 염치를 알았다.
은혜를 입었으면 갚지는 못할망정 감사의 인사까지 안 할 수는 없었으니.
현민은 결심했다. 가장 찬란했던 그때를 만들어 준 인연.
아주 오래간만에 그 인연과 다시 한번 소통을 해 보기로. 그리고 이왕 하기로 했으면 좋은 일이 있을 때 해야 하는 법.
그는 얼른 전화기를 들어 자판을 꾹꾹 터치했다.
온 것만 확인하고 차마 열어 보지 못한 메시지. 그걸 읽어 보기 위함이었다.
* * *
미국의 뉴욕에서 전시회를 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한 번은 가봐야 했다. 드로잉 퍼포먼스도 해야 했으니.
할아버지의 허락도 받은 이상 내게 남은 건 일. 즉 그림 그리는 것밖에 없었다.
전시회를 위해 그림을 그리고 또다시 아트 페어를 위해 그림을 그리는 일.
즐거운 일인 건 분명했으나, 체력적인 한계 또한 찾아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 내가 고민 중인 부분. 그건 이제 나 혼자만의 체력을 갈아 넣어서 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으니.
‘혼자 이 큰 걸 단시간 내에 작업할 수는 없겠지?’
난 슬쩍 빈 종이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벽면 하나를 가득 채운 하얀색의 백지.
당장에라도 작업을 시작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 정도로 대규모 작업은 내게도 많은 시간이 필요로 했다.
‘역시 이건 아트 바젤 뒤로 미뤄야 하나?’
홍콩에서 하는 아트 바젤은 분명 대형 행사였다.
현재의 아시아 쪽 트렌드란 트렌드는 다 튀어나왔으며, 대대적인 미술품 판매 시장도 형성되었다.
그렇기에 어지간해서는 이번 작품을 해내고 싶었다. 요즘 전시회에서 보는 몇몇의 작품은 그야말로 거대했다.
당연히 나 또한 지고 싶지 않았으니. 그런 작품을 아트 페어에 내어놓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리 고민해 봐도 무리로 보였기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손이 빠르고 육체적인 나이가 젊은 나였다. 그럼에도 인간인 이상, 한계는 분명히 있었다.
‘음…… 역시나 손이 모자라.’
조선의 도화서도 종종 하는 작업. 그게 바로 다수의 화가가 함께 모여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일이었다. 요즘 말로 하면 일종의 협력 프로젝트라고나 할까.
‘대학에 들어가면 그나마 나으려나? 에일은 세계에서 우수한 작가들이 올 테니까.’
만약 이번 작품을 아트 페어에서 내보이지 못하면, 그다음이라도 노려야 했다. 어느 전시회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난 언젠가는 이걸 완성시킬 작정이었으니까.
‘우선은…… 이건 좀 두고 다른 것부터 해 보는 걸로 하자.’
속으로 한숨을 내쉰 난 작업실을 나서기 위해 정리를 시작했다.
집중하는 사이 미처 확인하지 못한 연락들. 이들을 확인하면서 말이다.
‘어?’
쭉쭉 손가락을 움직여 메시지를 확인하는 그때. 내 눈에 들어온 한 사람의 연락이 있었으니.
난 얼른 스마트폰을 부여잡고 손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슬럼프에 빠져 계시다고 들은 박현민 선생님. 막상 직접 보니 생각보다 얼굴 표정이 좋아 보이셨다.
“정말 오랜만입니다. 아, 제가 먼저 연락을 드렸어야 하는데…… 이거 죄송합니다.”
10년 전 꼬마 아이일 때도 예의를 잘 지켜 주신 선생님. 그 부분은 현재도 변함이 없으셨다.
자리에 앉자마자 사과부터 건네셨으니까. 한참을 잠시 신변잡기적인 이야기만 하던 와중이었다.
선생님께서는 꽤 조심스러운 어투로 입을 여셨다.
“작가님, 소식은 들었습니다.”
“제 소식이요?”
요 근래의 내 소식이라면, 전시회일 거라고 여겼다.
얼마 전 한국에서 끝난 전시회 이야기일 수도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잠시 뒤에 하는 뉴욕에서의 전시회일 수도 있었으니.
사실 경매는 이제 좀 시간이 지났기에.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선생님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내 예상과 달랐다.
“아트 바젤 홍콩에 들어가신다고요. 미국과 한국을 넘어 이제는 홍콩에까지 진출하시는군요.”
‘확실히…… 아트 바젤이 크긴 큰가 보네.’
라고시안이 어지간히 신경 쓰더라니. 그만한 이유가 있어 보였다. 오랜만에 만난 선생님이 제일 먼저 하는 이야기가 그쪽인 것을 보면 말이다.
“그나저나 작가님께서는 아트 바젤을 준비 중이시면…… 그야말로 엄청나게 바쁘시겠군요.”
“진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긴 해요.”
“그 정도로 바쁘신데도, 전시회에서 그렇게나 작품을 선보이시다니요.”
“그나마 전시회랑 아트 페어만 준비 중이니까요.”
입시를 먼저 끝내 놓은 게 다행이었다. 만약 이 와중에 진정한 고등학교 3학년 생활을 했다고 해 봐라. 내 몸이 두 개라고 해도 모자랐을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저라면 절대 못 했을 겁니다. 작가님께서는 그렇지 않아도 대형 작품을 꽤 하시잖습니까.”
10년 전 베니스 비엔날레에 내보낸 작품도 대형이긴 했다.
그림이란 게 사람의 감성을 건드리는 것이다 보니, 크기가 큰 대형 작품인 경우 장점이 상당히 많았다.
문제는 단 하나. 작가가 힘들다는 것에 있었으니.
이곳에 오기 직전까지도 하던 생각이었다.
쏟아 내야 하는 작품은 무궁무진하게 많은데, 그러기 위해선 너무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특히나 그 작품의 크기가 거대할수록, 드는 힘이 만만치 않았다.
“뭐, 확실히 쉽지 않기는 합니다만…….”
“보통 그 정도로 대형 프로젝트면, 보조를 두는 편이죠.”
애매한 내 말투에 박현민 선생님께서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러나 내 귀에 들어온 건 선생님이 하신 말씀 중 뒷부분이었으니.
“보조요?”
“예, 저 또한 그렇게 스승님의 보조가 되었고요.”
박현민 선생님이 말하는 스승님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어머니의 지인이자 이제는 원로 화가라고 불리는 유연미 작가였으니.
‘보조라……. 원래 그렇게 작업을 하긴 했지.’
지금보다 조선에서 더 많이 보는 방식이었다. 이 시대처럼 편리한 문물이 많은 시기가 아니었기에.
사람의 힘을 모으고 모아서 대형 작품을 탄생시켰다.
‘그러고 보니, 나 또한 시작은 아버지의 보조였지.’
조선에서 내 그림 인생의 첫 시작은 아버지의 보조였다. 신한평 화가. 내 그림의 기틀을 잡아 주신 스승님이자 아버지셨다.
사실 생각해 보면 나쁘지 않은 방식이었다.
보조.
그건 다시 말해, 일종의 도제식 지도에 가까운 행위였기에.
“괜찮은 방법일 것 같네요. 보조와 함께하는 것.”
믿을 만한 사람을 구한다면 정말 딱 좋았다. 당장은 못 해도 틈틈이 사람을 찾다 보면 괜찮은 인물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어? 근데 작가님, 설마 보조 구하려고 하십니까?”
“아, 지금 그 말씀을 들으니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서요.”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선생님의 눈에서 기묘한 광채가 뿜어져 나온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