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Yun-bok's Modern Art Studies in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97
97화 더 미쳤지, 10대거든
만약 내가 지금 앉아 있지 않았다면, 한 발 물러났을 기백. 그 박력을 느끼며 난 의문을 품었다.
‘뭐지?’
보조 이야기에 왜 박현민 선생님이 이런 반응이라는 말인가.
“작가님! 혹시 보조로 생각해 두신 분이 아직은 없으신 거죠?”
“당연히 방금 전부터 생각했기에 있을 리가 없는데요.”
그 순간이었다. 박현민 선생님께서 손가락을 들어 본인을 가리킨 것은.
“그런 저 어떠십니까?”
“예?”
“무급이라도 좋습니다! 아니, 원하신다면 돈을 낼 용의도 있습니다.”
선생님은 허리를 꼿꼿하게 펴셨다. 자세까지 바로 하시더니 이내 줄줄이 말을 쏟아 내기 시작하셨다.
“작가님이 작품 활동을 하시는 데 도움이 된다면, 뭐든지 좋습니다. 가능만 하면, 해 보고 싶어요.”
눈빛을 보아하니 진심이셨다. 그런 선생님을 보며 난 정말로 그가 꽤 몰려 있다는 걸 눈치챘다.
확정된 일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내게 말하는 것을 보니 말이다.
‘지금은커녕 조선에서도 하기 힘든 일이었는데.’
그림을 배우던 시절에도 어린 측이 연륜이 많은 화가를 보조해 주는 게 종종 있기는 했다.
궁에 들어가는 물건이라거나 해외에 공물로 들어가는 작품 같은 경우 말이다. 그러나 그 경우도 염연히 선배가 중심을 잡고 어린 화가들이 자잘한 부분을 그렸다.
정말로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양보를 한다고 해도 비슷한 경력의 비슷한 나이대 정도가 많았다.
아무래도 경력도 길고 나이도 많은 이를 같은 신분인데 부리는 건 껄끄러운 일이니까. 마음대로 작업을 할 수도 없었을 테고.
그 기억이 있는 나였기에 에일대에 희망을 걸었다. 내가 원하는 수준의 보조는 나보다 어리기 쉽지 않았으니까.
우수하다는 에일대 미대에서도 잘 찾을지 솔직히 의문이었다.
그런데 나보다 경력도 길고, 나이도 훨씬 위인 박현민 선생님이 먼저 이런 제안을 하다니.
‘세상이 진짜 변하긴 했구나.’
이 깨어 있는 시대에 다시 한번 감탄한 나였다. 내가 속으로 격세지감을 느끼는 사이에도 선생님의 눈빛은 초롱초롱 빛나셨다.
“작가님이 소속되어 있으신 라고시안의 다른 화가들은 이미 그렇게 하시지 않나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다른 화가들까지 관심을 가진 건 아니라…….”
말을 하다 보니 생각하는 건 있었다. 온전히 홀로 작업하는 나와 달리 라고시안의 작가들은 본인들만의 크루가 있는 경우가 많았다.
몇몇 마음이 맞는 예술가들이 함께 모여 크루를 만든다고. 얼핏 필립이 내게 이야기해 준 게 기억이 났다.
“물론 저처럼 문하생 형태로 들어가는 경우도 있지만……. 작가님께서는 라고시안 소속이시니, 동료를 방법도 괜찮으시죠.”
“그래요?”
“작품 활동이라는 게 아무래도…… 혼자 하면 외로운 일이 종종 있죠. 함께 작업하면, 그거도 극복된다고 하더라고요.”
확실히 종종 외로운 면이 있었다.
온전히 혼자서 모든 것을 책임지는 활동인 만큼, 내가 감당해야 하는 것도 많은 게 사실이었기에.
내가 그쪽으로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현민 선생님께서는 다시 아까의 이야기로 회귀하셨다.
“만약 정말로 작가님께서 보조가 필요하시다면, 저는 어떠십니까?”
“선생님을 무슨 보조로…….”
“혹시라도 제가 이름을 넣어 달라고 할까 봐 걱정하시는 거면, 절대 그럴 일 없습니다.”
“아니, 그것보다도요.”
작품에 이름을 넣고 빼는 것. 당연히 그 문제도 논의되어야 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따로 있었으니.
“이전과 달리 협업이랑은 좀 다르지 않겠습니까.”
10년 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한 협업. 그로 인해 우리 둘은 세계 1등이라는 상도 얻었다.
나로서는 그걸 계기로 라고시안과의 전속도 맺을 수 있었으니. 여러모로 내게 특별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때, 나와 선생님이 한 건 대등한 관계의 협업이었다. 서로의 작품을 만들고 그걸 조화시킨 것이었으니.
하지만 이 경우는 달랐다.
“이건 엄연히 제 작품인걸요. 정말 딱 보조의 역할만 하시게 될 텐데요.”
당연히 이름도 나란히 들어갈 가능성이 적었다. 어지간한 역할을 하지 않는 이상.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으니.
내가 원하는 건 정확하게 내 지시를 따라 줄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난 에일대학교에 희망을 건 것이었다.
1년이나 2년 정도 시간이 흘러 에일대 미대에서 선배가 된 나라면 후배들을 보조로 맞이할 수 있었을 테니까.
넉넉한 보수에 적절한 시지를 할 자신도 있었다.
그런데 이걸 선생님보고 하게 하라니. 이 무슨 소 잡는 칼로 닭을 잡는 행위란 말인가.
“딱 보조 역할. 제가 원하는 게 바로 그거입니다, 신 작가님.”
“……아니, 왜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염연히 자기 작품을 만들 수 있는 화가가 아닌 보조 역할을 왜 하려고 한다는 말인가.
“다른 사람의 작품 활동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발전이 되니까요.”
“……그런 거예요?”
“물론입니다.”
확신에 차 말하는 선생님과 달리 내 기분은 떨떠름해졌다.
‘이건 아무래도 성향 차이인 것 같은데.’
무슨 생각인지 잘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선생님께서 의도하신 건 알아들었다.
“일단…… 소속사인 라고시안과도 한번 이야기를 해 봐야겠습니다.”
“당연히 그러셔야죠.”
기분 탓일까. 어째 그 뒤로 선생님의 표정이 한결 맑아지신 게 보였다.
상대방의 기분이 좋아 보이니, 나 또한 나온 음식을 맛있게 먹으며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정작 만난 이유인 박현민 선생님의 슬럼프에 대한 이야기는 단 하나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 * *
졸업 시즌도 지난 이 시기의 대학교는 평화로웠다.
그렇기에 그 어느 때보다 조용한 시기이기에 데이빗의 호들갑은 더 크게 다가왔다.
“야야, 대박 엄청난 뉴스가 있어.”
“데이빗 네가 그렇게 호들갑 떠는 것치고 별것 있던 적이 없는데…….”
강의실의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데이빗을 본 제시카는 애매한 표정이 되었다. 또 이 또라이가 뭔 헛소릴 할까 싶은 눈빛이었다.
“이번은 진짜야. 엄청난 사람이 이 학교에 온대.”
“뭐. 현 스넬 수석디자이너라도 오는 거야?”
스넬의 수석 디자이너. 그야말로 패션 업계에서는 원 톱에 가까운 존재였다.
어지간한 학생들이 선망하는 대상. 즉, 그녀의 말은 그 정도가 아니면 호들갑이 의미가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도 그냥 특강이잖아. 그렇게 부산 떨게 아니라.”
“스넬의 수석 디자이너가 아니라. 윤성 신 작가가 온대. 우리 에일에!”
윤성 신 작가. 몇몇 애들은 그게 누구냐는 얼굴이었다. 친구들의 뜨끈미지근한 반응을 본 데이빗이 뭐라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그때.
뒤쪽에서 다른 친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나 알아! 영화 봤거든! 그거 반전화 작가 아니야?”
원래 이야기를 누군가 호응을 해 줘야 재미있는 법. 반응이 돌아오자 데이빗의 목소리에 한층 더 힘이 실렸다.
“영화가 문제가 아니지. 그 작가 그림이 300만 달러가 넘는다고 어디서 본 것 같은데. 한번 찾아봐야겠다.”
“와우, 300만 달러? 그림 하나가 그 가격이라는 말이지? 순수하게?”
“여깄다. 구글에 나오네. 크리스티 경매에서 320만 달러에 낙찰되었다고.”
“어디 봐 봐.”
서로 폰을 돌려 가며 잠시 정보를 공유한 그들. 기사를 먼저 다 읽은 사람의 입에서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미친. 그림 하나에 300만이면, 10개만 팔아도 3,000만…… 와, 엄청 부자겠네.”
그 작가의 이름을 잘 모르는 친구들도 돈의 위력은 알았다. 미국은 자본주의 나라였으니.
300만 달러짜리 그림을 그리는 작가라고 하자 확실히 주목도가 달라졌다.
“어쨌든 이번 명사 특강은 그 사람인 모양이네. 나쁘지 않지. 현역 300만 달러 화가면.”
다른 친구들의 뜨거운 반응에 제시카가 냉정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객관적인 걸 중시하는 성격답게 똑 부러지는 말투였다.
“그러게. 회화 작가를 데려오다니. 우리 미대 사무실이 웬일로 일했지? 매번 대충 무슨 브랜드 디자이너나 컨택해 오던데.”
명사 특강은 대학 내에서 종종 있는 일이었다.
어떨 때는 에일대를 졸업한 선배가 올 경우도 있었으며, 그렇지 않으면 대형 기업의 오너들이 오는 때도 있었다.
미대 측에서 부르는 인원은 대부분 기업의 디자이너가 많았다. 그게 여러모로 쉽게 부를 수 있었으며, 학생들 관심을 끌기도 좋았으니까.
하지만 제시카의 말을 들은 데이빗은 답답하다는 듯 연신 가슴을 쳐 댔다. 그러더니 아니라는 듯 손짓까지 동원하는 게 아닌가.
“야. 이 답답한 것들아. 신 작가가 명사 특강으로 오는 거면 내가 이렇게 호들갑 떨었겠냐?”
“화가가 오는 거 오랜만 아님? 나 입학하고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 같은데. 그래서 이렇게 달려온 거 아니었어?”
순수하게 그림을 그리고 전시회를 하는 예술가. 그들의 숫자는 극히 귀했다. 어지간해서는 시장 자체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었으니까.
그렇기에 성공한 화가는 더 드물었다. 당연히 명사 특강에 오는 화가도 몇 안 될 수밖에.
“그러게, 그 정도면 나름 뉴스거리긴 하지.”
“노노, 그게 무슨 뉴스야. 당연 아니지.”
“아니었어? 그럼 뭔데?”
친구들의 물음에 데이빗은 씩 미소를 지었다. 아는 자 특유의 기분 좋은 우월감이 느껴지는 표정이었다.
“너네, 그 작가 나이 알아?”
난데없이 나이를 추측해 보라는 데이빗. 그 이유를 보니 작가가 꽤 젊은 모양이었다.
“모르지, 뭐. 이렇게 말하는 거 보니 꽤 젊은가 본데…… 설마 30대는 아니지?”
대부분의 명사들은 아무래도 나이가 좀 있는 편이었다. 30대 정도만 되어도 정말로 젊은 축이었으니까.
“아님.”
하지만 데이빗은 고개를 휙휙 저어 댔다. 절대로 아니라는 부정의 표시를 보자 오히려 친구들은 정답을 알았다는 기색이었다.
“그럼 40대인가 보네.”
“그것도 아님.”
“설마…… 20대였어? 미친.”
저도 모르게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20대라니. 그들과 비슷한 나이가 아닌가.
“더 미쳤지, 10대거든. 무려 틴에이저! 자그마치 청소년이라는 말씀이지!”
“뭐?”
“그 작가 우리 신입생이래! 조만간 우리 후배님이 된다는 거야!”
과연 이 정도나 되니 호들갑 떤 모양이었다.
그러나 막상 이 소식을 들은 다른 친구들의 반응은 오히려 아까보다 확 식은 상태였다.
왜냐면 일단 출처가 의심스러웠으니까.
“너 그 이야기 어디서 들은 거야?”
“그러니까. 나도 그거 물어보고 싶었는데. 어디 인터넷 SNS 같은 데서 들은 거면…….”
“아니라고. 교수님들 말하는 거 들었단 말이야.”
당당하게 교수진의 말을 엿들었다고 말하는 친구. 그런 그를 보며 나머지는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어버렸다.
아이들이 침묵하는 사이에도 그의 입은 쉬지 않고 움직였다.
“교수님들이 이번에 뉴욕에서 그 작가가 전시회를 하는데, 입학 예정자이니 한 번은 가 봐야 하지 않냐고 하시더라고.”
입학 예정자. 그 말은 정말로 신입생으로 조만간 들어온다는 뜻이었다.
출처까지 명확하니 아이들의 신뢰도는 급격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랬으면, 진짜인가 본데?”
“그것보다 뉴욕에서 전시회 여는구나……. 허, 그런 작가가 신입생으로 들어온다니.”
“역시 사람은 죽으라는 법은 없네. 이렇게 돌파구가 생기다니.”
제시카의 말에 다른 친구들은 무슨 소리인지 바로 알았다. 그러나 방금 이 자리에 나타난 데이빗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게 뭔 소리야? 갑자기 웬 돌파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