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Yun-bok's Modern Art Studies in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98
98화 에일의 진정한 적수는 파신스
데이빗의 시선은 처음 이야기를 꺼낸 제시카에게 돌아갔다. 그녀는 어깨를 으쓱이며 입을 열었다.
“뭐긴 뭐겠어. 공모전 이야기지.”
“아, 그거…….”
데이빗은 애매하게 말끝을 흐렸다.
실력 제일주의인 동시에 상업성 제일주의. 자본주의의 천국인 미국인 만큼 당연히 그 경쟁이 치열했다.
사실 아이비리그 중 에일은 미술계의 원 톱이었다. 워낙 독보적인 존재였기에 이건 그 누구도 부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진정한 적수는 따로 있었으니. 바로 같은 동부에 있는 학교. 파신스 디자인 스쿨이었다.
“파신스가 너무 강력하네, 요 몇 년은.”
공모전부터 시작해 각종 대외 수상 성적들. 최근 파신스는 그야말로 기세가 무시무시했다.
거의 모든 실전적인 분야에서 무서운 독주를 자랑하고 있었으니.
“공모전 싹쓸이야 그렇다고 해도…… 걔네들이 이름값이 올라가니까, 전시회도 잘 안 되는게 문제지.”
좋은 작품을 만들고 그에 맞게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것. 모든 미대생들이 하고 있는 일이었다.
문제는 이렇게 한 학교의 독주가 시작되면 나머지 학교들은 다들 그 아래를 취급받는다는 것에 있었다.
에일이 좀 더 학구적이라는 이유. 오직 그거 하나로 종종 실기에서는 약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일까.
최근 학생 전시회를 열면 기업들의 관심은 저쪽으로 쏠렸다.
앤디 워홀 재단, 마이크로소프트, 그리고 각종 유명 패션지부터 일반 기업들까지.
순수 미술이 기업과 콜라보를 하는 게 일상이 된 이상. 에일대가 언제까지 예술 대학보다 실기에 약하다는 인상을 줄 수는 없었다.
“요즘 파신스 기세가 무섭긴 하지.”
“하긴. 이번 년도 각종 전시회에 사람이 진짜 안 오긴 했어, 그치?”
“그러니까. 그나마 축제 때는 좀 선방했지만…… 그건 내가 볼 때는 축제발이 크거든.”
아이비리그로 한데 묶이는 대학들. 그들의 축제는 꽤 많은 이들의 관심사였다. 오죽하면 그 시기에는 그 지역의 상권이 들썩이겠는가.
“어쩔 수 없지. 성적도 많이 보는 우리 에일이랑 달리 걔네는 실기가 메인이잖아.”
파신스는 에일보다 포트폴리오를 훨씬 더 중요하게 봤다.
성적도 고려하고 포트폴리오의 숫자도 제한되어 있는 에일과 달랐다. 즉, 애초부터 입학생을 뽑는 절차 자체가 다르다는 소리였다.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밀리는 건 아니지. 우리도 에일인데!”
“몇 년 동안 계속 이렇게 밀리면…… 인턴 자리 같은 거도 날아갈 거야.”
“그렇겠지. 다들 순위 매기기 좋아하잖아. 등수가 밀릴 테니까.”
그야말로 경쟁의 나라인 미국.
US NEWS부터 시작해 각종 업체들이 대학교의 순위를 측정한다.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겉으론 말하지만, 실제로는 다들 꽤 신경 쓰는 게 현실이었으니.
물론 공모전 수상이나 이런 게, 그 순위의 기준은 아니었다. 그러나 취업률이나 인턴 합격률, 혹은 작품 전시회 등은 알게 모르게 영향을 주었다.
현역인 이들은 이를 더 확실하게 피부로 느끼고 있었으니. 과거의 영광인 에일대를 이어 가려면 현재의 학생들도 그 못지않게 뛰어나야 했다.
“그래, 그러니까 신입생이 중요한데…….”
거기까지 말하며 말끝을 흐리던 제시카는 갑자기 입꼬리를 올려 미소를 지었다.
“마침 엄청난 사람이 학교에 들어온다네? 그것도 우리의 후배이자, 신입생으로?”
새로 들어온다는 그 작가의 이야기였다. 아니나 다를까, 다른 학생들 또한 알게 모르게 흥미롭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역시 에일대. 이번에는 인재 안 뺏겼구나. 아마 조건이 파신스보다 좋지 않았을까?”
“파신스도 장학금 많이 주잖아. 거기도 돈 많은데?”
“그럼 뭔가 다른 이유가 있겠지.”
파신스와 에일의 다른 이유. 곰곰이 생각하던 한 친구가 슬쩍 입을 열었다.
“그거 혹시 우리 커뮤니티 때문 아니야? 서클이나 그런 건 이쪽이 압도적이잖아.”
에일대에서 사실 가장 유명한 건 누가 뭐라고 해도 로스쿨. 즉 법학 전공이었다.
그들은 우수한 인재가 모인 것도 모자라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만들었으니.
서로 밀어주고 끌어 주는 에일대 로스쿨만의 서클. 그런 형태가 이제는 에일대 전체에 확실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당연히 소수 정예로 유명한 에일대 미대도 이에 포함이 되었으니.
다른 전공의 학생들과 함께하는 서클 커뮤니티. 그건 파신스가 에일대를 절대 따라올 수 없었다.
“서클 때문에 오는 거면, 내가 들어 있는 데 추천해야겠다.”
“그건 아니지. 300만 달러 작가인데, 너네 그 코딱지만 한 곳 들어가서 뭐 하게?”
“뭐? 야. 너 말 다 했냐?”
친구들의 대화가 이상한 방향으로 튈 것이 보였다. 이에 처음 이 소식을 가져온 데이빗은 다시 얼른 입을 열었다.
“어쨌든 그 작가가 우리 학교 신입생으로 오는 건 아주 좋은 일이잖아? 쇼킹한 뉴스 맞지?”
“맞지, 맞지. 기업들도 주목할 거 아니야. 그림이 300만 달러인데, 그걸 상품에 접합시키면 어떻겠어?”
“혹시 또 알아? 이미 진행 중일 수도 있지.”
“크으, 진짜 그러면 대박이겠네.”
“성격 좋은 친구였으면 좋겠다. 같이 협업 같은 것도 하면 좋을 텐데.”
그 말이 계기였다.
“야. 우리 한번 가 볼까? 뉴욕이면, 하루면 갔다 오는 곳이잖아.”
에일대가 위치한 코네티컷주와 뉴욕주는 그리 멀지 않았다. 차로 2시간 정도면 오갈 수 있는 거리였으니.
주말 한창때는 에일대 학생 중 그곳으로 놀러 가는 친구들도 많았다. 그렇기에 이런 말을 꺼낸 것이었다.
“그 뉴욕에서 열린다는 전시회 말하는 거지?”
“어. 바로 그거. 작품을 보면 작가의 내면 일부를 알 수 있는 법, 아니겠어?”
작가의 일부분은 분명 작품에 드러난다고 열변을 토하는 친구. 그런 상대를 본 제시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그런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일리가 있는 의견이긴 했다. 그랬기에 그녀는 데이빗 쪽으로 고개를 돌려 질문을 던졌다.
“데이빗. 뉴욕에서 한다는 그 전시전 언제, 어디서부터인지 혹시 알고 있어?”
“교수님들 말에서 그건 못 들었는데…….”
뒤통수를 긁적이며 머뭇거리는 데이빗. 그를 본 친구들은 장난스럽게 어깨동무를 하며 입을 열었다.
“얜 항상 잘 나가다가도 뭔가 2% 부족하단 말이지.”
“그 정도는 그냥 검색해 보자. 구글에 나올 거 같은데?”
무려 320만 달러의 작가였다. 그보다 못한 작가도 다 나오는 세상인데, 그 정도 거물의 정보가 없을 리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1분도 안 되어서 찾던 걸 발견할 수 있었다.
“오, 야야. 첫날에 드로잉 퍼포먼스를 한대.”
“뭐? 어디 봐 봐.”
진짜냐고 물으며 서로 폰을 들여다보았다. 한 바퀴 스마트폰을 돌린 그들은 금세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이날, 작가가 직접 한다고 하니까. 무조건 이때 가자.”
“당연히 그래야지. 본인이 아예 안 와서, 못 본다면 모를까.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 다른 날 간다는 건 말도 안 되지.”
“일요일 하루 끼고 갔다가, 월요일에 오면 딱이겠다.”
“오. 좋다, 좋아.”
친구들이 흥분해서 떠들 때 데이빗은 슬쩍 울상을 지었다. 어째 스케줄이 불길하기 그지없었기에.
“저기 얘들아, 그날…… 그러니까 나 월요일에 수업 있는데.”
“뭐? 너 이번 학기 월요일 수업 잡았어?”
“엉. 지난 학기 성적이 안 나온 게 있어서…….”
말끝을 흐리는 데이빗을 보며 친구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보아하니 데이빗을 뺀 나머지는 월요일이 괜찮은 듯 보였다.
“야야, 그런 건 일단 빠지고 가는 거야.”
“맞아, 평소에는 잘만 그러던 놈이 왜 갑자기 이래? 낯설게.”
친구들의 타박에 데이빗은 마성의 이름을 꺼내 들었다.
“그 수업 교수가 리처드 교수란 말이야…….”
리처드 교수. 에일대 내에서도 명망이 높은 교수였지만 그만큼 팩트로 잘 뚜드리는 교수이기도 했다.
아직 그 실력이 무르익지 않은 일개 학부생의 운명은 뻔했다. 일단 수업을 들으면 확실한 말로 조져지는 게 일상이었으니까.
“더군다가 그날은 조교님이 에밀리 선배님이라고 들었는데.”
리처드 교수님의 수세자이자 그 교수에 그 제자란 소리를 듣는 대학원생 에밀리.
장차 에일대의 교수 자리는 따 놓았다고 할 정도로 실력만큼이나 학생 평가도 칼같은 그녀를 떠올린 친구들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
침묵 속에서 데이빗이 다른 아이들의 표정을 보며 더더욱 침울해지는 사이. 그들 중 하나가 드디어 결심을 내렸다.
“……그냥 우리끼리 갔다 올게.”
“뭐? 이 배신자들!”
“어쩔 수 없잖아. 리처드 교수님 수업 빠지고 살아남으라고 말하는 게, 너한테 더 가혹한 거 아니야?”
“그거야 그렇…… 아니! 이 소식을 가져온 게 누구인데!”
“그건 고마운 일이지. 우린 네 희생을 잊지 않을 거야.”
“맞아, 뉴욕에 있는 맛있는 거 사 올게. 넌 리처드 교수님 수업이나 잘 듣고 있어.”
친구를 내버려 둔 채 뉴욕에 놀러 가기로 한 그들. 연신 데이빗의 어깨를 두드리며 형식적인 위로만 할 뿐이었다.
* * *
조부모님과 미국에 가기로 한 이상 나 또한 계획을 세워야 했다.
‘역시 아버지랑 갈 때보단 이동이 자유롭지는 않을 것 같은데.’
나이. 그게 확실히 걸림돌이었다. 진짜 이번에 미국 에일대에 입학하면 당장 운전면허부터 따기로 마음먹었다.
진짜 미국은 차가 없으면 이동할 수 있는 한계가 너무 명확했다. 교통의 편의성이 극에 달해 있는 대한민국의 서울에 있다가 가려니 여러모로 불편했다.
‘할아버지께 장시간 운전은 아무래도 좀 그렇겠지.’
물론 할아버지께선 운전을 잘하셨다. 장롱면허인 할머니와 달리 몇 시간 운전 정도는 가뿐하시리라.
하지만 아버지만큼이나 쉼 없이 나를 위해 운전을 해 달라고 할 수는 없었다. 나이가 있으시니, 아무래도 체력적인 면이 걱정이 되었으니까.
‘라고시안에 말하면 지원을 해 줄 것 같기는 한데……. 한번 일정 짜고 나서 정 안 되면 필립한테 말하지, 뭐.’
대충 속으로 방법을 정한 난 우선 만나야 할 사람들을 쭉 나열했다.
그 결과, 전생과 달리 내가 이번 생에서 연을 맺은 사람이 많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음. 내가 생각보다 미국에 아는 사람이 많구나.’
한국도 아닌 미국에 뭐 이렇게 만나야 할 사람이 많다는 말인가. 제임스부터 시작해 리처드 교수님이나 에드워드 감독님까지.
잠깐씩만 미국에 다녀왔음에도 이제 보니 인연을 맺은 이가 한둘이 아니었다.
‘이번에 다 만나고 오려면 빠듯할 것 같은데.’
조만간 미국의 에일대에 입학해야 하는 나였다.
하지만 난 최대한 한국에서의 배움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조선이라는 뿌리를 가진 내 입장상 이 시대를 배우지 않는다면, 제대로 된 작품을 그릴 수 없다고 느꼈기에.
당연히 최선을 다해 한국에서의 학교도 다니고 싶었다. 어차피 에일대에 입학하게 되면 고등학교 3학년 2학기는 거의 다닐 수 없기도 했으니.
그러니 있는 기간만이라도 최선을 다하자는 결심을 했다. 그로 인해 이번 미국행의 일정은 그리 길지 않았다.
학교를 많이 빠질 수는 없었으니까. 고등학교가 교외 수업으로 허락하는 최소한도로 잡았다.
‘에고고, 우선순위부터 정하고……. 찬찬히 해 보자.’
이제는 익숙해지다 못해 손발과 같은 컴퓨터. 이를 활용해 나름대로 꼼꼼하게 일정표를 손보고 있을 때였다.
내게 한 통의 메일이 도착했다는 알림이 뜬 것은.
‘에드워드 감독님?’
내가 미국에 가면 한 번은 뵙고 싶었던 분. 그분에게서 온 연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