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rely, Vanessa RAW novel - Chapter (104)
선생님께, 바네사로부터 104화(104/146)
⚜ ⚜ ⚜
바네사와 달로이즈, 슬리만 세 사람이 노인의 집으로 돌아갔을 때 노아는 이미 깨어 있었다.
방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던 아이는 다가온 바네사와 눈이 마주치자 다시 울기 시작했다. 바네사가 품에 넣어 두었던 액자를 건네자 끅끅대며 숨을 삼키더니 그것을 끌어안고 고개를 숙였다.
바네사는 이제 서 있는 것이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마력을 지나치게 소모하고-두 번 연속 공간 이동을 하는 건 분명히 잘못된 선택이었다.- 쉬지도 못한 탓이었다.
그래도 이를 악물고 움직였다. 첫 파견부터 자고 싶다고 떼를 쓸 수는 없었다. 물론 다른 대원들은 대부분 첫 파견부터 떼를 쓰고 바닥에 누워 성을 냈으니 완전히 그른 생각이었다. 애석하게도 성실하게만 살아온 바네사는 이를 몰랐다.
특전대원들은 모두 노아에게 다른 마을에 있는 고아원으로 가는 것을 권유했다. 아무리 아이가 아무것도 몰랐다 한들 마을 사람들은 아이의 죄라고 생각할 테니까. 그들은 이미 그런 경우를 너무 많이 봤던 것이다.
오랜 설득 끝에 노아는 눈물 한 줄기를 달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그럴게요….”
“오냐, 잘 생각했다.”
리에트 대령은 소년의 등을 툭툭 두드려 주었다. 그 거친 손짓에 눈에 아롱지던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마음 준비는 다 됐냐?”
슬리만이 퉁명스럽게 묻자 노아는 젖었던 볼을 훔쳐 냈다.
“네….”
“그래. 그럼 가자.”
안달루스가 아이를 들어 올려 안았다. 노아는 가는 내내 계속 이곳저곳을 살폈다. 숲길을 지나 반쯤 망가진 집을 볼 때는 눈이 까맣게 죽었다.
집을 지나치고 드디어 파 둔 자리 앞에 도착했다. 노아는 나뭇잎 사이로 비쳐드는 햇살 아래 누운, 제 어머니를 차마 보지 못하고 안달루스의 품에 다시 고개를 박았다.
“굳이 보지 않아도 된다.”
안달루스가 토닥여 주자 노아는 잠시 헐떡였다.
그러나 아이는 그들의 생각보다 강한 존재였다.
노아는 마침내 용기를 내어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마주했다. 아이는 눈물을 닦아 내고 어머니의 손 위에 겨울에 피는 작은 꽃을 올렸다.
안달루스는 짧게 기도하는 자세를 취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흙들이 몸 위에 차곡차곡 쌓였다. 노아의 어머니는 드디어 대지의 품에 안겨 마지막 여행을 떠났다.
노아는 약간 엉성하게 얹힌 흙을 도닥이며 울퉁불퉁한 곳을 정리했다.
“음, 비석 이런 거를 세워야 할 텐데.”
리에트가 목을 가다듬으며 말하자 노아는 고개를 저었다.
“그냥, 그냥 알아볼 수만 있으면 돼요….”
바네사가 그렁그렁한 눈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우리가 이 위에 꽃을 심어 줄게. 네가 자라서 이곳에 돌아오면 꽃이 만발하도록.”
“그거 좋네. 굳이 비석이 없어도 알아볼 수 있겠어!”
달로이즈의 경쾌한 목소리에 노아는 보일 듯 말듯 고개를 끄덕였다. 바네사와 달로이즈는 당장 씨앗을 사러 달려갔다.
모든 일을 마친 뒤, 안달루스가 직접 노아를 데리고 다른 지역으로 떠났다. 아이가 있을 만한 곳을 알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해가 지기 전, 수십 명의 병사가 나타났다.
“이것 봐. 대장님은 안 주무신다고 했잖아.”
리에트는 히죽 웃고는 그들을 마을 안으로 이끌었다.
이미 낮 동안에 숲을 돌아다니며 마을 근방의 나무들을 모두 확인한 특전대원들은 병사들에게 마지막 확인을 부탁했다. 그들은 인계 사항을 꼼꼼히 확인하고 ‘도트람의 가지’에 대한 정보까지 모두 받아 적었다.
“아마 마을 주변에는 남은 게 없을 겁니다. 깊은 숲속에나 있을 것이고 그 정도야 남아 있어도 상관없습니다. 일부러 키워 내는 것이 아니면 쉽게 번식하지 않으니까요.”
내용을 확인한 병사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쯤이면 저희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리에트는 짐을 정리하고는 간단히 말했다.
“복귀한다.”
특전대원들은 빠르게 마을을 벗어나 포탈로 향했다.
퓌돔에 도착하자마자 리에트 대령은 보고를 위해 왕성으로 떠났다. 물론 내일까지는 쉬고 그다음 날엔 바로 출근하라는 단호한 명령과 함께.
바네사와 달로이즈는 이제 정말 누가 건들기만 해도 화를 낼 것 같았다.
“졸려 미치겠어어.”
“빨리 가서 자자….”
바네사가 비틀대며 걷자 달로이즈도 눈을 끔뻑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흐느적대며 걸어간 두 사람은 길이 갈라지자 인사도 없이 헤어졌다. 이런저런 예의를 따질 때가 아니었다.
바네사는 이렇게 오랜 시간 자지 못한 적은 처음이라 진짜로 고통스러웠다. 잠만 못 잔 것이 아니라 마력까지 지나치게 소모했으니 무언가 게워 내고 싶을 정도로 속이 울렁거리기도 했다.
숙소의 주인은 상태가 몹시 안 좋은 바네사를 보더니 약간 멀찍이 떨어져서 열쇠를 건네주었다.
무슨 병이라도 걸린 것 아닐까 하는 의심스러운 시선이었으나 바네사는 그런 걸 신경 쓸 틈도 없었다.
반쯤은 기듯 계단을 올라 복도 끝에 있는 초록색 문으로 돌진했다. 문을 열어 안에 들어가자마자 옷을 개키지도 않고 대충 의자 등받이에 걸어 놓고 온몸에 따뜻한 물을 뿌려 씻었다. 그제야 피비린내가 몸에서 가시는 것 같았다.
“뭔 멍이 이렇게 많이 들었지.”
바네사는 하얀 살결 위의 울긋불긋한 자국들을 바라보다가 우울하게 한숨을 쉬었다.
기드를 만나기 전에 미리 치료 마법으로 없애든가 해야겠다. 크게 다친 것도 아닌데 지나치게 요란스러운 색이란 말이지.
대충 물기를 털어 낸 바네사는 잠옷 바지는 입지도 못하고 품이 큰 윗옷만 간신히 몸에 걸쳤다. 그리고 침대에 비틀비틀 기어올랐다. 그 뒤로는 순식간에 암전이었다.
꿀처럼 달콤한 잠에 시간이 흐르는지도 몰랐다. 다만 어느 순간, 아주 먼 곳에서 작은 소리가 들려와 꿈이 흔들렸다. 낡은 나무 문을 가볍게 두들기는 소리.
바네사는 아예 스스로가 잠에 먹힌 것 같다고 생각했다.
무언가 소리가 들린다는 것은 아는데 몸은 여전히 침대 위에 파묻혀 꼼짝도 못 했다. 늪에 빠진 것처럼 이불이 칭칭 몸을 휘감았다.
아무리 힘을 주어도 내려앉은 눈꺼풀의 장막이 영 올라가지를 않았다. 바네사는 눈을 감은 채로 더듬더듬 이불을 걷어 냈다.
어차피 올 사람이라고는 숙소의 주인밖에 없었다. 뭐지, 월세는 이미 냈는데.
“누, 누구….”
웅얼대는 목소리가 제 스스로도 너무 작게 느껴져 바네사는 속으로 혀를 찼다. 들리기나 할까.
작은 방은 침대에서 내려오면 바로 문이었으므로 딱히 눈을 제대로 뜰 필요도 없었다. 바네사는 생각 없이 문을 벌컥 열었다. 여전히 눈은 반쯤 감긴 채였다.
“그냥 열면….”
어떡하냐는 부드러운 타박이 들렸다가 금세 사라져 버렸다. 바네사는 간신히 눈을 떴다. 선연한 황금색 눈이 살짝 찡그려진 채로 바네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어…?”
“옷도 제대로 안 입고, 누군지 확인도 안 하고. 뭐 하는 겁니까?”
기드온은 약간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바네사를 안쪽으로 밀고 문을 닫았다. 바네사는 멍하니 고개를 들어 올려 잘생긴 얼굴을 구경했다.
“지금 이거 꿈이죠?”
바네사가 멍하니 묻자 기드온이 눈썹을 휙 들어 올렸지만 바네사는 여전히 반은 꿈속에 있어 그게 최선이었다. 바네사는 잠을 깨려 마구잡이로 눈을 비볐다.
남자는 부드럽게 그 손을 내리누르곤 그녀의 퉁퉁 부은 눈가를 더듬었다. 졸음이 한가득 달린 눈은 둔하게 깜빡였다.
바네사가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면 분명히 비명을 지르며 이불 속으로 제 얼굴을 파묻었겠지만, 졸음에 취한 머리는 그것까지 파악하진 못했다.
그 엉망인 모습조차 사랑스럽게 바라본 기드온은 허리를 숙여 동그란 이마에 입을 맞췄다. 이마부터 내려앉은 것은 눈가, 뺨, 귓가까지 모두 지분대고 나서야 입술에 닿았다.
다만 아주 살짝 머금고는 더 파고들지는 않았다. 마치 온기를 나누며 인사를 하는 것처럼.
바네사는 그의 속눈썹 개수까지 모두 셀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나치게 다정하고 부드러운 움직임에 여전히 이불 속에 포근히 누워 있는 기분이었다.
이거 꿈 아닌가? 여기는 작디작은 내 숙소 아닌가? 보고 싶은 마음이 반영되면 이런 일도 있나?
입술을 뗀 기드온은 여전히 혼란스러워 보이는 바네사를 안아 올렸다. 그의 의도는 잠이 덜 깬 바네사를 침대 위로 올려 주려는 것이었다.
다만 항상 그렇듯이 혼자만의 의도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품에 안겨 기드온보다 시야가 높아진 바네사는 멍하니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자다 깨서 따끈한 온기를 품은 손이 남자의 높은 콧대, 우묵한 눈꺼풀을 더듬었다. 그러다 희미하게 웃음 짓는 입술 선에 닿았다.
바네사는 가만히 그 곡선을 노려보았다. 그의 정중한 접촉이 심술궂은 마음을 돋게 했다.
그래서 이번엔 제가 먼저 입을 맞추었다.
반쯤은 꿈속에 있어서 그랬을까? 바네사는 급하게 굴다가 코끝이 부딪치기도 했고 그의 입술을 조금 세게 깨물기도 했다.
하지만 기드온은 아프지도 않은지 웃느라 불안정한 호흡을 들썩였을 뿐이다. 분이 오른 바네사는 제가 먼저 그의 입 안을 침범했다. 방 안에서는 무언가 섞이는 소리만 조용히 울렸다.
정신없이, 여러 번 그의 입술을 쫓았다. 얼마나 오래 서로의 숨을 섞었는지 모르겠다. 바네사는 항상 이런 스스로가 익숙하지 않아서 굳이 흐름을 붙잡으려 하지 않았다.
바네사는 등 뒤로 침대가 닿는 걸 느끼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기드온은 바네사를 덮듯이 내리누르고 입술을 떼어 냈다. 정면으로 시선이 마주쳤다.
멍하니 저를 보는 눈길에 남자는 무언가를 참는 것처럼 새하얀 목덜미에 긴 한숨을 토해 냈다.
기드온은 허리를 바로 세웠다. 그가 물러나며 커다란 손이 무릎 위쪽에 스치자 그제야 바네사는 잠옷 하의를 입지 않은 사실을 깨달았다.
“어어…!”
놀란 바네사는 급히 이불을 끌어 몸에 감으려 했으나 실패했다. 남자의 손이 대뜸 발목을 잡은 덕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