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rely, Vanessa RAW novel - Chapter (11)
선생님께, 바네사로부터 11화(11/146)
<7월 28일, 에디르네력 1309년>
선생님께.
꽤 오랜만에 드리는 편지 같아요. 어떻게 이런 분을 알고 지내세요?
아, 아니. 안부도 묻지 않고 너무 급작스러운 말씀을 드렸네요. 하지만 제 맘 이해하시죠?
전 님루드로 가는 날에 기차를 처음으로 타 보았어요. 산속에 빨간 기차가 증기를 내뿜으면서 서 있는 모습이 정말 예뻤어요.
신이 나서 객실에 뛰어올라 앉았는데 정말 특이한 옷차림의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귀에 털이 복슬복슬한 사람도 있고 이마에 뿔이 난 사람도 있던데, 어찌 된 일일까요?
님루드는 아주 활기찬 도시예요. 내리자마자 사랑에 빠졌어요. 아주 높게 솟아오른 집들이 이리저리 기울어져 있는데도 무너지지 않는 것이 신기해요.
마법사들의 도시로 유명하다더니, 저것도 다 마법이겠지요?
도시는 작은데 들어오려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하루에도 몇 번씩 집이 더 솟아올라요. 그러다 뒤집히는 모습은 일상이고요.
광장을 걸어가니 머리 위로는 계속해서 종이비행기가 날아다녔는데 알고 보니 서로의 가게에 보내는 주문서였어요. 비행기 주문서끼리 부딪쳐서 파닥대는 모습이 재미있어요.
그냥 평범한 사물마저도 일반적이지가 않아요. 신발에는 탁탁 치면 뒷굽이 반짝거리거나, 더 높게 뛰어오를 수 있는 마법이 걸려 있기도 해요.
저는 근데 그냥 아무 기능 없는 것이 더 좋은 것 같아요.
사람들의 모자에서는 시간마다 불꽃이 터져요. 그런데 이유는 전혀 모르겠어요. 여기엔 괘종시계가 없는 걸까요?
하얀 돌로 바닥을 깨끗하게 다듬은 광장을 걷다 보면 이곳저곳에서 반짝이는 연기가 펑펑 터지는데, 설계자들의 절규 소리도 함께 들려요. 그러면 십중팔구 만들던 마법 기계가 부서진 것이지요.
님루드에 도착하자마자 많은 것에 시선을 빼앗겼지만 일단은 가장 먼저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신 주소로 갔어요.
님루드, 319번지. 제니언의 집 말이죠.
제가 319번지가 어디냐고 묻자마자 모두들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는데요, 이유를 몰랐죠.
“어려 보이는데 거긴 왜 가는 거니?”
안쓰러운 표정을 하기도 하시고 손에 과자를 쥐여 주기도 했다니까요! 갑자기 손에 든 짐이 얼마나 무겁게 느껴졌는지 몰라요.
319번지는 아주 구석진 곳에 있었어요. 님루드는 도시 안에 나무가 거의 없었는데 여긴 나무로 둘러싸여 있었고, 뒤쪽은 숲이기에 밤베르크 아카데미에 돌아온 것처럼 마음이 편안했죠.
하지만 어디에도 집이 보이지 않는 거예요!
땅에 단단하게 박혀 있는 말뚝에는 조악한 글씨체로 ‘319번지’라고 적혀 있는 것이 끝이었어요.
도대체 집이 어디 있는 건지를 몰라서 쩔쩔매다가 혹시 몰라서 말뚝을 두들겼죠.
하지만 여전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더라고요.
계속 주변만 돌다가 결국 허공에 외치고 말았어요.
“하리하라!”
그러니까 갑자기 땅에서 커다란 저택이 솟아오르지 않겠어요! 너무 놀라 비명을 질렀더니 그 안에서 아주… 아주 못된 마법사가 나타났어요! 못된! 못된!
“누구야!”
제 비명보다 더 크게 버럭 소리 지른 마법사는 저를 노려보기 시작했어요. 물론 저는 그에 지지 않고 대꾸했어요.
“제 후원자이신 분께서 여기에서 방학을 지내라고 하셨어요.”
“그게 누군데, 이 멍청아!”
“모른다니까요. ‘하리하라’라고 외치면 된다고 하셨어요.”
마법사는 짜증을 내면서 꿰액 소리를 치고는 몸을 돌려 저택 안으로 들어갔어요.
저는 잠시 고민했지만 열심히 그 뒤를 따라 들어갔어요. 제가 정원이라고 착각한 곳에는 독을 내뿜는 꽃이 있었어요. 세상에!
제 코앞에서 제니언이 저택의 문을 닫아 버렸지만요. 굴하지 않고 문을 벌컥 열었죠.
안은 정말 요상했어요. 분명히 거대한 저택인데, 안에는 그냥 고풍스러운 나무 문 5개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물론 그 나무 문이 허공에 떠 있다는 것이 가장 이상했죠.
제니언이 제게 열쇠를 하나 주었어요.
“2층만 가라, 꼬마야. 다른 곳 가면 가만 안 둬! 널 구워 먹어 버릴 거야!”
정말 사람을 잡아가는 사악한 마법사처럼 생겼다니까요. 소리 지르는 것 하며!
“할아버지를 만나려면 어디로 가면 되나요?”
“꼬-마-야. 난 할아버지가-아니라고!”
제 눈앞에 휘어진 코를 들이대며 이를 가는데 사람을 보자마자 소리부터 지른 무례한 마법사에게 질 수는 없었죠.
“거울을 보시지 그러세요? 식사는 어떻게 해요?”
“아무거나 꺼내 먹어!”
“2층은 어떻게 가요?”
제니언이 쿵쾅대며 달려가서 허공에 달린 문을 하나 열었어요. 그 안쪽에는 여러 방이 있는 복도가 흐릿하게 보이더라고요.
놀라운 마법에 감탄했지만 절대 티를 내지는 않았죠. 흥.
“2층! 이런 것도 몰라! 아하, 멍청하니까 모르지.”
“난 멍청한 꼬마가 아니라 바네사 로즈예요.”
“바아-네-사-로즈. 그딴 이름을 어떻게 기억해? 난 가치 없는 건 기억 못 하거든.”
제니언이 코웃음을 치며 제 이름을 비웃었어요.
“할아버지 성함은 뭔데요?”
“할아버지 아니라니까!”
“네, 할아버지.”
“이 멍청한 꼬마가! 제니언 포키스 폴리스 스타게라!”
제 귀에 대고 고래고래 고함을 쳤는데, 맙소사. 이름을 듣자마자 턱이 빠지는 줄 알았어요. 설마 ‘그’ 제니언인 줄은 몰랐단 말이에요.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언령마법을 정리하여 집대성한 제니언 포키스 폴리스 스타게라라니. 그 사람이 저렇게… 성격이! 그렇다니!
설마 제가 아는 위인들이 대부분 저런 성격인 것은 아니겠죠? 아, 제발 아니라고 해 주세요.
도대체 저런 분하고는 어떻게 알게 되신 거예요? 하리하라는 뭔가요? ‘하리하라’라고 외치기만 해도 제니언이 발로 탁자를 걷어차던데요. 물론 본인의 발이 더 아플 것 같지만.
하여튼 이제 저는 이 집에 완전히 적응되었어요. 비밀인데요, 사실 재미있기까지 해요.
허공에 달린 문 뒤에 새겨진 마법을 구경하고, 서재에 몰래 잠입해서 고서를 필사해요. 선생님이 왜 즐겁게 지낼 곳이라고 했는지 알겠어요.
제니언이랑도 약간 친해진 것 같아요.
여기에 있는 음식들은 정말 토할 것 같은 맛이 나서 제가 직접 레몬파이를 만들어 둔 적이 있거든요. 한 입 먹어 보더니 한 판을 들고 도망치던데요.
그 뒤로는 약간 잘해 줘요. 물론 아주 약간….
식사를 함께한 적도 있어요. 제가 사실 선생님을 아시냐고 물어본 적이 있거든요.
“제 후원자분을 어떻게 아세요?”
“네 후원자는 세상에서 제일 나쁜 사람이야. 얼마나 오만한지 알아? ‘이것은 무엇에 위반되며, 이것은 어쩌고저쩌고….’”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척을 하면서 말했지만 단 하나도 믿음이 가지 않았어요. 선생님이 나쁘다면 본인은 악마 그쯤 될 텐데요!
하여튼 선생님에 대해서 알아낸 것은 딱 하나인데, 선생님이 성격이 이상한 마법사를 많이 알고 계신다는 것이죠.
그래도 제니언은 나름 신기한 것을 많이 보여 줘요. 은근히 자신이 하는 것에 관심을 가져 주는 것을 좋아하더라고요.
이 마법진은 뭔지 꼬치꼬치 캐물으면 일단 ‘이 멍청아’로 시작하기는 하지만 아주 긴 설명이 뒤를 따라요.
물론 반 이상은 자기 자랑이지만 반쯤은 아주 도움이 되는 내용이에요.
예를 들면 마법진을 새긴 후에는 마법이 깃들 시간을 주어야 한다는 것, 샤르나이산 대리석에 새긴 마법진은 아주 오래 간다는 것, 마법의 힘은 황금색 잉크로 새기는 것이 좋다, 이런 것 말이죠.
선생님은 마법진을 새기기 위해 필수인 요정 가루가 피에 아주 잘 지워지는 것을 알고 계셨나요? 이런 것들은 누가 알아내는 걸까요?
내일은 뒤쪽에 있는 연못에 가 보려고요. 특이한 생물이 산대요.
리나와 체바티가 방학 중에 한번 오고 싶다는데 여기서 귀한 집의 소중한 딸들을 자게 할 수는 없어서 고민하는 중이에요.
제니언을 괴롭히는 것에 맛이 들린,
똑같이 못되어지고 있는
바네사 로즈 올림.
⚜ ⚜ ⚜
“흐음.”
일어나자마자 소파에 푹 파묻혀서 책을 본 지도 어언 세 시간째.
제니언의 집 안은 여전히 고요했다. 제니언이 연구에 푹 빠져 방 밖을 나오지 않은 지 스물여덟 시간이 지난 덕분이었다.
바네사는 고개를 빼꼼 들어 올렸다.
“제니언 할아버지!”
바네사가 낭랑한 목소리로 허공에 외쳤지만 제 목소리만 천장에 닿아 메아리쳤다.
보통 할아버지라고 부르면 발끈해서 뛰쳐나오곤 했는데 정말로 연구에 푹 빠진 모양이었다.
심심해진 바네사는 이리저리 굴러다니다가 벌떡 일어났다.
어제부터 책은 질리도록 읽었고 오늘은 제니언의 서재로 숨어들 기분도 아니야. 마당에 있는 독초들을 건드릴 기분은 더더욱 아니지.
그러니 음식 저장고도 채울 겸, 님루드 중심지에 가서 산책이나 하고 와야지.
결론은 금방 내려졌다.
“제니언, 저 나갔다 올게요!”
물론 대답은 없었다. 씩 웃은 바네사는 폴짝 뛰어나갔다.
문을 닫고 이제 어느새 익숙해진, 독초들이 가득한 앞마당을 지나 돌길 위를 걷기 시작했다. 경쾌한 걸음걸이에 샛노란 스커트가 무릎 아래를 스쳤다.
제니언의 집에서 중심지까지는 그리 멀지도, 그리 가깝지도 않은 거리였다.
귓가를 울리는 명랑한 새소리에 얼마간 힘든지도 모르고 걸었으나 그녀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바로 정오라는 시간대였다.
님루드는 나무의 그늘이 귀한 곳이었다. 소도시라고 불릴 만큼 도시의 규모는 크지 않았으나 몰려드는 마법사들과 공학자들로 발 디딜 틈 없이 건물들로 꽉 찬 덕분이었다.
결국 녹지가 부족한 작은 도시는 여름의 더위에 녹아내릴 수밖에 없었다.
제니언의 집 근처를 빠져나오자마자 정오의 햇빛이 머리 위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피할 곳 없는 열기에 발걸음은 점점 흐느적거렸다.
“으, 더워….”
제니언의 집으로 다시 돌아가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되는 날씨였다.
바네사는 주변을 둘러보며 몸을 식힐 나무 그늘을 찾았지만 그 아래는 이미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바네사는 시무룩하게 코끝을 찡긋하고는 그나마 자리가 남아 있는 분수대 근처로 걸어갔다. 분수대의 돌벽 위에선 사람들이 일산을 펼치고 햇빛을 피해 떠드는 중이었다.
바네사는 분수대의 가장자리에 겨우 앉아 한숨을 돌렸다. 새하얀 리본으로 간단하게 묶은 갈색 머리카락이 길게 늘어졌으나 바람 한 점 없어 목 뒤에 들러붙기만 했다.
왁자지껄한 사람들 사이에서 바네사는 파란 구두코 끝으로 바닥을 콕콕 두들겼다. 그때 누군가가 말을 붙였다.
“아가씨, 일산도 없어?”
주스를 마시며 옆 사람과 떠들던 여자였다. 그녀는 햇빛을 그대로 맞고 있는 바네사를 보고 혀를 차더니 일산을 기울여 그늘 한 점을 나누어 주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더울 줄은 몰랐어요.”
바네사가 머쓱하게 웃었다.
“이곳의 여름은 정말 끔찍하니까 조심해야 한다고. 걷다가 쓰러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낮에는 일산이 필수지, 필수야. 님루드에 온 지 얼마 안 되었나 보네!”
그늘을 빌려준 여자는 갈색 바구니를 뒤져 빨갛게 익은 과일 하나를 건네주었다. 넉넉한 미소와 함께 건네지는 호의에 바네사는 뺨을 붉히고 고개를 꾸벅 숙였다.
잠시 즐거운 재잘거림이 스쳐 지나갔다. 바네사는 과일을 한 입 베어 물었다. 아삭거리는 식감과 풍부한 과즙이 훌륭했다.
음식 저장고가 텅 비어 있었으니까 갓 구운 흰 빵을 조금 사고, 오래 두고 먹어도 되는 딱딱한 갈색 빵은 많이 사야지. 잼이랑 버터도 조금, 과일도 조금. 야채는 신선한 걸로.
겨우 한 끄트머리 빌린 그늘만으로도 생기가 돌았다. 갑자기 반대쪽으로 물벼락을 뿌린 분수를 호기심 넘치게 올려다보고 있을 때, 지나가던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