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rely, Vanessa RAW novel - Chapter (110)
선생님께, 바네사로부터 110화(11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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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5일, 에디르네력 1313년>
사랑하는 내 친구, 체바티 밀로 도티에게.
맛있는 간식들 정말 잘 받았어. 내가 요즘 단 것에 눈이 먼 걸 어떻게 안 거야?
젤리를 네가 만들었다고? 세상에,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모양과 색이 완벽한 거니?
가게를 차려 보는 건 어때? 물론 그 가게의 최고 손님은 내가 될 테니 매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저녁엔 내가 가서 남은 걸 모두 해치울 테니까.
기드온은 잘 지내냐고 물어 주다니 고마워. 사실 나와 기드온 사이를 알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으니 누군가의 편지에서 기드온이라는 글자를 보는 것이 신기해.
리나는 항상 기드온이 없는 것처럼 굴어서 정 언급할 일이 있으면 ‘그 사람’이라고 써 놓고는 해. 정말 우습다니까.
그래 놓고 본인은 누굴 만나는지도 알려 주지 않잖아!
저번에는 부모님의 소개로 만난 사람을 1시간 만에 거절했대. 이유가 뭐냐 물었더니 가늘고 긴 코 안에 녹색 콧물이 가득 차 있었다나. 손수건으로 계속해서 훔치는 게 아주 독한 감기에 걸린 게 분명하다고 말하면서 정말 끔찍한 하루였다고 덧붙이더라고.
기드온은 몹시 피곤하긴 하겠지만 잘 지내고 있을 거야.
사실 같은 특전대 건물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그 안에선 제대로 대화해 본 적이 없어! 저번 외출 이후, 복도에서 한두 번 스친 것이 다야. 그는 지금 몹시 바쁘거든.
사실 대장이 나 같은 말단 소위를 찾아와 대화할 일이 뭐가 있겠어? 그럴 일이 있다면 그거야말로 신기한 거지.
가끔은 내가 너무 이기적인 것 같아. 남들의 시선이 두려워서 그와의 관계를 밝히고 싶지 않지만 동시에 그가 스쳐 지나가 버리는 게 서운하기도 하거든. 정작 눈인사조차 하지 못하게 고개를 푹 숙이는 건 나인데 말이야.
관계란 건 참 어려워. 끝없이 뻗어 나가는 욕심을 자제하는 것도 힘들고. 예전엔 포기하는 게 더 쉬웠는데 말이야.
나에게 있어서는 욕심부리는 게 오히려 발전이라고 볼 수 있을까?
네가 몹시 걱정했던 특전대 일은 이제 많이 익숙해졌어. 벌써 한 달이 훨씬 넘게 흘렀잖아!
일은 끊임이 없어서 가끔 힘들기는 하지만 프리바 전역에서 들려오던, 마물로 인한 피해 보고가 점차 줄어드는 것을 보면 다시 힘이 나.
체바티, 무언가를 안다는 것은 어떤 걸까?
나는 항상 새로운 지식을 얻게 되는 과정이 좋았어. 그리고 여러 경험을 한다는 것은 항상 즐거운 일이라 느꼈고.
하지만 요즘에는 굳이 알 필요가 없는 일들이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어.
나는 이미 많은 것들의 밑바닥을 보고 자랐잖아. 그 탓에 너도 알다시피 걱정이 아주 많은 사람으로 크고 말았지!
다만 아카데미에 가게 된 뒤로는 내가 너무 절박한 환경에서 자랐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세상은 내가 알던 것과 다를 거고, 사실은 선한 사람들이 더 많다고 생각을 바꿔 나가고 있었어.
왜냐하면 몹시 다정하신 후원자 선생님도 그렇고, 너나 리나도 그렇잖아! 에반과 달로이즈도 물론이고 교수님들까지. (그래, 물론 여기에 기드온을 포함할 거야.)
그래서 세상을 보는 시각이 조금 긍정적으로 변해 가고 있었거든.
하지만 요즘 다시 새롭게 배운 것이 있어.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이익과 상관없는 결정을 할 때’ 선하다는 거야.
자신들의 이익이 관련되는 순간 사람들은 무언가 달라져. 그때 내리는 선택은 선과 악에 기준을 두지 않는 것 같아….
무슨 말이냐고? 그냥 요즘 보는 것들이 그래.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절대다수의 불행쯤은 간단히 무시하는 사람들이 참 많은 것 같거든.
어쩐지 안다는 건 내가 부정적으로 변하는 과정인 것 같아…. 가려져 있던 진실을 발견하고 시무룩하게 펜을 놓게 되는 거지.
하지만 나는 아직도 사람들의 선함을 믿고 싶긴 해.
뭐, 어쩌겠어? 그냥 뒤통수 맞고 다닐 수밖에.
다정하신 너희 어머니와 아버지, 체자르에겐 나 대신 안부를 전해 줘!
이 모든 일이 두 달 내로는 정리되지 않을까 싶어. 다음에 밀로 도티 저택에 선물을 가득 안고 한번 들를게.
네가 귀찮지만 않다면 말이야!
너를 몹시 애정하는,
바네사 로즈가.
⚜ ⚜ ⚜
특수전투부대는 대마법사 밤 반달루가 만들어 낸 조직이었다.
역사서에도 기록되지 않은, 분명치 않은 이유로 에디르네 제국이 무너지면서 대륙 위, 곳곳에서 새로운 왕국이 태동했다.
다만 왕들의 힘은 아주 미약했고 제도는 엉성했다. 약한 자들은 마물의 피해를 그저 몸으로 감내해야 했다.
프리바 왕의 전폭적인 신뢰 아래, 밤 반달루는 왕국민들을 지킬 자들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왕에게 충성을 바친 마법사들이 직접 나서서 마물을 몰아내야 합니다.’
그게 특수전투부대의 시작이었다. 초반에는 그저 마물만을 상대하는 부대로서 이름을 떨쳤다. 검은 제복을 입은 마법사들이 나타나면 왕국민들은 눈물과 함께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고 덩달아 왕의 인기도 높아졌다.
다만 천 년이 넘는 시간이 흐르며 그들이 처리해야 할 문제는 마물에 국한될 수 없었다. 문제의 원인이 다양했기 때문이다.
자연적인 발생일 수도 있었지만 인위적인 발생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사실 후자가 더 큰 문제를 일으키곤 했다.
바네사는 보고서를 작성하느라 바빴다. 파견 후 제출하는 첫 보고서인 덕분에 완벽하게 해내겠다는 신입 특유의 열기가 흘러넘쳤다.
어찌나 넘쳤던지, 이미 새까매진 하늘에도 책상 앞에 붙어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파악이 쉽도록 간략한 요약이 낫겠지? 그래도 내용이 너무 짧은가? 양을 조금이라도 늘리는 게 나을까….”
바네사는 겨우 세 줄로 -갔음, 처리했음, 이상 없음- 보고서를 제출하는 대원들이 있는지도 모르고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손에서 펜을 돌리기를 여러 번, 바네사는 결국 맨 앞장에 제 서명을 추가했다.
그래, 이제 덮자. 수십 번 생각해 봤자 첫 보고서는 모자람이 있을 수밖에 없는걸. 어디에 집중해야 하는지를 모르잖아. 부족한 부분들을 확인받고 다음부터 더 잘하는 게 낫지. 이건 시간 낭비야.
하지만 마음은 금세 변했다.
아냐, 그래도 좀 더 보완할 부분이 있을지도 몰라!
이건 분명히 기드온 탓이었다. 일개 소위의 보고서가 바로 대장에게 올라가리란 생각이 들지는 않았으나 혹여나, 정말 혹여나! 그가 본 뒤에 별로라고 생각하면 어떡하나 하는 마음에 계속해서 내용을 고치는 스스로를 막을 수가 없었다.
결국 손이 펜으로 슬금슬금 기어가고, 눈은 내용을 빠르게 훑기 시작했다. 이미 여덟 번쯤 반복한 행동이었으나 본인은 자각하지도 못했다.
덕분에 이미 정해진 퇴근 시간을 훌쩍 넘겨 창밖으로 어둠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날이 많이 풀려 적당히 선선해진 날씨에 근처 정원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갑자기 제 행동이 더욱 한심해졌다.
날이 이렇게 좋은데 밤 산책도 즐기지 못하고 이게 뭐 하는 짓이야? 기드온은 바빠서 별생각도 없을 텐데.
그러니까 진짜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보자. 틀린 글자가 없는지만 보고 정말로 집에 가는 거야. 알겠어, 바네사 로즈?
바네사는 눈을 부릅뜨고 글자 하나하나를 씹어먹을 듯 쏘아보기 시작했다.
그때 누군가가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누가 이렇게 매일 불을 안 끄고 가! 귀찮아 죽겠네. 내일부터 하나하나 기록해서 광산에서 마정석 채굴하게 해야- 어? 뭐야.”
“왜, 누구 있어?”
종이 위로 빼꼼히 올라온 바네사의 파란 눈이 어리둥절하게 깜빡였다.
“바, 아니, 로즈 소위.”
다른 대원들 위로 얼굴이 훌쩍 올라온, 당황한 표정의 기드온과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다. 그의 눈빛은 왜 당신이 아직도 여기에 있냐는 뜻을 담고 있었다.
어쩐지 불안감에 목 뒤로 오스스, 소름이 돋았다.
문밖에는 꽤 여러 명이 서 있었다. 제복을 입은 사람 넷, 제복을 입지 않은 사람 하나.
반가워할 만한 얼굴도 있었고, 처음 보는 얼굴도 있었지만 그들의 흥미로운 시선이 당황스럽기는 매한가지였다.
바네사는 멈칫대며 일어났다.
“안… 녕하세요…?”
갈피를 못 잡는 목소리가 떨떠름하게 뒤집어졌다.
기드온은 그렇다 치고, 나머지는 왜 저렇게 쳐다봐. 일하는 사람 처음 봐?
“…소위, 집에 안 가고 뭐 하는 거지? 파견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된 것으로 아는데.”
기드온의 나직한 물음은 눈치 없는 감탄사에 끊기고 말았다.
“오, 잘됐습니다. 함께 가면 더 좋을 것 같은데요.”
제복을 입은 붉은 머리 남자가 태평한 목소리를 냈다. 그는 자신의 대장이 서늘하게 쳐다보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나불나불 입을 놀렸다.
“저 소위, 마법 특화 대원인 걸로 알고 있는데요. 지금 일에 딱 맞습니다.”
“…이쪽 일을 담당하지 않아 부적합하다. 소위, 적당히 하고 퇴근해.”
단호하게 끊어 내는 말에 옆에 살짝 물러나 있던 덥수룩한 남자가 힐끔 기드온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빙그레 미소 지었다.
그 남자는 제복을 입고 있지 않았다….
“평판이 좋으신 이유가 있군요. 프리바 전역에 흩어진 대원들을 관리하시려면 몸이 두 개라도 부족하실 텐데, 일개 소위가 담당하는 일까지 모두 꿰뚫고 계시다니.”
그 말에 기드온의 얼굴이 서늘해졌다. 바네사는 신발에 감춰진 발끝을 움츠렸다. 다행히 얼굴은 처음부터 혼란스러웠으니 그리 티가 나진 않았을 것이다.
붕붕 뜬 머리를 가진 남자는 안으로 들어와 악수를 건넸다.
“정보국의 바라스라고 합니다. 대원께서는 성함이 어찌 되시는지?”
“바네사 로즈입니다.”
“아, 그 로즈 소위.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바라스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남자는 살짝 처진 눈을 느리게 껌뻑였다. 놀랍도록 무해해 보이는 얼굴인데도 말하는 것마다 묘한 날카로움이 있었다.
“폐하께서 직접 고른 대원은 정말 오랜만이라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같이 가게 되면 참 좋겠군요. 물론 결정은 특전대의 장께서 하셔야겠지만 말입니다.”
남자는 빙그레 웃었다.
“‘보호’해야 하는 처지에서는 꺼려지실 수도 있겠지만 이번엔 대외적으로 보호받으셔야 하는 입장 아닙니까.”
정보국이라 그렇게 느껴지는 건지, 아니면 진짜로 무언가 있어서 그런지, 뼈가 담겨 있는 기분이었다.
바네사는 원망스레 제 보고서를 노려보았다.
틀린 글자 하나가 뭐가 중요하다고. 적당히 하고 집에 갔으면 여기에서 이럴 거 없이 푹신한 쿠션에 기대어 책 좀 보다가 잤을 거 아니야!
팔짱을 낀 대원 하나도 동의 의사를 표했다.
“저번에도 신입 소위를 하나 비슷한 일에 데려갔는데 그 뒤로 좀 더 신중한 태도를 보이더군요. 좋은 생각인 듯합니다, 대장님.”
집에 돌아가기를 포기한 바네사는 기드온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겉옷을 걸쳤다.
다행히 짧은 옷은 움직이기에 편안했다.
“…좋아, 소위도 함께 가지.”
한숨처럼 떨어진 말에 바네사는 문 쪽으로 발을 성큼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