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rely, Vanessa RAW novel - Chapter (113)
선생님께, 바네사로부터 113화(113/146)
⚜ ⚜ ⚜
세 대원은 포박한 제냐타와 바라스를 보호하며 성으로 돌아갔다. 바네사의 순간이동 마법 덕분에 어렵지 않았다. 먼 거리가 아니라서 여러 번의 이동도 간단했다.
바라스는 성에 도착하자마자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고, 법무부원이 나타나 그들에게서 제냐타를 인계받고 증거품을 수집해 갔다.
“감사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아니, 겉만 보면 그쪽이 더 고생을 한 것 같은데.”
잰즈 가로우가 중얼거렸다.
눈 밑의 꺼먼 그늘을 손으로 문지른 법무부원은 증거물들을 마법이 걸린 상자에 주섬주섬 챙겨 담으며 말했다.
“어서 빨리 야근이 없는 날이 찾아왔으면 좋겠군요. 아니면 야근 수당을 좀 올려 주든가.”
그는 우울한 표정으로 진심을 토해 냈다.
병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제냐타와 법무부원이 떠나고, 안나는 늘어지게 하품을 한 뒤에 쩍 입맛을 다셨다.
“갑자기 끌려가서 정말 고생 많았어, 소위.”
“생각해 보니 정말 날벼락이었겠는데. 보고서 쓰다가 늦은 탓에 죽을 뻔한 거 아니야?”
잰즈가 킬킬대며 하는 말에 바네사는 한숨처럼 웃었다.
“다신 함부로 야근하지 않겠어요.”
“그거 좋은 생각이지. 집까지 데려다줄까?”
“아뇨, 괜찮습니다. 먼저 가 볼게요.”
“역시 배우는 게 빨라.”
나갈 때만 해도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분분한 저녁이었건만 이미 아주 늦은 밤이었다.
바네사는 성문을 나서서 열 걸음을 걷자마자 바로 공간이동 마법을 사용했다. 집 근처 골목은 인적이 드물어 다행히 아무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를 걱정하는 건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다. 몸을 웅크린 채 누군가를 걱정하는 새벽은 싫었다. 차라리 어떻게든 잠으로 까만 밤을 보내고 환한 아침이 되어 발데르 성에 찾아가는 게 나았다.
바네사는 씻고 침대 위에 반듯하게 누웠다. 어느새 겨울 이불이 두껍게만 느껴졌다.
그래서 그런지 잠은 잘 오지 않았다.
⚜ ⚜ ⚜
똑. 똑. 톡, 토독.
얕은 꿈은 작은 방해에도 쉽사리 날아가 버렸다. 기드온에 대한 걱정에 양을 만 마리쯤 세고 나서야 간신히 잠들었던 바네사는 앓는 소리를 내뱉으며 옆으로 돌아누웠다.
톡, 톡.
누군가 방에 달린 작은 창문에 무언가를 던지고 있는 듯했다. 계속되는 규칙적인 소음에 바네사는 참지 못하고 끙끙대며 일어났다.
“누… 구야….”
옆쪽으로 복잡하게 얽힌 골목은 특이한 사람들도 많았다. 바네사는 창문을 열고 짜증스레 소리라도 치려 했다. 도대체 밤에 왜 이런 장난을 치는 건지. 안 그래도 심란해 죽겠는데!
그러나 고개를 빼었을 때 마주친 눈이 너무나 큰 선물 같아서 입이 차마 떨어지지 않았다.
‘바네사.’
기드온이 웃고 있었다. 그 미소가 어둠을 밝히는 태양처럼 환했다.
바네사는 창문을 닫고 얇고 커다란 스웨터를 아무렇게나 뒤집어썼다. 그리고 즉시 방 안을 뛰어나갔다.
그는 골목길에 서 있었다. 달빛이 흐려 별이 밝은 하늘을 보며 서 있던 남자는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당연한 듯 팔을 벌렸다.
바네사는 한달음에 달려가 마주 껴안았다. 그 따뜻한 품에 안겨 있으니 그제야 안심이 되어 한숨이 났다.
“날이 추운데 이렇게 입고 나왔습니까.”
“뭐가 추워요? 이제 봄이 다 되었는데.”
“새벽의 공기는 항상 찹니다. 지금도 뺨이 창백하잖아.”
조곤조곤한 목소리는 걱정을 가득 담고 있었다.
바네사는 갑자기 웃음이 나서 얼굴을 그의 가슴 쪽으로 묻어 숨겼다. 우리 둘 다 걱정이 참 많구나.
결국 두 사람은 바람이 불지 않는 골목 안쪽으로 가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그걸로도 모자라다 느꼈는지, 기드온은 자신의 겉옷을 벗어 바네사를 감쌌다.
바네사는 킁킁 냄새를 맡았다. 다행히 비릿한 피 냄새는 나지 않았다.
슬쩍 시선을 올리자 이미 그녀를 보고 있던 남자의 것과 맞닿았다. 그는 설핏 입매를 올렸다.
가만히 그를 관찰하다가 입을 열었다.
“걱정했어요.”
“압니다.”
“다친 데 있어요?”
“없습니다. 당신 생각보다 아주 수월했습니다.”
“내 생각을 어떻게 아는데요?”
“당신은 걱정이 아주 많잖아요. 생각이 앞서 달려가는 경향이 있고, 후회도 많이 하고. 그러니까 아마 내 예상이 맞을 겁니다.”
모두 정확한 말이라 바네사는 전혀 반박하지 못했다. 어쩐지 조금 부루퉁해졌으나 기드온이 다정히 손을 잡아 주어 괜찮아졌다.
“그럼, 그 제냐타 백작님의 따님은 건강하신가요?”
“정신적으로 충격받아 보였으나 육체적으로 상한 곳은 없었습니다.”
“다행이네요. 이제 마음 놓고 제냐타 백작님을 미워할 수 있겠어요.”
기드온이 낮게 웃었다. 피로감에 젖은 눈매가 기울어지자 바네사는 안쓰러움에 팔을 뻗었다. 그는 허리를 낮춰 바네사의 손길이 잘 닿을 수 있도록 도왔다.
하얀 손가락이 가만가만 눈시울을 더듬었다. 나른한 한숨이 내뱉어졌다.
“왜 여기로 왔어요? 가서 쉬지 않고요.”
“당신이 걱정하느라 못 잘까 봐. 그런데 자고 있었던 것 같네요. 눈가에 졸음이 가득한데?”
바네사는 잽싸게 부정했다.
“전혀 아닌데요? 기분 탓이에요.”
“그렇군요.”
기드온은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사실 내가 당신이 보고 싶어서 온 겁니다.”
미사여구 하나 없이 솔직한 말에 가슴이 울렁거렸다.
어두운 골목이 좋긴 처음이었다. 저 멀리에 마정석 등불 하나 겨우 박힌 골목은 노란빛만 희미하게 번졌고, 붉게 물든 뺨을 가리기 최적의 장소였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친구로서 기드를 만날 때는 자신도 항상 제 감정을 숨김없이, 낱낱이 드러냈던 것 같다. 그를 만나서 좋았고, 다음에 또 만나고 싶다고. 혹은 당신과 있어 안심이 되었다고.
하지만 이상하게 그와 연인이 된 이후부터 진심을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그건 아마 그의 진실한 속삭임이 자신에게 너무 크게 다가와서 그럴 것이다. 좋은 건 아끼고 다듬어 가장 화사한 날에 내보이고 싶은 마음이라서.
하지만 오늘은 솔직한 말을 전하고 싶었다. 밝고 아름다운 날은 아니지만, 우리 두 사람에게 힘든 날이었으니까.
사실 와 줘서 좋아요. 당신이 다치지 않은 걸 보니 마음이 놓여요. 고마워요.
조심히 입을 뗐다.
“자, 자고 갈래요?”
하지만 생각과 아주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바네사는 저도 놀라 스스로의 입을 막았다. 너무 급진적인 거 아냐?
그 모습을 본 기드온은 진심으로 크게 웃을 뻔한 걸 간신히 멈췄다. 그가 고개를 숙인 채로 몸을 잘게 떨자 바네사는 민망함에 헛기침을 했다.
“성까지 머, 머니까… 맞다, 우리 마법사였죠? 그, 금방 돌아갈 수 있구나.”
“자고 가면 좋죠. 좋은데….”
기드온이 고개를 숙여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여긴 너무 좁고…”
방음이 별로니까.
밤에 어울리는 나른한 목소리에 바네사는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했다.
“바, 방음 좋아서 뭐 하려고요!”
“대화를 하지 무얼 합니까. 뭐, 따로 하고 싶은 거 있습니까?”
그는 픽 웃으며 대꾸했다. 짓궂은 눈빛을 본 바네사는 그의 의도에 휘말렸음을 깨닫고 잠시 씩씩댔다.
기드온은 그 모습을 보면서 드디어 마음을 놓았다.
그래, 그녀는 다친 곳 하나 없이 건강하구나. 아까 있었던 일은 그녀에게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했구나. 자꾸 제 머릿속을 스치는 끔찍한 상상들은 다 허상일 뿐이다. 품의 온기가 진실이다.
모든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고 나서도 그녀에게서 손을 떼기 어려웠다. 자꾸 닿고 싶었다. 닿아야 끔찍한 상상이 휘발되고 제정신이 들었다.
그렇다면 좀 더 확실히 현실을 깨달을 방법이 있었다.
기드온은 느릿느릿 고개를 숙여 도톰한 입술을 베어 물었다. 고요한 낯과 달리 뜨거운 숨에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다 이내 잦아들었다.
하지만 뒤척이다 맞닿은 가슴팍으로 전해지는 그의 빠른 박동은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깊지 않았던 접촉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마침내 가벼운 소리를 내며 입술을 뗀 남자의 눈빛은 혼탁했다. 욕망으로 이지러졌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바네사는 그 안에서 담긴 다른 것도 읽어냈다. 이제 아무리 어둠에 가려도 그를 제법 잘 해석할 수 있었다.
“혹시 지금, 무서워요?”
바네사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그는 갑자기 헐떡이며 웃었다. 기드온은 바네사의 목덜미에 코끝을 비비다가 불쑥 내뱉었다.
“가끔 내가 미친 것 같아.”
“그래 보이긴 해요. 지금 꼭 조나 힐이 술 마셨을 때 같아요.”
“그건 정말….”
너무하는 말인데. 기드온이 중얼거리자 바네사는 그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의 웅크린 몸을 반도 다 안아 주지 못했지만 그의 불안감을 희석시킬 수 있다면야.
팔이 더 길었으면 좋았을 텐데.
똑같은 겁쟁이인 바네사는 그가 무엇 때문에 괴로워하는지를 금세 깨달았다. 겁쟁이끼리는 통하는 법이니까.
“난 정말 괜찮아요. 알죠? 다친 곳 하나 없어요.”
“압니다. 아는데….”
“알면 됐어요. 솔직히 지금 상황에서는 걱정은 내가 하고, 위로를 당신이 해야 하는 거란 말이에요!”
“그래도 후회가 됩니다. 특전대처럼 위험한 곳에 당신이 있는 게 싫습니다. 폐하께 자나바 소유권을 바로 넘길 걸 그랬습니다. 당신이 눈치도 못 챌 정도로 빠르게.”
바네사는 껴안고 있던 너른 등판을 때렸다. 남자는 아픈 척 그녀의 목덜미에 이마를 비비적댔다.
“항상 건강히 돌아오겠다고 약속했잖아요. 잘 지키고 있단 말이에요.”
“그래요. 그렇지.”
그는 한숨처럼 속삭였다.
하지만 허리를 곧게 편 그의 눈에는 여전히 많은 것들이 담겨 있었다. 딱히 밝은 것들이 아닌 그늘진 것들. 그를 혼자 보내고 싶지 않아지는.
“겁쟁이.”
“타고 나길 그렇습니다.”
“사실 나도 그래요.”
밤이 두려워 숨죽인 웃음소리에 날 선 심장이 누그러졌다.
그럼에도 그는 쉽게 손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손을 떼다가도 다시 다가와 뺨을 어루만졌다. 허리를 끌어당기고, 가닥가닥 구불대는 머리칼에 입을 맞추었다.
골목 벽에 머리를 기댄 채로, 피로함에 눈을 껌뻑이는 기드온을 본 바네사는 결국 그날 발데르 성으로 가서 아주 짧은 잠을 잤다.
언제나 그렇듯 성의 침대는 참으로 포근했다. 제대로 느낄 시간이 없었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