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rely, Vanessa RAW novel - Chapter (119)
선생님께, 바네사로부터 119화(119/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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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에는 이동 포탈이 많이 설치되어 있었다. 포탈은 설치 비용도 비쌌지만 유지 비용이 더욱 굉장하여 지역마다 두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동부는 부유한 자들이 많았으므로 유지 비용을 모아서라도 적극적으로 포탈을 유치했다. 그들은 그 방법이 동부를 발전시키는 데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고 실제로도 맞아 들었다.
결국 사람들의 이동이 비교적 쉬워진 덕분에 동부는 유명한 관광지가 아주 많은 곳으로 탈바꿈했다.
“와.”
바네사는 호기심 넘치는 눈으로 멀리 보이는 바닷가를 기웃거렸다. 햇살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하얀 포말들이 어른거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이내 파도에 다시 밀려와 해변가를 하얗게 장식했다.
놀러 온 곳이 아니라 해도 아름다운 광경을 보니 마음이 들떴다. 가벼워진 마음 덕분일지도 모르지만.
“몸은 좀 나아졌어?”
에반의 질문에 바네사는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민은 끝났으니 이제 직진만 하면 된다. 오히려 어서 그를 다시 마주하고 싶어서 몸이 달았다. 딱 한 대만 때리면 돼.
에반은 그 모습을 보고는 조용히 투덜거렸다.
“눈은 퉁퉁 부어 가지고. 나한테 꺼지라고 할 땐 언제고 웃음이 얼굴에 만연하다?”
“언제 꺼지라고 했어. 가서 일하라고 했지.”
“그게 그 말 아니냐? 솔직히 말해 봐. 너 연애 문제였지?”
긴장감 없이 떠드는 두 사람을 보고 그레인 중위가 뒤에서 혀를 찼다.
“이봐, 소위들. 물론 이니스가 아름답기는 하지. 근데 그렇게 태평하게 굴면 안 되지…. 그건 그렇고 내 짐 좀 숙소에 가져다 놔. 나 저기 주스 좀 사 먹게.”
셋 다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으니 슬리만 대위는 짜증이 가득한 표정으로 모두를 평등하게 걷어찼다.
“너네 정신 안 차릴래? 이니스 토벌 기록은 자세하지 않단 말이다. 빨리빨리 움직여!”
작은 도시는 왁자지껄한 소음으로 가득 차 활발했다.
게다가 이니스는 이미 과거에 토벌이 진행되었던 곳이라 특전대의 덕을 직접적으로 본 지역 중 하나였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모두 특전대원들에게 호의적인 눈빛을 보냈다.
휴양지로 유명한 도시답게 숙소도 화려했다. 독특한 모양의 지붕들은 눈길을 끌었고 창마다 꽃 화분이 놓여 있어 바람결에 부드럽게 꽃잎이 흔들거렸다. 봄 향기가 물씬 풍기는 것 같았다.
바네사는 외떨어진 방에 짐을 대충 던져 놓고 챙겨 온 호니르를 탁자 위에 올렸다. 그리고 그 잠깐 사이에 빠르게 종이에 몇 줄짜리 편지를 작성했다.
글씨는 날아가는 듯했고 아래 서명도 반쯤은 뭉개졌지만 항상 편지는 내용이 중요한 것이니까 괜찮았다. 오는 내내 생각한 문장들이 빠짐없이 담겼다.
손가락으로 종이 결을 쓸어 본 바네사는 만족스러워졌다.
“로즈 소위, 내려와!”
“네, 가겠습니다!”
바네사는 호니르 입구에 편지를 넣었다. 호니르의 안쪽에 노란빛이 감도는 것을 보며 바네사는 방에서 뛰어나왔다.
“우리가 찾고자 하는 목표는 밤 반달루의 마법진이다. 없으면 그만이지만 혹시 찾아낼 수 있다면 마법진이 피해받은 정도를 파악하여 보고해야 한다.”
울타리에 기댄 슬리만 대위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말투와 달리 그는 꽃 한 송이를 입에 물고 있었는데 주변에서 기웃대는 이니스 사람들의 화려한 옷 색깔과 아주 잘 어울렸다.
“솔직히 애매해서 더 어려운 목표라고 생각한다. ‘마법진이 있다’ 하면 찾으면 되지만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라고 하면 당황스럽잖나.”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최선은 다해야겠지. 둘씩 갈라지겠다. 내가 리아스 소위와 가고… 그레인 중위가 로즈 소위랑 가도록. 토벌이 일어났던 위치 중심으로 뒤져. 마법의 흔적이 남아 있다면 표시해 놓고.”
“네.”
그레인 중위가 적당한 길이의 중검을 허리춤에 단단히 고정했다. 바네사는 멀리 보이는 높은 암벽과 그를 둘러싼 숲을 바라보았다.
“가자고, 소위.”
바네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 ⚜ ⚜
‘나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요.’
기드온의 머릿속에 바네사의 목소리가 계속 반복되었다.
하지만 그 시간의 끝에 무슨 결론이 내려질까? 그는 자신이 없었다….
그녀가 나를 버리기로 결심하면?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바네사의 마음이 되돌려질까. 무얼 하든 또다시 그녀를 속이려는 수작질로 보일지도 모르지. 그런 오해를 산다 해도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절대 자신의 입으로 밝히고 싶지는 않았다. 마지막까지 피하고 싶었다. 혹시 정말로, 당신의 감정이 진실 하나에 부서질 아슬한 기반 위에 쌓아 올린 것이라면 어쩌나 하고.
물론 그것 역시 그의 탓이었다….
그렇다면 겸허히 그녀의 선택을 기다려야 할 뿐일진대.
하지만 그는 이미 너무 많은 걸 맛보았다.
그녀의 웃음이 주는 기쁨을 깨우쳤으며, 그녀의 손짓이 불러일으키는 떨림을 알았고, 그녀의 온기가 나누어 주는 평온함을 느꼈다. 혼자 굳게 서 있던 시간은 잊었다.
그게 그를 미치게 했다. 나를 이렇게 바꿔 놓고 떠날지도 모른다니. 내겐 이제 그녀보다 소중한 게 없는데.
우울해진 그는 어딜 걷고 있는지도 제대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신경 쓰게 되었지만 그도 물론 눈치채지 못했다.
아니, 눈치챘어도 아마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들의 대장을 대신하여, 특전대원들끼리 서로를 열심히 눈짓하며 소리 없이 뻐끔댔다.
‘빌어먹을, 그만 좀 흘끔대!’
‘하지만 진짜로 상태가 너무 안 좋아 보이시는데요.’
‘그냥 우리가 앞서겠다고 할까? 좀 쉬시라고 하고.’
‘저라면 지금 대장님께 말 자체를 아끼겠습니다.’
‘도대체 뭔 일인데!’
‘제가 어떻게 압니까?’
보통 때라면 날카롭게 벼려진 칼처럼 흐트러짐 하나 없을 그들의 대장이었다. 게다가 지금 향하는 곳이 어디인가? 바로 모든 마물 피해의 시작으로 추측되는 신전이 아닌가.
심지어 이 모든 조사를 시작한 것이 기드온이었다. 그가 어느 학생과 동굴에 떨어진 날, 밤 반달루의 마법진을 본 것을 계기로 프리바 전역의 마법진을 확인하다가 이상한 무리가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니까.
그렇다면 마무리하기 위한 발걸음이 무겁긴 하겠으나, 동시에 책장을 닫는 자 특유의 홀가분함이 보이리라 생각했는데.
하지만 그들의 예상과 달리 오늘따라 그는 몹시 피곤하고 우울해 보였으며, 그에 더해 사나워 보이기까지 했다.
피로한 날들이야 가득했으나 기드온이 대원들에게 티를 낸 적은 단연코 없었다. 그들의 대장은 가끔 철로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들게 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눈매에 드리워진 우울함과 구겨진 미간, 굳은 턱선은 대체 뭐란 말인가?
모든 특전대원들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떠올랐으나 해답을 줄 사람은 여기에 없었다.
“큼.”
법무부에서 나온 아리아나는 약간 헐떡이며 그들과 함께 걷고 있었다. 그녀는 프리바의 법전 앞에서 오늘 본 모든 일의 증인이 될 사람이었다.
날씬한 다리가 흙길을 밟을 때마다 넘어질까 걱정이 되었지만 그녀는 제법 꿋꿋하게 잘 따라오고 있었다. 다른 법무부원들은 이미 한참 뒤쪽으로 처져 있었으니 괜찮은 끈기였다.
리에트는 헛기침하고는 아리아나에게 슬쩍 붙었다. 아리아나는 법무부의 일원일 뿐이었으나 제법 좋은 집안의 차녀라 아는 것이 있을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커흠, 혹시 요즘 공동회의에서 안 좋은 이야기들이 많았습니까?”
“글쎄요, 저는 아는 것이 없습니다만…. 공동회의야 항상 혼란스럽다고 들었답니다.”
아리아나가 매끄러운 목소리로 답해 주었다. 리에트는 시무룩해져서 붙였던 몸을 떼어 냈다. 그럼 대장님은 대체 왜 저러신담.
아리아나가 생긋 웃었다.
“대장님의 기분이 안 좋아 보이셔서 신경 쓰이시나요?”
“뭐어, 대장님의 기분은 대원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치니까요.”
아리아나는 살풋 미소 지었다. 끈질긴 사냥개 같은 걸로 유명한 법무부원답지 않은 미소였다.
“사실 이곳에 지원할 생각은 없었지만 기드온 대장이 직접 오신다고 해서 나왔거든요. 기분이 안 좋아 보이시니 날을 잘못 골랐네요. 그래도 같이 걷기도 어려운 분이니….”
다른 의도가 있었다는 것을 명확히 짚는 아리아나의 말에 리에트는 머리를 긁적였다.
타부서와 협업하는 경우 이런 일이 종종 있기는 했다. 염문설 하나 없는 기드온은 퓌돔 내부에서 굉장히 인기가 많았으므로.
쯧쯧, 저런 우울함과 피로마저 그늘진 눈매를 꾸미는 장식처럼 보이니 참으로 문제다. 역시 내 남편처럼 적당히 생긴 게 최고다!
리에트는 흐뭇하게 남편의 우락부락한 얼굴을 떠올리며 아리아나를 앞질러 걸어갔다.
신전으로 걷는 길은 그리 멀지 않았다.
적당한 숲을 뒤로 끼고 있는 신전은 다른 마법사들이 일회성 공간이동 마법진을 그려 둔 곳과 가까웠고, 완만한 경사의 흙길 약간만 걸으면 충분했다. 그래서 머리 위로 드리워진 나뭇가지를 들어 올리자 먼발치에 문 앞에 나와 있는 신관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왕성에서 나온 사람들을 저지하기 위해 문 앞을 막고 있었다. 앞쪽에서 짜증스러운 한숨이 들려왔다. 리에트도 속으로 혀를 찼다. 특전대와 법무부가 정당한 왕의 명령을 들고 왔는데도 저 난리라니.
이미 가까워진 거리에도 기드온은 보폭을 줄이지 않았다. 신관 중 하나가 버럭 소리를 질렀음에도.
그래서 이제 그와 신관들의 거리는 지척이었다. 특전대원 중 하나가 입을 벌려 기드온을 멈추려 했다. 그러나….
간단한 손짓조차 없었다. 그냥 손가락이 검에 스친 순간, 마법이 실현되었다. 그래서 상대는 무언가 방어할 시간이 없었다. 알았어도 하지 못했을 테지만.
공기의 흐름이 모든 신관들을 강하게 짓눌러 그들을 바닥에 무릎 꿇게 만들었다. 머리까지 짓눌린 그 모습은 마치 누군가를 경배하는 듯 보여 기묘했다.
함께 왕성에서 나온 자들도 찔끔하는 사이에 기드온은 무심하게 그들을 지나쳐 신전 입구로 향했다.
“이게 무슨 짓이오, 여긴 신전이오!”
“왕이 왕권을 강화하려 무결한 신전마저 죄를 물리려 드는구나!”
개구리처럼 짓눌린 자들이 고함쳤으나 대답 없이 그 사이로 부러 강하게 땅을 밟는 소리만 났다.
“천벌을 받을 것이다!”
누군가가 그리 외쳤으나 기드온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타락한 신관들 혹은 평생 본 적도 없는 신을 두려워하기엔 그가 정말로 무서워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바네사가 저를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리고 이미 그 사태는 일어났다. 그래서 기드온은 지금 눈에 뵈는 것 따위는 없었다.
성큼성큼 걸어가자 곧 그를 뒤따르는 발걸음 소리들이 부산스레 울렸다. 두꺼운 군화창 덕분에 땅을 밟는 소리는 요란했다.
“대장님, 오늘 몹시 사납게 구시는 것 같은데 아마 제 착각이겠죠. 저런 모양새는 조금 심하지 않습니까?”
재빨리 뒤따라간 리에트 대령이 슬쩍 입을 열었으나 기드온은 서늘하게 답했다.
“다친 곳 하나 없이 멀쩡한데 저들의 굴욕감까지 신경 써 줘야 하나. 저들이 일으킨 피해가 얼마나 되는지 알고 하는 소리겠지, 대령.”
“음, 실언했습니다.”
리에트는 발걸음을 늦춰 히솝 중위에게 이리저리 손짓했다. 히솝은 손으로 자신의 눈꼬리를 비죽 위로 끌어당겼다.
‘잠을 너무 오래 못 주무셔서 그런 건 아닐까.’
‘제에발 조심 좀 하시라고요!’
‘그래. 대장님한테 지금 잘못 걸리면 우리 다 죽는 거야….’
‘그러니까 대령님만 조심하시면 됩니다. 그런 말을 대체 왜 하세요!’
두 사람이 부산스레 손짓, 발짓을 하며 소리 없는 대화를 나눴다. 안달루스 소령은 그들을 한심하게 보다가 먼저 신전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ΑngKeumTo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