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rely, Vanessa RAW novel - Chapter (12)
선생님께, 바네사로부터 12화(12/146)
“어이, 바네사. 오늘은 구경 안 와?”
바네사가 님루드에서 가장 좋아하는 케이크 가게, <카페, 둘체>의 주인장이었다.
<카페, 둘체>는 님루드에서 가장 유명한 카페로 마실 것보다는 케이크로 유명한 곳이었다.
사실 하얀 칠이 예뻐 기웃거리다가 처음 들어가게 된 곳이었다. 케이크는 주인의 장담대로 달콤한 크림과 폭신한 시트가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내리는 굉장한 식감이었다.
폭신한 케이크와 어울리지 않는, 우락부락한 생김새를 가진 주인은 품에 한 아름 가득 과일을 안고 있었다.
“오늘은 레몬머랭타르트가 최고야. 시시프산 레몬을 잔뜩 들여왔거든. 레몬 좋아한다며?”
주인은 바네사의 재잘거림을 기억하고 있는 듯했다.
“오늘은 케이크 먹을 날이 아닌걸요. 그렇지만 레몬머랭이라니, 듣기만 해도 행복해져요.”
“먹을 날이 아니라니, 후회할 텐데? 내일은 다 팔려 없을 거라고!”
그 말에 바네사는 잠시 끙끙 앓았다. 레몬머랭타르트라니. 안 돼, 참아야 해. 케이크를 너무 자주 먹잖아!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바네사는 꽃향기에 이끌린 벌처럼 저도 모르게 주인을 따라 걷고 있었다.
단번에 바네사를 꼬여 낸 주인은 낄낄대며 아직 준비 중인 카페의 문을 열어 주었다.
바네사는 잽싸게 들어가 유리 진열대에 코를 박고 구경하기 시작했다. 레몬머랭타르트는 진열대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우와….”
버터를 잔뜩 넣어 꾸덕꾸덕해 보이는 타르트지와 살짝 그을린 머랭 겉 부분, 설탕에 절인 레몬 슬라이스까지. 그야말로 완벽했다.
거의 넋을 놓고 구경하는 바네사를 보며 주인은 크게 웃었다.
“기분이다. 산다고 하면 내가 아주 크게 잘라 주지!”
주인의 실력만큼 케이크는 비싼 편이었다. 바네사는 치열하게 고민했다.
2일 전에 케이크를 두 조각이나 샀었는데 지나친 사치 아닐까? 하지만 제니언도 맛있다고 했는데, 연구에 지친 제니언에게도 좋은 선물 아닐까?
물론 제니언은 연구에 관련된 일이라면 지치는 것 같지 않았지만 핑계로는 좋았다.
바네사가 홀린 듯 두 조각을 포장해 달라고 외치기 직전, 갑자기 카페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딸랑, 딸랑.
“안녕하, 컥.”
영업용 미소를 한껏 그린 주인이 갑자기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덜컥 멈췄다. 바네사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아저씨, 괜찮으세요?”
“괜찮으십니까?”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 바네사는 시선을 뒤로 돌렸다. 그리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숨을 멈췄다.
세상에.
⚜ ⚜ ⚜
<8월 5일, 에디르네력 1309년>
선생님께.
무더위에 건강히 잘 계신가요?
선생님이 지내시는 곳은 그늘도 많고 조금 시원했으면 좋겠어요. 님루드는 몹시 더워서 진이 빠지는 날씨거든요.
하여튼 새로운 소식이 있어요. 바네사 로즈가 님루드에서 새로운 친구를 만들었다는 걸 알려드리려고요!
저는 요즘 님루드에서 가장 유명한 케이크 가게에 매일 구경을 가요.
‘카페, 둘체’라는 곳인데요. 매일 사 먹기는 너무 사치인 것 같아서 꾹 참다가 3-4일에 한 번쯤 사 와요. 예쁜 만큼 비싸기도 하거든요.
보통 그날의 추천 디저트를 포장해서 제니언과 나눠 먹어요. 제니언이 감질난다고 더 사 오라고 하지만 이렇게 먹어야 더 맛있는 법이잖아요.
아, 이틀 전은 아주 더운 날이었어요. 저는 걷다가 진이 빠져 분수 옆에서 좀 쉬고 있었죠.
그런데 카페 둘체의 주인이 저를 알아보고는 레몬머랭타르트가 있다며 절 꾀어내는 것이 아니겠어요!
제가 레몬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고 있는 주인에게는 도저히 당할 재간이 없었어요!
결국 쫄래쫄래 따라갔죠. 대신 이번 주는 이걸로 끝이라고 결심하면서요.
아직 가게를 열기 전이라서 손님은 저뿐이라 케이크 진열장 앞에 딱 달라붙어 구경 중이었죠.
물론 레몬머랭타르트에 홀렸지만 딸기가 잔뜩 올라간 생크림케이크도 맛있을 테고, 초콜릿을 듬뿍 넣은 무스케이크도 최고거든요.
편지를 쓰는데도 상상이 되네요. 하나 보내 드리고 싶은데 호니르 입구에는 도저히 들어갈 크기가 아니에요.
그때 가게 문의 종이 딸랑 울렸는데요, 카페 주인이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더라고요.
고개를 드니 얼굴에 흉터 자국도 있고 팔뚝은 제 허리만 한 주인아저씨가 심장을 부여잡고 서 있기에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요.
“아저씨, 괜찮으세요?”
“괜찮으십니까?”
아주 낮지만 부드러운 목소리였어요. 고개를 돌렸는데 그때부터 저도 숨이 턱 막히더라니까요!
제가 태어나서 본 사람 중 가장, 가장 잘생긴 남자가 서 있더라고요.
그 외모를 묘사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어요. 여자고 남자고 가리지 않고 숨을 멎게 만드는 미모가 세상에 있다니까요!
혹시 제가 이분의 아름다움을 묘사하기 위해서 문학 수업을 들은 것은 아닐까요? 엘리엇 교수님께 이분을 보여 드리면 그것만으로도 최고 등급의 점수를 받는 것이 아닐까요?
그냥 그분은 어느 명화 속의 주인공처럼 완벽했어요.
단정하게 드러난 이마와 깨끗하게 넘긴 황금색 머리카락은 우아하고 부드러워 보였지만 밝게 빛나는 황금색 눈동자는 그늘 속에 몸을 숨긴 포식자의 눈처럼 번뜩이는 느낌이 있었어요. 저렇게 화사한 색상인데도 가벼워 보이지 않고 무게감이 있는 것이 신기했어요.
키는 굉장히 커서 제가 고개를 바짝 올려야 했어요. 제 키가 아주 큰 편인 것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죠. 크고 단단한 몸은 꼭 책 속의 기사 같았어요.
제가 외모를 이렇게 묘사한다고 해서 그분이 불쾌해하시는 것은 아니겠죠?
선생님께만 알려 드리는 거니까 비밀 지켜 주셔야 해요. 제가 본 느낌을 그대로 전달해 드리고 싶었단 말이에요!
하여튼 그 사람이 가까이 걸어오자 주인아저씨의 얼굴이 터질 것처럼 붉어졌어요. 정말 웃기죠?
“아직 가게가 열지 않았습니까?”
“그, 그. 그그… 끅.”
주인아저씨는 대답을 못 하실 것 같아서 제가 대신 대답해 드리기로 했죠. 저는 다시 숨을 쉴 수 있었거든요.
“아직 열지 않았어요. 지금은 포장만 되는데 괜찮으세요?”
시선이 제게 내려오자 긴장이 되더라고요. 키 차이가 많이 나서 그랬을까요?
“예. 혹시 어떤 것이 인기가 좋을까요?”
저는 그때부터 신이 났죠. 제가 카페 둘체 메뉴는 주인아저씨만큼 알잖아요.
“음, 오늘은 레몬머랭타르트가 가장 맛있을 거예요. 저도 이걸 사 갈 거고요. 하지만 여러 조각을 사실 거면 꾸덕한 치즈케이크도 맛있고, 과일을 듬뿍 넣은 크림케이크도 인기가 좋아요!”
그러니까 그분이 웃으시더라고요.
“머랭타르트를 사실 거군요. 레몬을 좋아하십니까?”
“네. 좋아해요. 여기는 그냥 잼을 사서 떠먹어도 맛있어요.”
그분은 제 옆에서 유리 진열장을 열심히 바라보았는데 저는 그 옆모습을 열심히 힐끗댔어요. 미인이 세상을 구한다잖아요.
선생님, 선생님의 피후원자가 제법 얼굴에 약하다는 사실을 눈치채셨죠?
“제 얼굴에 뭔가 묻었습니까?”
고개를 갸웃대더니 큰 손으로 뺨을 슥 훔쳐 내는데, 동작 하나하나가 예술이었어요. 전 그냥 솔직히 말하기로 했어요.
“제가 본 사람 중 가장 잘생기신 것 같아요.”
그러니까 다시 웃더라고요.
어쨌든 저는 고르고 골라서 레몬머랭타르트를 두 조각 포장했고, 그분은 레몬머랭타르트만 빼고 모든 걸 하나씩 다 포장했어요.
어이없게도 제가 먼저 골랐는데 주인아저씨는 그 남자분 것을 먼저 해 주더라고요! 리본도 제일 예쁜 것으로 포장하고.
제가 째려보자 주인아저씨는 손만 휘저으면서 도망쳐 버렸어요.
그런데 가게에서 나오니 그분이 앞에서 기다리고 계신 거예요.
“혹시 이름을 여쭤봐도 될까요?”
“바네사 로즈예요.”
“그렇군요. 기드라고 불러 주십시오.”
기드랑 같이 걷는데 일대 소란이 일었어요. 누가 기드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넘어지고, 누군 표지판에 부딪히고 난리도 아니었거든요.
“이런 일이 흔하세요?”
“마법사는 원래 미적인 것에 약하니까요.”
그러니까 흔하다는 말이겠죠?
하여튼 대화는 즐거웠어요. 제니언이 재미있기는 한데 대화가 이쪽으로 와르르, 저쪽으로 와르르 무너지거든요. 분명히 1에 대해 말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손가락으로 주제가 넘어가 있죠.
하지만 기드와의 대화는 일단 주고받는 것 자체가 즐거웠어요.
제가 외모에 넘어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아 주세요. 정말 대화가 잘 통했다니까요! 진짜예요!
그런데 계속 저랑 같은 길로 가기에 조금 의아했는데 알고 보니 제니언의 집을 간다는 거예요. 꽤 오래 알고 지낸 사이라고 하시더라고요.
하지만 제니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또다시 보이는 것은 집이 아닌 말뚝뿐이었으니까요.
기드를 처음 봤으니 그 앞에서 하리하라를 외치기는 꺼려졌어요. 제니언의 약점일지도 모르니까요.
근데 그럴 필요도 없었어요.
기드의 허리춤에는 장검과 중검이 매달려 있었는데요, 아주 가볍게 검에 손가락을 스친 순간 제니언의 결계가 박살 났거든요.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저택은 땅에서 솟아올랐죠. 펑!
하지만 결계가 깨지니 거친 소리와 함께 저택 창문의 걸쇠가 내려가고, 대문 위로 자물쇠가 3개나 철컥이며 잠겼어요. 동시에 바로 앞에 삐죽삐죽한 가시 울타리가 솟아나 안쪽으로의 진입을 막았죠.
그 즉시 기드가 검을 뽑아 휘두르자 빛의 선이 스치는 것 같더니, 그 순간 가시 울타리가 사라지고 대문은 박살 났으며 창문의 걸쇠들이 바닥으로 떨어졌어요.
정말 대단하죠? 전 언제쯤 저렇게 될 수 있을까요? 대단한 두 마법사의 공방을 보자니 좀 더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제니언이 뛰쳐나와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어요. 입에서 불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죠.
“이 악마! 제발 어디론가 꺼져 버려!”
“하하.”
“이 자식이 웃어? 남의 결계를 박살 내 놓고오오!”
“입으로 빚을 갚는 자들도 있는데 우리 제니언 포키스 폴리스 스타게라 선생님께서는 여전히 입으로 빚을 지고 계시는군요. 잠시 여쭈어볼 것이 있는데 시간 되십니까?”
“아니.”
“그렇군요. 시간이 되신다니 다행입니다.”
“안 된다고!”
음, 저 두 사람의 싸움도 재미있었어요. 제니언이 아무리 도망쳐도 기드는 평온한 표정으로 제니언을 잡아끌고 들어갔죠. 카페 둘체에서 사 온 것은 저에게 안겨 주고요.
두 사람은 뒷마당에서 무언가 하는 것 같았는데 제게는 보여 주지 않았어요.
기드는 제니언의 집에서 5일 정도 머물 예정으로 왔대요. 알아볼 것이 있기도 하고 휴가 겸해서 이곳으로 왔다나.
만난 지 겨우 이틀밖에 안 되었는데 대화가 아주 잘 통해서 낯가릴 틈도 없이 친해졌지 뭐예요.
처음 만났을 때는 옷 때문인지 특유의 흐트러짐 없는 자세 때문인지 저보다 훨씬 어른이라고 생각했는데요, 저번 12월에 스물셋이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우리는 의기투합해서 제니언 소유의 낡은 배를 고쳤고 연못가에서 노를 젓고 놀았어요. 님루드에서 함께 아이스크림을 사 먹기도 하고요.
끝없이 떠들다가 알아낸 건데요, 기드도 밤베르크 아카데미를 졸업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밤베르크 아카데미 얘기를 할 때는 시간이 가는 줄 몰랐어요.
제가 엘리엇 교수님 얘기를 하니까 숨이 넘어갈 듯 웃더라고요. 문학 과제 얘기를 듣고는 아예 웃음소리도 못 내고 떨기만 하던데요.
방학도 어느새 한 달이 다 지나가고 있어요. 요즘은 하루하루가 즐거워서 시간이 흐르는 게 조금 아쉬울 지경이에요.
그런데 왜 아직도 성적표가 도착하지 않는 거죠? 혹시 문학 수업을 낙제라도 한 건 아니겠지요?
선생님 덕에 아주 즐거운 방학을 보내고 있는,
바네사 로즈가.
p.s 두꺼운 편지 좋아한다고 하신 것 맞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