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rely, Vanessa RAW novel - Chapter (125)
선생님께, 바네사로부터 125화(125/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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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사람은 빠르게 말을 달려 다시 포탈로 향했다. 그 와중에 자파로 수백 마리가 땅에 널린 것을 보고 그레인 중위는 딸꾹질을 했다.
“설마 소위가 했…?”
끝까지 마치지 못하고 흐려진 목소리에 슬리만도 얼떨떨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에반은 그냥 한숨만 쉬었다.
바네사는 따로 할 말이 없어 어물대다 입을 다물었다. 여기서 자랑을 하는 것도 좀 웃기지.
“목표가 생기니까 마법이 아주 잘되더라고요.”
그 목표란 이니스 사람들을 지켜야 한다는 것도 있었지만, 어서 퓌돔에 돌아가 기드온을 만나고 싶다는 소망도 있다는 걸 알릴 필요는 없었다.
슬리만 대위는 말을 멈추고 질린 표정으로 날개가 꺾인 채로 바닥에 떨어져 있는 자파로를 한번 건드려 보았다. 거대한 새 형태의 마물은 바닥을 기다 힘이 빠져 날개깃을 움직이지도 못했다.
“이거 꼭 다 소위가 잡은 걸로 신고해. 돈 좀 될걸? 자파로 깃은 마법 공학도라면 모두 눈이 벌게져서 노리는 가공 대상 품목이라고.”
그 와중에 현실적인 조언이 튀어나오자 바네사는 난감하게 웃었다.
“특전대에 아주 대단한 마법사가 들어왔었군. 이 마물들을 해치우고 결계까지 친 줄은 몰랐는데.”
슬리만은 씁쓸한 말투였다. 그는 항상 제가 가장 잘났다는 듯 말했기에 묘한 감상이 들었다.
“이 정도면 혼자 파견 나가도 충분하겠는데?”
“아니, 단독 파견 가능성을 따지는 정도가 아니라 경험을 좀만 더 쌓으면 경계의 마법사로 계약을 맺을 수도 있을 정도야. 폐하께 말씀을 드려 보는 건 어때?”
바네사는 별말 없이 고개만 저었다.
“대단하다.”
에반은 기운 없이 웃었다. 오직 바네사 혼자 해변가에 남았을 때, 그걸 알아챘을 때의 기분이란. 그는 평생 오늘을 잊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세 사람이 여러 생각으로 분주한 사이, 포탈을 코앞에 둔 바네사는 기분이 아주 좋았다. 무슨 일인지 몰라도 퓌돔에 도착할 테니까. 모두가 모여 머리를 맞대면 진동의 원인도 금방 알아낼 수 있겠지.
바네사를 포함한 대원들은 순식간에 퓌돔에 발을 디뎠다.
하지만 어쩐지 거리가 몹시 조용했다. 항상 사람들의 활기찬 움직임과 달리는 마차 소리로 시끄러웠던 곳인데, 모두 집 안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밖을 살피고 있는 느낌이었다.
에반이 고개를 갸웃했다.
“거리가 왜 이렇게 조용하죠?”
슬리만도 눈을 찡그렸다. 그레인이 입을 열기도 전에 포탈 근처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누군가가 다가와 제 목깃의 핀을 내보였다. 그는 후드를 깊게 눌러쓰고 있어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궁내부의 아론이라고 합니다. 폐하의 명입니다. 지금 당장 특전대의 건물로 돌아가 대기하십시오.”
물론 궁내부이니 가명이겠지만 아론이라는 사람은 왕의 직인이 찍힌 종이 한 장을 그들에게 건넸다.
내용은 그의 말과 같았다. 특전대는 모두 전투 준비를 한 상태로 대기할 것.
“무슨 일입니까.”
슬리만이 표정을 구긴 채로 물었으나 아론은 아무 대답 없이 걸어가 버렸다. 궁내부가 공손히 예의를 표하는 대상은 오직 왕뿐이었다. 멀리 걸어간 그의 발밑에 이동 마법진이 펼쳐지더니 그 뒷모습조차 사라졌다.
바네사는 아론이 사라진 곳을 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서신을 들여다보는 네 사람의 표정은 모두 좋지 않았다.
“일단 가자.”
슬리만이 머리를 긁적였다. 에반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수많은 특전대원들 사이에서 웅성대는 소음이 잠시 멎었다.
“…네?”
“지금부터는 모두 극비다. 사실 공공연한 비밀이긴 하지만… 어쨌든 일선에 서게 될 특전대원들에겐 정확한 정보가 전달되어야 혼란이 없으리라 생각한다.”
잔크발 중장이 다듬지 못한 턱수염을 더듬으며 말했다. 이리저리 면도칼에 베인 상처가 있는 걸로 보아 영 경황이 없었던 것 같았다.
“몇 시간 전, 모두 땅을 뒤흔드는 거대한 진동을 느꼈겠지. 그 진동은 밤 반달루가 재웠던 검은 마물이 원인이며 그 마물은 어느 정도 깨어난 것으로 보인다.”
사위는 놀랍도록 고요했다.
“이렇게 추측하는 이유는 왕성에 있는 밤 반달루의 마법진의 일부가 빛을 잃었기 때문이다. 마물이 완전히 깨어나면 마법진이 아예 효력을 다할 것으로 추측된다.”
잔크발 중장은 애써 떼어지지 않는 입을 열었다.
“대부분의 마법사들은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나 저절로 흐려진 마법진들이 있어 문제가 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일단 발견된 마법진들을 급히 보수 중인데 이를 통해 마물이 잠들지는 아직 미지수다.”
“커다란 진동에 놀라 민가까지 내려온 마법 생물들이 많습니다. 어찌 처리할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바네사는 모르는, 처음 보는 특전대원 하나가 손을 들어 질문했다. 아마 다른 지역에 오래 파견되어 있던 대원인 듯했다.
잔크발이 침착하게 답했다.
“특전대원들과 왕과 따로 계약을 맺은 마법사들이 동원될 것이다. 현재 프리바 전역에 퍼져있는 모든 특전대원에게 연락을 취했고 우리는 이제부터 최대한 왕국민들을 보호하는 임무를 맡는다.”
“중장님이 지휘하십니까?”
“대장님께선 아직 신전에 계신 겁니까? 왜 오지 않으십니까? 다른 곳에 묶여 계신다면 특전대의 전력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다른 대원들 몇몇도 고개를 끄덕였다.
잔크발 중장은 주름진 입매를 단단히 굳혔다. 한참을 침묵하던 그는 애써 떼어지지 않는 입을 열었다.
“…대장님은 쓰러지셨다. 현재 의식이 없는 상태이시다.”
바네사는 숨을 멈췄다.
⚜ ⚜ ⚜
좌중의 경악 속에, 잔크발 중장이 느릿느릿 상황을 설명했다.
신전 뒤에서 나타난 거대한 마물을 상대하셨고 이는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급작스레 정신을 잃으셨다. 확인해 보니 손등의 작은 상처를 타고 검은 얼룩이 번졌는데 강대한 마력을 사용하는 중에 목 뒤쪽까지 치솟은 듯하다.
여러 마법사들이 추측한 바와 신관들의 자백에 따르면 검은 마물의 부산물을 사용하여 상처를 낸 것 같고, 검은 마물이 힘을 되찾으며 그 힘이 마력을 타고 몸에 번진 것이 아닌가 한다….
“그들이 왜 굳이, 하필 대장님을.”
“프리바에서 가장 위협이 될 만한, 공격적인 마법사로 판단했겠지. 실제로도 그게 맞으니….”
“그럼 발데르 성에, 계신 겁니까?”
누군가 더듬대며 한 말에 잔크발 중장이 한숨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부터 우르르 질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폐하께서는 알고 계십니까?”
“의식을 되찾으실 가능성은….”
“다른 마법사들이 치료하고 계신 겁니까? 검은 마물의 부산물이라니, 그게 도대체 뭡니까?”
모두 충격을 감추지 못하고 허둥댔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기드온은 스무 살도 되기 전 특전대로 들어갔고, 몇 개월 만에 이례적으로 특전대장의 자리에 올라 칠 년이 넘게 그 자리를 지켰다. 지금까지 특전대장이 변경이 잦았던 것을 생각해 보면 제법 긴 시간이었다.
처음엔 공작이 이 자리에 오른다고 하여 반대의 의견이 많았으나 그는 제 권력을 가지고 특전대를 주무르지 않았고, 최대한 공평하게 인력을 운용했다. 가문의 힘을 사용하여 오히려 특전대가 제대로 활동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 결과 그가 이 자리에 오른 이후부터 오히려 특전대원들이 그만두고 변경되는 일이 줄어들었고 외부의 간섭이 사라져 정말로 도움이 필요한 곳에 특전대원들이 파견되었다. 특전대원들이 분쟁의 소지가 있는 일에 휘말리면 직접 나서서 보호했다.
노력과 시간이 쌓여 기드온은 모든 특전대원들에게 인정받게 되었다. 불만은 잦아들고 모두 힘을 모아 전력을 다했다.
그는 분명히 모두에게 잎이 무성해 그늘을 주는, 커다란 나무 같은 존재였다. 그 보호 아래에 있던 대원들 모두가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는 기분으로 서 있었다.
잔크발 중장이 소란을 정리하듯 책상을 쿵 내리쳤다. 그제야 망연한 얼굴로 다들 입을 다물었다.
“놀랐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이런 시기에도 특전대가 제대로 굴러갈 수 있도록 대장님이 많은 법안들을 잘 정리해 두신 것에 탄복한다. 누군가는 주춧돌이 빠져 특전대가 무너지기를 바랄 것이나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려 한다.”
잔크발이 냉정하게 말했다.
“폐하의 명대로 특전대원들은 성안에서 대기한다. 오늘 내로 즉시 파견될 것이니 잠시간의 휴식을 즐기도록.”
모두 조용히 일어나 물러나는 와중에 바네사만 어지러워 발을 떼지 못했다.
헛구역질이 났다. 이 모든 이야기가 농담인 것 같아서, 아니, 그렇게 믿고 싶어서 누군가를 붙잡아 그냥 웃어 버리고 싶었다.
거짓말이죠? 지금 한 얘기 모두 그냥 장난이죠?
그렇게 말하면 이 끔찍한 현실은 지워지고 정말 거짓말이 될 것 같아서.
왜 하필 그를. 그는 왕도 아닌데, 어째서 그를.
“바네사 로즈 소위.”
잔크발 중장이 멍하니 서 있는 바네사를 불렀다. 나가던 특전대원들이 흘끗 뒤를 돌아보았으나 곧 비애가 흥미를 뒤덮어 결국 바네사만 홀로 남게 되었다. 문이 닫혔다.
“소위!”
큰 소리에 바네사는 간신히 더듬대며 입을 열었다.
“네….”
잔크발 중장은 입술을 여러 번 달싹이다가 한숨처럼 내뱉었다.
“대장님과 그, 사적인 다른 관계가 있나?”
여전히 꿈을 꾸는 듯 초점이 흐리고 귀가 먹먹해서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바네사가 아무 대답을 하지 않자 잔크발 중장은 난감하게 핼쑥해져 툭 튀어나온 광대뼈 부근을 내리눌렀다.
“내가 느끼기엔 음, 대장님과 특별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였는데. 맞나? 그, 자네가 파견을 떠나기 전에 함께 있는 것을 보아서.”
“그건 왜 물으시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바네사가 가만히 중얼거리자 잔크발 중장은 푹 꺼진 눈매를 느릿하게 내렸다.
“웃기지도 않는 말이라 내 입으로 하긴 꺼려지지만, 소중한 사람이 잠시나마 곁에 있으면 무언가 다를지도 모르니까….”
잔크발 중장은 헛기침하고는 머리를 대충 쓸어 넘겼다. 그는 잠시 침묵하더니 대충 휘갈긴, 자신의 서명이 담긴 서신을 내밀었다.
“발데르 성은 지금 폐하의 명령으로 아무도 들어갈 수 없어. 그 가문도 제 주인을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으니 아무리 자네라도 쉽게 들어갈 수 없을 거야. 내 이름으로 들어갔다가 해가 지기 전에 돌아오게.”
잔크발 중장이 나가라 손짓했다. 바네사는 서신을 받아 들고는 잠시 가만히 서 있었다. 입이 말라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많이 아프셨을까요?”
바네사가 중얼거렸다. 잔크발 중장이 애써 퉁명스레 내뱉었다.
“나야 모르지. 걱정은 대장님 곁에 가서 해. 어서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