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rely, Vanessa RAW novel - Chapter (145)
선생님께, 바네사로부터 145화(145/146)
바네사는 간신히 나오려는 비명을 참고 소리를 죽였다.
“미, 미, 미친 거 아녜요?”
“왜? 난 그냥 창문에 앉아 있는 건데.”
“여기가 그냥 창문이 아니라고!”
“그냥 창문이 아니면 뭐야. 아, 공작 부부 침실 창문인가? 내 생각보단 소박하네.”
커다란 달을 배경으로, 밤 반달루가 창가에 앉아 있었다!
그가 히죽이는 꼴이 어찌나 얄밉던지, 바네사는 기드온이 자는 것도 까먹고 소리를 지를 뻔했다.
발데르 성에 몰래 들어왔다가 붙잡히면 어쩌려고! 그리고 우리 결혼 안 했거든? 공작 부부는 무슨 공작 부부야!
그때 뒤쪽에서 천이 스치는 소리가 났다. 바네사가 급히 고개를 돌리자 비어 버린 품이 아쉬운지 기드온이 팔을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옅은 잠에서 현실로 올라오기 직전, 밤 반달루는 콧노래를 불렀다. 남자는 다시 미동도 없이 편안해졌다.
“뭐 한 거예요?”
“다시 재운 거지, 뭐. 훼방꾼이 있으면 솔직한 말을 하기 어렵잖아.”
“그 훼방꾼이 누군데요. 당신 아니에요?”
바네사는 퉁명스레 대꾸하고는, 제가 빠져나온 곳의 흐트러진 이불을 정리하여 기드온에게 찬기가 침범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는 보통 바네사보다 늦게 잠들기 때문에 눈 감은 모습은 어쩐지 오랜만인 듯하여 잠깐 홀린 듯 시선을 두고 있었다.
“그 마법 혹시 몸에 나쁜 건 아니죠?”
“…….”
밤 반달루는 뒤에서 ‘저렇게 커다란 사람에게 저러고 있으니 가관이군.’이라는 생각을 하며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왜 도대체 이렇게 늦은 시간에 은밀히 찾아오신 거예요? 낮에 오셨으면 무언가 더 대접해 드릴 수 있었을 텐데! 기드온도 한 번 더 뵙고 싶다고 했어요.”
위대한 마법사는 코웃음 쳤다.
“너야 정신이 없어서 몰랐겠지만 널 데려다준다고 퓌돔에 온 날, 걔가 날 얼마나 살벌하게 쏘아봤는지 알아? 눈빛만으로 사람 하나 죽일 기세였다고.”
“에이, 그럴 리가요. 당황해서 그랬겠지.”
“칼 손잡이 잡으면서 으르렁대는데 내가 어이가 없어서. 내가! 널! 데려다준 건데!”
제가 눈을 떴을 때 창백한 얼굴로 남들에게 날을 세우던 그를 떠올리면 있을 법한 일이었다. 바네사는 옹호하기를 깔끔히 포기했다.
“그래서 어쩐 일이세요? 뭔가 필요한 게 있으세요?”
얇은 잠옷만을 입은 채, 눈을 동그랗게 뜬 어린 마법사를 본 밤 반달루는 빙긋 미소 지었다. 갑자기 하늘에서 노란 담요가 떨어져 바네사의 어깨를 감쌌다.
“어어….”
“물어볼 게 있어서 찾아왔어. 달이 밝은 밤은 문답하기에 좋은 시간이지. 적당히 어둡고, 적당히 밝거든.”
먼 과거부터 현재까지. 모든 걸 관람하여 그 증인이 된 마법사가 무엇이 궁금할까? 바네사는 고개를 갸웃했다. 밤 반달루는 창가에 앉아 여전히 다리를 달랑이고 있었다.
“편히 말씀하세요.”
“바보 같긴. 수지에 안 맞잖아! 내 질문 하나에 네 질문 하나. 먼저 물어봐. 궁금한 것 없어?”
바네사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마법사를 바라보다가 퍼뜩 입을 열었다. 오늘 저녁의 참사가 떠올랐던 탓이다.
“제가 마법력을 모두 잃은 게 아니었나요?”
“뭔 일 있었어?”
궁금해하는 얼굴에 바네사가 아까 있었던 일을 빠르게 설명하자 밤 반달루는 몸까지 흔들며 웃었다. 그는 아주 즐거워 보였다.
“아, 맙소사. 역시 난 천재야. 예상대로 착착 들어맞는군.”
“…….”
바네사는 마법진을 고치며 고통받던 시간을 떠올리며 인상을 썼다. 맞는 말인데 짜증 난다.
“좋은 질문이야. 잃긴 잃었지. 네 몸엔 아무것도 남지 않았어.”
밤 반달루는 작은 손가락을 꼿꼿하게 피더니 바닥을 가리켰다.
“하지만 아래에 남아 있잖아. 땅속에 숨겨진 지하수처럼 세차게 흐르고 있지.”
멍청하게 그를 바라보던 바네사는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서, 설마 제가 마법진에 흐르는 힘을 가져다 썼다는 소리인가요?”
“정답. 네가 힘을 쏟아부었던 중심 마법진은 마정석이 없는 대신 첫 가동에 아주 거대한 힘이 필요하지. 힘을 빨아들이는 구조이기도 하고. 하지만 네가 준 힘이 사용량보다 더 컸던 모양이야.”
밤 반달루는 창가 근처의 유리 화병을 톡 쳤다. 맑은소리가 났다.
“이걸 어쩌나, 쓰다가 좀 남아 버렸군! 하지만 돌려줄 수는 없네? 그러니 네 힘은 아주 오랜 시간 프리바 전역에 숨겨진 마법진을 타고 흐를 거란다.”
“근데 마법 금지 회로도 무시하던데요? 그냥 창문이 와장창하고….”
“당연하지. 내가 고안한 마법 금지 회로의 기본은 사람이나 마정석 같은 주체에서 방출되는 마력을 억제하는 거야. 하지만 네 마력은 몸에서 나오지 않고 프리바의 땅을 뚫고 치솟았으니 금지 회로의 영향을 받지 않지.”
바네사는 황당한 표정으로 제 손을 들여다보았다. 이 사실을 궁내부가 알게 되면 제1성 근처로는 가지도 못하게 될 것이다. 왕을 위협할 수도 있으니까!
“그럼 제가 힘을 가져다 써서 마법진을 타고 가는 그 흐름이 엉망이 된다든가….”
“기적 수준의 마법을 행하지 않는다면 괜찮을 거야. 사막에 비를 내린다든지 뭐, 그런 거. 그 마법진은 한 번 가동되기만 하면 더 이상의 큰 힘을 소모하진 않거든.”
갑자기 몇 달 전, 그 춥고 두려웠던 밤이 떠오른 바네사가 밤 반달루를 노려보았다.
“이런 걸 왜 이제야 말해줘요?”
“희망 가득한 예상이었을 뿐이야. 틀릴 수도 있잖아. 이건 아주 작은 빗나감으로 인해 만들어진 선물 같은 거야. 뒤도 생각하지 않고 마력을 모조리 다 쏟아부은, 네 순수한 의도가 만들어 낸 기적이라 하자고.”
별거 아니지?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하는 소년을 본 바네사는 입 안으로 못된 말을 중얼거렸다.
“짧게 만나야 반가운 것 같네요. 아-주 즐거운 밤이었어요. 전 이만 다시 잘래요.”
“나 참, 내 질문도 받아 줘야지!”
바네사는 그 질문이 뭐든 간에 얼른 하고 가라며 손을 허공에 팔랑거렸다. 밤 반달루는 킬킬대며 웃었다.
한참을 웃던 밤 반달루는 똑바로 섰다. 그의 눈가엔 여전히 미소가 서려 있었다. 바네사는 어쩐지 아카데미에 걸려 있던 커다란 초상화가 떠올랐다. 눈가에 주름이 가득하여 인자한. 그 아래로 지나다니는 학생들을 웃으며 바라보는.
“바네사 로즈.”
“네에.”
“괜찮니?”
의외의 질문에 바네사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두 번 깜빡였다. 그리고 대답 없이 씩 웃었다. 후회나 미련 한 점 없는 웃음은 달빛 아래에서도 충분히 환하여 그늘진 곳 하나 없었다.
가만히 그를 보던 밤 반달루는 고개를 끄덕였다.
“주고받을 게 끝이 났군. 좋아.”
작은 몸이 다시 창가를 타고 기어 올라갔다. 열린 창을 배경으로 밤 반달루는 미소 지었다.
“잘 지내.”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바네사는 손을 흔들었다.
“당신도요.”
그들에게 다른 인사는 필요 없었다. 소년은 뛰어내렸다. 바네사가 내다보았을 때는 이미 흔적도 남지 않았다. 오로지 열린 창문만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
바네사는 창문을 닫았다. 다시 침대에 누워 휘장을 내리고 기드온의 품에 파고들었다. 그는 마법으로 인해 깊은 잠에 빠져 있었음에도 당연한 듯 그녀를 끌어당겨 안정적으로 몸을 맞췄다. 그들 사이엔 빈틈 하나 없었다.
그는 건강했고 세상은 평화로웠다.
바네사는 짧게 웃고는 눈을 감았다.
완벽했다.
마지막 편지.
아주 깊은 새벽이었다. 오늘따라 그를 끝까지 붙들고 늘어지는 사람들이 많아 도저히 일찍 돌아올 수 없었다. 바네사에게 미리 알렸으니 그녀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 생각을 하다 보면 바네사가 그를 기다리지 않고 평온했을 테니 좋았고, 그 없이도 평온했을 테니 우울했다. 왕이 말한 대로 그는 미친놈이었다.
기드온은 한 손으로 목을 답답하게 옥죄이는 타이를 풀어내며 잠시 호흡을 정리했다. 이제 제 침실보다 익숙해진, 세 번째 층의 가장 아름다운 손님방 앞이었다.
조심히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안쪽은 어두워 소리 없이 마법으로 빛을 불러냈다.
그러나 그 노력에도 불구하고 바네사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
그가 늦게 돌아온 탓임이 분명하였으나 약간 아쉽긴 했다. 곁에 누워 잠에 빠지는 바네사를 바라보는 것이 하나의 기쁨이 되었기 때문이다.
바네사는 가끔 너무 오래 신세 지는 건 아닌지 걱정하곤 했다. 모셔야 할 사람 하나가 더해졌으니 사용인들이 얼마나 불편하겠냐는 것이었다.
기드온은 항상 그 화제를 이리저리 피했다. 몹시 쓸데없는 걱정임을 바네사만 몰랐다.
당신은 평생 있어도 된다고, 당신이 없는 이곳은 너무 춥고 나는 당신이 함께 있을 때만 따뜻함을 느낀다. 그렇게 말하려다가 바네사가 냅다 거절할까 두려워 멋쩍게 그 말을 삼켰다.
하지만 모두 진심이었기에 말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날을 노리고 있을 뿐이었다.
마법 회로는 잘 작동 중인지, 창문이 잘 닫혔는지. 안쪽의 온도는 적당히 서늘하여 자다가 덥지는 않을지를 꼼꼼히 확인했다. 모든 확인이 끝나자 더는 곁에 있을 핑계가 없었다. 그는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었다.
기드온은 속삭이며 인사를 남겼다.
“-.”
제 욕심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아주 조용히.
여전히 바네사는 소리 하나 없이 곤히 자고 있었다. 기드온은 제 눈 밖으로 애정이 철철 쏟아지는지도 모르고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아쉽게 몸을 돌렸다.
내일 더 일찍 일어나서 채비하고, 바네사가 깨면 함께 식사를 하고 나가야지. 요즘 입맛은 어떤지도 좀 보고. 식당에는 좋아하는 것들 위주로 준비하라고 하고….
기드온은 내일의 계획을 촘촘하게 세우며 방을 빠져나가려고 했다. 그가 마법으로 불러낸 빛무리가 비춘, 탁자 위의 무언가를 보지 않았다면 분명히 그랬을 것이다.
그의 눈길을 끈 것은 하얗게 빛나는 것은 편지였다.
바네사와 기드온, 두 사람 사이에서 특별할 것도 없었다. 두 사람의 연결고리이자 매개체였으니까.
다만 편지 봉투에 적힌 글자가 눈길을 끌었다.
「사랑하는 선생님께.」
선생님?
기드온은 의아한 눈으로 편지를 집어 들었다. 흘끗 침대 쪽에 눈길을 주다가 편지를 손에 쥐고 방을 빠져나갔다.
그는 집무실로 들어가 등받이가 단단한 의자에 기대앉았다. 옷을 갈아입을 새도 없었다. 내용이 궁금해 조바심을 치며 편지를 뜯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