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rely, Vanessa RAW novel - Chapter (146)
선생님께, 바네사로부터 146화(146/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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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8일, 에디르네력 1313년>
사랑하는 선생님께.
아주 오랜만에 편지를 씁니다.(아무래도 매일 마주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쓰긴 어려우니까요.)
이 말투가 어느새 조금 어색하네요. 그래도 ‘선생님’께 쓰는 마지막 편지라고 생각해 주세요.
전 이런 날이 가장 좋아요. 바람은 선선하고 햇볕은 따스한 날이요. 항상 선생님은 어떤 날씨를 가장 좋아하실까 궁금해했는데 이제는 알아요.
선생님은 해가 지나치게 쨍쨍한 날보단 약간 구름이 뜬 날을 좋아하시고 따스함을 품은 바람보단 약간 서늘한 듯한 바람을 좋아하시죠. 무릎에 갈색 체크무늬 담요를 덮기는커녕, 셔츠 하나만 간단히 입고 나가 버리는 걸 즐기시고요.
저는 항상 산책을 좋아했어요. 루이시의 고아원이 수풀도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아주 작은 소도시에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요. 촌스러울지 몰라도 풀 내음을 가득 들이마시는 시간이 있어야 머리가 정리되거든요.
하지만 요즘은 발데르 성 정원 산책도 조심스러워요.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는 게 여간 무서운 게 아니더라고요.
유명인의 삶도 아무나 즐기는 게 아니에요. 전 정말 맞지 않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발데르 성의 정원을 훔쳐보려 몰려들 때마다 깜짝 놀라서 몸이 움츠러들어요. 물론 그들은 제게 꽃 한 송이를 건네주는 것이 목적일 뿐이지만요.
저번엔 어떤 아이가 이름 모를 풀꽃을 건네기에 그걸 받았더니, 다음 날 성문 전체에 그 꽃이 장식되어 있지 뭐예요!
제가 이렇게 대단한 사랑을 받게 될 줄 도대체 누가 알았을까요? 아무도 몰랐을 거예요.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잖아요! 동화도 이보다 더 극적이지는 않을 거예요.
아, 소문을 낸 폐하께서는 아셨을지도요….
폐하께서는 누구나 영웅의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겠냐며 웃으셨지만 영웅이라니, 그건 너무나 과한 단어인 것처럼 느껴져요.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하기도 하고요. 말씀드렸듯, 제 소원은 그렇게 영웅적인 건 아니었거든요.
폐하께서는 제가 원하는 내각 부서라면 어디든 열려 있을 거라고 했어요. 특전대든 마법부든 어디든 상관없다고요.
하지만 저는 지금 마법사지만, 동시에 마법사가 아니에요. 이 힘은 밤 반달루의 말마따나 작은 기적이에요. 감사한 일이죠.
하지만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힘이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거대한 호수라 해도 채워지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고갈될 테고, 아무리 높은 산이라고 해도 계속해서 정을 두드리면 언젠가는 평지가 될 테니까요.
그러니 특전대나 마법부를 욕심내지는 않기로 했어요. 제 욕심이 누군가를 위험하게 할 수도 있으니까요.
물론 마법사 제니언 포키스 폴리스 스타게라 님의 생각은 조금 달랐죠. 그는 강력한 마력의 흐름은 주인 없이 허공을 떠다니는 마력을 끌어당긴다는 ‘파비안의 정리’를 제시했어요.
아시겠지만, 파비안의 정리는 사용되는 마력과 마법의 규모가 완전 비례하지 않아 밝혀진 것이지요. 100만큼의 파괴력을 내는 마법이 10만큼의 파괴력을 내는 마법보다 마력을 10배 더 사용하는 게 아니라, 사실은 약 9배 정도 사용한다는 내용입니다.
그 이유야 위에 나온 것처럼 아주 강하고 농축된 흐름의 마력이 다른 힘을 끌어당기기 때문이지요.
그러니까 제니언은 밤 반달루의 마법진 위를 뛰어다니는 제 마력의 흐름이 다른 힘을 끌어당겨, 쓴 만큼 다시 채워지거나 오히려 점점 더 강대해질 거라는 주장을 했어요.
제법 그럴싸하죠?
그래도 저는 안전한 게 가장 좋아요. 혹시 그 힘을 물 쓰듯이 쓰다가 어느 날 똑, 끊겨 버리면 어떡해요.
꼭 특전대나 마법부를 가지 않아도 돼요. 요즘처럼 평화롭기만 하다면야 뭐든 괜찮거든요. 마음이 좀 더 편안해지면 제니언과 함께 그의 주장을 실험해 보는 것도 좋겠지만요.
소소하게 이동 마법 정도는 바라도 되잖아요. 그렇죠?
아직 공고는 뜨지 않았지만 법무부나 외교부를 생각해 보는 중입니다. 새로운 도전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니까요.
제니언은 여전히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사사건건 잔소리를 퍼부어요.
뛰어다니지 마! 넘어진다고! 튀긴 것만 먹지 마!
이게 어제 정말로 제가 들은 이야기들이라면 믿으시겠어요? 전 스물넷이라고요! 열 살 때도 안 들어 본 걸 지금 듣고 있다니 말도 안 돼요.
그래도 제니언이 입만 걸걸하지, 나름 수줍음이 많아요. 아직도 제가 애버딘 차라의 제자 되기를 거부한 이야기를 하면 헛기침을 하며 도망친다니까요.
물론 이런 내용을 썼다는 걸 알면 불같이 화를 내면서 종이를 찢어 버리겠죠. 그러니 이건 선생님께만 알려 드리는 비밀이에요.
조나 힐은 재미있는 소식들을 많이 물어다 줘요. 제가 한 일을 듣고는 마음이 쓰였는지, 서점에 가서 가장 귀한 책들로만 한 상자를 담아 가져왔어요. 아무나 만지게 할 수 없어 뒷방에 숨겨 놨던 거라나.
화려한 가죽 장정을 만지는 것이 두려울 지경이라 다시 가져가라고 했더니 어쩐지 안심이 되는 얼굴로 잽싸게 다시 가져가는 것 있죠? 내심 아까웠던 게 틀림없어요.
대신 책들을 사냥하며 들른 도시들과 작은 마을들의 설화 같은 걸 정리해서 써 줬어요. 참고로 그녀는 굉장한 악필이에요….
하여튼 왜 이걸 책으로 내지 않냐고 물었더니 민망해하면서 머리만 긁적이더라고요. 언젠가는 제 돈을 써서라도 꼭 책 형태로 보고 싶어요. 대신 앞 장엔 ‘바네사 로즈에게 바치는 책’이라고 적도록 하고요! 괜찮은 생각이죠?
리나와 체바티는 주에 3번 이상은 들러요. 두 사람 다 여전해요. 절 아껴 주는 좋은 친구들이고, 본인들의 길을 훌륭히 개척해 나가고 있죠.
요즘 리나를 보면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 저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반짝이는 눈과 발간 윤기가 흐르는 볼이 몹시 예쁘고 근사하거든요.
제가 이 말을 했더니 리나는 거울을 보면 똑같은 걸 볼 수 있을 거라고 했어요. 선생님도 제가 정말 그래 보이세요?
체바티는 이번에 통과된 특허로 어마어마한 돈을 벌 예정이래요. 저는 에린 교수님의 수업도 잘 이해하지 못했던 학생이기에 정확히는 알아듣지 못했지만요, 마법 기계들의 고장 빈도를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는 내용이래요.
그, 아시죠? 기계를 사용하다 보면 마력이 뭉쳐 흐름이 막히는 경우가 생기는데 아주 작은 구조물로 빈틈을 메워 그 뭉침을 최소화하는…
아, 이건 안 되겠어요. 역시 아는 척은 몹시 고된 일입니다. 하여튼 체바티는 아주 훌륭한 공학자예요. 후에 자신도 꼭 저랑 같이 이름을 남기고 싶대요. 리나 델리나는 쏙 빼 버리고요. 바네사 로즈와 체바티 밀로 도티, 이렇게요.
물론 그 말을 들은 리나는 입을 벌리더니 ‘하!’라고 크게 비웃음을 날렸어요.
아, 에반과 달로이즈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죠. 두 사람은 퇴근할 때 가끔 들러요. 저녁 식사까지 얻어먹고 배를 두둑이 채운 뒤 집에 돌아가곤 하죠.
에반은 발데르 성의 주방장이 퓌돔에서 최고라고 매일같이 극찬이에요. 왜 성의 주인이 없는 날만 오냐니까 일부러 그러는 거라고 하던걸요? 만나면 일이 더 떨어질까 무섭대요.
달로이즈에게는 기드온과의 관계를 숨겼던 걸 미안하다고 사과했어요. 달로이즈는 아무렇지도 않게 나라도 그럴 거야, 하고 대답해 주며 솔직히 대장님이 누구의 연인인 게 상상이 안 간다고 하더라고요.
신기하죠? 저한테는 아주 쉬운 일이거든요.
하여튼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손님이 이렇게 많은데, 놀랍게도 오늘은 아무도 들르지 않았어요.
외롭지는 않았지만 조금 심심하긴 했어요. 수많은 안부 편지에 대한 답장은 손이 아프니 내일로 미뤄 버렸고, 할 일은 없었죠.
시간이 많아진 저는 성의 주방장이 싸 준 쿠키 바구니를 들고 여기저기 돌아다녔지만 해는 기울어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어요.
그러니 별수 있나요? 발데르 성 곳곳을 탐험하며 재미있는 걸 찾아내는 수밖에요.
페레스와 라모나를 포함한 발데르 성의 사용인들은 이제 제가 어딜 가든 막지 않아요. 귀한 책들이 놓인 서재를 포함하여 온갖 회계장부가 보관된 공간까지. 심지어 집무실도 제겐 항상 활짝 열려 있다니까요.
이래도 되는 걸까요? 성의 주인이 이 사실을 알고 있긴 한가요? 몰랐더라도 이 편지를 읽으면 알게 되겠죠? 대답은 나중에 돌려주세요.
그러니까, 오늘은 집무실을 노렸다는 이야기를 조금 장황하게 풀어놔 보았어요.
이 성의 주인은 항상 정돈된 걸 좋아해요. 사실 그 사람이 자주 사용하는 공간은 조금 삭막한 편이에요. 전체적으로 색채는 부족하고 내부는 서늘해요. 다만 그 사람은 아주 반짝거리고 다정다감하니까 균형이 맞는 거겠죠.
아, 이런 말은 편지에서나 쓰는 거니까 기대도 하지 말아요!
어쨌든 집무실의 이곳저곳을 뒤져 보다가 발견한 건 모서리마다 요란한 금박 세공이 되어 있는 나무 상자 하나였죠. 어찌나 휘황찬란하던지 보석이라도 들었나 싶었다니까요.
하지만 경첩을 열었더니 있는 건 ‘고작’ 편지들뿐이었어요. 다만 편지의 발신인이 모두 동일한 점이 특이하다면 특이했달까?
발신인은 모두 저였어요. 바네사 로즈.
저는 신이 나서 제가 선생님께 받았던 편지들을 모두 들고 왔어요. 그리고 날짜별로 하나하나 비교하며 읽기 시작했죠. 그러니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가 버리더라고요.
우리는 아주 오랜 기간 서로를 감추고 이야기했잖아요. 그래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어요.
나는 아무것도 몰랐는데 ‘선생님’에게서 온 편지를 찬찬히 보다 보니 입가에 미소가 떠올라 지워지지를 않아요. 왜냐하면 점점 두터워지는 애정이 켜켜이 쌓여 층을 이루는 것이 보이니까요.
처음 시작은 분명히 연인에 대한 사랑이 아니었어요. 하지만 당신은 정말로 나 자체를 아끼는 것처럼 온기를 품어 답장을 하네요.
그래서 아카데미를 다니고 있던 바네사 로즈는 항상 겨울을 모르고 따뜻했어요. 늦었지만 이제야 그에 대한 감사 인사를 보냅니다.
그리고 폐하의 말씀처럼 당신이 아주 멍청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정말로요.
만약 내가 당신에게 먼저 손을 내밀지 않았다면(그래, 이건 조금 우아한 말이죠. 술에 취해 발데르 성에 떨어지지 않았다면) 어떻게 했을 건가요?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다면요?
평생 그렇게 숨을 죽인 채로, 종이 위에 소심한 애정을 담아 나를 지켜보려고 했어요? 언젠가 스스로의 감정이 빛바래기만을 바라면서요?
물론 이해가 되기도 해요. 당신은 결벽증 환자처럼 나에게 보내는 사랑이 완벽하기를 바라니까요.
하지만 나는 한쪽이 일그러지고 색이 변한 애정이라도, 당신이 주는 것이라면 아주 기쁘게 받아들일 것 같은걸요.
이건 아주 다른 거예요. 그걸 꼭 알아야 해요.
선생님께 드리는 마지막 편지라고 말씀드렸지요? 네, 맞아요. 이제 정말로 선생님을 보내드리려고 해요. 편지의 수신인에게 올바른 이름을 돌려주려고요.
그래도 선생님, 저와 함께하는 시간이 즐거우셨나요? 선택을 후회할 일은 없으셨나요?
저는 정말로 부족함 하나 없이 놀랍도록 행복했어요. 지나가는 하루하루가 아쉬울 정도로요. 제가 선생님께도 그런 행복을 드렸기만을 바랍니다.
저를 항상 뒤에서 지지해 주시던 선생님이 사라지신다고 생각하면 너무나 슬프지만, 대신 곁을 지켜 줄 기드온이 나타난다고 생각하면 괜찮은 것 같아요.
우리는 아주 오랜 계절을 함께 걸어 나갈 거예요. 시간이 흘러 이 감정의 진폭이 잦아들더라도 서로의 곁을 지키겠죠.
그러니 걱정하지 말아요.
오늘도 수고했어요! 좋은 밤 보내고, 내일 아침에 다시 인사해요.
선생님께, 바네사로부터.
⚜ ⚜ ⚜
기드온은 나직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다시 바네사가 자고 있는 침실로 돌아갔다.
그녀를 깨워 입을 맞추지 않고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으니까.
Epilogue end
[ 공금.갠소.본문수정有.AngKeumToK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