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rely, Vanessa RAW novel - Chapter (18)
선생님께, 바네사로부터 18화(18/146)
⚜ ⚜ ⚜
바네사는 에반과 함께 찬바람을 맞으며 뛰고 있었다. 벌써 새로운 학기가 시작한 지도 꽤 지나서 운동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뛰면서 나름대로 대화도 가능했다.
“시간 정말 잘 간다.”
물론 호흡이 부족해 말이 툭툭 끊기긴 했지만서도 큰 발전이라 할 수 있겠다.
“성 둘레길 도는 것도 이제 일상이잖아. 내 덕분이지, 바네사? 고마워하라고.”
바네사는 잠시 눈을 굴렸다. 반박하고 싶지만 할 말이 없었다.
“좋아, 동의할게. 진짜 요즘은 뭘 해도 덜 피곤한 것 같아. 이게 교수님이 말하던 기초 체력인가?”
“얼마 전에 힘들다고 데굴데굴 구른 게. 웃기지도 않는다.”
“요즘은 그래도 칭찬도 듣는다고!”
에반이 코웃음 치자 바네사는 에반의 정강이를 차는 시늉을 했다. 에반은 깨갱대며 멀찍이 떨어져서 달렸다.
바네사와 에반은 계속해서 달렸다. 이제 막 뛰기 시작했으니 아직 한참 더 뛰어야 했다.
<마법의 공격적 사용>을 듣는 학생들이 성 주변을 뛰는 것은 매년 당연한 일이라서 새벽의 호숫가 산책을 하던 학생들이 손을 흔들었다.
바네사와 에반도 그에 화답했다. 그때 뒤로 누군가 따라붙었다.
“같이-돌-자!”
헉헉대며 뛰어오는 것은 콘라드 교수님의 수업을 함께 듣는 친구, 모슈위였다. 커다란 몸으로 우당탕 뛰는 모습을 본 바네사가 웃음을 터트렸다.
“넌 오후에 도는 것 아니었냐?”
어쩐지 에반이 삐딱하게 묻자 모슈위는 헐떡이며 말했다.
“오전, 오후 다 돌아! 살 좀 빼려고. 근데 어쩐지 몸이 더 커지는 것 같아.”
“기분 탓이겠지.”
“아냐, 옷이 안 맞는다고!”
그거 다 근육이란다. 바네사는 그런 말을 간신히 삼켰다. 모슈위는 아마 절대로 어느 수준 아래로 몸이 작아지지 않을 것이다.
세 사람은 빠른 속도로 성의 모퉁이를 돌아 흙길로 접어들었다.
“근데 굳이 왜 빼? 난 만들고 싶어서 고생인데.”
바네사가 묻자 이미 시뻘겠던 모슈위의 얼굴이 거의 검붉어질 정도로 타올랐다.
“그, 좋, 좋아하는 애가 청순하고 투명한 듯한 느낌이 좋대서.”
모슈위가 더듬더듬 말했다. 청순, 투명… 그야말로 모슈위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내용이었다.
그는 <마법의 공격적 사용>, 줄여서 <마공> 수업에서도 눈에 띄게 덩치가 좋은 편인 데다가 햇빛에 잘 그을린 얼굴색을 가지고 있었다.
에반이 혀를 차며 입을 여는 것을 바네사가 가까스로 막았다.
“노력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
“그 애가 엄청 자주 말했거든. 청순한 소년미가 좋다나. 솔직히 나도 안 될 것 같긴 한데.”
모슈위가 우물쭈물 말했다. 바네사는 씩 웃으며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너도 충분히 매력 있어. 수업에서 네가 날아오는 돌 막아 줄 때 얼마나 멋있었는데. 우리 중에 네가 제일 체력도 좋고 힘도 세잖아. 달리기도 빠르고.”
그 말이 끝나자마자 에반이 쌩하니 선두로 나섰지만 바네사는 모슈위의 얘기에 푹 빠져서 보지도 못하고 있었다.
원래 남의 짝사랑 이야기가 제일 재밌는 법이었다.
“그 여자애는 내가 본 애 중에 가장 똑똑하고 착하고… 한눈에 반했단 말야. 지적이고 가냘픈 것도 좋다는데 나는 별로 지적이지도 않고. 그러니까 그나마 가냘픈 매력이라도 충족해 보려는데….”
모슈위는 수줍게 웅얼거렸다. 그 외모가 흡사 꿀을 발견한 곰처럼 투박해 보였다.
“여자애들은 아무래도 아름다운 남자들을 더 좋아하겠지?”
모슈위의 질문에 에반이 급히 속도를 줄여 옆에서 뛰기 시작했다.
바네사는 잠시 곰곰이 생각했다. 아름다운 남자들이라.
“나는 딱히 생각해 본 적이 없긴 한데… 키는 컸으면 좋겠고 음, 몸도 좋으면 좋지. 난 아름다운 것보다는 남자다운 외모가 좋은 것 같기도 한데. 하지만 이건 이상형일 뿐이라서.”
바네사는 빗물 웅덩이를 뛰어넘으며 말했다. 바네사와 에반이 가볍게 뛰는 동시에 모슈위는 쿵 소리를 내며 착지했다.
어제 흠뻑 내린 비로 둘레길 전체에서 풀이 젖은 향기가 피어올랐다.
“모슈위 너는 그 애가 그럼 이상형이야?”
“으응. 누군지는 비밀이야! 절대로.”
“알았어. 에반은?”
바네사가 짓궂게 웃으며 묻자 에반은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모슈위도 끼어들어 말했다.
“넌 인기 많잖아. 좋아하는 사람 없어?”
“어-없어!”
갑자기 에반이 버럭 소리 지르자 바네사는 왜 저러냐는 눈빛을 보냈다. 모슈위는 헤죽 웃고는 팔꿈치로 에반의 허리를 꾹꾹 찔렀다.
“그럼 이상형이라도 말해 주라. 인기 많은 애들은 어떤 애들이 좋냐?”
“이상형?”
에반은 갑자기 귀 끝이 시뻘게져서는 우물거렸다. 괜히 다리만 빨라져서 모두가 속도를 맞추느라 분주했다.
“그, 그, 금발은 싫어.”
“오호.”
“예, 예쁘고 단호한데 상냥하고… 공부도 잘하는… 속눈썹도 길고…”
“엄청 세세하네.”
바네사가 키득거리자 에반은 제 발끝만 보고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모슈위는 에반 뒤에서 손짓한 뒤 -좋아하는 애 있는 게 틀림없는데?- 갑자기 갸웃거렸다.
바네사는 씩 웃고는 화제를 돌렸다.
“모슈위, 넌 나중에 뭐 하고 싶어?”
이제 꽤 오래 뛰어 모두가 헐떡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젖은 길은 발을 무겁게 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쉬면 과제 할 시간이 부족해지니 그럴 수가 없었다.
“나중에?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특전대가 내 꿈이야. 여러 곳을 다닐 수 있고 약한 사람들을 보호해 줄 수도 있고.”
“대부분 특전대를 노리는 사람들이 이 수업을 듣는구나. 특전대가 대체 뭐길래.”
“대단한 사람들이지. 왕이 인정한 마법사들! 심연을 물리치는 사람들!”
모슈위의 눈이 반짝거렸다. 에반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바네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위험하잖아.”
“그러니까 최고의 실력자들만 가는 거지! 우리들에겐 위험한데 그들에겐 별일 아닐지도. 게다가 후에 충분히 보상받거든. 돈이든, 땅이든.”
모슈위가 엄지를 들어 올렸다.
“흐음, 인기가 많을 만하네.”
“그렇지. 게다가 다들 몸이 얼마나 좋겠어? 제복을 입고 있으면 정말 멋있대. 외적인 요소도 무시 못 하지!”
“현 특전대 대장이 그렇게 잘생겼다던데. 다난 지방에서는 특전대가 파견되었을 때 신이 내려온 줄 알았다는 소문도 났잖아.”
“다난 지방의 마물들은 완전히 토벌되었다면서? 이제 남은 것들은 일반 병사들로도 충분하대.”
“그런데 또 다른 곳들이 난리라던데? 특전대가 퓌돔에 발을 디딜 새가 없대.”
모슈위와 에반은 신이 나서 떠들었다. 이제 뜀박질은 거의 막바지였다. 에반은 점차적으로 속도를 늘렸지만 바네사는 훌륭하게 따라잡고 있었다.
바네사는 특전대에 대한 얘기를 듣다가 불쑥 내뱉었다.
“난 나중에 뭐 하지.”
“넌 뭘 해도 잘할 텐데 무슨 걱정이야! 저번에 귀도 교수님의 칭찬이 자자했다고 들었는데. 마법회로 조작에 성공한 것이 너밖에 없었다면서!”
“내 말이. 누구 놀리냐!”
두 사람의 비난에 바네사는 투덜거렸다. 이제 밤베르크 아카데미의 정문이 거의 눈앞에 다가왔다. 세 사람은 이제 말도 하지 않고 속력을 최대한 올렸다.
결국 정문 바로 앞 나무에 에반의 손이 가장 먼저 닿았고 그 뒤로 바네사, 모슈위 순서로 도착했다.
“흐, 헉… 헉.”
바네사는 바로 잔디 위로 뒹굴었다. 이슬이 내린 풀 위에서 맡는 새벽의 향기는 참 좋았다.
모슈위는 제 자리에서 가볍게 뛰고 에반은 긴 몸을 쭉쭉 피며 근육을 늘리다가 눈을 감고 누워 있는 바네사를 훔쳐보았다.
“야, 일어나! 감기 걸린단 말이야.”
에반이 바네사를 건들지도 못하고 주변에서 쩔쩔맸다. 그 모습을 본 모슈위는 뒤에서 음흉한 표정을 지었다. 예쁘고, 단호한데 상냥하고?
⚜ ⚜ ⚜
바네사가 기숙사에 돌아오니 리나는 없었다.
바네사는 몸을 단정히 하고 교복을 챙겨 입었다. 밤베르크 아카데미의 근처인 서고트는 벌써 날이 추워지고 있어 겉옷까지 꼼꼼히 챙겨입어야 했다.
거울을 본 바네사는 머리를 풀고 핀을 꽂기로 했다. 오늘은 수업이 끝나고 유제니아 선배의 모임이 있으니 이 정도는 하면 좋을 것 같았다.
핀은 선생님이 선물해 주신 것이었는데 단정해 보였지만 잘 살펴보면 섬세한 세공이 압도적이었다.
은색 몸체 위에 파란 알이 하나 박혀 있었는데 바네사의 눈 색과 완전히 똑같아서 갈색 머리에 꽂으면 아주 잘 어울렸다. 리나가 극찬할 정도였으니까.
핀을 처음 본 날, 리나는 핀을 꼼꼼하게 살핀 뒤에 말해 주었다.
‘세공이 굉장한데? 가격도 굉장할 거야.’
바네사는 핀의 가격이 엄청나다는 것을 깨닫고 소포를 세 번이나 돌려보냈지만, 네 번째에 「직접 고른 것인데 서운하다」라는 선생님의 쪽지가 붙어 오자 결국 감사히 받기로 했다.
바네사는 가만히 머릿속으로 오늘 할 일을 정리하다가 한숨을 쉬었다.
오늘의 수업들은 영 만만치가 않았다. 하필 과제 양이 무자비하기로 소문난 봄발로우 교수님과 프루덴스 교수님이 하루에 몰려 있다니.
내일은 하루 종일 도서관에서 살아야 할 것이 분명해. 세상에 쉬운 건 하나도 없다지만 이런 건 너무한 거 아닌지.
약간 시무룩해진 바네사는 가만히 서서 최대한 시간을 아낄 방법을 궁리했다.
툭.
“어!”
하지만 바네사의 얼굴은 금방 환해졌다. 호니르 입구에 떨어진 저 편지를 보면 과제를 할 기운쯤이야 반짝 날 테니까.
바네사는 편지를 집어 들었다.
언제나처럼 밀색의 결이 좋은 봉투 위 단정한 검은 글씨. 「바네사 로즈 양에게.」
선생님이 써 준 제 이름을 보면 항상 코끝이 찡해지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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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일, 에디르네력 1309년>
바네사 로즈 양에게.
따뜻한 애정을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점차 추워질 날씨가 두렵지 않군요.
바네사 양의 이야기가 별것 아니라니 의아합니다. 혹시 내 답장이 짧아 그리 느껴지는 거라면 미안합니다.
하지만 나는 바네사 양의 시선으로 보는 것들이 즐겁기만 합니다. 지루했던 것도 새로운 색을 입고 다가오는 것 같으니까요.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니 기쁜 소식입니다.
다만 밤베르크 아카데미가 위치한 서고트는 이미 슬슬 추울 시기입니다.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신경 쓰세요.
짧은 망토가 있으면 활용도가 좋을 것 같아 하나 주문해 두었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길 바랍니다.
선생님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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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네사는 편지의 첫 부분을 볼 때는 도톰한 입술을 깨물며 기뻐했다.
저번에 편지를 보낸 뒤 애정을 받아 달라는 말이 너무 과하게 느껴졌을까 얼마나 고민했는지 몰랐다. 누군가는 그냥 인사처럼 쓰는 말이지만 바네사는 정말 진심을 담아 쓴 것이기 때문이다.
고아 주제에 좋은 집안 사람일 것이 분명한 선생님을 가족 같다 여기는 것이 우스울까 걱정이 컸다.
하지만 다정한 애정 덕분에 추위도 두렵지 않겠다니!
바네사는 편지의 그 부분만 손가락으로 여러 번 쓸어 보았다.
하지만 마지막 단락에 가서는 선이 분명한 눈썹이 치켜 올라가게 되었다.
“마앙토오?”
또! 또 선물을 보내셨잖아. 망토라니, 이미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긴 망토를 보내신 것을 기억하고 계시긴 하는 건지 모르겠네.
두껍고 결이 좋은 망토는 길이와 재질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었다. 하지만 피후원자에게 줄 작은 핀 하나도 최고급으로 고르는 선생님이 하품(下品)을 골랐을 리 없었다.
또 엄청 비싼 거겠지. 바네사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나도 뭔가를 선물해 드리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돈을 직접 벌어서 살 수 있다면 더 좋겠는데. 곧 성 바란도 탄신일이기도 하고.
어쩐지 요즘은 너무 나태해진 것 같았다.
고아원에서 살던 바네사 로즈는 어린아이 열 명을 돌보면서도 일자리를 찾아 나섰는데. 한 끼 식사에도 감사했던 때도 있었고.
이래도 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