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rely, Vanessa RAW novel - Chapter (19)
선생님께, 바네사로부터 19화(19/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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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 59분.
“이로써 마테의 방정식에 대한 증명을 끝냈다.”
봄발로우 교수가 칠판을 탕 치며 말했다. 엄청나게 거대한 칠판에는 빈틈 하나 없이 온갖 공식과 숫자들이 빼곡했다.
모두들 질린 기색이 역력했다. 3시간 동안 계속되는 수업 시간 동안 오직 이 방정식에 대한 증명을 배우는 것으로도 충분했던 것이다.
“수업 시간의 초반에도 말했지만 마테의 방정식은 방정식 그 자체뿐만 아니라 증명까지도 아주 중요하다. 증명에 포함된 수식마저도 활용되는 예가 엄청나니까.”
봄발로우 교수는 초점이 흐려진 학생들을 보며 혀를 찼다. 물론 그는 학생들의 눈이 텅 비어 보인다고 해서 봐줄 생각 따위는 없었다.
“이번 주의 과제는 마테의 방정식에 대한 증명을 완벽히! 이해하는 것이다. 물론 다음 수업 시간에 그를 활용한 응용문제들이 주어질 것이므로 제대로 하는 것이 좋을 거다.”
봄발로우 교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고 교실에는 학생들의 한숨만이 남았다. 바네사는 힘없이 가방을 챙겼다.
“말도… 안 돼…. 저걸 다?”
칠판의 왼쪽부터 오른쪽까지 훑어본 바네사가 울적하게 중얼거렸다. 칠판을 훑어보는데 목이 완전히 돌아갔다.
리나는 턱을 괴고 욕을 했고 체바티는 필기를 정리했다. 체바티의 미간마저 일그러져 있었다.
“교수들은… 학생들의 수준 따위 모르는 것이 틀림없어.”
“과제를 다 할 수나 있을까요?”
바네사는 리나와 체바티를 째려봤다. 수업의 최상위권에서 노는 두 사람이 할 말은 아니었다.
“난 그냥 다 외워야겠어…. 이해할 정신이 없거든.”
“그게 더 대단한 거라고요.”
끔찍한 수업 시간 덕분에 모두들 약간 까칠해져 일어났다.
“난 오늘 서고트에서 잠깐 모임이 있어.”
바네사가 한 말에 리나가 입을 비죽였다.
“유제니아 선배랑? 저녁 먹자고 하려 했는데.”
“내일 먹을까?”
“흐음, 좋아. 체바티! 내일 저녁 시간 되니?”
체바티는 잠시 눈을 굴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저녁을 먹은 만큼 늦게 자야 하겠지만 뭐, 흔한 일이었다.
“좋-아. 저번에 서고트 상점 거리 완전 끝자락에 그 작은 식당 있잖아. 저번에 체바티가 가고 싶다고 했던 곳! 거기로 갈까?”
“거기 수프가 정말 맛있대요. 재료를 아끼지 않고 듬뿍 넣어 뭉근하게 끓였다던데.”
바네사는 친구들이 추천하는 것이라면 뭐든지 좋았으므로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리나는 바네사의 머리핀의 위치를 조정해 주고 대충 걸쳐 둔 넥타이를 고쳐 깨끗한 모양으로 바꿔 주었다.
멀리서 바네사를 전체적으로 훑어본 리나는 그제서야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잘 다녀와요, 바네사.”
바네사가 일어서자 체바티가 작은 손을 흔들었다. 바네사는 씩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 ⚜ ⚜
저녁이라 약간 추웠다. 교복 재킷 위로 리나의 고모님이 선물해 주신, 온기를 품고 있는 머플러를 둘렀는데도 찬 바람이 스며들었다.
바네사는 좁은 걸음으로 서고트의 하얀 돌길 위를 바삐 걸었다.
서고트는 마법으로 밝힌 가로등들이 환하고 아카데미 바로 근처에 있기에 치안은 부족함이 없었다.
잘 다듬어진 하얀 돌길을 따라 거닐면 양옆으로 여러 가게들이 늘어서 있었고 공들여 만든 간판이 예쁘게 흔들렸다. 가게마다 다른 모양의 간판은 대부분 반짝이는 마법을 사용해서 어둠 속에서도 제각기 다른 빛으로 빛났다.
“으, 추워….”
유제니아의 모임은 인맥을 넓히는 데에 좋은 종류의 것이었다. 상급생 위주로 구성된 모임은 출신 성분이 몹시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어 경험이 부족한 바네사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오늘 모임이 있는 카페는 서고트에서 가장 커다란 곳이었는데 커다란 창 아래에 꽃 화분이 매달려 있어 좋은 향기가 맴돌았다.
바네사는 카페 앞에 놓인 입간판을 주의 깊게 쳐다보았다. 따뜻한 차 한 잔이 간절했다.
새빨갛게 칠해진 나무 문을 열자 그 위에 달린 종이 딸랑 울렸다.
안쪽으로 들어서자 새하얀 의자 위에 앉아 있던 유제니아 알반과 알리사 볼튼이 바네사를 보고 손을 흔들고 있었다.
하지만 동작은 아주 달랐다. 유제니아가 손끝만 살랑살랑 흔드는 것에 반해 알리사는 팔 전체를 붕붕 휘저었다.
“야, 후배님!”
우렁찬 목소리도 다르긴 했다. 외모도 성격도 완전히 반대인 두 사람이 친한 것은 제법 신기했다. 바네사가 환히 웃었다.
“안녕하세요, 선배.”
바네사가 밝게 웃으며 인사하자 유제니아는 턱을 괴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예쁘고 성실하고 똑똑하고….
아, 아까워. 그 남자는 운도 좋지. 도대체 저런 애를 어디서 찾아냈담. 성실한 아이는 많아도 재능까지 겸비한 아이는 잘 없는데.
후에 우리 가문 명성을 높이는 데에 좋을 아이인데 너무 아쉽잖아….
“유제니아 선배…?”
유제니아가 멍하니 바네사를 바라보고만 있자 바네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알리사 볼튼이 혀를 차며 유제니아의 허리를 찔렀다.
“정신 차려.”
그제야 유제니아는 정신을 차리고 바네사에게 급히 달콤한 미소를 흩뿌렸다.
“아, 미안. 바네사, 오늘은 다른 사람들은 없어. 후원자의 도움으로 졸업하신 선배 하나가 현재 마법부에 계시거든. 네가 관심 있을 것 같아서 잠깐 와 달라고 부탁드렸어.”
유제니아가 부드럽게 말한 내용에 바네사는 약간 놀랐다. 굳이 자신을 위해서 비슷한 처지였던 선배까지 불러 주다니.
“가, 감사해요.”
“별말을 다 하네. 저번에 네가 알려 준 책이 쪽지 시험에 꽤 도움이 되었거든.”
알리사가 호탕하게 웃었다.
“어차피 이 근처에 볼일이 있으셨다고 하시더라. 물어볼 것 있으면 편히 물어봐. 나랑 알리사는 좀 떨어져 앉아 있을게.”
생긋 웃는 유제니아는 어느 쪽으로 바라봐도 ‘천사 같은 외모를 지닌 상냥한 선배’ 그 자체였다.
바네사는 눈을 반짝였다. 나도 저런 사람이 되어야 할 텐데!
선생님께서는 ‘알반’이라는 이름을 경계하라 했지만 바네사는 이미 흐물텅 넘어가 버린 지 오래였다.
“여기예요. 선배님!”
“어어, 안녕.”
얼마 지나지 않아 현재 마법부에 다닌다는 졸업생이 나타났다. 빛바랜 회색 머리를 질끈 묶고 발끝까지 내려오는 코트를 입은 여자의 이름은 무니아 트랜이었다.
그녀는 마법부가 어떻게 나누어져 있는지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생각보다 세분화되어 있어. 아무래도 마법 능력이 있는 자들만 뽑긴 하지만 능력 자체의 유무가 중요한 거지, 그 크기 자체는 중요하지 않아. 마법을 이해해야 하니까 말이야.”
무니아는 단 하나의 후배라도 더 마법부로 꼬시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설명했다.
과로! 과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마법사들이 들어와야 했다.
하지만 강력한 마법사가 아닌 애매한 마법사들은 오히려 사업 쪽으로 빠지는 경우가 많아 마법부는 항상 인력이 부족했다.
“더 궁금한 것은 없니?”
무니아 트랜이 쾌활하게 물었다. 바네사는 무례한 질문이 될까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기, 후원자분이 계시다고 들었어요.”
“있었지. 지금은 졸업했으니 다 끝났지만.”
“혹시 후원자분이 누구인지는 아세요?”
“아니, 나는 후원자분이 본인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으셨어.”
무니아가 어깨를 으쓱하고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지금은 연락할 방법도 없어. 원치 않으셨거든. 뭐, 좋은 후원자셨지. 어린 마법사를 억압할 의도도 없으셨고. 졸업할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할 따름이야.”
바네사는 어쩐지 시무룩해졌다. 그렇구나, 그게 좋은 후원자가 맞지. 하지만 연락할 방법도 없다니… 나도 졸업하면 그렇게 되려나.
선생님하고 다시는 편지할 수 없다니. 어쩐지 속이 울렁거렸다.
“졸업하고 나서는 정말 힘들었지만 지금은 살 만해. 집을 구할 방법은 어떻게든 있고… 마법부는 월급이 좋은 편이거든. 걱정하지 마.”
결국은 다시 혼자가 되는구나. 아니, 생각해 보면 지금도 혼자지. 선생님은 내 가족이 아니시니까 말이야.
무니아 트랜이 떠나고 -알고 싶은 것이 있다면 언제든 연락해! 마법부를 잊지 말라고!- 유제니아와 알리사가 카페 문을 열고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바네사는 작게 한숨 쉬고 그들을 따라 나가려 했다. 카페 소식판에 걸린 쪽지 하나가 아니었다면.
「구인 공고
토요일, 일요일 저녁 5시-9시
간단한 음료 제조, 카페 청소 및 마감
문의는 주인에게.」
바네사는 홀린 듯 그 쪽지를 들여다보았다.
“바네사, 안 가니?”
유제니아가 부드럽게 말하자 바네사는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렸다.
“네, 가요.”
바네사는 카페 문을 닫았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뒤를 흘끗댔다.
⚜ ⚜ ⚜
바네사는 아카데미로 돌아온 뒤로도 계속 그 쪽지 생각을 했다. 유제니아와 알리사만 없었다면 바로 문의를 했을지도 몰랐다.
씻을 때도, 잠옷으로 갈아입을 때도, 침대 이불을 정리해 안에 파묻힐 때도 오직 카페의 구인 공고 생각뿐이었다.
“바네사, 가지고 싶은 것은 없어? 곧 성 바란도 탄신일이잖아!”
잘 준비를 하던 리나가 흥얼대며 물었다. 바네사는 그제야 쪽지의 생각을 떨쳐 냈다.
성 바란도 탄신일이라. 고아원에서도 챙기던 프리바 최대의 기념일이었다.
그날이 되면 고아원에서도 후원자들이 보내 준 선물 쟁탈전이 벌어지고는 했다. 바네사는 한 번도 혼자만의 선물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딱히 없는데. 너는?”
“비밀이지. 바란도께서는 비밀을 지킨 성인이잖아.”
리나가 장난스레 혀를 빼물고 키득거렸다.
고결한 바란도는 신이 아끼는 자식이었다. 그는 신이 내린 축복을 잘 숨겨 두어 세상의 멸망을 막았다.
그런데 어느 날 악마가 나타나 그에게 무엇이든 줄 테니 그 축복이 무엇인지 한 번만 보여 달라 애걸했다.
계속되는 유혹에 바란도는 스스로가 약해질까 두려워 스스로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입을 닫았다.
그는 죽을 때까지 비밀을 지켜 냈고 신은 그를 기리기 위해 밤하늘의 가장 빛나는 별로 만들었다.
11월에 가장 잘 보이는 별이고 그가 10월의 마지막 날에 죽었기에 11월 1일이 바란도가 새로 태어난 날이라 하여 ‘성 바란도 탄신일’로 널리 알려졌다.
“너랑 체바티는 물론이고 선생님께도 선물을 좀 드리고 싶은데….”
“드리면 되지, 뭐가 문제야?”
리나의 간단한 대답에 바네사는 눈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하지만 선생님의 선물을 선생님의 돈으로 드리긴 싫었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한 가지뿐이지.
바네사는 샐쭉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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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네사 로즈 양에게.
성 바란도 탄신일에 받고 싶은 것이 있나요?
선생님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