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rely, Vanessa RAW novel - Chapter (2)
선생님께, 바네사로부터 2화(2/146)
<2월 9일, 에디르네력 1309년>
선생님께.
제가 편지를 보내는 간격이 너무 짧죠? 그래도 부디 지루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전 일기를 하루에 세 번이나 쓴 날이 있었다니까요.
이제 벌써 한 주가 지났으니 저도 이제 어엿한 밤베르크의 학생이라고 할 수 있겠죠?
교수님들은 중도 입학자들을 위해 기초 수업들을 열어 주셨어요.
아시다시피 3학년 중도 입학자는 오직 저 하나뿐이기 때문에 딴짓도 못 하고 맨 앞에서 수업을 듣고 있답니다.
“바네사 학생, 어제 내가 마법의 3요소를 뭐라고 했지요?”
그러면 저는 버벅대면서 뭐라고 웅얼대는 거지요.
하루에 과목이 3개는 되고 하루에 50장이 넘는 진도를 감당하려니 조금 힘들기는 하지만 재미있어요. 누군가가 제 질문에 대답해 주는 기분이 아주 좋거든요!
선생님, 밤베르크 아카데미는 정말 경이로운 곳이에요.
이름에 숨겨진 뜻처럼 거대한 산이 주변을 감싸고 있어요. 왼쪽에 끼고 있는 깊은 호수에는 사나운 인어가 산대요. 열심히 들여다보았지만 비치는 것은 제 얼굴뿐이었어요.
아카데미는 햇빛이 빛날 때는 반짝이는 보석처럼 아름답고 가끔 안개가 끼면 어느 왕자가 살았다는 성처럼 몽환적이에요.
저는 어쩐지 빛나는 밤베르크보다 안개 낀 밤베르크가 더 좋았어요.
그뿐인가요. 수도 없이 이어진 첨탑과 거대한 성벽들. 세월의 흐름을 보여 주는 벽돌들은 묘한 색을 띠고 있죠.
첨탑과 지붕에 장식된 황금색의 장식들은 너무나 우아하고요. 그 위를 장식하는 수많은 창문들은 어찌나 거대하고 많은지, 빛이 들어오지 않는 공간이 없어요.
제가 요즘 들어 가장 많이 간 장소는 시계탑 가장 꼭대기에 숨겨진 공간이에요. 밖을 향한 거대한 시계의 뒤판에는 정교한 태엽들이 서로 맞닿아 돌아가고 있어요.
끼익 하는 소리 하나 없이 맞물리는 것들을 보면 마음이 평온해져요. 모든 것이 저렇게 순조롭게 돌아가기만 한다면야!
학교 내부는 방학에도 집에 돌아가지 않는다는 5학년 선배 한 분이 안내해 주셨어요. 선배님의 이름은 알리사 볼튼이에요.
그때의 대화를 기억나는 대로 써 봤어요. 정확하진 않겠지만 제 기억력이 좋길 바라 봐야죠.
“3학년 중도 입학자는 거의 없는데. 어떻게 들어오게 된 거니?”
“저도 잘 모르겠어요. 입학 서류를 내고 시험을 봤는데 3학년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흠, 아마 이유가 있겠지. 교수님들이 하는 일에는 허점이 없거든. 나이는 어떻게 되니?”
“18살이에요.”
“그렇구나. 이미 성인이네. 나는 19살인데 나도 제법 늦게 들어온 편이야. 걱정 마. 나도 2학년 중도 입학자였거든. 적응이 어렵지 않았어. 왜냐하면….”
그리고 먼 산만 바라보면서 뒷말은 삼키시더라고요. 뭐였을까요? 선생님은 아세요?
곧이어 선배님이 안내해 준 교실들은 모두 아름다웠어요.
그냥 천편일률적인 모습이 아니라 어느 교실 천장엔 비행선과 기차 모형이 달려 있었고 그것들은 허공을 떠다니며 움직였어요!
(여긴 마법공학 교실이야. 최악이지. 알리사 선배가 그리 말했어요.)
어느 교실은 한쪽 면이 모두 열리는 거대한 창이었는데 그 앞은 나무 몇 그루 빼면 아주 황량했어요.
(여긴 검술 수업도 하고 마물들을 상대하기 위한 파괴적인 마법들을 배우는 곳이야. 최악이지.)
다음은 도서관이었어요. 세상에, 그곳은 제가 본 어느 곳보다 아름다웠어요.
나선형으로 올라가는 새하얀 계단과 책장마다 가득 꽂힌 책들, 걸쳐진 사다리들과 세월의 흔적이 가득한 거대한 책상.
붉은 천이 깔린 의자들은 보기만 해도 푹신해 보였어요.
(지금은 아름다워 보이겠지만 시험 기간마다 여기서 살게 되면 보기만 해도 토가 나올걸. 최악이지. 누가 말했는지 아시겠죠?)
전 항상 책을 지역 도서관에서 빌려 보았는데 누군가의 낙서나 음, 더러운… 무언가로 책이 더러워져 있었죠.
전 낙서는 좋아해요. 누군가의 생각을 들여다보는 느낌이라서요. 하지만 더러운 이물질은 누구나 싫어하잖아요?
여기 아카데미의 도서관은 달라요. 책 하나하나에 아름다운 금박을 입힌 가죽 장정이 있죠. 덕분에 사서 선생님은 눈에 불을 켜고 모두를 지켜보세요.
도서관에서 발을 떼지 못하는 저를 알리사 선배가 잡아끌어서 기숙사로 돌아왔어요.
방에는 아직도 저 혼자예요. 덕분에 떠들 새도 없이 열심히 복습을 해요. 뒤에서 유혹하는 침대를 애써 무시하면서요.
제가 정말로 낙제를 하면 어쩌죠?
이 편지를 보내고 나서도 절대로! 침대에 눕지 않고 나머지 과제를 마무리하겠어요.
선생님의 건강을 빌며,
수학 공식 하나하나의 증명을 외우느라 고통스러운,
바네사 로즈 올림.
p.s 혹시 편지가 너무 긴가요? 딴소리가 너무 많죠? 그렇다면 꼭 말씀해 주세요, 말을 조금 줄여 볼게요.
⚜ ⚜ ⚜
「혹시 편지가 너무 긴가요? …말을 조금 줄여 볼게요.」
남자는 짧게 웃었다.
편지를 내려놓은 커다란 손이 잠시 갈 곳을 잃고 머뭇거렸다.
창밖에 어둠이 완전히 내려앉고 나서야 그는 펜을 들었다.
⚜ ⚜ ⚜
배움이 부족한 바네사에게 학기 시작 전 한 달이라는 시간은 절대로 길지 않았다. 오히려 턱없이 부족하게만 느껴졌다.
바네사는 고아원 출신이라는 꼬리표만으로도 충분했고 멍청하다는 소리까지 듣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바로 다음 날부터 시작된 보충 수업에 최선을 다했다.
만난 지 겨우 2주밖에 되지 않았지만 제자를 아끼는 마음만은 누구보다 강한 교수님들은 바네사의 걱정을 부숴 주기로 마음을 단단히 먹은 듯했다.
바로 엄청난 수업 양으로!
“어제 배운 내용은 모두 기억하리라 믿고.”
첫 줄, 가운데에 홀로 앉은 바네사가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어제 배운 것이 한두 개여야 말이지.
하지만 귀도 교수는 모른 척 말을 이었다.
“오늘은 간단히 마법 생물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볼까.”
귀도 교수는 느긋하게 판서를 시작했다.
“프리바 국립 사전에서 내린 정의에 따르면 마법 생물에는 마물, 요정 등 다양한 생물들이 포함되지. 마법의 요소를 가진 생물들이라면 모두 마법 생물로 통칭한다. 다만 그렇다면 의아하지. 마물은 무엇으로 정의하나?”
바네사는 최대한 초롱초롱한 눈빛을 유지했으나 귀도 교수는 자비가 없었다.
“왜 눈을 그렇게 뜨나? 눈빛 대신 입으로 대답을 해 보게.”
“…사람에게 해를 끼치느냐, 끼치지 않느냐로 판단하는 것이 아닐까요?”
귀도 교수는 바네사의 대답을 적은 뒤에 위에 크게 동그라미를 쳐 주었다.
“그렇지. 지극히 인간 기준의 정의라 마물이 아니었다가 마물이 되었다가 제멋대로인 경우가 많아. 요즘은 유독 마물로 재분류되는 것들이 많지.”
귀도 교수는 빠르게 줄줄 말하다가도 바네사에게 의견을 물어보고는 했다. 덕분에 바네사는 흐트러질 시간이 없었다.
가끔 책에서나 보던 마물과 요정에 대해 배우는 것은 재미있었지만 그 세부적인 분류에 들어가자 흥미는 빠르게 식어만 갔다.
요정들의 날개 각도가 분류에 그리 중요한 것인지 처음 알았지만 실제로 봐도 알아챌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귀도 교수님의 수업은 그나마 나았지 수학 수업을 담당하는 봄발로우 교수님 시간이 되자 바네사는 얻어맞은 듯 피곤해졌다.
“이것도 모르면서 어떻게 내 <수학3> 수업을 들을 건가! 자, 여기부터 여기까지 모두 풀어 오게. 공식은 싹 외우고. 내일 바로 짧게 시험을 보겠네.”
실제로 숙제 양으로 얻어맞긴 했다.
모든 수업이 끝나니 이미 오후 4시가 지나 있었다. 외로운 바네사는 책을 한 아름 안고 터덜터덜 기숙사로 걸어 올라왔다.
오늘은 아마 봄발로우 교수님이 내주신 수학 과제만으로도 남은 하루를 보내기 충분할 테지. 다만 모르는 것들이 너무 많아 도서관에서 참고 자료를 찾아야 할 것이다.
칠이 약간 벗겨진 금색 열쇠를 여러 번 돌려 기숙사의 문을 열었다. 처음에는 놀랍게 아름답던 것들도 이젠 그냥 책상이고 침대였다.
“눕고 싶다….”
하지만 누웠다가는 절대로 일어나지 못할 것이 뻔했다.
한숨을 푹 내쉰 바네사는 책들을 바삐 정리하고 도서관에 갈 준비를 하던 와중에, 어쩐지 위화감이 든다고 생각했다. 항상 똑같은 방인데도.
바네사는 무엇이 문제일까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눈을 크게 떴다.
아름다운 도자기 같은 곡선을 지닌 호니르의 입구에 편지가 떨어져 있었다.
바네사는 두 번이나 눈을 비볐다. 혹시 꿈은 아니겠지? 하지만 아무리 비벼 봐도 눈앞의 편지는 여전했다.
바네사는 조심스럽게 편지를 끄집어냈다.
아름다운 밀색의 봉투와 붉은 밀랍 봉인. 그 위에는 기울어지고 장식적인 필체로「바네사 로즈 양에게」라고 적혀 있었다.
바네사는 이 놀랍도록 아름다운 편지의 내용을 알고 싶기도 했고, 알고 싶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엔 봉인을 뜯고 조심스럽게 편지를 펼쳤다.
⚜ ⚜ ⚜
<2월 15일, 에디르네력 1309년>
바네사 로즈 양에게.
답장을 보내는 것은 처음입니다. 편지로는 처음 만나니 반갑다는 말을 먼저 드려야겠습니다.
반갑습니다, 바네사 로즈 양. 로즈 양이 부르는 것처럼 나도 스스로를 선생님으로 칭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주 과분한 호칭이지만 말입니다.
당신의 편지를 즐겁게 읽고 있습니다. 아카데미에서 많은 것을 배우느라 바쁘리라는 것을 압니다.
특히 중도 입학이라면 초기 진도를 따라잡느라 많은 힘이 들 것입니다. 필요한 것이 있다면 언제나 말해 주십시오.
모르셨겠지만 제가 직접 피후원자를 고른 것은 처음 있는 일입니다. 그 작은 마을에 들른 것도 아주 우연이었습니다.
거기서 하필 로즈 양이, 빛무리 사이에서 춤을 추듯 걷는 모습을 발견한 것은 더욱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필요한 것을 말하지 않았으니 펜과 가죽 장정이 아름다운 노트 여러 권을 보냅니다.
후원에 다른 조건은 없으니 많은 것을 배우고 기록하길 바랍니다.
선생님으로부터.
p.s 두꺼운 편지 봉투가 호니르 안에 담겨 있을 때마다 얼마나 기대가 되는지 모릅니다.
⚜ ⚜ ⚜
바네사는 편지를 접고 달아오른 뺨을 쓸어내렸다.
태어나 처음으로 받아 본 답장은 눈물 날 정도로 감격스러웠다. 그리고 손끝까지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마치 마법처럼.
바네사는 햇빛이 잘 드는 창가 아래에 편지를 올려 두었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바네사는 씩씩하게 수학 교과서와 펜을 챙겨 들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지쳤던 기분은 온데간데없이 발끝이 가벼웠다.
⚜ ⚜ ⚜
한동안 바네사는 선생님에게서 온 답장의 힘으로 새벽 3시가 지나서야 잠들었다.
덕분에 과제는 완벽했고 복습, 예습까지 빠짐이 없어 교수님들께 한껏 칭찬을 들었다.
하지만 그 힘도 이제 다 쓴 듯 오늘따라 자꾸 눈이 감겼다.
허벅지를 찌르는 것도 이미 효력을 다한 지 오래였다. 바네사는 책상 위로 머리가 기울어지는 것을 느꼈지만 저항할 힘이 없었다.
그러다 바네사는 시끄러운 소리에 퍼뜩 놀라 눈을 떴다.
무언가 문에 탕탕 부딪히고 있었고 문고리가 철컥대는 소리가 울렸다.
놀란 바네사는 조심조심 일어나서 옆에 있던 살인 병기로 쓸 수 있을 두께의 책을 쥐었다. 침을 꼴깍 삼키고 살금살금 걸어서 문 앞에서 기다렸다.
하나, 둘, 셋!
“꺄악!”
“아악!”
두 사람이 서로의 얼굴을 맞대고 비명을 질렀다.
“뭐, 뭐야! 너 누구!”
“나, 난 바네사 로즈….”
“놀랐잖아!”
바네사 앞의 소녀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푹 한숨을 내쉬었다. 누가 봐도 귀한 집 딸 같아 보이는 소녀였다.
일부러 구불거리게 만 머리카락에는 윤기가 흘렀고 입고 온 옷은 하나도 빠짐없이 격식에 맞았다. 구두코에는 흙먼지 하나 묻어 있지 않아 광택이 흘렀다.
“좋아. 네가 이번에 나와 방을 함께 쓰겠구나. 너는 좀 오래 버티길 바랄게.”
생긋 웃은 소녀는 손을 내밀었다.
“3학년 리나 델리나야. 만나서 반가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