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rely, Vanessa RAW novel - Chapter (20)
선생님께, 바네사로부터 20화(2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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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네사가 서고트의 어느 카페에서 시간제 일을 하기로 했다는 사실을 말하자마자 리나는 눈을 치켜뜨고 체바티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에반은 입을 떡 벌렸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세 사람은 동시에 입을 열었다.
“바네사 로즈, 제정신이야?”
“바네사, 너무 무리일 것 같아요.”
“야, 너 미쳤어?”
바네사는 제 계획이 몹시 마음에 들어 저런 소리는 들리지도 않았다. 바네사는 새파란 눈을 반짝이며 대꾸했다.
“주말 잠깐인걸? 4시간만 하면 돼.”
반쯤 정신 나간 바네사의 말에 리나가 인상을 찌푸렸다. 4시간이라니. 지금도 쉴 시간이 없는 애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도대체 왜? 선생님이 주시는 돈이 부족한 거야?”
“절대 아냐! 이유는 큼, 비밀이야.”
“운동은 언제 하려고?”
차마 미쳤다는 말보다 더 심한 말을 하지는 못한 에반이 앞머리를 쥐어뜯으며 말하자 바네사는 여상하게 대꾸했다.
“그거야 새벽이랑 저녁에 원래대로. 주말 저녁만 빼고.”
체바티는 아주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바네사, 수업과 과제만으로도 이미 너무 바쁘잖아요. 하루에 5시간도 못 자면서. 바네사가 공부하게 된 것을 행운으로 여기고 있는 것은 알지만 체력적으로는 다른 일만큼 힘들다고요.”
“일단 한 달 정도만 해 볼게! 힘들면 그만두지 뭐.”
바네사가 활짝 웃었다. 리나와 체바티는 눈빛을 교환했다. 말을 안 듣는데? 그러게요….
그렇다고 대놓고 반대를 하기는 어려웠다. 실제로 아카데미 내부에서도 생계를 위해 일을 하며 공부하는 사람들이 몇몇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수업 개수가 바네사보다 적다는 것은 분명했다.
리나 델리나는 심각하게 고민했다. 바네사의 ‘선생님’께 이르기라도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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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3일, 에디르네력 1309년>
다정하신 선생님께.
답이 너무 늦었죠? 제가 비밀리에 진행하고 있는 일이 있어서 그래요. 요즘은 평일이고 주말이고 쉴 틈이 없다니까요.
바란도 성인은 비밀을 지켜 별이 되셨는데 저는 별이 되긴 글렀어요. 하루라도 빨리 편지에 무언가 쓰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거든요.
성 바란도 탄신일에 원하는 것이요?
아무것도 없어요! 선생님이 찾아와 주시는 것 정도를 빼고 말이죠.
이건 진심을 섞은 농담이니 가볍게 무시하셔도 돼요. 무시하지 않으신다면 더 좋지만요.
선생님은 혹시 가지고 싶으신 것이 있으세요? 있으시다면 어서 답을 보내 주세요. 제가 꼭 선물로 드리고 싶으니까요.
편지가 너무 짧다고요? 기대하세요!
답장이 기대되는,
바네사 로즈 드림.
p.s 선생님은 추위를 많이 타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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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10월의 마지막 날 저녁. 다음날이면 성 바란도 탄신일이었다.
바네사는 선생님을 위한 선물을 파랗게 물들인 종이로 감쌌다. 예쁜 상자에 넣고 싶었지만 호니르 입구에 꾸역꾸역 넣으려면 종이 포장도 과분했다.
리나와 체바티를 위한 선물은 이미 예쁜 상자에 넣어 포장했고. 에반은….
바네사는 잠시 고민했다. 아무리 그래도 에반을 빼놓을 수는 없어서 선물을 사긴 했는데 뭐 포장까지 공들일 필요가 있나?
바네사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적당히만 포장하자.
그래도 주변에 늘어놓은 네 가지의 선물을 보니 뿌듯함이 밀려왔다. 몇 주간 열심히 일을 한 보람이 있었다.
카페 주인은 바네사가 아카데미 학생이라는 것을 알고는 열심히 한다며 시급을 올려 주었다. 덕분에 간신히 시간을 맞춰 네 가지의 선물을 준비할 수 있었다.
주말에 쉴 시간이라고는 없으니 몹시 피곤했고 전번엔 눈앞이 잠깐 핑 돌기까지 했다. 하지만 선생님의 것은 완전히 제 돈만으로 마련한 것이니 뿌듯했다.
“바네사, 어디가? 곧 잘 시간이야!”
“어어, 잠깐 놓고 온 게 있어서.”
바네사는 살금살금 기숙사를 빠져나갔다.
성 바란도 탄신일은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선물의 양이 많고 가족들이 보내는 것도 많아 달과 별, 바람 기숙사의 첫 번째 층에 선물을 두는 곳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그냥 주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주면 기분이 더 좋잖아.’
리나의 것은 달의 기숙사 아래에, 체바티의 것은 바람의 기숙사. 에반의 것은 별의 기숙사 아래에 넣어 두고 파란 종이에 감싸진 선물은 다시 제 방으로 가지고 돌아왔다.
종이에 감싸진 것은 고운 광택이 흐르는 검은색 가죽 장갑이었다.
제니언에게 조언을 구하는 편지를 3번이나 보내서 완성한, 제가 직접 그린 마법진이 숨겨져 있는!
편지에 멍청하다는 소리가 얼마나 많았는지 글씨를 읽는데도 제니언의 고함 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 듯했다.
‘이 멍청아! 그게 아니라고 했잖아!’
제니언은 아무리 봐도 선생님을 해서는 안 되는 사람 1순위였다. 혹시나 해서 한 번 더 물어본 걸 가지고.
잠시 입을 비죽인 바네사는 장갑 안에 작은 쪽지를 넣었다.
「행복한 성 바란도 탄신일 되세요!
선생님을 엄-청나게 존경하는,
바네사 로즈가 사랑을 담아.」
그리고 호니르 입구에 선물을 욱여넣었다.
이럴 거면 뭐 하러 곱게 포장을 했는지 모르겠네.
옆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리나가 콧김을 내뿜었다.
“선… 물을 그렇게 구겨서 넣는 거야?”
“주소는 절대 알려 주지 않으시는 걸 어떡해. 넌 내 맘 몰라….”
“네 맘은 내가 제일 잘 알걸? 벌써 3주째 주말 내내 잠을 겨우 4시간 자고 있는 걸 옆에서 지켜보고 있잖아. 선생님에 대한 사랑, 대단하다 아주!”
뼈가 담긴 리나의 말에 바네사는 슬쩍 시선을 피했다.
“이제 곧 그만둘 거지?”
“음, 조금 더 하려고 했는데. 시급이 꽤 괜찮아서.”
“바-네사 로즈.”
리나의 눈에서 거의 불꽃이 뿜어져 나오려 하자 바네사는 호니르에 선물을 집어넣는 것에 집중했다.
“너 그러다 쓰러진다.”
리나의 살벌한 경고에 바네사는 난감하게 눈을 굴렸다. 제가 느끼고 있는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나는 아무래도 좋은 집안에서 자랐기 때문에 바네사가 느끼는 이 부채감을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몰랐다.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은 느낌.
누군가에게 받기만 하는 것이 무서웠다. 그런 관계가 어떻게 계속 지속될 수 있을까?
그러다간 언젠가 질려 버려서 내가 싫어지는 건 아닐까?
“그냥 뭔가 선생님이 주시는 돈 말고 내가 벌어서 드리고 싶어.”
“선생님께 감사하다면 차라리 더 열심히 공부해서 나중에 이름을 떨치도록 해. 이런 건 시간 낭비라고.”
호니르의 안쪽에서 연하고 부드러운 노란 빛이 흘러나왔다. 얼마 뒤, 파란 종이에 감싸진 선물은 온데간데없었다.
“물론 그래야지. 하지만 그건 너무 멀었는걸.”
리나가 혀를 차고는 다시 책상 위의 과제에 집중했다.
바네사도 코끝을 찡긋하고는 책상 앞에 앉았다. 아무리 내일이 프리바 최대 휴일이라 할지라도 오늘 할 일은 끝내야 했다.
에디르네어의 문법은 언제 봐도 어려웠다. 단어 하나하나에 성별이 있다니.
하지만 대부분의 유명한 마법 서적이 에디르네어로 적혀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마법사로서 반드시 능숙하게 사용할 줄 알아야 했다.
밤 11시. 바네사는 펜을 굳세게 잡았다. 그리고 새하얀 종이 위로 빠르게 검은 글씨가 채워지기 시작했다.
⚜ ⚜ ⚜
“바….”
“바네-사….”
“바네사!”
“응?”
바네사는 간신히 눈을 떴다. 졸음이 그렁그렁 묻어 있는 눈을 비비고 고개를 돌리자 리나가 옆에서 씩 웃고 있었다.
손에는 바네사가 준 선물이 들려 있었다. 짙은 분홍색의 복슬복슬한 귀마개.
리나 델리나가 아니라면 누구라도 소화할 수 없는 색이었다.
“진-짜 마음에 들어. 나랑 딱이야. 이런 색을 어디서 구했어? 보나파 제품이지? 그건 그렇고 즐거운 성 바란도 탄신일! 빨리 일어나 봐!”
“그 가게에 네 번이나 찾아가서 부탁했어.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야! 그런데 왜? 창밖에 뭐라도 있어?”
바네사는 벌떡 몸을 일으키고 걷어차듯 이불을 옆으로 치웠다. 새하얗고 보송보송한 이불이 형편없이 밀려났다.
바네사는 침대 옆에 있는 창가로 다가갔다.
부드럽게 흩날리는 커튼을 잡아채 넘기니 밖은 이미 악마를 쫓는다는 보라색으로 차려입은 학생들이 뛰어다니고 있었고 교수들이 아카데미의 성벽을 화려하게 꾸며 둔 것이 보였다.
첨탑마다 화려한 금색 장식들과 바란도의 조각상이 올라가 있었고 하늘에서는 계속해서 반짝이는 빛이 떨어졌다.
호수에 사는 생물들도 고개를 내밀고 그를 구경하는 것 같았고 어디선가 요정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바네사는 완전히 흥분해서 어쩔 줄 몰랐다.
“어, 어떡해. 우리도 빨리 나가자. 나 보라색 옷 없는데. 아무거나 입고 나갈까? 그냥 물들일까? 나 이런 것 처음이란 말이야.”
바네사가 횡설수설하며 발을 동동 구르자 리나가 킬킬대며 웃었다.
“그것 때문에 일어나라고 한 것 아니라고. 이리 와.”
“응?”
리나는 침대방과 연결된 작은 거실로 들어갔다. 보통 간식을 먹거나 쉴 수 있는 작은 공간이었다. 하지만 오늘, 그 안에는-
“짜잔.”
“뭐야, 네 거야? 선물 진짜 많다! 풀어 봤어? 나도 하나만 뜯어 봐도 돼?”
온통 화려하게 포장된 선물들과 보랏빛 엔지꽃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작은 소파 위를 점령한 선물 상자들은 곧 굴러떨어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바네사는 제 것이 아니라도 이 멋진 광경에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 예뻐!”
바네사의 말에 리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심술궂게 입꼬리를 올렸다.
“여기부터 저기까지가 내 거.”
리나는 손으로 작은 책장이 있는 곳부터 소파의 반쪽까지 금을 그었다.
“그리고 저기부터 여기까지는 모-두 네 거. 꽃도 다 네 거야.”
“뭐?”
바네사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엔지 꽃과 선물 상자들을 들여다보았다. 선물 상자는 대충 봐도 열 개는 가뿐히 넘어 보였다.
이런 것을 보낼 사람이라고는….
“서, 선생님이 다?”
“슬쩍 봤는데 다른 사람들 이름이 붙어 있는 것도 있던데?”
바네사는 선물 상자에 손을 가져다 대다가 흠칫 놀라 다시 움츠렸다. 항상 들어 왔던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너는 다 컸으니 더 어린아이들에게 양보해야지. 성 바란도 탄신일이잖니.’
하지만 자신도 겨우 10대 초반이었을 따름인데.
“바네사?”
리나가 고개를 갸웃하고는 바네사의 눈앞에 손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좋아서 기절한 것 아니지?”
바네사는 간신히 미소 지었다. 푸른 눈에 담기는 광경이 아직도 믿기지가 않아 얼떨떨했다.
“아냐. 선물 풀어 보고 나갈래?”
“응. 풀어 보고 식당 가서 아침 먹자! 그리고 나무 아래에서 낮잠 좀 자다가 서고트 가서 놀자. 어때?”
“진짜 좋아. 넌 천재야.”
바네사는 바로 앞에 놓인 선물을 먼저 집어 들었다. 납작한 상자였는데 겉은 새파랗고 은색의 반짝이들이 곳곳에 묻어 있었다. 그 위에는 연한 하늘색의 실크로 리본을 묶어 놔서 푸는 것이 황송할 정도였다.
리본이 스르르 풀리고 상자를 열자 안에는 결이 고운 스카프가 차곡차곡 접혀 있었다. 매끄러운 광택이 흐르는 동시에 하늘하늘하게 흔들렸다.
바네사는 조심스럽게 천을 문질렀다. 매끈한 감촉. 그 아래에는 작은 쪽지가 들어 있었다.
「바네사 로즈에게.
즐거운 성 바란도 탄신일 보내요.
기드로부터.」
“어?”
기드라니. 기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