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rely, Vanessa RAW novel - Chapter (29)
선생님께, 바네사로부터 29화(29/146)
5학년 1학기.
<9월 1일, 에디르네력 1310년>
선생님께.
선생님은 믿어지시나요? 선생님의 ‘학업적으로 미성숙했던’ 바네사 로즈가 벌써 밤베르크 아카데미의 5학년이 된 것 말이에요!
4학년 2학기는 정말 빠르게 지나갔어요. 저도 제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니까요!
분명히 체바티가 초대해 주어서 겨우내 밀로 도티 저택에서 지냈던 건 분명한데 그 이후로는 깜깜하네요.
어떻게 한 학기가 머리에서 통째로 사라져 버린 거죠? 잠깐 되짚어 볼게요….
3월은 공부를 했고, 4월은 공부를 했죠. 5월도 공부를 했고… 6월은 학기말 시험 준비를 했네요.
아, 드디어 왜 기억이 안 나는지 알겠네요! 하루가 어쩜 그리도 매일 똑같았는지.
이번 여름 방학에 선생님이 초대해 주신 별장에 가지 못한 게 얼마나 아쉬운지 몰라요.
하지만 도저히 어딜 갈 수가 없었어요. 전 이번 방학 내내 책상 앞에 붙어 있었다니까요! 심화 과목들은 정말 최악이에요.
하긴, 생각해 보세요. 교수님들은 사고뭉치 학생들을 다듬어 실습지로 보내야 하니 마음이 참 조급하셨겠죠.
아, 물론 제 얘기는 아니에요.
저는 이제 밤베르크 아카데미를 속속들이 알아요. 숨겨진 계단과 그 아래 공간들, 도서관에 있는 작은 문과 그 안에 숨겨진 소파, 낮은 첨탑에 기어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 등등.
그러니 잠시 실습을 위해 떠나도 아카데미가 절 기다려 주겠지요?
아직 어디로 갈지는 정해지지 않았어요. 따로 우선순위를 둔 곳도 없고요. 저는 교수님이 추천해 주시는 곳을 그대로 따를 생각입니다.
그래도 어쩐지 걱정이 되어서 운동은 더 열심히 하고 있고 마법도 더 열심히 연습 중이에요.
이제 많은 교수님들이 제 마법 실력을 인정하셨을 정도니까 어딜 가서도 민폐를 끼치지는 않으리라 믿어요.
조건은 모르지만 전 언령마법을 많이 익혔고 마법진도 아주 잘 그리니 적당히 시간만 있으면 되거든요.
아마 실습지는 이번 주 내로 정해질 것 같아요.
덕분에 이번 주는 수업 없이 편히 지낼 수 있어요! 매일같이 햇살 아래의 풀밭 위에서 뒹굴거리고 있답니다.
아쉽게도 리나와 체바티랑 떨어질 것 같아서 서운해요. 리나는 무역 업체에 가서 일을 배우기를 원했고 체바티는 유명한 마법공학 기술자 아래에서 일하기로 했거든요.
편지를 자주 주고받을 수는 있겠지만 거의 한 학기 동안은 잘 만나지 못하겠죠.
저도 이제 이쯤은 훌훌 털어 버려야 하겠지만요…. 제가 생각보다 리나와 체바티에게 많이 의지했나 봐요.
요즘 승마를 배우고 있어요. 아카데미에서 키우는 말인데 순하고 예뻐요. 가끔 화나면 몸을 세우니까 열심히 빗질해 주고 놀아 줘야 해요.
어쩐지 쓰면서 생각이 많아진,
바네사 로즈 드림.
<9월 10일, 에디르네력 1310년>
선생님께.
드디어 실습지가 결정되었어요. 조금 얼떨떨해요. 왜냐하면 특전대로 가게 되었거든요.
제가 알기로 특전대를 지망한 학생들이 꽤 많아요. 에반, 모슈위, 달로이즈는 당연하고 추가적으로 10명 정도가 더 있어요.
그런데 지망도 하지 않은 제가 되어서 좀 놀랐어요. 특전대는 아주 인기가 많은 실습지거든요. 후에 굉장히 가점이 많이 붙는 실습지라고 하더라고요.
교수님들은 오히려 제가 특전대를 지망하지 않아 놀라셨대요. 4학년 2학기에 마물과 관련된 수업을 듣기도 했고, <마법의 공격적 사용>에서도 좋은 평을 받았으니까요.
전 그냥 운동을 할수록 제가 튼튼해지는 것이 좋았고 마물들을 알아 가는 것이 흥미로웠을 뿐인데요.
마물도 쓸 곳이 있잖아요. 뼈라든가, 비늘이라든가?
하여튼 에반, 모슈위, 달로이즈와 함께 가게 되어 다행이에요. 비슷한 수업들에서 가장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이거든요.
가기 전에 준비할 것들이 많아요. 선배들이 몇 가지를 꼭 챙기라고 당부하셨는데 대부분 근처에서 구할 수 있긴 해요.
아마 교수님들이 실습지에 맞는 교육을 한 달간 진행하시고 바로 보낼 생각이신 것 같아요.
설레는 동시에 걱정이 많이 돼요. 사고를 칠까 봐요. 어떡하죠?
걱정이 몹시 많은,
바네사 로즈 드림.
<9월 14일, 에디르네력 1310년>
바네사 로즈 양에게.
요즘 일이 많아 답이 늦었습니다. 미안합니다.
바네사 양, 만약 그 실습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교수님께 말씀드리십시오. 아마 확정되지 않은 사항일 것이니 바꿔 주실 것입니다.
현재 특전대가 활동하는 곳이 매우 위험한 곳이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바네사 양이 조금 더 안전한 곳에서 실습을 진행했으면 합니다.
바네사 양은 마법적으로 재능이 탁월하니 특전대가 아니더라도 다른 좋은 실습지로의 기회가 열려 있을 것입니다.
한번 잘 생각해 보길 바랍니다.
선생님으로부터.
⚜ ⚜ ⚜
바네사는 선생님의 말대로 곰곰이 생각해 보기로 했다.
실습 중에 특전대 실습이 육체적으로 가장 힘들다는 것은 확실했고 선생님이 걱정하시는 이유도 잘 알았다. 위험하니까.
그래서 답을 빠르게 드리지 않았다. 어쨌든 무언가 결심이 서야 편지에 새로운 내용을 담아 답장을 드릴 것이 아닌가.
특전대 실습의 장점이라면 후에 왕실 내각 부서에 지원할 때 제법 큰 가점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왕이 포기하는 것이 많은 특전대원들을 위해 많은 명예를 쥐여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혹시 가서 기드온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물론 만날 확률은 터무니없이 낮았지만 그곳에서도 만난다면 정말 신기할 것 같았다.
퓌돔에서 기드온을 만난 뒤로 아주 가끔, 한 달에 한 번쯤은 작은 편지를 주고받고는 했다.
내용은 대부분 별것 아니었다. 시시콜콜한 작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무엇은 좋아하고 무엇은 싫고. 그 책은 재미있었는데 이 책은 재미없고.
바네사는 기드온의 글씨를 보는 것이 좋았다. 그렇게 정확하고 반듯한 글씨라니.
선생님의 살짝 기울어지고 흘리는 곳이 많은 글씨체를 봤을 때 코끝이 찡한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바네사 로즈.”
수업이 없는 마지막 3일, 리나와 체바티랑 함께 휴식을 즐기던 바네사에게 아페르 교수가 찾아왔다. 바네사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잠시 나와 얘기 좀 할까?”
“네, 교수님.”
바네사가 의아하게 아페르 교수 앞에 서자 그는 잠시 목을 가다듬고 먼저 걷기 시작했다.
바네사가 아페르 교수를 따라 걷자 친구들과 늘어져 있는 학생들이 어느 정도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제야 아페르 교수는 입을 열었다.
“혹시 바네사, 실습지 변경에 대해 생각이 있니?”
“아뇨, 교수님. 따로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어째서 물으세요?”
바네사가 어리둥절해서 묻자 아페르 교수는 눈꼬리를 내리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빠르게 말을 이었다.
“네 후원자에게서 따로 연락이 왔는데 혹시 다른 실습지로 변경이 가능한지 여부를 묻더구나. 그래서 네 의견을 들으러 왔다.”
“네?”
“물론 후원자가 이런 것에 음, 신경 쓸 수도 있지만 인기 있는 실습지를 굳이 포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되어서.”
바네사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들은 내용을 되짚었다.
아페르 교수는 침착한 미소를 입에 건 채로 바네사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바네사는 다시 한번 대화를 곱씹고 이를 갈았다. 이 선생님이 진짜.
“제가 후원자님께 따로 말씀드릴게요. 감사합니다, 교수님. 실습지는 유지해 주세요.”
눈에서 불이 뿜어져 나오는 바네사를 보고 아페르 교수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대화를 잘 해 보았으면 좋겠구나.”
“교수님, 그런데요.”
바네사가 가만히 선 채로 땅을 툭툭 찼다.
“혹시 제 후원자분이 누구신지는 아세요?”
“바네사, 나는 모른단다. 그리고 네가 아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지 않는다. 그 후원자가 네게 익명을 유지하는 것도 같은 이유란다. 오히려 네가 짊어질 짐이 줄어드는 거야.”
바네사는 시선을 바닥에 고정한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같은 말을 한다니까.
⚜ ⚜ ⚜
<9월 20일, 에디르네력 1310년>
선생님께.
선생님이 아카데미 측에 연락을 취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제가 답이 늦어서 기다리다가 그러셨으리라 믿어요.
다만 답장이 늦은 것은 생각을 해 보느라 그랬어요. 걱정하시는 걸 아니까요.
하지만 저는 특전대로 실습을 나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제 곧 경계에 가까운 타나미르 지방으로 떠날 예정입니다.
아무래도 제 미래를 위해서도 그 방향이 좋을 것 같아요. 면접에서 가점이 붙을 수도 있고요.
연락을 취하는 간격이 넓어지더라도 걱정하지 마세요.
폐를 끼치지 않도록 열심히 하고 돌아오겠습니다.
바네사 로즈 올림.
⚜ ⚜ ⚜
아주 짤막한 답장을 보낸 바네사는 가방 안쪽에 호니르를 천으로 둘둘 말아 집어넣었다.
자신을 걱정한 선생님의 마음은 알지만 어쨌든 자신에게 먼저 연락을 하셨으면 좋았을 것이다.
가볍고 보온이 좋은 옷들 위주로 짐을 싸고 밑창이 튼튼한 신발을 고르고 있자 옆에서 지켜보던 리나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왜 그래?”
바네사가 어리둥절해서 묻자 리나가 울적하게 말했다.
“걱정되니까 그렇지. 내가 가는 곳은 위험하지 않은데 네가 가는 곳은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다치기라도 하면 어떡해.”
“학생들한테 뭘 시키기나 할까? 사실 특전대 쪽에서 엄청 귀찮아할 것 같아.”
바네사가 털이 푹신한 카펫 위에 털썩 주저앉아서 말하자 리나도 고개를 갸웃하다가 말했다.
“하긴, 그래. 그들은 정말로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데 학생까지 붙이면 좋지는 않겠지.”
“응, 아무래도 학생들 보호까지 맡아야 하는 거니까. 그래서 보통 때는 학생들이 실습 파견될 때엔 좀 편한 곳으로 이동한다나 봐.”
“이 신발이 가장 나아 보인다. 가죽도 부드럽고. 밑창이 두꺼운데 무겁진 않으려나.”
리나가 신발 하나를 골랐다. 가죽을 잘 무두질해서 부드러웠으나 튼튼했다. 투박했지만 마무리가 깔끔하여 실용적이고 고급스러웠다.
“선생님이 보내 주신 거야? 괜찮아 보이는 신발이네.”
“아니, 체자르가. 아니, 체자르 차관님이라고 불러야 하나.”
“뭐어?”
갑자기 리나의 눈이 반짝거렸다. 리나는 열애설이라면 사족을 못 썼다.
“체바티의 오빠 말하는 거지? 그 마법기술부에 있다는! 그 어린 나이에 차관이야? 몰랐네. 계속 연락하고 있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