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rely, Vanessa RAW novel - Chapter (32)
선생님께, 바네사로부터 32화(32/146)
⚜ ⚜ ⚜
“아이고….”
그레인이 중얼거렸다.
마을 안쪽은 그야말로 처참했다. 길에 사람들은 없고 오직 시체들만 널브러져 있었는데 그 시체들도 딱히 정상적이진 않았다. 사지가 온전한 것이 드물었다.
바네사는 분명히 과거에는 아름다웠을 마을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커다란 길을 사이에 두고 잘 가꾸어진 덤불과 나무들, 하얗게 칠해 둔 울타리.
사람들은 이 길을 걸으며 단란한 대화를 나누었을 것이며 헤어질 때는 다정한 인사를 주고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텅 비어 악취만 났다. 그 간극이 참혹해 바네사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히솝이 허리를 숙여 시체를 꼼꼼히 살폈다.
“씹어 먹힌 크기가 다릅니다. 적어도 두 개체 이상입니다. 아니면 작은 것이 크게 자랐거나.”
“이 정도 처먹었으면 새끼도 낳았겠어.”
“생식 능력이 없는 녀석이길 바라야죠.”
바네사는 차마 바라보기도 힘든 상처 부위를 히솝은 면밀히 조사했다.
“이빨 자국이 이상합니다. 정상적인 육식 마물의 이빨이 아닙니다….”
“키메라의 가능성도 있습니다.”
안달루스가 부드럽게 말했다. 기드온은 바로 옆의 집의 문을 열었다. 이미 폐가처럼 보였다.
“사람을 만나야 뭘 묻겠는데.”
“아무도 열어 주지 않을 것 같은데요….”
에반이 머리를 긁적였다. 창문 사이로 비치던 눈동자들이 형형했고 그마저도 곧 커튼 뒤로 숨어 버렸기 때문이다.
“특전대 제복을 입었는데도 이렇다니.”
“그 전 병사들이 한 짓을 봐. 누굴 믿겠어? 식량도 부족했을 거야.”
“저 집, 그 아저씨가 말한 딸이 산다는 집 같은데요. 편지를 건네면 열어 주지 않을까요?”
바네사가 멀리 있는 새하얀 집을 가리켰다.
‘제가 벽을 다시 칠해 주었습니다… 온통 새하얀데 굴뚝만 파란색으로… 깨끗한 것만 보고 살라고, 제가, 제가….’
모두 침묵 속에 하얀 집으로 걸어갔다.
모슈위는 널려 있는 시체 중에 어린아이의 것을 보고는 결국 눈물을 흘렸다. 그 모습을 본 바네사는 꾹 참느라 입술만 깨물었다.
“어휴, 인마. 콧물 닦아.”
“끄흥….”
그레인이 모슈위의 등을 퍽퍽 두들겨 주며 위로했다. 모슈위는 훌쩍이며 콧물을 닦았다.
“너무, 너무 끔찍해요….”
“특전대가 못 하면 이것보다 더 심하지요.”
안달루스 소령이 조용히 말했다. 바네사는 묵묵히 마을의 모습을 시선에 담았다.
어둡고, 생기 없는.
“마물이 나타난 곳은 대부분 이렇게 됩니다.”
기드온이 덤덤히 말했다.
“울 정도로 그들의 불행에 이입하진 마십시오.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좌절감만 듭니다. 대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그는 삐걱대며 망가진 문을 열었다.
“마물을 죽이면 됩니다.”
냉정하게 떨어진 말에 안나가 씩 웃었다.
“그거야 우리 전문이죠.”
하얀 집은 뜰을 지나 가까이 다가가도 인기척이 없었다. 안나는 먼저 문을 두드렸다.
똑똑.
“안녕하십니까아. 특전대입니다. 혹시 만돌로 님의 따님 여기 계십니까아.”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안나는 굴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만돌로 님이 이 마을 상황을 알려 주셔서 보러 왔습니다아. 제발 문 좀 열어 주실래요? 만돌로 님이 편지도 하나 주셨는데요.”
모두 작은 대답 하나라도 나오길 기다렸다. 결국 몇 분이 흐르자, 문이 겨우 반 뼘 정도 열렸다.
문 사이로 눈을 내민 것은 비쩍 마른 여자였다. 그녀의 눈에는 경계심이 가득했다.
“여기, 편지입니다.”
안나가 침착하게 편지를 건네자 그걸 잡아챈 여자는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찢어 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습을 드러낸 편지의 글씨 위로 여자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메마른 얼굴 위를 눈물이 적시기 시작했다.
“흐, 흐흑… 아빠아….”
“들어가도 될까요?”
그레인이 성급하게 물었다. 여자는 떨리는 입술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특전대원 5명과 학생 4명이 집에 들어가니 안쪽이 꽉 찼다. 이 난리 통에도 집 안은 깨끗했다.
여자는 계속해서 편지를 매만지다가 부엌 쪽으로 사라져서 뭔가를 들고 왔다.
“죄송해요, 있는 것이 없어서….”
여자가 꺼내 온 것은 겨우 곡식 한 줌을 넣고 끓인 물이었다.
뼈가 드러난 손등을 보던 달로이즈가 옆구리에 찬 짐을 뒤져서 고기를 말린 것과 과일을 말린 것들을 바리바리 꺼냈다.
“이거 드세요. 맛, 맛있어요.”
간신히 그 말만 한 달로이즈는 다시 입을 딱 닫았다. 광대뼈가 드러난 여자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동안 안쪽에 있는 방문이 살짝 열렸다가 닫혔다. 누군가 안에 있는 것 같았다.
바네사가 그쪽을 쳐다보자 여자가 속삭였다.
“제 남편이에요. 아이와 함께 안에 있어요…. 아이 우는 소리가 나면 곤란하거든요.”
“마물이 소리에 예민합니까?”
“낮은 모르겠지만 밤에는 확실히 그렇죠.”
여자는 푹 꺼진 눈을 깜빡였다. 그녀의 손가락은 여전히 편지를 쓸고 있었다.
“정확히 언제부터 마물이 나타났습니까?”
“두 달쯤 되었어요. 마을이 봉쇄된 것은 한 달 정도 되었고요.”
“마물을 본 적 있습니까?”
“본 적 없어요. 모두 집에 틀어박혀 보지 않으려고 해요.”
“어째서?”
“마물을 본 사람들은 스스로를 바치듯 조용히 죽었으니까요. 군인 출신의 덩치 큰 아저씨도, 대장장이도. 반항한 흔적도 없어요. 심지어 비명 소리도 나지 않았고요.”
여자는 중얼거렸다.
“뼈와 살이 씹히는 소리만 났죠.”
이것저것 말해 준 여자가 특전대원들을 위해 자리를 비켜 주고 안쪽의 방으로 사라졌다. 문틈 사이로 작게 아기가 칭얼대는 소리가 났으나 곧 흐려졌다.
“특이 능력이 있나 보군.”
기드온이 피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안달루스도 한숨 쉬었다.
“예. 문제는 개체 수가 한 마리 이상일 것 같다는 겁니다.”
다행히도 여자는 특전대에게 집을 빌려줄 수 있다고 했다. 좁았지만 아홉 명의 짐을 감당하기엔 충분했다.
모두 필요 없는 것들을 두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어쨌든 사람에게 깃드는 마물이 아니라면 밖을 뒤져야 했다.
“거의 다 밤에 죽어 발견되었다고 했죠?”
“능력이 모든 개체에게 있을까요?”
“알 수가 없군.”
그때 무언가를 발견한 바네사가 옆으로 빠졌다. 히솝이 깜짝 놀라서 외쳤다.
“바네사!”
바네사는 길가의 널브러진 남자 옆에 무릎 꿇고 앉아 무언가를 속삭였다. 동시에 손끝에서 하얀빛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히솝이 재빠르게 옆으로 달려갔다.
따뜻한 빛에 씹힌 상처의 끝이 아물기 시작했다. 아주 느렸지만 효과가 있었다. 치유마법은 오직 살아 있는 사람에게만 효과가 있었다.
남자는 살아 있었다.
“살아 있어? 괜찮을까?”
에반이 초조하게 물었지만 모두 대답할 정신이 없었다.
“바네사, 흐름을 조절해요. 더 약하지만 넓게 퍼지도록. 아주 느리게.”
히솝이 중얼거렸다. 마력의 양을 줄이는 것을 더 어려워하는 바네사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히솝까지 가세하자 겉에 보이는 큰 상처는 거의 아물어 가기 시작했다.
안달루스가 남자의 이마 위로 손을 올렸다. 그리고 널브러져 있던 남자가 번쩍 눈을 떴다.
남자는 천천히 입을 벌렸다.
“괜찮으세요?”
바네사가 더듬거리며 물었다. 핏발이 서고 휘둥그레 뜨인 눈이 그녀의 눈을 마주했다. 남자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기드온이 급하게 바네사를 끌어당겼다. 남자의 손이 바네사를 놓치고 허공을 움켜쥐었다. 기드온은 바네사를 품에 안아 아예 눈을 가려 버렸다.
“아, 아악! 아아아아, 아파아아아아악!”
계속되는 비명에 히솝이 바네사의 귀도 막으라고 눈짓하자 기드온이 아예 바네사의 귀까지 막았다.
바네사는 새하얗게 질렸다.
무엇을 잘못했을까? 치료마법에 실수가 있었나? 제대로 아물지 않았나?
“당연히 아프죠. 겉만 아물었는데 성격 급하게 눈을 뜨셨네.”
히솝은 침착하게 남자를 일으키려 했으나 남자는 미친 듯이 발광했다.
“놔, 놔아아아!”
“나 참.”
그레인이 남자를 제압한 채로 일으켰다. 남자는 헐떡이며 울기 시작했다.
“살려 줘, 제발… 살려 줘어어….”
“살려 준다니까요. 집이 어딥니까?”
“끄, 흐응, 흐아아아….”
“아, 집 어디냐고요!”
안나가 버럭 소리 지르자 남자는 벌벌 떨며 말했다.
“저, 저기 초록 지부, 붕… 아, 파! 아프다고!”
남자가 그레인을 거세게 밀쳤다. 밀치고는 다시 혼자 엎어졌다. 상처가 다시 벌어졌는지 피가 스며 나왔다. 히솝이 투덜거렸다.
“힘이 아주 좋으시네. 여기 쓰러진 지 얼마나 되었어요?”
“아아아아아-아아아…”
기드온은 바네사의 귀에서 손을 뗐으나 바네사는 입술까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기드온은 바네사의 손을 잡아 천천히 주물러 주었다. 하얗게 질린 손끝이 크고 따뜻한 손안에서 천천히 혈색을 찾기 시작했다.
“원래 치유마법은 외부 상처에 효과가 먼저 나타나기 때문에 내상이 심하다면 정신을 차려도 저렇게 고통스러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제가 혹시 힘을 잘못 써서. 치유마법을 잘하지 못하는데 괜히….”
바네사가 속삭이자 기드온이 단칼에 말을 잘랐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눈을 감기 바로 전에 무엇을 보았느냐에 따라서도 다릅니다. 저 사람의 경우엔 마물이었을 테니….”
“바네사, 놀랐죠? 흔한 일인데 처음 겪으면 충격을 받는 사람들이 많아요. 본인이 무언가 잘못했다고 느끼고요.”
히솝이 이마 위의 땀을 닦아 내며 웃었다.
“잘했어요. 제가 가장 좋은 실습생을 만났네요.”
“우리 모슈위가 덩치로는 제일인데, 이게 어찌 된 일이야.”
그레인이 느긋하게 말하자 모슈위는 남자의 다리라도 들어야 하나 고민했다. 안달루스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에반은 기드온을 흘끗 쳐다보고는 바네사에게 말을 걸었다.
“괜찮아?”
“응….”
바네사가 힘없이 대답했다. 에반은 수통을 꺼내 건넸다.
“좀 마셔.”
기드온이 그녀의 손을 놓아주고 바네사가 수통을 잡았다. 바네사는 천천히 목을 축였다.
“고마워.”
에반은 은근슬쩍 바네사의 옆에 붙었다. 이상하게 특전대의 대장이 바네사를 챙겨 주는 느낌이 들었다.
무언가 특혜를 주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섬세하게 신경 쓰는 느낌이 나는지!
눈을 뜬 남자가 바네사를 잡아채려 했을 때 가장 먼저 반응한 것도 특전대의 대장이었다….
얼굴도, 몸도 권력도 실력도. 모두 다 부족한데. 미치겠네!
에반은 초조하게 손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마법 연습 좀 열심히 할걸. 재능도 별로 없긴 했지만 말이야. 치유마법이라니!”
달로이즈가 머리를 긁적였다.
초록 지붕의 집은 텅 비어 있었고 먼지가 가득했다. 안달루스 소령은 유리창 위에 내려앉은 먼지를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특전대원들은 침대 위의 먼지를 털어 내고 그를 눕혔다. 남자는 몸을 둥글게 말고 덜덜 떨었다.